3월임에도 날씨는 겨울의 그것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 했다. 숨을 쉴 때 마다 폴폴 나오는 입김도 그렇고 찬 공기에 코끝이 시려, 경수는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마스크를 꺼내어 썼다. 날이 완전히 풀리기 전 까지는 그냥 학교에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잠깐 했다. 그래도 귀찮은 것 보다는 추운 편이 나았다. 귀찮은 것은 정말 질색이었다. 학교 가는 길은 언제나 그 애매한 거리감이 문제였다. 걷기엔 좀 많이 멀고, 그렇다고 버스를 타자니 한 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 거리. 중,고등학교가 같은 운동장을 나눠 쓰는 같은 재단에 있는 학교를 다녀서 6년째 같은 곳으로 등,하교를 했지만, 그게 익숙해졌을지언정 편해지진 않았다. 그래도 이제 1년만 더 고생하면 그 길을 지나다니는 것도 끝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귀에 끼고 있는 이어폰에서 벌써 3곡 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종대에게 집 앞이라고 카톡을 보낸 지 5분이 넘었단 뜻이다. 혹시나 싶어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카톡에 1은 사라졌지만, 종대네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김종대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모양 이었다.



이게 고3 첫날부터 지각을 하고 싶으신가.



결국 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컬러링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종대가 전화를 받았다.  


 
“ 안 내려와? 오세훈 지랄 할 텐데. ”
[ 어. 어. 내려가. 아 김종인 이 새끼가 늦잠 자서. ]
“ 추워. 빨리 내려와. ”  
[ 어. 우리 지금 엘리베이터 타. 미안. ]



종대네 집이 있는 9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그 엘리베이터는 곧 1층으로 내려왔다. 문이 열리고, 종인에게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는 종대와 잠이 덜 깼는지 뚱한 표정의 종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경수는 새 교복을 입고 있는 종인에게 인사를 했다.



“ 김종인. 오. 간지. 예고 교복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근데 너 입학식인데 벌써 학교를 가? ”
“ 학교까지 한 시간 반 걸려. 내일부턴 내가 더 먼저 나가야해. ”
“ 우리 잠만보 이제 개망함여. ”



반쯤 눈이 감겨있는 종인이 자신을 놀리는 종대에게 버럭 짜증을 내고, 종대의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 너 자전거 태워 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



앞으론 더 빨리 갈 수 있겠다며 종대는 신이 난 듯 말 했지만, 사실 종대가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을 경수는 알 수 있었다. 오래 두고 사귄 벗이다 보니 종대의 사소한 버릇이나 말 할 때의 억양에서 종대의 기분이나 상태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마지막은 무슨. ”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종인도 형이랑 함께하는 등굣길이 앞으로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긴 한 모양 이었다. 종대가 천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먼저 앞서 나가는 종대, 종인형제를 바라보며 경수도 페달을 밟아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마스크를 했음에도 뺨에 닿는 공기가 무척 시렸다. 중학교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종대보다 작았던 종인이기에, 당연히 종대가 종인을 뒤에 태우고 다녔다. 하지만 종대보다 종인이 더 커진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불편해서라도 자리를 바꿔 탈만도 한데, 종인은 항상 그 긴 다리를 착실하게 접어 종대에게 매달려가곤 했다. 싸울 땐 아파트 단지가 다 쩌렁쩌렁 울리게 싸우는 통에 부모님이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하실 정도였지만, 그래도 둘은 평균 이상으로 사이가 좋은 형제였다.



