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하지 않은 글입니다.



열차는 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빠른 속도만큼 바쁘게 바뀌었다. 8A칸 특실 왼쪽 창가자리에 앉은 청년은 무료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물은 도미노처럼 무너져있었고 누군가 땀으로 일구어냈을 비닐하우스는 처참히 부서져 살만 드러낸 모습이었다. 습격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는가. 무너진 건물에 희붐은 먼지가 피어오르고 군데군데 진화되지 않은 작은 불길이 검은 연기를 피어 올렸다. 청년은 짧게 지나가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바라보다가 열차가 터널에 진입하자 고개를 돌렸다.

난장판인 밖과 다르게 열차 안은 평화롭고 한산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특실은 승차료가 터무니없이 비싼데다가 국가에서 지정한 특수 공무원급만 승차할 수 있었다. 일반인은 열차를 타려면 한 달 전부터 터지지 않는 전파를 겨우 잡아 예약해야 한다. 그마저도 대기가 몇 만 명 수준이었기에 이 긴 열차를 타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터널을 빠져나왔다. 청년은 달리는 열차 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불과 5분 전의 창밖과 다르게 눈에 보이는 풍경은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초원이었다. 키를 바짝 세운 벼가 만연한 초록색 논과, 열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지점에서 습격이 일어나든 말든 한가롭게 잡초를 뽑는 농부가 보였다.

어쩌면 5분 거리에 있는 상황을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그때 청년은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돌렸다. 카트를 끌고 온 승무원이 방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음료를 드릴까요?”

특실은 음료를 무료 제공했다.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카트가 드르륵 바퀴를 굴리며 일반실인 9A로 넘어갔다. 열차는 소음을 내며 달렸다.

종착역인 부산까지는 약 1시간이 남았다. 청년은 몸을 편하게 기대고 이어폰을 하나씩 꽂았다. 이제는 5분이 넘어버린 지난 풍경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여유였다. 눈을 감은 청년의 귀에 뉴스 속보가 연이어 꽂혔다. 특실의 이어폰은 1회용으로 귀에 꽂을 시 자동으로 뉴스 흘러나왔다. 특실에 탑승한 승객의 지위가 높은 만큼, 속보 역시 대부분 대외비였다.

[14시 02분.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에 좀비 떼 출현. 대략 80마리로 추정됨. 수원역 1층과 2층은 붕괴되었으며 3층은 통제하였다. 민간인 피해 추산 중.]

사무적인 목소리가 기계적으로 알림을 통보했다. 수원역. 청년은 2시간 전 그곳에서 이 열차를 탔다.

[현 시간부로 수원역 선로를 폐쇄하며 18분 30초 뒤 지원군 투입. 현재 좀비 사살은 8마리이며 M-16의 지원이 시급하다.]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복도 옆 오른쪽 창가에 둔 짐 꾸러미를 쳐다보았다. 자리를 모두 차지한 캐리어는 총 2개였다. 청년은 메마른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흡연 욕구가 차올랐지만 열차에서는 금연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니코틴 껌을 꺼내 우물우물 씹는다. 쓴맛이 섞인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기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객 여러분,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부산역에 도착합니다.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주십시오. 안전한 여행이 되시길 바라며 역사 검문을 꼭 통과해주시길 바랍니다.

휴지를 뽑아 니코틴 껌을 뱉고 돌돌 말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현재의 시국과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음악이 특실에 울린다. 청년은 이어폰을 빼고 몸을 일으켜 들고 온 짐을 하나씩 챙겼다.

이 넓은 특실의 탑승객은 청년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청년은 불과 어제 동료 수십을 잃고 부산으로 전출된 비운의 사나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마자 검문소가 보였다. 길게 늘어선 검문소는 총 9곳으로 매 검문소마다 금속 탐지기를 든 군인과 홍채인식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청년은 줄을 길게 늘어선 일반인 구역을 지나 오른쪽 맨 끝의 9번 게이트로 향했다. 산더미 같은 짐이 무겁지도 않은지 양손에 잔뜩 든 것으로도 부족해 어깨에 하나씩 짊어져있었다.

