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じゃなくて,

 

W. Micostella 











"실례합니다."


이제야 왔나. 하여간 도대체가 왜 이렇게 굼떠. 검은색 회전 의자에 몸을 구긴채 회빛의 닌텐도 버튼만 무표정하게 눌러대던 남자의 짧은 손톱의 손끝이 아주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 등 뒤에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인기척. 보지 않아도 그 축쳐진 눈이 얼만큼 늘어져 있을지, 볼살이 퉁퉁한 그 얼굴이 어느 정도로 파랗게 질려있을지가 눈에 훤했다.


"뭐야."
"아, 저... 그... 지난번 생방송 때는... 그... 꾸물거려서... 죄송합니다."


내가 묻기 전에 말할 순 없냐. 이 답답아.


"헤에- 그것뿐?"
"..."


말을 해. 말을. 어찌할바를 몰라 안절부절 하질 못하는 그 표정을 눈앞에 그리면서 니노미야는 속으로 조용히 이를 갈았다.

 

"요즘, 많이 피곤하지?"
"아, 아닙니다."
"부정할 필요 없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걸."


휙, 회전의자를 빠르게 돌려 니노미야가 오노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예상의 선에서 요만큼도 벗어나지 않은 바보 얼굴이 그에게서 한발짝 미묘하게 뒷걸음질쳤다. 멍청이, 달아날 생각이나 하고. 슬그머니 열이 오르는 니노미야였다.


"나 말야, 엄청 생각해 봤는데,"
"네."
"그게 말야, 어쩔수 없잖아. 잠이 쏟아지는걸 어쩌겠어."
"..."


서걱서걱, 니노미야의 작고 마디가 굵은 손이 검은 매직을 잡고 무언가를 종이 위에 써내려갔다. 종이 두장을 손에 든 니노미야가 오노를 향해 지익지익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반사적으로 그 거리만큼 뒷걸음치는 오노. 그 모습에 니노미야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의 모서리가 미약하게 구겨졌다. 벽끝까지 몰린 오노를 내려다보는 니노미야는 분명 오노 자신보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밖에 크지 않은데도, 엄청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도저히 제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거인 하나를 상대하는 기분이랄까.


"어떤게 좋아?"

 

그 형형한 위압감과 상반되는 상냥한 목소리가, 역으로 오노를 바짝 얼게 한다. 언제나 그랬다. 어디가서 제 할말 못하고 살아본적 없는 오노였다. 그런데 어째선지, 저보다 손가락 한마디 큰 이 어린 선배 앞에서는 꼭 이렇게 얼어붙어버려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과든, 감사든, 아니면 일에 관련된 보고이든.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 제 마음을 전부 발가벗겨지듯 읽혀버릴것만 같아서 그 갈색 눈이 저에게로 향하면 황급히 그 시야에서 벗어나기에 바빴다. "오노군," 어쩌다가 이름이라도 불리는 날이면, 그날 밤은 어쩐지 온몸이 떨려서 잠도 이루질 못했다. 어깨에 와닿던 그 넓은 손바닥의, 짤퉁한 손가락의 감촉과 온기가 기억에 생생해서.

 

"벙어리 아니잖아. 대답해. 내가 지금 물어봤잖아. 어느쪽이 좋으냐고."
"...에, 그, 무엇이..."
"부왁- 하고 두들겨 맞는거랑, 계속 이런 느낌으로 설교 당하는거. 둘중에 뭐가 더 좋으냐고. 뭐, 그 정도는 듣는 쪽에서 정하게 둬도 좋으려나- 해서."
"..."

 

한껏 다정한 음색으로 물으면서도, 그의 안에서는 뭔가 나름의 방향이 정해져 있을터였다. 그는, 선택을 내게 맡기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단지-

 

"이것도 내가 정해줘야 해?"

 

...모르겠다. 나를 시험하고 싶은걸까. 그게 아니면,


"그야... 니노미야상 좋..."
"아아- 내 맘대로 해라. 이거?"