“ 버스에서 졸다가 환승 못 하지 말고. ”
“ 내가 무슨 잠 귀신 들린 애야? ”
“ 넌 잠 때문에 인생 꼬일 애 거든? ”



종인을 사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세훈을 기다리며 종대가 종인에게 또 종알종알 잔소리를 했다. 경수는 그런 두 사람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방학 때 그래도 일찍 일어나서 학원가고 했음에도, 신체 시계가 꼬여버렸는지 정신이 그렇게 맑지는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세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얘들아! 오빠 왔다! ”
“ 그놈의 오빠 소리 좀 집어 치우라고! ”



종대가 인상을 팍 쓰며 세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훈은 자전거 속도를 높여 세 사람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 우리 누나가 키 크고 잘 생기면 다 오빠랬다? 잘들 지냈어? ”
“ 그리고 누님이 넌 얼굴값 못 하고 꼴값한다고도 하지 않았냐? 훈련은 잘 다녀왔고? ”
“ 만날 똑같은 훈련인데 뭐. 우리 종대 오빠 보고 싶었냐? ”
“ 안 보이니까 살 거 같던데. ”



종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세훈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두유 3팩을 꺼내서 경수와 종대에게 토스했다. 두 사람은 그걸 받아서 각자 가방에 넣었다.



“ 꼬맹이 뉴교복 간지 쩐다. 너 학교 가서 막 오빠 보고 싶다고 울고 그러면 안 된다. ”
“ 누가 누굴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요. ”



종인은 인상을 팍 쓰며 세훈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종인은 세훈과 처음 만날 때부터 세훈을 싫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훈은 종인에게 꼬맹이라 부르며 꾸준히 친한 척을 했지만 둘의 사이는 마치 고양이와 개의 그것처럼 도무지 가까워 지지 않았다. 지금도 종인이 짜증을 내거나 말거나 세훈은 종인에게 팔 떨어지겠으니 두유나 받으라고 할 뿐 이었다. 종인은 잠깐 멈칫하더니, 한숨을 푹 쉬고 두유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세훈은 그런 종인을 보며 옳지~ 잘 해~ 그래~ 라며 뜬금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연예기획사에서 캐스팅 제의도 곧 잘 받고 하는 얼짱 청소년 검도 선수 오세훈이었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는 그저 어디로 튈 지 예상 불가능한 한 마리의 비글꾸러기일 뿐 이었다. 종대는 세훈이 저 얼굴에 저 기럭지로 여자들에게 뻥뻥 차이는 이유는 저 해리포터의 위즐리 쌍둥이들도 울고 갈 비글미 탓 일 거라며 항상 혀를 차곤 했다. 세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종인과 헤어지고, 다시금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학교로 향했다. 슬슬 거리에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 그래도 졸업 전에 셋이 다 같은 반 한 번은 해보네. ”



세훈이 신이 난다는 듯이 자전거 위에서 예헷~ 추임새를 넣어가며 리듬을 탔다.



“ 그러게. 아. 경수야. 박찬열도 우리랑 같은 반 이던데. 좋겠다 너? ”
“ 지... 진짜? ”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던 경수는 종대가 던진 말에 순간 목소리 끝이 순간 갈라져 나왔다. 그걸 들은 세훈과 종대는 또 크게 웃으며 빠돌이 당황했냐고 경수를 놀렸다. 짐짓 단호하게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만, 추워서 붉어졌다고 하기엔 너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경수의 귀는 차마 숨겨지지 않았다.  



“ 진짜 우리 반이야? ”
“ 이거 빠돌이의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네. 빠돌이면 종업식 날 네 오빠는 몇 반 됐나 반 편성부터 확인 했어야 하는 거 아냐?  ”
“ 오센. 진짜 그놈의 빠돌이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가만 안 둔다. ”  
“ 빠돌이 보고 빠돌이라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 ”
“ 김종대 너는 또 왜 그래! ”



경수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경수를 놀리기에 재미를 붙힌 종대와 세훈은 경수를 보며 우리 빠돌이 3년 연속 오빠랑 같은 반 이라 계 탔다며 시끄럽게 굴었다. 어차피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을 박찬열 이었고, 분명 올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 할 박찬열 이지만, 그래도 그 박찬열을 학교에서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타칭 [박찬열 빠돌이] 도경수에겐 무척 기분 좋고 설레는 일 이었다.