짐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갈 만큼 커다란 덩어리가 이쪽으로 걸어오자 군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9번 게이트 앞에서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렸다. 무엇이 들었는지 묵직한 소리가 났다.

홍채인식기 앞에 서서 안내음이 나오기도 전에 얼굴을 가져다대자 기계에서 붉은 빛이 눈에 정면으로 쏘아졌다.

[얼굴을 정면으로 고정해주시고 눈을 감지 마십시오.]

한 박자 늦게 안내음이 흘렀다. 청년은 눈에 쏘아지는 여러 색의 빛을 무던히 응시한다.

좀비가 세상을 지배하면서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말소시키고 홍채인식으로 신분을 파악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청년도 한때는 앞이 9자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좀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감에 따라 사상자도 엄청나게 늘었다. 그렇게 죽거나 좀비가 된 사람들의 신분증은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마음껏 도용되었다.

이 같은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국민 항의가 빗발치자 윗대가리들은 무척 바빠졌다. 2시간 단위로 전국민 주민등록번호 말소에 대한 국회가 열렸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좀비에게 물어 뜯겨 죽어 가는데 그까짓 신분증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느냐며, 국회는 열띤 토론을 펼치다가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도입했다. 역사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나 신분 인증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홍채인식기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 나라의 국민인 이상 모두가 의무적으로 홍채를 등록해야 했다.

이윽고 기계가 삐이, 하며 통과되었음을 알렸다.

[인식 완료. 1급 국가 요원 이선우. 다음 단계로 이동해 주십시오.]

1급임을 알리자 군인은 금세 각 잡힌 모양새로 청년에게 깍듯이 경례했다. 1급 국가 요원은 한낱 군인은 차마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피라미드 최상위였다.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소지품 수색이 있겠습니다.”

몰라보게 깍듯해진 군인의 앞에 양팔을 벌리고 선 청년이 몸 수색을 받을 동안 한쪽에서는 그가 짊어지고 온 짐도 풀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총기와 날이 잘 벼린 칼이 한가득 들어있는 짐을 샅샅이 뒤져본 군인이 서로 눈짓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열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군인이 물러나자 청년은 역사로 들어가는 대신 다시 짐을 묶는 군인의 손을 쳐내고 그 안에서 장총을 꺼냈다. 합법적으로 개조된 M4A1이었다.

“무, 무슨!”

청년이 총기를 꺼내 탄창을 탁 채운다. 개머리판을 안정적으로 고정한 뒤 철컥 장전하고 조준하기까지의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순식간에 총구가 제 쪽으로 들이밀어지자 당황한 군인이 어깨에 두른 총을 부여잡는다. 그러나 청년은 턱 끝을 살짝 비틀어 보일 뿐이었다.

“머리 숙여.”

“예?”

“대가리 뚫리고 싶으면 계속 그러고 있든지.”

군인은 머리를 숙이는 대신 민첩하게 세 발자국을 비켜나 청년이 겨눈 방향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검문을 받던 민간인이 긴장에 물들어 이쪽을 바라보며 쑥덕거린다. 역사가 삽시간에 불안함으로 물들었다.

스코프로 16배 확대된 눈에 호시탐탐 이쪽을 파고들려는 좀비가 포착된다. 청년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소음기를 장착하지 못해 커다란 파열음이 역사를 뒤흔들었다. 꺄아아악! 역사는 한순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버린다. 민간인들이 총기 소리에 놀라 우당탕탕 서로 밀치고 달리다가 넘어지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청년의 옆에 있는 군인이 막 장전하려던 차였다. 청년이 나직하게 명령했다.

“방해하지 말고 가서 시민들이나 진정시켜.”

