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년 xx월 xx일


어쩌다 보니 적고 있긴 하지만, 이런 게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요? 

전혀 모르겠네요. 어릴 적 학교에 내갔던 숙제 이외에는 써본 적도 없어요. 제 글솜씨를 기대하지는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은 별거 없었어요. 그냥 잭이 사건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본 것 외에는요. 집에서 개들 밥이나 주고, 낚시 갔다 온 게 다인데 이런 걸 듣고 싶진 않으시겠죠. 별로 쓸 것도 없네요. 그만 적고 싶어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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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악몽을 많이 꿔요. 두통도 심해진 것 같고, 일단 제가 정상은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심리적인 요인보다는 뇌의 문제 같은데.... 여기서 이러쿵저러쿵해봤자 당신 욕을 당신 앞에서 신명 나게 하는 거나 다름없겠죠?

아무튼 저는 심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집이 세다고 생각할 거면 마음대로 하세요.

박사님 의도와는 다르게 불평 가득한 글이 돼버렸네요.

이 점은 죄송합니다. 뭐, 박사님이라면 이것도 내 자아의 표출이니 뭐니 하실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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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혼란스러워요. 이 편지인지 일기인지도 모를 글을 쓰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요. 솔직히 이걸 치료에 이용하는 건 이미 그른 것 같지만 약속한 게 있으니 그래도 가끔은 써보도록 할게요. 저에게 일어난, 그리고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요. 어쨌든 저에게 도움을 주는 건 맞네요. 어찌 됐건요.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건 저에게 두통을 유발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 스스로도 헷갈려요. 제가 어떠한 사람이고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마주 볼 용기도 없어요. 그저 모든 것이 제대로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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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가 다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이 엿같은 일기를 적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다니, 말 다 한 거죠.

이제 이 망할 일기장을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을 거예요. 어떠한 순간이 오면 보여줄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닥터 렉터, 당신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에요. 겉으론 누구보다 신사적이고, 지적이며 선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난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고 있고, 언젠가는 밝혀내고 말 테죠.

당신을 죽이고 싶어요. 그와 동시에 당신을 알아가고 싶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엮인 문제들은 항상 나에게 어렵게 다가오네요. 당신을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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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하고, 곧 당신의 가면이 벗겨질 날이 머지않아 다가오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을까? 아니, 당신을 잡아낼 수는 있을까? 예상할 수가 없어. 당신은 내게 그런 존재니까.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가 없는 그런, 짜증 나는.

잭과 세운 계획들이 당신 앞에선 물거품이 돼. 왜지, 왜지?

누구보다 당신이 죽길 원해. 내 손으로 당신을 잡아처넣길 원해. 그리고 동시에 당신이 잡히지 않길 원해. 그대로 살아남아서 도망 쳐줬으면 해. 당신과 함께 도망치는 나를 상상해.

아, 난 당신과 떨어질 수도, 같이 있을 수도 없어.


이제 그만 떠나요, 한니발.

고죠유지 / 구 장르 : 한니그램 MCU 셜존 고유계 : @chemmmi_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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