오노의 고개가 아주 작게 아래 위로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습관처럼 따라붙는 기죽은 음성. 그러니까, 너란 놈은 대체 어디까지 짓밟힐 생각인데? 니노미야의 눈에 핏발이 선다. 손 안의 종이가 파르르 떨리며 와그작 구겨졌다.


"뭐, 그렇게 정히 피곤하면 말야,"


쫘악- 오노가 크로스 형태로 메고 있던 검테이프가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좀 떼어봐. 낮은 목소리, 잔뜩 굳은 얼굴의 니노미야가 오노의 손을 붙잡아 움직인다. 그 손이 데일듯이 뜨거워 엉겁결에 바로 마주한 그의 얼굴이 빨갛다. 하얗게 드러난 이마 위로 흐르는 식은땀에도 불구하고 한 손으로는 제 팔보다 길게 내려오는 카디건의 소맷부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오노의 동그랗게 뜨인 눈이 저를 관찰하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작고 두툼한 손은 열심히 제 할일을 할 따름이었다.

 

아, 또다.

 

제 가슴팍에 도닥이듯 닿아오는 그 열오른 손의 감촉에, 오노는 그만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눈 뜨고 똑바로 봐."


불퉁스런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군데군데 구겨진 커다란 종이 하나가 조그만 검테이프 조각에 의지해 제 가슴팍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ZZZ...'라고 가운데에 크게 쓰여있는 그 종이가.


"이렇게라도 해두질 않으면,"
"..."
"아, 이쪽이 더 나으려나?"


마치 쇼핑을 나와 가판대에서 세일 중인 티셔츠를 이것저것 몸에 대어보는 사람의 텐션으로 그는 이미 내 가슴팍에 붙은 그 종이와 '의욕제로.'라고 정갈하게 쓴 다른 한장의 종이를 두고 저울질에 여념이 없었다.


"음...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어?"
"..."
"이런거라도 안 붙여놓으면 아무도 너 같은거 있는지도 모른다구. 멍하게 있거나, 자고 있거나. 그 둘 중 하나인 너 같은건."
"..."


변명이라도 하란 말이야. 등신. 핑계든 뭐든 좋으니까. 뭐라도 받아치라고. 불쌍한 표정만 짓고있으면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아? 여전히 저와는 눈조차 맞출 생각이 없는지 외핵, 내핵을 뚫고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파고 들어갈 기세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오노 때문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니노미야였다. 지긋지긋한 편두통이 다시 찾아들 것처럼 머리가 띵하니 어지럽다.이게 다, 오노 당신 때문이잖아. 실은 저혈압인 니노미야였으나, 오노를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힐것처럼 갑갑해져, 가슴을 두드려가며 속으로만 몇번이고, "아이고, 혈압이야."와 같은 얼토당토 않은 말을 외치게 되는 것이었다. 아니 도대체가, 학벌도 나쁘지 않지, 인턴 경력도 제대로 있지, 나이만큼 사회 경험도 있을텐데. 그렇다고 얼굴이 안되길해. 이 모질이는 대체 어디가 그리도 모자라서 이렇게 제 속을 썩이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놀라울 만치 똑부러지게 일할 것 같은 놈이 저렇게 흐리멍덩하게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밀 수 밖에.


"뭘 멀뚱히 있어. 이거나 챙겨."


우악스레 그 손에 '의욕제로.'라고 또박또박 쓰인 종이를 쥐어주고는 자리로 돌아간 니노미야가 무너지듯 회전 의자 위로 푹 주저앉았다. 머리가 빙빙 도는게, 꼭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아서,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온도에는 열기운이 깃들고, 넥타이를 슬쩍 풀어내리는 손에는 어쩐지 거친감 마저 있었다.


"...반성... 하고 있습니다."


모기 날개짓도 그보다는 잘 들리겠다. 미간을 삼각형으로 구기며 니노미야가 가만히 속으로 툴툴거렸다. 반성은 무슨. 그 잘난 반성 두번만 더 했다가는 사람 골로 보내기 딱이겠구만. 그나저나 왜 이렇게 목이 타지. 이마에 내천자를 그린 니노미야가 책상위의 뜯지않은 새 생수병을 열었다. 종이컵을 꺼내서 물을 따르고 있자니, 엉거주춤 서 있는 저 형세가 마음에 안들어 죽겠다.


