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이 좀 있어서 멍한 정신으로 쓴 거라 얼마나 공감가는 이야기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분적으로 쓸 때는 강렬한 이야기였는데 정리하니 좀 약해짐. 매편마다 이런 것 같지만요. 사실 여반장은 원래라면 다섯번째 이야기가 되었어야 했는데, 관우 심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져서 간만 찔끔보며 미루다가 여덟번째 이야기가 되었네요.


저는 정사 관우는 모릅니다. 그냥 삼톡 관우 + 정사의 춘추좌씨전 좋아한다는 설정만 갖고 와서 저만의 관우를 만들었습니다^_ㅜ 나름 관우 캐해석한다고 하다가 어려운 이야기 많이 들어갔어요. 쉽게 쓴다고는 했는데.


15금이에요 좀.. 사실은 이 시리즈 전체가 저의 음난한 욕망 충족을 위한 게 있어서...뒤에는 더...아무튼 말이 깁니다. 항상 봐주시고 피드백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현재까지의 연빙(淵氷, 연못과 얼음) 시리즈
1부1. 눈사람2. 백마장군 공손찬이다. 3. 경화수월4. 남가일몽5. 식적휴영6. 象(상)
2부7. 의혹8. 여반장



여반장(如反掌)

손바닥 뒤집듯 아주 쉬운





충동은 두려움을 잡아먹고 활활 타올랐다. 삽시간에 꺼질 줄 모르는 불이 된다. 그 속에서 열정이 낳아지고, 다시 본능이란 이름을 가진 채 다물린 두 다리를 열게 만든다. 침상에 흐트러진 오묘한 빛깔의 연한 녹빛 머리카락이 아찔하다. 그의 손길에 따라 헐떡이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악처럼 들린다. 그의 목과 어깨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손은 밀어내려는 건지, 당기는 건지. 붙잡아 손을 엮고, 그 손바닥에 깊게 입을 맞추다 아예 살덩이를 깨물고 빤다. 치솟는 마음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이상하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되려 목울대가 시리다.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어 상대를 부른다.


“■야…….”


아, 눈이 촉촉해진다. 그는 애정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다시 깊게 입을 맞추는데 눈물이 이제는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그 손에 얼굴을 비볐다. 꿈이기 때문이었다. 꿈이 아니고서야, 이 이름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을까.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꿈이 아니고서야, 감히 당신에게 이런 짓을…….’






“더러워.”


그 말이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멍하니 있던 관우가 흠칫 놀라며 눈을 바로 했다. 장비가 손에 든 걸레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방바닥을 닦으며 청소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비켜달라는 말을 들은 게 희미하게 기억난다.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장비가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귀신 본 사람처럼.”


관우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손만을 다급히 내저었다. 실제로도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는 법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장비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님 멍 때리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오늘 특히 좀 이상한데? 잠 좀 더 자는 거 어때? 요즘 잘 못 자고 있잖아. 엄청 피곤해 보임.”


관우는 괜찮다는 의미로 역시 손을 내저었지만, 장비는 벌써 침상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아우는 생각난 게 있으면 앞뒤를 가리지 말고 꼭 실행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리고 사실 관우는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장비의 말대로 요 근래 잠을 못 이룰 뿐 아니라, 오늘은 특히 흉한 꿈을 꾸어 새벽부터 깨어 있었다. 팔을 잡아당기는 장비에게 억지로 이끌린 척 이불을 덮는다. 낮잠이라니, 그와 잘 어울리지 않는 한가로운 일이다.


곤하다. 하지만 관우는 자도 될지 고민된다. 밤사이에 꾸었던 꿈이 낮에도 찾아올까 무서웠다. 무섭다니, 그가 무서워한다니. 하지만 진심으로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오구 내 새끼, 인상을 이렇게 쓰고. 빨리 코 자.”


장비가 어린 애 놀리는 듯한 말투로 관우의 이마를 거칠게 어루만졌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은채로도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나 보다. 관우가 눈을 뜨려고 했으나 장비가 그보다 먼저 관우의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잠시 힘겨루기를 하던 관우가 피식 웃으며 편안히 안면에 힘을 뺐다. 장비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빨리 자. 내가 간병을 둘이나 할 수는 없잖아.”


장비의 손이 따뜻해서인가 못 잔 잠이 쏟아진다. 관우가 지독한 수마 속에서도 천천히 웅얼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졸려도 꼭 말해야만 했다.


“아우야,,,”


“왜?”