***


경수는 아직도 박찬열을 처음 봤던 날을 생각하면 첫사랑을 막 시작한 소녀처럼 가슴이 떨려왔다. 누군가를 보고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탄성이 나왔던 것은 도경수 인생에 그때가 생전 처음이었다. 경수가 박찬열을 처음 본 날은 딱 2년 전 오늘. 고등학교 입학식 날 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해도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었다. 언제나 나이 먹는 건 그랬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갈 때도 뭔가 크게 달라지거나 어른이 될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저는 여전히 작년과는 별반 다를 게 없는 도경수였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인생의 퀘스트를 하나 달성했지만, 등굣길조차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는 딱히 무언가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교복이 바뀌었고 들어가는 건물 입구가 달라졌다. 정도가 경수가 느낀 전부였다. 유치원부터 계속 같은 곳을 다녔지만 이상하게 같은 반이 되는 일은 잘 없었던 종대와 경수는 올해도 역시나 반이 갈렸다. 종대와 복도에서 헤어져 교실로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세훈이 경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 예헷~ ’
‘ 너 있으니까 그냥 방학 끝나고 개학 한 거 같아. 근데 너 키 더 컸냐? ’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전 까지만 해도 셋의 키는 고만고만하게 작은 축에 속했었다. 하지만 중3 여름방학부터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 한 세훈의 성장판은 세훈에게 뼈 마디마디가 저릿저릿한 성장통과 함께 어메이징한 키의 변화를 선물해 주었다.    



‘ 어. 더 자라주셨지. 엄마가 더 크면 징그러우니까 딱 180까지만 찍으래.  ’
‘ 나도 검도 꾸준히 했음 키 컸을까. ’
‘ 아니. ’
‘ 개새끼.’



경수는 세훈의 옆자리에 앉으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제가 졸업한 중학교에서는 이 고등학교로 많이 진학을 하는 편이라 교실 안에는 낯익은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친구 몇몇이 경수와 세훈에게 인사를 건넸고, 두 사람도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 그나저나 우리 경수 오빠 안 보고 싶었어? ’



그놈의 오빠타령. 경수는 주먹을 들어 하지 말라며 세훈의 어깨를 쳤다. 저놈의 오빠 소리는 오세훈의 말버릇 이었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잘 그러지 않는데, 유독 종대와 경수에게만 오빠 소리를 붙이곤 했다. 물론 둘은 질색을 했지만 말이다. 경수에게 한 대 맞은 세훈이 네 주먹 정말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경수는 별 반응이 없었다. 세훈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경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세훈은 스킨십을 좋아했고 경수는 은근히 스킨십에 무딘 편 이어서, 세훈이나 종대가 조금은 귀찮게 만지고 치대도 경수는 그걸 굳이 밀어내거나 하지 않았다.  



‘ 종따이 신입생 대표로 선서 한다며? ’
‘ 응. 그래서 걔 오자마자 교무실 가야 한다더라. ’
‘ 역시 범생이는 다르네. 근데 그거 두 명이 한다더라? ’
‘ 그래? ’
‘ 응. 걔 뭐더라 엑소? ’
‘ 엑소? ...아. 으르렁? ’



연예계에는 딱히 관심 없는 경수지만, 작년 한해 메가 히트를 기록한 엑소의 으르렁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종대가 좋아했던, 종대와 같은 미술학원에 다닌다던 여자애가 그 으르렁대는 엑소에 미쳐서 종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지라,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종대는 아직도 엑소 하면 이를 갈았다. 그런데 그 으르렁이 우리와 같은 학교라니. 그것도 종대랑 같이 신입생 대표 선서를 한다니.