"이런거 정도는 눈치있게 하란 말야."


이 답답아. 그래가지고 어디가서 피죽 한그릇이라도 얻어먹겠어?


"죄, 죄송합니다."

 

쭈뼛쭈뼛 다가와 물병을 받아들려는 그 손을 쳐냈다. 살집없이 까무잡잡한 피부의 손이 뼈마디가 하나하나 튀어나와 있어서 생각보다 단단했다.

 

"됐어. 내가 할테니까."


도로 집어넣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앞을 향한 손이 갈곳을 잃은채 그대로 정지해 있는 꼴이 우스웠다. 애꿎은 손가락만 접었다 폈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침 넘어가는 소리가 제 귀까지 와닿자 괜시리 귀가 간질거리는 느낌에 새끼손가락을 세워 마구잡이로 귓바퀴를 벅벅 문질렀다.


"마실래?"
"아, 아뇨. 저는, 저는 괜찮-"
"마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정말이지 마음에 안든다. 내가 주는거라서 안 마시는거야, 뭐야. 억지로 종이컵을 손에 쥐어주고 물을 컵안으로 부어주는데 파들파들 떨리는 종이컵의 진동에 짜증이 났다.

 

"가끔은, 찬 것도 들어가줘야, 정신도 깨고- 엉?"
"아, 네... 저, 이,이제-"
"응?"
"너, 넘치는-"
"좋잖아. 잠도 오는데."
"아, 아니, 저, 그게- 으앗, 차거!"

 

홱, 멀어지는 손이 그렇게 기분 나쁠수가 없었다. 또, 도망가는거지. 그렇게. 응? 그 멍청한 얼굴을 향해 속이 완전히 비어지지 않은 페트병을 내던졌다. 그의 마빡에 정통으로 명중한 물병에서 줄줄 물이 새어나와 그의 머리칼을 적시고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마치 눈물같아서 화가 났다. 빌어먹을 자식. 울고 싶은건 이쪽이라고.


"차가운건 알면서, 일은 그 따위로 해도 돼? 일이 장난이야? 놀고 있는걸로 보여?"
"...죄송합니다."


페트병에 세게 얻어 맞아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오노의 이마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니노미야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할. 저건 피할줄도 모르나. 왜 이렇게 미련해. 속은 타들어가는데 꽈악 쥔 주먹은, 결국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똑바로 좀 해."
"...네, 죄송합니다."
"가 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저벅저벅 걸어나가는 축쳐진 어깨를,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갈색 머리의 뒤통수를 오래도록 눈에 담고 있었다.


"오노군,"


도저히 들릴리가 없을만큼 작게, 아주아주 작게 중얼거려본다.


"응원, 하고 있으니까."


제 마음도 모르고 멀어지는 뒷모습이, 소리없이 사무실 문이 닫히면서 함께 사라질때까지도 잔뜩 풀이 죽어있어서 아프다.


"히야- 참 눈물 겹다. 눈물 겨워."


지난 기획안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사무실에 딸린 창고방의 문을 끼익- 소리가 나게 열고 비죽이 고개를 내민 것은 아이바 마사키. 니노미야의 입사 동기였다. 지금은 각각 다른 기획을 맡아서 진행중이라 얼굴 볼 필요가 그다지 없는데도 뻔질나게 그의 방을 드나드는 속을 알 수 없는 녀석.


"뭐야. 뭐 좋은거라고 엿듣냐, 엿듣길."
"괜찮잖아. 저 신입, 어차피 다음달부터 우리 팀으로 올거고."
"하나도 안 괜찮거든."
"그래도 좀 심했던거 아냐? 물병이나 던지고. 히유- 내가 다 지릴 뻔했-"
"닥쳐. 너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 오노군, 아직은 우리팀 소속이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안그래도 역시 그 페트병은 좀 너무 했나- 싶었는데, 정곡을 콱 찔리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오노군, 이마에 그거, 멍이라도 들면 어쩌지.


