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많이 서툴러도 괜찮아






재환은 자다가 나왔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며 상가집에 간다고 해서 늦게 올줄 알았다고 졸린 눈을 비비다가 비에 젖은 다니엘의 모습에 한번 놀라고 또한 다니엘과 같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다니엘의 뒤에 가려져 있던 성우의 모습에 한번 더 놀래버렸다. 

하지만 재환은 하던 말을 마저 하지도 못하고 다니엘의 뒤에 서있던 성우를 끌어당겨 방안에서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주기 바빴다.




“다니엘 너 미쳤어? 비를 맞을 려면 너 혼자 맞을 것이지. 어쩌자고 성우선배까지... 선배 괜찮아요?  어디 안좋거나 그런건 아니죠?”




그러고 보니 끌고 온 성우의 손목은 피가 통하지 않았는지 벌겋게 부어 올라있다 못해 푸른 멍까지 있었고 흠뻑 젖은 성우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그나마 다니엘은 상가집을 다녀오기위해 정장을 입은 통에 긴팔 긴바지지만 집에 있다가 끌려나온 정수는 얇은 옷차림이 빗물에 온통 젖어 옷이 몸에 착 달라 붙어 있어 깡 마른 몸매를 드러내 주고 있었다.

연신 괜찮냐는 재환의 말에 괜찮다고 고개는 끄덕이지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멈추질 않았다.


재환이 왜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다니엘은 그때까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그 무언가.
아 혼자가 아니지... 



다니엘은 늘 이랬다. 앞뒤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저 행동을 먼저한다. 다니엘의 보폭을 따라 오는 길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배가 당겨오고 숨이 찼다. 좀 천천히 가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리는 빗소리와 섞여 다니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다니엘은 미련한 자신때문에 혹여나 성우가 아프진 않을지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성우와 재환만 쳐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민현이 우선 필요한 짐만 챙겨서 왔다고 현관문을 들어오다가 성우의 모습을 보고는 다니엘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서둘러 성우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그동안 알고 지냈던 민현은 차가운 남자였다. 쉽게 웃음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옆을 허락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민현의 입에서 나온 괜찮냐는 말이 세상 그 어떤것 보다 부드럽고 다정하는것을 느낀 다니엘은 그동안 자신의 부재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성우를 챙기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미안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빈자리에 자꾸 들어올려고 하는 민현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재환은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다가는 정말 감기에 걸린다며 성우를 서둘러 욕실로 데리고 갔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우산을 쓰고 가던가 아니면 택시라도 탔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의 그 미련한 행동에 우리 성우가 또 아파야 하는거야?”

“그러지마 민현아. 우리 그만 돌아가자.”




돌아간다니 어딜? 여기가 형의 집인데 가긴 어딜가.


이제는 정말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거라며 또다시 성우의 말을 그대로 믿고 바보같이 그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것이라 다짐하는 다니엘이었다.


따뜻한 물에 성우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데  물론 성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성우는 그럴 힘도 없었다. 

그동안 성우에게 받는것만 해보았지 주는것은 해보지 못한 다니엘이라 성우를 돌보고 있는 민현과 재환 사이에 끼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죄인같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둘만 같이 있는것이 불편할꺼라며 다니엘에게 자신의 방으로 건너오라는 재환이었다.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이미 여러차례 지쳐버렸고 뜨거운 목욕까지 한터라 성우에게는 움직일 힘도 없었다. 적당히 수습이 되자 민현도 성우를 잘 부탁한다며 돌아가버리는 사람에 성우는 재환이 이끄는데로 침대속으로 들어갈수밖에 없었다. 눕자마자 잠의 나락으로 빨려들어갔다.



재환이 할말이 있는듯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성우를 어떻게 데리고 오게 됐냐며 긴 침묵을 깨뜨렸다. 그리고 현명한 선택 고맙다는 재환의 말. 그날 있었던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재환의 말은 이뜻이었다.