“오늘 형님,,, 병문안은,,,, 아우 너만,,,,,,”


말을 맺기가 힘들다. 너무 졸리다. 형님이 기다릴 텐데, 꼭 막내가 혼자서라도 가야 할 텐데. 아무래도 자신은 가기가 힘들 것 같아서. 꼭 졸려서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슨 염치로,,, 감히,,,형님을,,,, 유비를,,,,, 보겠어,,,’


이걸 말 했던가, 아니던가?





조돈이 임금을 죽였다. 춘추 시대 진(晉) 나라 사관 동호가 영공의 시해를 두고 사서에 기록한 문장이다. 영공은 포악하고 교만한 자로, 재상인 조돈의 잦은 충언을 미워해 그의 암살을 시도했다. 조돈이 국외로 도피를 시도하려던 사이 그 사촌 조천이 영공을 시해했다. 막 국경을 넘으려던 조돈이 그 소식을 듣고 돌아와 새 군주 성공을 모시고 혼란을 정리했다. 조돈은 동호가 자신이 임금을 시해했다고 기록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항변했다.


‘임금을 시해한 자는 조천이요, 나는 그때 국경에 있었소.’


‘임금이 시해되었을 때는 재상의 몸으로 국내에 있었고, 조정에 돌아와서는 조천을 처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다면 직접 시해한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관으로서의 기록 정신을 우선시한 동호, 그의 행적을 두고 세간에서는 춘추필법과 유사하다 일컬었다. 춘추는 본디 노나라의 역사책의 이름으로, 공자가 이 춘추를 자신의 주관적인 비평정신을 중심으로 다시 감수했다. 원본인 춘추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시대에 사라졌고, 공자가 엮은 춘추만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춘추는 공자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은 창작한 적이 없고 모두 이전 세대의 것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장자 천하편에서 춘추란 명분을 서술한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된다면 무엇보다 명분을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제자 자로가 현실성이 없는 어리석은 소리라고 비웃자 공자는 그를 질타했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다면 끝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가령 주 무열왕 재위 23년에 진(晉) 나라 대부인 위사, 조적, 한우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제후로 임명해 줄 것을 청했던 일이 그렇다. 그들의 위세를 두려워 한 무열왕이 제후로 허락해주면서 무도함을 토벌하려던 자들이 힘을 잃었다. 이로부터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명분은 보잘 것 없어 보일 지라도 천하를 바르게 하는 질서이다.


춘추를 통해 공자가 만세의 법을 세웠다고 칭송되지만, 그 내용은 당시의 사건뿐이고 그 문장도 유별난 것이 아니다. 춘추를 역사서로 보는 것은 옳지 않았다. 공자는 명분에 따라 역사를 덜어내고 또는 더했다. 부도덕한 사람은 벼슬을 깎아 기록했고, 설사 왕일지라도 기록하지 않기도 했다.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요,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일 것이다.’


법을 바로 세워 예와 덕이 있는 자에는 벼슬을 주며, 죄가 있는 이를 토벌하는 것은 본디 천자의 직분이다. 하지만 당시 천자국인 주나라는 이미 쇄락해져 천하의 혼란을 바로 잡기가 어려웠다. 공자는 일개 필부의 몸으로 춘추를 씀으로서 천자를 대신해 선악을 가려냈다. 한갓 붓 한 자루로서 천하의 죄인들을 두렵게 했으니, 이런 춘추의 엄격한 기록 정신을 두고 춘추필법이라 칭한다. 춘추좌씨전은 춘추의 여러 주석서 중 역사 고증에 집중한 책이었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봤자 백 년, 그럼에도 영원토록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은 무엇일까? 춘추좌씨전 양공 24년에 손숙표는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을 들었다. 썩지 않는 세 가지, 이를 삼불후(三不朽)라 한다.


‘가장 좋은 건 덕을 세우는 것이요, 그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며, 마지막은 훌륭한 말을 하는 것이다. 비록 오래되더라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썩지 않는다 한다.’


이 혼탁한 난세에서 출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관우는 무엇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재주도, 귀에 단 말을 하는 재주도, 불의에 눈을 감는 재주도. 하지만 일찍이 춘추좌씨전을 읽으며 진정한 현달이 무엇일지를 깨달았다. 고우로서 살인을 저지르고 오랜 시간 떠돌면서도 항상 춘추좌씨전을 손에서 떼놓지 않았다. 고독한 그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외로웠나? 당연히 외로웠다. 사람의 정을 바랬다. 정말 초연했다면 산으로 들어가 신선술이나 닦았으리라. 그에게 다가왔던 사람들은 많았다. 그는 의리가 아닌 것을 본다면 그 어떤 권력자 앞에서라도 당당히 맞서 싸웠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너무 쉬웠고, 불의를 참는 것은 지나치게 어려웠다.