"그나저나 별일이네.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신입의 이름을 다 외우다니."
"뭐가."
"그렇잖아. 너, 전에 나한테 엄청 혼났던 그 신입 이름 기억해? 한 2년쯤 전이니까- 뭐, 이젠 신입도 아니지만."
"몰라. 쓸데없이 그런건 기억해서 어디다 써."
"거봐. 역시 오늘 그 신입은 특별 케이스잖아. 이름이나 외우고 말야."
"신입, 신입, 그러지마. 저래뵈도 우리보다 나이 많다고."
"알게 뭐야, 나이 따위. 선배는 이쪽인데."


입술을 얄밉게 비죽이며 약올리듯 이죽대기를 계속하던 아이바는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손을 한번 흔들어보이고는 전화를 받으며 쿵. 소리도 요란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차가운건 알면서, 일은 그 따위로 해도 돼? 일이 장난이야? 놀고 있는걸로 보여?"
 

머릿속이 노기에 찬 목소리로 왕왕 울린다. 결코 일이 장난으로 보여서가 아니었다고, 항변 했다면, 좋았을까. 오노는 이제와서 생각해본들 부질없을 것들을 쏟아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여전히 곱씹고만 있었다. 니노미야 PD는 가장 밑바닥 AD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방송계에서 알아주는 톱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공채나, 작품 하나로 팟, 하고 떠오른 것이 아니라 단계, 단계를 차근히 밟아 올라왔기 때문인걸까, 그는 아랫사람들에게 유난히 다정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PD였다. 그것은, 오노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사촌 동생의 소개로 늦깎이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야 겨우 AD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된 오노에게 그는 꽤나 정중한 편이었다. 비록 반말을 쓸지라도, 다른 PD들이 하듯 '너' 라거나, '이새끼, 저새끼' 같은 험한 말은 쓰지 않았다. 크게 화를 내는 일도 없었다. 이따금씩 손이 빠르지 못해 절절매고 있는 오노에게 은근슬쩍 "저것부터 해두는게 좋아."라던가를 순식간에 지시하고는 어깨를 툭툭치며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래, 그 생방송 날만 하더라도.


"오노군, 오늘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는거야."
 

씨익, 웃어주는 얼굴을, 자상하게 휘는 눈꼬리를, 말갛게 빛나는 그 갈빛 눈동자를, 차마 바로 마주보질 못했다. 왜인지는, 오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방송국 내의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될 감정이었다. 물론, 니노미야 본인을 포함해서.
 
미간을 찌푸리고선 막 찍은 테이크를 체크하는 그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것도, 스탭들과 수다스럽게 종알대다가도 막상 본방에 들어가면 힘있는 목소리로 현장을 지휘해 나가는 모습에 정상 박동치를 벗어나 버리는 심장도, 퇴근하려다 문득, 불이 켜져 있는것을 보고 엿본 그의 사무실에서 기획서를 쓰다 잠든 그를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AD휴게실의 담요를 찾아다 덮어주었던 일도.
 
그 모든 것이 다 비밀이었다. 비밀이어야만 했다.
 
밖으로 내어 놓을 수도 없는 마음이, 숨기려 할 수록 크기를 더 키우기만 해서, 오노를 괴롭혔다. 아무렇지 않게 잘 하던 일도, 그의 시선이 닿아버리는 순간, 엉망으로 그르치곤 했다. 그 날도 역시, 마찬가지.
 
오노 스스로도 생각했다. 그건, 역시 아무리 니노미야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라고 말이다. 그것은, 니노미야 PD가 처음으로 맡는 생방송이었다. 물론, 보조들은 있었지만. 그가 직접 기획한 생방송의 메인 프로듀서라는건, 그의 경력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중요한 방송에서 오노는, 사고를 치고 말았던 것. 어쩌면, 오노 자신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본방 시작 전부터 이미 피로에 짓눌린 몸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으니까.
 