‘ 김종대 멘탈 애도. 엑소 여러 명 아닌가? 근데 거기에 우리랑 동갑인 애가 있었단 말이야? ’
‘ 암튼 그래서 강당에 기자들 쫙 깔렸대. 근데 김종따이 엑소랑 같이 신입생 대표 선서 하면 완전 오징어 되는 거 시간문제겠다. ’



백년 놀림감 생겼다며 좋아하는 세훈을 보면서, 경수는 그냥 피식 웃었다. 곧 담임이 교실로 들어왔고 고등학생이 된 걸 축하한다는 형식적인 말들이 오고갔다. 딱히 영양가 있는 말은 아닌지라, 경수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의 손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 세훈에게 그냥 한쪽 손을 내주고 있었다. 그때 뒷문이 드르륵- 열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린 경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 뭐야. 으르렁 우리 반 이야? ’



그 소문의 신입생. 아이돌그룹 엑소의 박찬열. 그의 등장으로 교실이 술렁거렸다.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생활이 익숙한 듯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온통 까만 머리들만 가득 있는 교실에서 그의 노란 머리는 유독 눈에 튀었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교실에 담임은 교탁을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 어디 다녀 오냐. ’
‘ 잠깐 화장실 다녀왔습니다. ’
‘ 빨리 앉아라.’



검은 뿔테안경을 쓴 찬열의 눈동자가 무심하게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세훈의 손을 꽉 잡았다. 세훈이 아프다며 경수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경수는 더 꽉 세훈의 손을 잡았을 뿐이다.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커다랗고 맑다고 생각한 눈은 차가운 유리구슬 같았다. 비어있던 경수와 세훈의 앞자리로 그가 걸어왔다.



‘ 앉아도 되지? ’



그는 빈자리 옆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변성기가 지난 낮은 목소리는 보통의 17살의 목소리라기엔 그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 확실히 청소년보단 청년에 가까운 그 존재감은 자신이 알던 17살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런 게 연예인 포스라는 건가.



찬열이 자리에 앉으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경수를 의식 한 듯 했다. 그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



그가 자리에 앉는 순간, 경수는 언젠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미세하긴 했지만 그에게서는 포근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왠지 그 향이 나는 곳에 코를 박고 맡고 싶어지는 그런 향 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에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세훈이 어디가 안 좋냐고 물었다. 경수는 그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입학식이 곧 시작되니 강당으로 1학년 학생들은 강당으로 모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담임의 지시에 교실 안에 있던 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김쫑따이! ’



앞에 가고 있던 종대를 발견한 세훈이 요란하게 종대를 부르며 겅중겅중 뛰어가 종대의 등에 폴짝 뛰어들자, 무게를 이기지 못 한 종대가 휘청하다가 곧 다시 균형을 잡았다.



‘ 아! 하지마! 허리 나가! ’
‘ 쫑따이 오빠 보고 싶었어? 안 보고 싶었어? ’



  투닥 거리며 먼저 가는 두 사람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 걷고 있던 경수에게 두 사람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알았다며 경수가 조금 서둘러 걸음을 걸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경수를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지 않고 더 빠른 속도로 걸으며 경수를 불렀다.  



이것들 봐라?



평소라면 그런 둘의 장난에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하게 마이페이스를 지키며 걸었을 경수지만, 이상하게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어느새 계단 밑 까지 내려간 종대와 세훈을 보며 경수는 내가 니들 못 잡을 줄 아냐고 외치며 뛰기 시작 했다.



‘ 어! 어! 경수야! ’
‘ 도경수! ’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뭐가 잘 못 되도 크게 잘 못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분명 생각했던 위치에 발이 닿아야 했는데, 발은 계단의 끝만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을 뿐 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꼴사납게 이대로 뒤로 나자빠지나 싶어서 눈을 질끈 감는데, 무언가가 뒤에서 경수의 팔을 낚아챘다.



‘ 조심해. ’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부드러운 비누향. 찬열이었다. 졸지에 찬열의 품에 안긴 자세가 된 경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식할 겨를 도 없었다. 크고 포근한 무언가가 자신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느낌에, 경수는 그저 살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찬열이 자신을 놓아주었을 때야 정신이 돌아왔다. 잡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틈도 없이 찬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걸어갈 때 마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며 수근 거렸다. 놀란 경수가 움직이지 못 하고 멍하게 서 있는 동안 종대와 세훈이 계단을 뛰어 올라와서 경수를 이리 저리 살폈다.



