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물에 빠진 상현을 건진 후부터 두 존재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상현은 인간임에도 연청을 대하는데 스스럼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연청이 본 인간들 중에 가장 다정다감하며 올곧고 맑은 사람이었다. 봄같이 따스한 상현에 연청 역시 마음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청님!”

매일 같이 못으로 찾아와 웃음 짓는 상현을 볼 때마다 연청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런 자신이 평소와 달라 낯설고 어색했다. 왜 이럴까. 수많은 존재들을 만나왔거늘, 왜 상현에게만 심장이 뛰는 것일까. 왜.

연청은 지혜로운 용이었다. 그는 상현과 어울릴 때마다 점점 더 깊어지는 자신의 애정을 금방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상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하얀 보름달이 뜨던 날, 등불 하나를 들고 찾아온 상현은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참이고 주저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미천한 제가, 귀하신 당신을 연모하고 있노라고. 보드랍고 진중한 고백을 듣는 순간, 연청도 깨달았다. 상현을 연모하고 있었다. 어느 인간과 달리 살가운 그대를, 하지만 어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명이 짧은 그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상현과 함께한 나날은 보석보다도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와 오래도록 있을 수만 있다면 연청은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정말, 뭐든지.

하지만 세상은 가혹했다. 명이 다른 존재들의 사랑을 쉽게 봐주질 않았다.

연정이 깊어질수록 더 큰 불안이 따라오고 있을 때였다. 연청은 언젠가 늙어 죽을 상현을 볼 적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를 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천 갈래 만갈래로 찢기는 고통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상현은 수명이 다하여 죽지도 못했다.

“상현아!”

용은 사람이 되어 내려왔다. 병졸들의 시체가 즐비한 땅을 밟으며 상현을 찾았다. 그러다 그는 곧, 죽어가는 상현을 발견했다. 쏟아진 피의 양에 대지는 다 마시지도 못하고 뱉어내고 있었다.

“상현아, 상현아, 아, 상현아!”

수없이 이름을 부르며 상현을 안았다. 연청의 품에 안긴 상현은 벌써 흐려진 눈을 하고 있었다. 생기가 빠져나가는 얼굴에도 연청은 그가 죽어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산신을 부를게. 산신의 능력이라면 너를 살릴 수 있을 게야. 그러니 죽지 마라, 제발, 부탁다.”

연청의 목소리가 찢어져가고 있었다.

“나를 두고 가지 마!”

가만히 연청을 올려다보던 상현이 힘겹게 미소를 그렸다. 간신히 벌어진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피비린내 나는 음성이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청아.”

연인이 된 후부터 바뀌었던 호칭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상현은 그를 청이라고 불렀다. 애정어린 호칭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던 연청은 늘 웃기만 했다. 언제나 마음을 몽글하게 풀어주던 호칭이 지금은 칼날이 되어 연청을 찔러대었다.

“전에, 네가 그랬지.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피거품이 터져 나왔다.

“이 세상은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연이 끊기지 않는 한, 여러 번의 생으로 만나고 또 만난, 다고......”

“말하지 마. 기운만 더 빠질 뿐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참 기뻤다.”

연청은 말문이 막혔다. 상현은 가만히 연청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중한 얼굴을 본 순간, 연청은 이게 그의 유언임을 공포 속에서 깨달았다.

“너를, 나의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니까. 이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나는 다른 육신이 되어 또 다시 너를......”

상현이 ‘허억’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겁이 난 연청은 그를 꽉 끌어안았다.

“안 된다, 상현아. 안 돼. 가지 마, 그러면 안 돼.”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연청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연청은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우는 순간 쏟아질 비 때문이었다.

“청아.”

상현이 조용하게 불렀다. 방금과 달리 놀랍도록 또렷한 목소리였다.

“다음 생애에, 내 너를 찾아갈게.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로 너를 만나러 가겠어.”

죽어가는 사람답지 않게 선명한 발음이었다. 연청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상현을 바라보았다. 상현은 덜덜 떠는 손을 잡아 연청의 팔을 잡았다.

“그 때까지만, 기다려줘.”

간절한 약조가 망치가 되어 연청의 가슴을 여러 번 내리찧었다. 연청은 이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떨고 있는 손을 움켜쥐어 뺨에 갖다 댈 뿐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상현의 손을 적셨다.

“미안해...... 널 이리 두고 가서 미안......”

마지막 말은 채 끝나지도 못했다. 상현의 눈동자에 빛이 사라졌다. 몸을 한 번 크게 떨던 그는 곧 축 늘어졌다. 연청은 멍한 얼굴로 상현을 안았다. 여전히 그의 체온은 따뜻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이 꺼저버렸음을, 연청은 모르지 않았다.