오노가 해야할 일은, 실은 AD의 일만이 아니었다.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형의 회사가 도산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로부터 막 물려받은 회사를 큰형이 말아먹었다고 해야겠지만.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자랐던 오노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험난한 생업의 최전선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둘째형과 셋째형에 비해서는 적은 지분이긴 했지만, 직계 가족이던 오노의 지분 역시 상당한 양이었다. 집안으로부터의 모든 원조가 끊긴데다, 빚더미까지 떠안게 된 오노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저기 철새처럼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 겨우 지금의 AD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는 수입이 제일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대학 등록금 때문에 받았던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였다. 오노가 '번역'이라는 이름의 투잡을 뛰기 시작하게 된건. 그의 손을 거친 두툼한 해외의 베스트셀러들은 번듯한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지만, 번역자의 이름에서 '오노 사토시'라는 석자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유명 번역가의 대리 번역자였으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너 죽고, 나 죽는거야. 알지?" 첫 대면에서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고 살벌한 말을 주워섬기던 유명 번역가 S씨의 입에 풍겨오던 역겨운 술냄새를 오노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입막음 비용까지 두둑하게 인센티브를 받은 오노는, 이제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올 일년만 더 고생하면, 이제 AD일에만 전념할 수 있겠지.
 
그러면, 언젠가, 니노미야상에게도, "그때는, 실은... 이런 사정이 있었어요." 라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을지도-
 
그런 단꿈을 꾸던 와중이었다.
 
발에 휘감기는 가는 선의 느낌과 동시에 오노의 눈앞에서 세상이 갑자기 전복하고, 그는 머리를 땅에 세게 부딪혔다. 오노의 발에 걸린 선 탓에 카메라 한대가 갑자기 정지하고, 육중한 대형 카메라를 든 카메라 맨이 오노의 몸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수습한 끝에 본방에는 약 5초의 지장만이 생기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가 있었다.
 
막 넘어지던 그 순간,

"위험해!!!"
 

절규하던 니노미야의 높은 비명이 아직도 쨍하니 거기 남아있었다. 착각도 유분수지. 털어내려 해도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 기억속 목소리에 오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실소를 감추질 못하는 거울속 제 모습이 얼굴을 다 덮을만치 커다란 안경 너머로 자신을 비웃는것만 같았다. 쩌적- 조용한 화장실이라 더욱 크게 울린 소리. 제 손바닥 위에 얌전히 올려진 한장의 종이. 그 위의 굵직한 글씨가, 그 멘트의 잔혹성과는 무관하게 그저 몽글몽글하다. 동그랗게 굽은 그의 어깨처럼 필체의 끝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볼록렌즈에 투영된것처럼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한 볼륨감을 지닌 그 글씨들은 언제 어느때든 그의 광대 아래로 슬쩍 불거져있는 제법 퉁퉁한 볼살을 연상시켰다. 글씨는 쓰는 사람을 닮게 마련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한글자, 한글자를 멀거니 들여다보며 의미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오노의 눈이 일순 눈꺼풀 아래로 깊게 내려앉았다.


"미안해.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언젠가, 언젠가는,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눈가에서부터 흘러넘쳐 어느새 뿔테 안경 아래로 흘러내린 액체가 오노의 입술선을 적셨다. 짭쪼름한 맛이, 난다. 페트병으로 가격당한 이마보다 더 아픈건, 한 조각 품었던, 마음이었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독한 말을 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때문에, 그리고 가뜩이나 미약했던 가능성이 이제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허탈감 때문에, 시리도록, 아프다.


"...이제 영영, 좋은 인상으로는 못 남겠구나."


씁쓸하게 한마디 중얼거린 오노는, 보물을 다루듯 잔뜩 구겨진 종이 두장을 가방 안 깊숙히 집어넣고 화장실 문을 나섰다.











*          *          *











"일을 이딴식으로 밖에 못해?"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화장실을 문을 나선 오노는, 그러나 벽력같은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채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한채 벽 뒤로 숨어야만 했다. 겁에 질려 힐끗 내다본 벽 너머에는 히스테릭한 고참 PD로 유명한 마츠모토가 팔짱을 끼고 저보다 한뼘은 작은 남자를 마구 몰아세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써오겠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오노의 귀로 파고들었다. 그의 말씨는 정중했지만, 위압적인 권력자 앞의 사람들이 으레 머리를 조아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의 마츠모토를 담담하게 마주하는 그의 뒤통수는 올곧게 세워져 있었다.