성우를 다시 데려오란 말. 거부당하고 힘들어도 끝까지 성우를 놓지 말라는 말.


이 세상 모든사람들이 알고 있을텐데 다니엘 자신만 이제서야 알았나보다.




창밖에 빗소리가 세차다.

그동안 서러웠던 성우의 눈물인지 아니면 다니엘에게 그동안 지은 죄에 대한 속죄를 하라는 하늘의 훈계인가 한동안 비는 계속 내릴 것 같다. 날이 밝은 것 같은데도 또 다시 아침이 온 것 같은데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밖에 어둑어둑하다.


재환의 방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다니엘은 아무생각없이 자신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미리 와있던 재환이 말고도 또 한사람이 더 있다. 형이다...  좋은 꿈을 꾼 줄 알았다. 그런데 꿈이 아니다.



자고 있는 성우의 모습을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것 같았다. 형은 자냐는 다니엘의 말에 이게 자는것이 아니라 앓아 누운 거라 한다.

자신은 괜찮다며 힘겹게 눈을 떴지만 지독한 열로인해 붉게 달아오른 성우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저... 약... 약통에 종합 감기약 있는데 가져올까?”




다니엘 딴에는 생각해서 한말인데 뭘 몰라도 아직 한참 모른다고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약을 먹으면 아기에게 해롭다는것도 생각못하냐는 재환의 말에 다니엘은 속으로는 울컥했지만 차마 화를 낼수는 없어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재환은 죽을 좀 만들어 오겠다며 다니엘에게 성우옆에서 머리 수건이나 갈아 주라고 하는 통에 방안에는 성우와 다니엘 단둘만 남게 되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너무나도 미안해서 차마 성우의 눈을 바라볼수가 없었다. 성우도 다니엘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랬던 것은 다니엘의 욕심일뿐 굳게 다문 성우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둘이서 아무 말없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는데 1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사람을 이렇게 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성우도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 힘겹게 몸을 돌려 다니엘을 등지고 누웠다.



콜록 콜록!!!

그 전날 밤을새워 공부를했고 시험이 끝나고 한교수의 장례식장도 다녀오고 피곤한 상태로 밤에 성우의 집 앞에서 비를 맞은터라 다니엘도 체력이 축났는지 감기기운이 돌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인정이 남아 있는 건지 등을 돌리고 있던 성우는 다니엘의 기침 소리에 바로 돌아누워 몸을 이르키려고 했다.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것 조차 힘이 드는지 잘 일어나앉지도 못하고 있는데 부축을 해줘야할까 마음은 굴뚝 같은데 괜히 망설이고 있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성우의 어깨를 살포시 들어 침대에 등받이를 하고 앉혀 줬는데 그제서야 약좀 챙겨먹으라며 눈을 맞춰왔다.

 

재환은 뽀얗게 끓인 죽을 가지고 들어와 마침 일어났냐며 다니엘에게는 밥을 차려놨다고 성우의 옆에는 자신이 있겠다고 다니엘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집 나가거나 그런 생각 하지마요. 여기가 선배 집이니까 다니엘도 이제 정신 차렸나봐요. 노력 할려는게 보이잖아요. "

"하..하지만.. 나는... "

"다니엘도 이제 알아요. 민현선배가 그러더라구요. 어제 민현선배랑 둘이 하던 말. 다니엘이 창밖에서 다 들었다고. 그 사실 알고서 선배를 이쪽을 데려 온거에요. 디니엘이 좀 단순하고 앞뒤 사정 보지않는것도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선배 많이 생각해요. 이런 일 때문에 선배가 버림받거나 그럴 일은 절대 없을꺼에요. 그러니까 선배는 다니엘 곁에서 그냥 맘 편히 애기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성우의 눈에선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오늘 울음으로 모두 풀 생각인지 서러움이 담긴 성우의 울음소리에 괜시리 마음이 먹먹해지는 재환이었다.


선물 Beautiful Never 약속해요 애인(愛人) 그냥 너라서 감기 밤의 가스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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