그의 싸움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반색하며 온정을 베풀었다. 관우가 그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 하길 원했다. 부드러운 얼굴빛과 따뜻한 말들, 그러나 결국 관우는 그들 모두를 떠났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면 속에 숨겨져 있던 사람의 본심이 드러났고, 그 누구의 마음속에도 관우가 춘추에서 찾던 이상은 없었다. 도가 같지 않은 자와 함께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우활하다 손가락질 받으며, 평생 이렇게 떠돌지라도 타협할 수 없었다.


‘저기요!’


운명은 징조가 없다. 고우라는 이름을 버리던 날이 그렇듯. 지독한 현실에 절망한 백성들이 끝내 누런 수건을 두르고 역적이 되었다. 비슷하면서도 결국은 다른 것을 사이비라고 한다. 그들은 사이비 장각에게 속아 한 왕실을 폐하겠다면서 무고한 백성들의 삶까지 짓밟고 있었다.


관우는 그때 유주 탁군 탁현에 머물러 있었다. 황건적에게서 백성을 지키고자 의병에 자원하려 마음먹었다. 그의 무력은 자신의 영욕이 아닌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해가 밝기를 기다릴 때, 관리가 무고한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에 관우는 몸을 사린 적이 없었다. 방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뚝 나서 관리를 응징했다. 공무집행방해로 처넣겠다는 협박도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글렀다 싶으면 다른 지역으로 가면 될 것이므로. 딱히 정의를 실현했다는 쾌감도 없이 무덤덤하게 다시 술을 주문할 때였다. 그에게 두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도화꽃이 화사하게 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저희 세 사람은 태어난 날은 달랐어도 부디 한날한시에 같이 죽기를 소원합니다.’


마주한 눈동자들은 맑고 깨끗했다. 오랜 시간 떠돌며 궂은일을 많이 겪은 관우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열정이 많고 순수했다. 관우가 오랫동안 찾은 춘추의 이상에 부합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 그저 백수 한량과 이제 막 코나 닦은 어린애. 그들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상관없었다. 설사 싸움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관우가 지켜주면 될 터였다. 하늘과 땅 앞에 절하며 의형제를 맹세할 때 가슴이 울렁거렸다.


유비는 온화하고 따스한 사람이다. 유약해 보이면서도 강단이 있었다. 무엇보다 받은 것 없더라도 황손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백성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다. 관우는 자신에게 없는 그의 관용에 감동해 나이를 깎아 동생을 자청했다. 장비는 혈기왕성하고 성격이 충동적이니, 항상 고우 때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까 말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화통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화가 많더라도 그 좌절이 백성에게 가지 않는 마음이 아름답다. 그들은 삽시간에 관우의 모든 것이자 돌아갈 곳이 되었다. 진심으로 함께 죽게 되길 바랐다. 분명 그랬는데…….






깊은 밤, 관우는 좀도둑처럼 태수의 집 안채 담을 넘었다. 자정에 막 접어들어 인적이 드물었다. 주인이 외유를 나간 터라 집안 사람들의 긴장도 풀어져 있었다. 공손찬이 지금 멀리 나갔다는 것은 저녁상을 먹으며 장비에게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 관우는 어쩐지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큰형이 왜 님이 안 오냐고 찾던데. 저녁 먹고라도 가보지 그래? 지금 그 양반도 없는데.’


그럼에도 오늘은 쉬겠다고 사양해 놓은 주제, 계속 마음이 뒤숭숭했다. 벌써 사일이 지났는데도 유비는 계속 자리에 누워 있었다. 공손찬이 자신 있게 데려갔음에도 유비의 기운을 찾게 할 수는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병문안을 다녀올 때마다 형님의 안색은 날로 초췌했다. 억지로 식사를 하게 해도 반 이상은 토해낸다고 들었다. 이런 그에게 어머니의 부고를 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생기는 잃고 슬픔만 깃들어 있는 눈동자에 관우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은…….


‘세 사람은 피를 나누지 못한 사이니 그 와해가 또한 쉽지 않을까?’