"...윽,"


그의 신음 비슷한 외마디 소리와 동시에 오노는 벌어진 제 입을 주먹을 넣어 틀어막아야만 했다. 마츠모토가, 니노미야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벽에 밀어붙이고는 제 화에 못이겨 퍼붓기 시작했다.


"눈 안 깔아? 이게 어디서 선배를 똑바로 쳐다보고. 요즘 시청률 좀 나온다고 선배가 개똥으로 보이냐?"
"...이거... 놓고... 말씀하세요..."
"이 새끼봐라. 눈 땡그랗게 뜨고, 뭐? 이거 놓고 말씀하세요? 너, 내가 전에 좀 귀여워해줬다고 니가 뭐라도 된것처럼 구는데,"


마츠모토의 손이 니노미야의 턱을 움켜쥐고 얼굴을 가까이 붙여 두 사람의 코와 코가 맞닿을 지경이 되자, 오노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 안으로 둥글게 말아쥐어졌다.


"착각하지마. 넌 아직도 내가 까라 그러면 까고 핥으라 그러면 핥아야되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해. 분수도 모르는 너 같은건, 다시 밑바닥부터 박박 기어야 정신을 차리지. 엉?"
"말씀이 지나치ㅅ-"


니노미야는 하던 말을 채 다 잇질 못했다. 얄팍한 서류파일 하나에 꾸역꾸역 넣어져 있던 서류가, 마츠모토의 큰 손에서 그의 머리 위로 일시에 쏟아져 내렸

기 때문이었다.


"이딴것도 기획안이라고. 당장 주워서 다 갖다버려!"


멱살을 잡던 우악스런 손에서 겨우 풀려난 니노미야가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종이들을 하나하나 쓸어모으던 때였다.


"니노미야상,"


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두꺼운 뿔테안경을 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 바보 얼굴에, 무언가 비장해보이는 지금의 표정은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나중에 해."

"지금, 지금이 아니면 안되요."
"니노미야, 이건 또 무슨 개뼉다구야?"


아직도 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마츠모토의 노기띤 목소리가 이번에는 오노에게로 날아들었다.


"저, 저는, 오노 사토시입니다. 개뼉다구가 아니라요."
"뭐? 너 이 새ㄲ-"
"니, 니노미야상, 지금이 아니면 안되요."


휙, 바닥위에 맥없이 널브러져있던 니노미야의 살집있는 작은 손을 잡아 일으켰다. 오노, 이 사람, 이렇게나 힘이 셌던가? 니노미야는 놀라워 할 틈조차 없었다.


"니노미야! 너 이 자식! 어딜 가는-"


폭발하는 화산에서 흘러넘치는 마그마라도 된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마츠모토가 빛의 속도로 멀어져갔다. 니노미야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오노의 발걸음이 전에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노군, 대체 이게-"


아무런 말도 없이 핏줄이 단단히 도드라지도록 니노미야의 손목을 잡은 손에 더욱 단단히 힘을 주어 움켜쥔 오노가 끼익- 하고 어느 구석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방안으로 밀어넣어지던 니노미야의 눈에 얼핏 '1팀 AD휴게실' 이라고 적힌 종이 하나가 문 위에서 펄럭이는 것이 보인것도 같았다. 문을 걸어 잠그는 오노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비오듯 줄줄 흐르고, 구리빛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못생겨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아무런 말도 없이 숨만 몰아쉬고 있는 오노는 여전히 니노미야의 손목을 소중한 무엇이라도 되는양 있는 힘껏 부여잡고 있었다.


"그래서?"
"ㄴ, 네?"
"뭐야, 할 말이."
"에? 아니, 저, 그게..."
"할 말 없으면, 난 간다."