‘ 괜찮아? 안 다쳤지? 조심 좀 하지! ’
‘ 오빠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
‘ 어? 어..어.. 괜찮아. 나 괜찮아. ’



몸은 괜찮았지만 심장은 괜찮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아주 가까이서 봤던 찬열의 얼굴만이 계속 떠올랐다. 소년과 청년 그 사이에 있는 얼굴. 미소도 쉽게 짓지 않아 차가워 보이지만 따듯했던 체온과 부드러운 비누향이 계속 경수의 곁에 남아 있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서 경수는 손으로 지그시 자신의 심장을 눌렀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비명횡사 할 뻔해서 그런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이나 별로 다를 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자신이 서 있는 이 강당은 중학교와 같이 쓰는 강당이라, 바로 한 달 전에도 경수는 이 자리에서 대성인으로서의 자부심에 관한 교장의 말을 들으며 서 있었다. 아니 서 있고 싶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중학교 졸업식이나 고등학교 입학식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무척이나 다른 게 있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찬열에게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였다. 온갖 매체들이 그를 둘러싸고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밝게 웃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어 인사를 해 보이기도 했다. 아까 교실에서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발랄한 모습에 경수는 그저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 사이를 누비며 조용히 시키려 애썼지만 웅성거리는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사이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끝나고 신입생 대표 선서가 있었다. 사회를 보시던 선생님께서 종대의 이름과 함께 박찬열의 이름을 불렀다.



‘ 어떻게 김쫑따이 완전 쫄았어. ’



세훈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종대를 보며 이걸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데 아깝다며 낄낄 거리며 웃었다.



‘ 박찬열 찍힌 거 찾다보면 종대도 얻어 걸리지 않을까. ’
‘ 그렇겠지? 있다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또 놀림거리 셀프 생성 해주시니 고맙네. ’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우수상이며 각종 미술대회 상을 잔뜩 휩쓸어 전교생 앞에 나가 상 받는 게 익숙한 종대였지만, 그도 비록 자신을 찍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카메라에 둘러싸인 것은 처음인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필 옆에 있는 사람도 고작 고등학교 입학식에 이렇게 많은 매체가 출동 할 정도의 인기 아이돌이라니. 안 그래도 작은 종대가 더 작게 위축되어 보였다. 경수는 왜 인지 모르게 속으로 종대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별것 없는 학생 대표의 선서였다. 대성고등학교의 학생으로서 학풍을 잘 지켜 어쩌고 하는 그런 뻔하디 뻔한 선서. 하지만 찬열이 입을 여는 순간, 경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찬열을 바라보았다. 아까 교실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찬열의 눈동자가 보였다. 반짝반짝 생기 있는 눈동자. 밝고 장난기 어린 표정. 그저 학교 강당에 신입생 대표 선서 일 뿐이었지만, 그가 단상에 올라가자 그곳은 바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이 보였다. 그가 서 있는 주변의 공기가 달랐다. 그에게서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단순이 그가 잘생겨서? 목소리가 좋아서?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람의 눈을 고정 시키고 시선이 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무언가의 에너지가 있었다. 연예인이란 것은 다 저런 것 인가. 아무나 연예인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진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그의 포스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 진짜 잘 생겼다. ’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헐. 언제는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다더니. ’



오빠 섭섭하다며 세훈이 경수의 교복소매 자락을 잡고 흔들었지만, 경수의 시선은 단상위의 박찬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세훈아. ’
‘ 왜. ’
‘ 나 쟤 사진 한 번 찍어보고 싶다. ’
‘ 우리 누나가 샤이니 쫒아 다닌 것처럼 대포 들고 쟤 쫒아 라도 다니게? ’
‘ 아니 그게 아니고... ’



저런 반짝반짝 빛나는 에너지를 한 번 자신의 카메라로 담아보고 싶었다. 세훈이 검도하는 모습이나 종대가 집중해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찍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이었다. 물론 저 박찬열이란 사람의 저 느낌을 그대로 기록에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 그냥 저 사람의 반짝거림이 사진에 온전히 담길지 궁금해졌어. ’



더러운 얼빠 도경수가 이렇게 또 박찬열 빠돌이가 되었다며 세훈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경수의 시선은 여전히 찬열에게 고정 되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조차 그를 위한 조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서를 마친 그가 환하게 웃었다.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플래시와 함께 카메라 셔터 소리가 휘몰아쳤다. 그 소리에 맞춰 경수의 심장이 또 다시 빠르게 두근거렸다. 현란하게 터지는 스트로보의 빛이 마치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듯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 그게 경수가 처음 느낀 아이돌 박찬열의 이미지 였다.    