공손찬이 그렇게 말했을 때, 관우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니, 누가 감히 쉽게 자신해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들 셋 모두 차라리 죽을 지언정 절대 상대를 배반하지 않을 터였다. 그럴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의형제를 맺지도 않았다. 하늘이 엮어준 피로 만든 인연이 아닌, 인간이 자신들의 의지로 만들고 지켜나가기에 그들의 관계가 아름답다고 믿었다. 하루가 흘러갈수록 서로에 대한 정이 남달랐다. 이만하면 제법 삼불후에 빗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출세를 못하더라도 기쁠 터. 그런데 관우의 추악한 정욕이 이 관계를 흔들려 하고 있었다.


더럽다. 자신이 더러워 견딜 수 없다. 힘들어하는 형님 앞에서 관우는 그가 공손찬과 여전히 관계를 할지 궁금했다. 그의 이성은 말도 안 되고 해서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일갈했지만, 넋을 놓고 있으면 계속 그것만을 생각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한테는 그러지 않겠지. 하지만, 여태까지는 어땠을까. 어떻게 만지며, 어떤 자세로, 몇 번이나 둘은 배를 맞췄을까.


그 몸에 낭자하던 순흔을 생각하면 이불 속 열정이 짐작 가능했다. 지난 몇 년 간 함께하며 형님의 온갖 모습을 보았지만, 연정에 빠졌을 때의 그 반짝거림은 관우에게 당혹스러울 정도로 생소했다. 그렇다면 열락에 들뜰 때의 표정은 어떨까. 침상에서의 형님은 적극적일까, 수줍어할까.


자신이 이렇게 음탕한 면이 있을 줄이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욱 집착하게 된다. 처음엔 그저 순흔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럴 줄 알았다. 금욕적으로 살고 있던 관우에게 지나친 충격이어서. 자신의 추악한 머릿속을 어떻게든 밀어내고자 춘추좌씨전을 깊이 탐독했지만, 글줄이 공허하게 머리를 지나갈 뿐이었다. 밤에 잠을 자기 위해 누우면, 같은 시각 유비와 공손찬이 단 둘 뿐인 그 방에서 어떻게 지낼지를 떠올렸다. 자신의 망상에 홀로 흥분도 하고 화도 내다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은 형님을 직접 능욕하는 꿈을 꾸었다.


쥐죽은 듯 낮잠을 자고 장비가 병문안을 가 홀로 있는 동안, 하루 종일 생각해봤다. 형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뭘까. 관우는 여태 공손찬에게 느끼는 불쾌감이 그저 의형제 관계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없이 유달리 고독했던 관우에게 유비와 장비는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그에게 느끼는 경계라고. 하지만 이런 꿈까지 꾸고 난 이상, 여전히 그의 마음이 형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기에는……. 아, 하늘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만세의 법이라는 춘추에도 이런 것에 대한 내용은 없다.


밤인사와 함께 장비는 머리에 베개가 닿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그럼에도 관우는 오늘도 도통 잘 수 없었다. 또 그 꿈을 꾼다면 혀를 깨물고 죽을 것이다. 잠을 못 이루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초조해진다. 자신이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미쳐버린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유비가, 그저 형님이 보고 싶었다. 그를 본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서 동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뒤틀린 것들이 정리될 것 같다.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진즉 그만두기로 했는데도 방을 나선다.


유비는 안채 중에서도 정원을 낀 한적한 곳에 있었다. 몇 번이나 찾아왔던 관우는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잠들어 있을까 걱정했는데 방에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앉아 있는 그림자가 유달리 안쓰러워 보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울컥하다.


작은 조약돌을 주워 창호지에 몇 차례 던졌다. 이윽고 천천히 그림자가 정원과 연결된 문에 손을 뻗고 열었다. 못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그리운 얼굴이 놀라 관우를 바라본다. 유비가 놀라 입을 막고 있다가 손짓하며 몸을 비켰다. 관우는 조심스럽게 방안에 들어서 자리를 잡다 머뭇했다. 급히 닦아낸 모양이지만 유비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울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어오른 눈가에 마음이 아찔하다. 당황해 할 말을 잃고 있느라 위로하지 못한다. 병약한 얼굴의 유비가 먼저 기운을 차린 척 웃었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 탓에 의도했던 것만큼 의연하지는 못했으나.


“둘째야, 이 늦은 시각에 어쩐 일이야? 문은 어떻게 하고 그쪽으로 와? 무슨 밤손님이 담이라도 넘는 것처럼.”