뒤늦게 무릎이 덜덜 떨렸다. 연청은 숨을 쉴 수가 없어 연신 목을 가다듬었다.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삽시간에 찾아온 먹구름이 폭포 같은 물줄기를 쏟아내었다. 연청은 젖어가는 상현을 끌어안은 채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 * *


“이야기 들었다. 진나라 습격으로 죽었다지. 네가 보호할 틈도 없었겠군, 안타까운 일이야.”

산신인 백호는 혀를 찼다. 그는 우두커니 서 있는 연청을 둘러보다 다시 입을 떼었다.

“그러게 왜 인간에게 연정을 주었어. 화살 몇 대에 스러져가는 걸, 그 연약한 걸 왜 마음에 품었던 게야.”

연청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언제나 단정하게 묶었던 긴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머리를 정리할 정신조차 갖추지 않았다. 백호는 곰방대를 들며 미소 그렸다.

“그래. 어쩌려고 나를 찾아 왔나?”

“......”

“복수를 하길 원하나?”

말을 마친 백호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가 뱉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뿜어 나왔다.

“직접 할 용기는 없는 게지. 해서 날 찾아온 게지. 가서 인간들 좀 물어 죽여 달라고. 우리 고매하신 용님께서 살생할 수는 없을 터이니.”

반은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 일부러 자극적인 이야기를 던지면 발끈한 청룡이 제 용건을 꺼낼 거라 생각해서였다. 산 깊숙한 곳까지 찾아와서는 다 죽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영 답답하다. 빨리 이야기나 하고 이 산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연청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백호를 빤히 응시했다. 빛이 없는 푸른 눈동자가 섬뜩했다. 살기가 담긴 눈빛에 백호의 입매가 움찔거렸다.

“정녕 내가 살생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나?”

쉰 목소리로 읊조리는 연청에게선 뚜렷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연청은 여전히 조용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당장에 국경을 넘어 꼬리만 휘둘러도 그만이네. 내가 몸만 움직여도 수 많은 인간들이 죽겠지. 배가 터지고, 내장이 으깨져 흘러나오겠지. 더러는 심장이 박살난 인간도 나올 게야. 상현이처럼. 내 연인처럼.”

“잠깐.”

그제야 백호는 자신이 괜한 말을 꺼냈음을 깨달았다.

“있는 대로 쳐부순 다음 궁궐로 들어가겠네. 온갖 무기들이 나를 향해 돌격하겠지만, 그것들이 나를 완전히 해할 순 없을 걸세. 그들은 자네 말대로 연약한 인간들이니까.”

“자네...... 농이지?”

“조만간 지존이라 불리우는 진왕을 만날 수 있겠군. 상현의 심장을 뚫었던 화살로 얼굴 가죽을 벗겨 버리겠어.”

“연청!”

백호의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는 다급히 곰방대를 내려놓고 연청 쪽으로 뛰어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게야. 그렇게 하면 업보가 산처럼 쌓이게 돼!”

연청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막 깨어난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중얼댈 뿐이었다.

“업보가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업보 없이 산다고 상현이 살아나나? 내 손으로 직접 묻은 무덤이 사라지기라도 하나......?”

‘큰일이다.’

생각보다 연청은 죽은 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새삼스레, 백호는 연청이 아직 어린용임을 깨달았다. 그런 연청에게 있어 상현은 처음으로 연정을 주었던 인간이다. 수명이 다하여 떠나 보내도 가슴 시릴 사랑이, 다른 인간에 의해 깨져 버렸다.

“시간이 해결해줄 걸세.”

연청을 달래기 위한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지금이야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겠지. 하지만 연청, 자네는 앞으로 살 날이 많아. 계속 살아가고, 또 살아가면 이 일은 마치 꿈결처럼 멀게 느껴질 걸세.”

“됐네.”

고저 없는 음색은 무채색 빛이었다.

“그냥 해본 소리야. 자네가 내 마음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서. 화풀이에 불과하니 사과하겠네.”

“......진정, 그냥 해본 소리인가?”

그제야 연청은 웃었다. 우는 눈동자로 입 꼬리만 올린 얼굴이 처연했다.

“상현이 그랬어.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로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허니 나는 세상을 떠돌아다닐 걸세, 상현을 만나러.”

“연청.”

“내가 진을 쳤다가 상현의 환생이 그곳에 있으면 어찌하나. 그리하면 내 손으로 직접 상현을 죽인 게 되네. 나는 그리할 수 없어.”

백호는 뭐라고 말할 듯이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그가 말릴 틈도 없이 연청은 바로 말을 덧붙였다.

“자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네.”

백호는 일단 말리는 걸 참아보기로 했다.

“무엇인데 그러나?”

“나는 이제 떠나네.”

“뭐?”

“지금껏 자네와 함께 이 땅을 보살펴왔지.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네.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혼자 맡아주게.”

“떠난다니, 어디로?”

“아까도 말했지 않나.”

연청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며칠이고 비가 내렸던 하늘은 이제 깨끗한 파란빛이었다.

“내 잃어버린 연을 다시 찾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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