같은 반이니까 언젠가 사진을 찍어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찬열의 사진은 커녕 찬열과 인사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 찬열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돌그룹의 멤버답게 무척이나 바쁘고 또 바빴다. 음반활동에 영화촬영에 콘서트 투어에. 그가 학교에 등교하는 날은 지극히 드물었고, 그나마도 등교해서는 교실 뒤 맨 뒷자리에서 내리 잠만 자다가 오전 수업이 끝나면 조퇴를 하고는 했다. 어쩌다 한 번 그가 학교에 등교 하는 날이면 경수가 할 수 있는 것 이라고는 그의 모습을 살짝 살짝 훔쳐보는 것 정도였다. 교실에 들어설 때와 나갈 때가 아니면 그는 항상 귀에 이어폰을 꼽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시간에도 말이다. 사실 입학식 때 느꼈던 그런 생기 넘치는 반짝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다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면 그는 항상 어딘가 지치고 힘들어보였다. 가끔 그와 시선이 마주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차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게 찬열과 말 한 번도 섞어보지 못 한 채 1학년이 끝났고, 2학년 때도찬열과 같은 반이 되었지만 1학년 때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2학년이 된 그는 1학년 때 보다도 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그와 반 아이들 사이엔 무언가 벽이 있는 듯 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싫은 듯 날을 세우고 있었고, 경수는 차마 그 벽을 넘어 다가갈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또 1년. 경수는 이제 그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는 자신과는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는 그런 멀리 있는 존재. 정말 스타. 별. 이란 말이 딱 맞는 사람이었다. 이제 1년만 지나면 전혀 접점도 없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래도 또 1년. 남은 1년동안 잠깐씩이라도 그를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



교문 앞에 서 있는 하얀색 카니발 한 대에 등교하고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하지만 크게 호기심 어린 시선들은 아니었다. 이 학교 학생이라면, 저 안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 날부터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학생들 모두 의아함을 품었다.



“ 어? 경수야. 박찬열 학교 왔나봐. ”
“ 개학 첫 날부터? ”  



경수보다 앞서 가던 종대가 먼저 그 흰색 카니발을 발견하고는 경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바로 뒤 이어 골목길을 빠져나온 경수의 눈에도 그 흰색 카니발이 들어왔다. 1년에 몇 번 학교에 등장하지 않는 저 차의 등장에 경수는 괜히 또 가슴이 뛰었다. 서서히 자전거 속도를 줄여 차 앞을 지나가면서, 경수는 힐끔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뒷자리에 교복을 입고 앉아있던 찬열의 잔뜩 인상을 찡그린 얼굴이 슬쩍 보였다. 그 순간, 차 안에 있던 찬열과 눈이 마주쳤다.  



아. 진짜 박찬열이다.



어쩐지 귀에 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작년 11월에 보고 못 봤으니 거의 4개월 만에 보는 박찬열 이었다. 잠깐 봤지만 여전히 잘 생긴 얼굴이었다.



“ 웬일이래. 쟤가 학교를 다 나오고. ”
“ 오늘 잠깐 얼굴 비추고 또 안 나오겠지. ”


 
심드렁하게 말 하며 자전거에서 내린 경수가 괜히 입술을 삐죽 거렸다. 그 모습을 본 종대는 경수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리며 이 빠돌이 어떻게 하면 좋냐며 웃었다. 아침부터 박찬열을 보다니.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의 첫 날부터 매우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엑소 RPS. 찬디 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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