관우가 면목이 없어 머리를 떨구었다. 유비가 당황해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서둘러 말을 지어 둘러대며 상황을 모면하려 애쓴다.


“어어, 아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도적은 닫힌 문을 억지로 부수고 들어간대. 담 넘는 것 정도야 뭐.”


뜻밖의 어머니 이야기에 관우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왜 그래 둘째야…… 너 설마 문 부수고 들어온 거야?”


“그건,,, 아님,,,”


유비가 몸을 가까이 했다. 숙인 관우의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한다. 관우는 유비가 자신을 보고 안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친 풍랑이 이는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보고 있는 유비의 눈동자에 마음이 정체 없이 요동친다. 확 하고 아랫배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에 관우는 당황했다. 급히 자신의 얼굴을 잡은 유비의 팔을 붙들었다.


“둘째야?”


관우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적셨다. 유비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이게 아닌데. 이런 게 아니었는데. 유비를 보고 느끼고 싶은 건 확신이었다. 그들이 여전히 형제 관계라는. 하지만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이렇다니. 두려운 감정이 왈칵 올라왔다.


“둘째야, 팔이 아파…….”


관우는 당황해하며 유비의 팔을 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팔을 너무 세게 잡았나 보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 상태의 형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이 없어 관우는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유비가 빨랐다.


“둘째야, 너 왜 그래?”


유비가 두 손으로 관우의 뺨을 붙잡았다. 자신을 바로 보게 하는 그 모습에 관우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유비가 겁에 질린 관우의 눈에 눈시울을 찌푸렸다. 관우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유비가 그를 다그쳤다.


“무슨 일 있지? 빨리 말해. 안 말하면 나 화낼 거야.”


두려움을 잡아먹고 타오르려는 충동. 관우의 목울대가 위험하게 꿈틀거렸다. 침의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난 유비의 쇄골로부터 목선으로 시선이 올라간다. 마침내 관우의 갈색 눈동자가 유비를 똑바로 응시했다. 관우의 커다란 손이 유비의 손목을 붙들었다. 유비가 생전 처음 보는 눈빛의 관우에게 조금 위축되어 있을 때.


“형님의,,,, 어머님께서,,,,,,,”






동 트기 전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정원 큰 나무 밑에 깨끗한 물을 받은 대접이 있다. 절을 하고 일어나던 유비가 크게 휘청거렸다. 함께 절을 하던 관우가 유비를 붙잡으려 했지만, 유비는 만류했다. 다시 함께 깊게 절을 하며 어머님을 장례 지낸다. 유비의 뺨을 타고 소리 없이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지극히 초라한 장례를 마친 유비가 털썩 주저앉듯 했다.


“형님,,,”


관우가 다급히 유비 옆에 앉았다. 유비가 관우의 허리에 팔을 두르더니만 깊게 안겼다. 관우는 당황해하며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가슴팍이 젖어드는 감각이 생경하다. 유비가 흐느끼며 말했다.


“요즘따라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잠시 고향이라도 갈까 했더니…… 너무 늦었네…….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어…….”


유비가 한층 더 관우의 허리를 껴안았다. 한참을 훌쩍이던 유비에게서 차차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이대로 유비가 실신한 것이 아닌지 두려워졌을 때쯤.


“이제 나는…… 정말 너희뿐이야. 너랑 장비, 우리 형제들뿐…….”


“형님, 죄송,,,,”


“네가 뭘 죄송해……. 내가 우리 엄마에게…… 미안한 거지. 고생만 시키고 어떤 효도도 못하고…….”


“죄송,,,,,,,”


“나 좀 안아줘, 그냥……. 아무 말도 말고. 잠시만 이렇게 있자.”


유비가 몸을 일으켜 관우의 목에 팔을 감았다. 완전히 관우에게 매달리다시피한다. 관우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유비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목울대가 따가웠다. 꼭 바늘을 삼킨 것처럼 아프다. 관우는 마음속으로 계속 유비에게 죄송하다고 빌었다. 제 비밀을 감추기 위해 유비에게 상처를 주다니, 어떻게 감히.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둘째야…….”


관우는 유비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와중에도 이 은은한 살내음이 기분 좋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역겨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정말 추악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마른 허리를 다시 껴안는다. 그저 동생인 것을 아는데도…….


“죄송,,,,합니다, 형님,,,,,”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어버린 자신의 마음.




모티브

동호직필, 춘추필법, 삼불후, 논어 술이1, 맹자 등문공하 호변장



다크써클(@anzkakzk12)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삼톡 유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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