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는 거울에서 도저히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을 가릴 정도의 기장으로 부드럽게 휘어진 물빛 앞머리. 날렵하게 올라간 눈꼬리. 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


모든 것이 익숙한 자신의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단 하나, 그 얼굴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어려보인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조슈아는 부릅뜬 눈으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둥그런 윤곽의 토실토실한 볼살과 조막만한 코를 직접 만져보았다.


거울 속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10~11세 정도의 자신이 남루한 면옷을 입은 채로 서있다.


덜컹! 문이 있는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조슈아는 화들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화장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너머로 웃음 소리와 어린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뒤 조슈아는 이곳이 어쩐지 익숙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년기에 몸을 담았던 갈루스의 고아원이다.


어찌하여 자신이 지난 십 몇 년 간 발 한 번 들여본 적 없는 고아원에서 눈을 떴는가. 그 답은 원장실 문 앞에서 주워온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신문에 적힌 날짜는 정확히 자신이 열살이던 해의 8월 25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모든 정보값이 나타내는 사실은 단 하나 뿐이다.


자신이 회귀했다.


'이건 꿈인가?'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그것이었다.


시간을 그것도 십여 년이나 되돌리는 기술이나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초능력자나 마법사, 블레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엘프 따위와 비교할 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자신의 뺨의 감촉도, 곰팡이가 덕지덕지 낀 세면대의 빛깔도, 화장실의 냄새도 너무나 생생했다.


더군다나…….


"읏."


기억을 돌이키려 애쓰자 깨질 듯한 두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재앙. 그리고 부서지는 세계.


로드와 그의 기사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정의, 용기, 존엄. 그들이 숭상하고 추구해오던 모든 가치가 그것 앞에서는 하찮은 벌레처럼 뭉그러졌다.


폭풍우 앞 갈대처럼 기사들이 쓰러져나갔다. 조슈아는 단 한 번도 로드의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영원히 강인하고 모두의 기둥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절망과 무력감을…….


'실패하고 만 건가,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고사리 같은 손이 주체하지 못하도록 떨려서 조슈아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꼭 쥐었다.


조슈아는 한참이나 세면대에 몸을 기댄 채 서있었다.


믿을 수 없는 결론이었으나 가능성은 하나 뿐이었다.


세계는 멸망했다. 그리고 회귀했다.


'하필 이 때, 이곳으로 말이지.'


조슈아는 냉소를 담은 얼굴로 웃었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 염력을 긁어모아 눈 앞의 수도꼭지를 돌려보려고 애썼다.


끼끽, 끽. 녹이 슨 수도꼭지에서 쇠 긁는 소리가 들렸다.


조슈아는 조금 더 용을 써보다가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고작 이 정도의 힘을 쓴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어른의 힘으로나 열 수 있는 녹슨 수도꼭지 하나 돌리지 못한다. 결국 이 나이에 어울리는 수준의 미미한 힘만이 지금 그가 가진 전부란 소리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조슈아는 열 살이 되던 해의 초가을을 기억하고 있었다. 빌어먹게 존경해 마지 않는 대제 폐하, 아니 당시에는 동대륙 소국의 왕이었던 그가 수도의 모든 고아들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린 날.


조슈아의 인생이 완전히 틀어진 날이 바로 열 살이 되던 해 9월 1일이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약 십 몇 년간 자신의 몸도, 삶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원하지 않던 힘을 얻어 자신의 것이 아닌 의지로 평야에 시체의 산을 쌓았다.


전략참모가 영특하다 아꼈던 머리 탓인지 아직도 눈을 감으면 똑똑히 기억이 났다.


죄의식을 모르고 손을 담갔던 피의 냄새를 지우는 것이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고문 같은 실험들을 견디지 못하고 울며 매달릴 때마다 전략참모는 말버릇처럼 말했다.


'본디 삶은 지옥이랍니다. 만일 폐하께서 그대를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그대는 더러운 뒷골목을 전전하며 음식물 찌꺼기를 먹으며 구더기 같은 삶을 연명했겠지요. 그대에게 거처와 식사를, 삶의 의미를 부여하신 폐하의 은혜에 언제나 감사하도록 하세요.'


세뇌가 풀린 뒤 몇 번이고 생각했다. 차라리 더러운 뒷골목에서 죽었어야 했다고.


체자렛은 연구실 밖의 인생이 지옥이라 일컬었지만 조슈아에겐 세뇌가 풀린 뒤 직시한 삶이야말로 지옥이었다. 지옥을 피하기 위해 내딛은 발자취가 그의 지옥을 만들었고 그는 결국 그 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세계가 재앙을 맞이해 멸망한 그 순간까지도.


'이러나 저러나 지옥이라면 별 수 있나.'


조슈아는 자신의 지옥을 선택하기로 했다.







열 살 짜리 어린애로 살면서 도피의 준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 뒤 9월 1일에 국왕 전하께서 준비하신 수도의 모든 고아들을 위한 파티에 참석해야만 해요. 모두 파티에서 전하께 예를 갖추고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갈루스의 국민임을 보여드리도록 해요. 알겠나요?"

"네에---!"


조슈아 그 뿐만 아니라 모든 고아들에게 소집 명령이 떨어졌으므로, 남루한 꼴로 도주하는 그의 모습은 눈에 띌 것임이 분명했다.


"조슈아, 왜 여기에 있니?"


지하실 창고에 있던 조슈아는 움찔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리니 고아원 교사가 엄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께서 일주일 뒤 파티에 대한 주의사항을 말씀해주시고 계신데. 얼른 1층 로비로 올라가렴."

"……네."


조슈아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의 엄한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기에 그는 창고에서 나와 1층 계단으로 향했다.


"제기랄."


삼키지 못한 욕설이 잇새를 통해 튀어나왔다.


지금 그의 염력은 머그컵을 가까스로 들 수 있을 정도밖에 못 되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의지해오던 염동력의 대부분이 사라지자 불편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모든 일을 손수 해야한다는게 문제다.


모나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