어정쩡하게 총기를 들고 머뭇거리던 군인이 예, 하고 신속하게 주변 군인들을 모아 현장 진정에 투입하였다.

“진정하십시오! 이곳은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흥분하시면 도리어 좀비를 부추기는 꼴이 됩니다! 진정하십시오!”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민간인 통제에 나섰다. 아우성으로 잡아먹힌 역사에서도 청년은 침착하게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총성이 두 번 더 울렸다. 실내가 무너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으악!”

“우, 우리 죽는 겁니까? 좀비가 나타난 건가요?!”

“이봐요! 왜 막아! 비키란 말이야!”

민간인들이 죽자 살자 귀 아프게 외쳤다. 검문을 위해 서 있던 군인들이 모조리 투입되어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미 검문소를 통과하거나 열차를 기다리던 민간인들마저 불안에 떨었다. 그들의 눈에 진한 공포가 서려있었다.

청년은 총기를 내리고 뒤를 돌았다.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치프. 상황이 어떻습니까.”

1급 국가 요원은 계급 대신 치프라고 불렸다. 공식적으론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년이 총기를 정돈하며 턱짓했다.

“클리어. 진정되면 순차적으로 내보내.”

“예. 상부에 보고 올리겠습니다.”

이런 우왕좌왕한 현장에서도 오직 청년만이 침착하게 짐을 다시 짊어진다.

“알아서 해.”

그리고 소동이 일어난 현장을 유유자적 해쳐나갔다. 이후는 군인들의 몫이었다.

역사 밖을 나오자 한낮의 뜨거운 볕이 정장 위를 묵직하게 눌렀다. 청년이 부산역 광장을 지나쳐 사람 하나 없는 버스정류장에 멈춰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를 거는 상대는 직속상사였다.

신호가 10초나 갔을까. 상사는 받자마자 껄껄 웃었다.

-막 보고 들은 참이다. 누가 너 가는 거 아니랄까 봐 신고식 한 번 참.

“부산이 안전구역이 맞긴 합니까?”

-그 정도면 준수하지. 차는 아직 안 온 거냐?

말이 씨가 된다고, 라인에 들어서는 세단 한 대가 보였다. 세단은 소리 없이 청년의 앞에서 부드럽게 멈췄다. 청년은 운전석에서 내린 2급 요원에게 귀찮은 듯이 짐을 턱 짓했다. 군인보다는 덜 깍듯하게 묵례한 요원이 서둘러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청년은 담배를 빼 물었다. 담뱃갑을 꺼낼 때 딸려 나온 니코틴 껌이 뭉쳐진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회청색 연기가 맑은 하늘에 뭉게뭉게 올라간다.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두 개 물어봐도 돼.

“저 좌천된 겁니까.”

-안전구역으로 보내줬는데 좌천이라고?

“서울에서 수원, 그리고 수원에서 부산 왔습니다. 다음은 제주돕니까.”

-흠. 1급 요원 보호 차원이라고 두자. 너도 알다시피 얼마 전 피습당한 이후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 거 알잖냐. 일단은 동네마다 짱박아두고 숨겨놔야지. 위에서 걸핏하면 1급 요원을 데려다 목줄 채우는데 현실 깨우치고 정신 차릴 때도 됐어.

“치프. 타시면 됩니다.”

요원이 손을 탈탈 털며 뒷좌석 문을 열었다. 청년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요원을 빤히 살핀다. 대놓고 훑어보는 시선이 민망했는지, 요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흠흠, 하며 눈길을 피했다. 청년의 입술에서 연기가 빠져나왔다.

“뻥구라가 많이 느셨네요.”

-뭐어? 상사한테 뻐엉구라아?

“일단은 가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죠.”

-얌마.

“왜 부르십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있어라.

“그것 참 낭만 없는 당부네요.”

심드렁하게 대꾸한 청년이 끝까지 태운 담배를 털어 쓰레기통에 골인 시킨 후 세단에 올라탔다.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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