미간을 찌푸리며 니노미야가 툭 내뱉자, 손목에 가해지는 오노의 악력이 더욱 커졌다. "아, 안돼요!" 더불어 당황한듯한 목소리까지. 대체 뭔데 그래. 답답하게.


"...괘, 괜찮...아요?"
"뭐가."
"니노미야상, 괜찮냐구요."
"안 괜찮을건 또 뭐야."


무심히 돌아서 나가려는 니노미야를 오노가 끌어당겼다. "아, 왜 이래!" 꽥 소리를 내지르면서도 얌전히 끌려오는 니노미야. 갑자기 사라져버린 둘 사이의 거리에 오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뒤, 얼굴 위로 닿아오는 손가락의 감촉이 부드럽게 뺨을 쓸어내리는 느낌이 쓰라려서 니노미야의 하얀 얼굴이 저도 모르게 구겨졌다.


"...하나도... 안 괜찮잖아요..."


이 말랑하고도 여린 얼굴을 그렇게 함부로 잡다니! 손톱에 쓸린 듯한 볼 위의 긁힌 자국을 매만지는 오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진동이 니노미야의 심장까지 와닿아 이상 작동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일순 피가 몰린 하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밴드, 밴드가..."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부시럭대는 반동에 가방에 매달린 검테이프들이 덜컹였다.


"돼, 됐어. 할말 없으면 갈거야."


홱 몸을 튼 니노미야가 막 문 손잡이를 향해 걸음을 떼었지만, 오노의 손이 몇배는 더 빨랐다. 가는 손목을 낚아채듯 쥐는 오노의 마디마디가 다부진 손에는 필요 이상의 힘이 실려 있었다.


"이거 좀 놔. 아프잖아."
"그, 그치만... 놓으면... 도망갈거잖아요."


뿔테안경 너머의 그 눈에서 물기 비슷한것이 아른거리는 것처럼 보이는건, 기분탓일까. 니노미야는 유난히 불거져 나온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는 맨날 도망가놓고, 나는 한번을 못 도망치게 하냐. 치사한 새끼.


"...아무데도 안 갈테니까, 이 손 좀 놔봐. 피가 안 통해 죽겠어."


한숨을 폭 한번 내쉰 니노미야의 체념한 듯한 말에 겨우 해방된 그 손목은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빨갛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아, 정말. 무식하기는 진짜. 투덜대며 땅 위로 털썩 주저앉은 니노미야를 두고 오노는 그 옆에 앉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책임질거야?"


하얀 손목 위에 제 손가락 모양대로 붉은 줄이 굵게 그어진 모양새를 내려다 보는 오노의 낯빛은 아연해지고 이마에선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아, 저, 그, 그게- 더듬거리는 입모양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던 니노미야가 갑자기 팔을 뻗어 오노의 뒷목을 잡아 당겼다. 니노미야의 위로 넘어지는 오노의 으앗- 하는 외마디 소리는 채 입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맞닿은 니노미야의 입술로 넘어가고 말았다. 얼어붙은듯 그저 닿아만 있던 오노의 입술이 용기를 내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심스레 니노미야의 입속으로 들어오는 혀가 같은 온도의 말캉함을 찾아 움직이고 섞일수록 달콤해지는 감각에 온몸의 긴장이 풀린 오노가 손을 들어 니노미야의 머리칼을 헝크리다 조금씩 손을 아래로 내려 목덜미를 지나 등을 쓸어내렸다. 무아지경이 되어 한데 얽혔던 두 사람이 헐떡이며 입술을 떼어냈을 때는, 어느새 니노미야는 바닥에, 오노는 그 위에 몸을 겹친채였다.


"...정말, 하여간에 뭐든지 다 내가 먼저 해야되지? 바보."
"..."
"답답이."
"..."
"겁쟁이."
"..."
"모양 떨어지는건 다 나만 시키고. 치사빤쓰."


