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난 후의 후기 / 많은 스포일러가 있음을 알리며




춘광사설의 시작

사이가 틀어진 그 둘을 다시 모은 건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였다. - 정말 혹할 정도로 멋있었다. - 이 폭포를 보러가자고 그리고 늘 그렇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보영의 말은 마음을 흔들기에 아주 강력한 그 만의 무기였다. 하지만 이과수 폭포를 보겠다는 간절했던 마음과는 달리 야속하게도 폭포는 그 모습을 점점 숨기는 듯 쉽게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사소하게 쌓인 간절함과 원망이 그들은 다시 또 이별하게 된다. 여행을 다니며 돈을 모두 써버린 아휘는 홍콩으로 돌아갈 경비 마련을 위해 어느 한 탱고 바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일을 하던 중 다른 외국 남자들과 즐기는 옛 애인 보영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아휘에게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듯 표현했지만 아휘는 그럴 마음을 애써 감추려는 듯 보인다. 그런 부용을 밀어내고 밀어내다가 얼굴이며 손이며 잔뜩 상처가 난 채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다. 그런 부용을 본 아휘는 밀어내기를 그만하고 그를 받아들이려 한다.


여요휘 (아휘)

사랑에는 갑, 을 이란 우위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아휘는 이 영화에서 왠지 을로 보게 된다. 제멋대로인 보영과 달리 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임을 영화에서는 계속 보여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지는 편견처럼 화가 나면 무서운 편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묵묵한 배려와 헌신을 바친다. 그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든 이유는 보영과 마음에 이끌려 온 아르헨티나에서 돈을 모두 잃은 아휘는 탱고 바에서 돈을 벌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하지만 보영은 속을 긁어놓듯 다른 남자들과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 그런 보영이 다시 시작하자며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어도, 잔뜩 다쳐서 들어와도 묵묵히 그를 간호한다. 두 손을 쓸 수 없게 되자 그의 두 손이 되어주며 요양한다. 그러나 아휘가 보영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강수를 두고 있기는 하다. 또 여기서 여권을 제외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지만 여권을 가지며 보영을 곁에 두고 있는 아휘를 보며 사랑의 우위관계는 결국 생기는 건가? 늘 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받아야 하는 건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헌신과 배려는 완벽한 사랑임을 알지만 그게 내 모습이길 바라지는 않는 이상한 모순에 빠져 버린다. 어쩌면 이 모순을 해결 해 준 이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휘의 동료 ‘장’이다. 그로 인해 아휘는 새로운 국면에 맞아든다. 그때에 맞춰 보영과의 관계는 틀어지고 그가 뭘 하고자 했는지 ‘을’이라고 생각되었던 안타까움을 좀 더 해방 시켜준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을’ 같았던 그는 결국 가장 많은 걸 이뤄 보인다. 늘 '을'이였던 나에게 괜찮아 하고 위로했던 나를 닮은 듯한 너.

+아휘는 본명이 아니라 친구나 아랫사람을 부르는 애칭이다. 홍콩 문화권에서 '아'와 이름 맨 뒷 글자를 붙여 애칭을 만드는 것은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출처 ; 나무위키-


보영

자유롭다. 아비정전의 아비같은 느낌이었다. 굉장히 쿨 하고 세련되었으며 인기가 많다. 요즘 말로 인싸 같은 느낌이다. 늘 항상 주위엔 누군가가 있고 언제 어디서든 만나줄 사람이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해버리고 마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위관계에 늘 ‘갑’을 차지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왠지 얄미워지는 사람. 하지만 늘 밝은 모습 멋있는 모습 뒤엔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보영도 아비정전의 아비 못 지 않게 아픔의 크기가 커 보인다. 늘 즐거운 향락적인 사랑을 하며 살며 그에 대한 죄책감은 아휘로 갚고 있다. 그런 그의 아픔을 보기 전엔 그가 너무나도 미운 캐릭터였다. (나는 늘 인간관계에서 보영보단 아휘에 가깝게 살아와서 아휘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늘 사고치고 항상 자기만 생각하는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말하다보니 이건 장국영이라 가능한 것 같다) 그런 보영을 보며 동경심과 질투의 마음으로 바라보다 마지막 보영이 침대에 누워 괴로워 할 땐 이 전의 생각들을 후회 할 정도로 보영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를 질투하기도 얄밉기도 했지만 결국 미워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을’ 이란 걸 알지만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의 여권을 담보로 잡아서라도. ( 다음 생엔 보영처럼 태어날래요 )


+아니 어떻게 저 장국영을 거부합니까....예?!!!!


주변에 있으면 참 좋을 엉뚱한 철학자의 느낌이다. 그가 아휘와 맥주 한 잔 할 때는 정말 누구보다 그와의 맥주 한잔을 간절하게 원하게 되었다. 왠지 깊은 상처라도 의연히 담아두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주인공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내겐 누구보다 애정 하는 인물이었다. 춘광사설은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장이 등장할 때는 아휘의 새로운 사랑일까 예측했었다. 하지만 그가 그의 꿈을 이루었을 때 장면을 볼 즈음 진짜 녹음 된 아휘의 음성을 틀어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땐 내가 그 의 사랑이 되고 싶다는 엄청난 사심을 가지게 되었다. 참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이번 생에서 늘 생각날..

마무리, 아르헨티나

진짜 영화를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나는 영화 속 아휘처럼 공중화장실을 싫어한다. 지저분하다는 편견이 머릿속에 가득차면서 고민 고민 끝에 결국 화장실을 가지 않고 참아버린다. 익숙하지 않고 당황스럽고 불편 한 것들은 내게 어디서 표현 되든 그저 피하고 싶은 존재다. 근데 이 영화를 보면 화장실도 분위기 있어 보인다. 왕가위의 영화를 보며 매번 느끼는 것 이지만 영화는 매번 지저분함을 담으면서 세련됨을 준다. 화 날 정도로 그 화면 표현은 완벽하고 아름답다. ‘내가 그곳에 죽기 전 엔 가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덕분에 홍콩과 아르헨티나는 자연스럽게 내 버킷리스트에 들어간다. 영화를 본다면 이과수 폭포를 보며 옷이 흠뻑 젖은 양조위를 보고 바로 내 다음 여행지는 저기다 하고 정해버릴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였지만 결코 사랑만을 이야기 한다면 절대 부정한다.

사랑합니다. 그들의 오지 않은 봄을,

열심히 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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