부끄러움에 터질듯 달아올라 홍시마냥 새빨개진 얼굴로 꿍얼대는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종알거리는 투정이 쏟아지는 얄팍한 갈매기 입술을 한참동안 그저 묵묵히 내려다만 보던 오노가,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내가 어쩌다 이런 멋대가리 없는 아저씨한테 빠져ㅅ-"


제 불평에 대꾸도 없이 혀를 부드럽게 감아올려 달래려고 드는 오노가, 니노미야는 미웠다. 뽀뽀면 단 줄 알아? 영감쟁이. 흥. 그럼에도 싫지는 않아서, 땀에 젖은 그의 뒷목을 그러안으며 손바닥 가득히 닿아오는 이 열오른 끈적함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려 미소지었다.










*          *          *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들어 문쪽으로 옮겼다. 노크를 했으면 빨리 들어오질 못하고, 여하튼간 저-


"...나, 퇴근."


빼꼼 열린 문 사이로 고개만 비죽이 내민 오노가 웅얼거렸다. 아, 수고. 한손을 들어주고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리려는 니노미야를 잡아채는 목소리.


"ㄴ, 너는?"
"나는- 아직."


망설이듯 잠시 멈추어 있던 오노가 이윽고 문을 반쯤열어 완전히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오, 오래 걸려?"
"글쎄."
"..."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안절부절 하질 못하고 사무실안에서 빙빙 맴도는 오노를 보다못한 니노미야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딸각이며 내뱉었다.


"못 기다리겠으면 먼저 가던가."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괜시리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만 반복하다 결국에는 쾅! 하고 니노미야의 책상 위로 제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그 바람에 생긴 끈적한 그 손자국을 가만히 노려보며 니노미야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는ㄷ-"
"있잖아,"
"응?"
"그... 마츠모토상이.... 한 말... 무슨 뜻이야?"
"마츠모토상이 한두마디 했어? 어떤말을 얘기하는거야."
"그거... 있잖아... 그... 까라면 까고..."
"핥으라면 핥으라던거?"


그, 그래 그거! 이상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심하게 긍정하는 오노의 눈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멀거니 들여다보던 니노미야가 반문했다.


"그게 왜?"


그게 왜? 라니! 너, 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거 아니잖아. 그건, 아무렇지 않을수가 없는건데. 나는, 나는-


"바보."


뭐라 말도 못꺼내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서는 어버버거리고만 있는 오노의 상태를 보고, 니노미야는 그가 물으려던 것을 정확히 알아챘다. 맙소사. 그게 벌써 며칠을 묵은 얘긴데. 여태 그런거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단 말야?


"멍청이. 해삼. 말미잘."
"카, 카즈."
"내가 마츠모토상이랑 사토시랑 하는 그런거저런거 했을까봐?"
"아니, 그게, 그, 저,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하여간 이 에로 영감. 생각하는거 하고는."
"아, 아니면 됐지 뭘."


조금 전보다 확실히 풀어진 표정으로 사무실의 간이의자에 털썩 앉아버리는 오노를 곁눈질로 한번 보고는 타자를 치던 손에 속도를 더하며 니노미야가 넌지시 물었다.


"새로 간 2팀은 어때?"
"뭐... 1팀이든 2팀이든 AD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뭘. 똑같애. 옮기기 전이랑."
"아- 그으래?"


슬쩍 미묘하게 달라진 니노미야의 공기를 눈치채기에 오노는 안타깝지만 너무 느렸다.


"응, 아이바 PD님도 친절하시고-"
"아아, 그렇겠지."
"일 아직 많이 남았어?"
"응, 산같이 쌓였으니까 2팀 사무실가서 밀린 일도 별로 없는 친절한 아이바상이나 기다리지 그래?"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채 입만 움직이는 플랫한 어조의 가시돋힌 말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둥그렇게 뜨인 눈이 뿔테안경 너머로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리고 있는 니노미야를 건너다 보지만, 그 갈빛 눈동자속에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그게 말야,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차가운게 아니라,
冷たいんじゃなくて,

날카로운게 아니라,
とがってるんじゃなくて,


그저, 솔직하지 않은것 뿐이니까.
ただ,素直じゃないだけだから。







그런 니노미야를

씩 웃으며 등 뒤로 감싸안아줄 수 있는 능청스러움을

오노가 지니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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