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Q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통증 때문에 숨을 느리게 뱉으며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타이코가네는 야만바기리가 알아서 조치 할 것이다. 쇼쿠다이키리도 누군가가 안내 할거다. 츠루마루나 오오쿠리카라, 아니면 타이코가네.  

 

 

‘우리 사다쨩한테는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너무 충동적인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책임을 지는 수 밖에. Q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바닥에 녹아들기를 기다리듯이 숨을 죽였다. 천천히 주변을 옥죄어가던 정적은 경쾌하게 울리는 단말기에 의해 깨졌다. Q는 고막속으로 찔러드는 알림음 때문에 눈쌀을 힘껏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나다.”

“스승님?”

 

Q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단말기를 쥐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Q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누르면서 통화를 이었다. 

 

“깨어나신거에요?”

“그래. 지금 병실로 와줄 수 있어?”

“네. 지금 갈게요.”

 

Q는 책상에 세워진 작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하면서 머리를 적당히 메만지고 옷장을 벌컥 열어 트레이닝복 상의를 낚아채 걸쳐입고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잠깐, 어디 가는 건가?”

“나갔다 올게!”

 

타이코가네를 양 손으로 안아서 옮기는 쇼쿠다이키리를 안내하던 야만바기리가 혼마루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Q를 보고 소리쳤다. 

 

“윽... 누가 좀 주인을 따라가라!”

“제가 갈게요! 카네상한테 오늘 오후에 대련 있는 거 잊지 말라고 해주세요!”

 

야만바기리의 외침을 들은 호리카와가 들고있던 마른 빨래를 내려놓고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저도 같이 가요! 호리카와는 간신히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Q를 따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야만바기리는 순식간에 열렸다 닫힌 게이트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형제가 갔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또 어딜 그렇게 급하게 나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쉬겠다고 하지 않았나? 협회의 호출이라면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무시 할 것인데, 혹시 P가 부르기라도 한 건가. 


“으음...”

“사다쨩? 정신이 드는 거야?”

 

쇼쿠다이키리의 팔 속에 안겨있던 타이코가네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쇼쿠다이키리는 타이코가네를 작게 흔들어봤지만 다른 반응이 더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쪽이다.”

 

야만바기리는 망연하게 타이코가네를 쳐다보는 쇼쿠다이키리를 본채 속 깊숙히 자리잡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도착한 방은 화지와 나무 문틀으로 이루어진 주위의 방들과는 이질적으로 두꺼운 철문과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져있었다. 야만바기리가 문에 손을 대고 영력을 불어넣자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방 안은 창문 하나 없어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형광등이 켜지자 빛이 구석구석 퍼져나가면서 제법 밝아졌다. 야만바기리는 방의 한켠에 드리워진 커튼 장막 앞으로 다가가 간이용 침대를 펼치고 쇼쿠다이키리에게 손짓해 타이코가네를 눕히게 했다. 


“여기는... 수리실은 아닌 것 같은데.”

“본체가 없으니 수리실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다. 이건... 남사를 강제적으로 현세에 붙들어매는 방법에 더 가깝군.”

 

현세에 붙들어맨다라, 그럼 타이코가네가 갑자기 사라질 걱정을 덜어도 되는 건가? 아니, 본체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본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다. 하지만 쇼쿠다이키리는 적어도 타이코가네가 영력고갈로 사라질 일은 없어졌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야만바기리는 찬장을 열어 기계 몇가지를 꺼낸 후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 작동시켰다. 기기들은 푸른 빛을 내면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야만바기리는 이 기계들을 어깨 너머로 질리게 봤고, 또 직접 사용해 본 경험도 많았지만 기계가 작동될 때 마다 설명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Q는 이런 것을 잘만 쓰는군. 야만바기리는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면서 기계를 타이코가네의 팔에 이었다. 


“이걸로 됐다. 이 방에 마음대로 들어와도 좋지만 기계를 함부로 만지거나 저 커튼 너머로는 절대 들어가지 마라. 너나 타이코가네에게 좋을 일 없을 거다.”

 

야만바기리는 기계를 침대 헤드에 부착한 후 타이코가네를 등지고 나가려다 벽에 붙은 다른 문을 보고 멈칫했다.

 

“아, 그리고 저 문을 이용하는 것은 되도록 삼가라. 주인의 사실과 이어져있으니까.”

“...응. 알았어.”


쇼쿠다이키리는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타이코가네를 돌아보았다. 괜히 숙여지는 고개가 멋없게 느껴졌다. 문턱을 넘어 복도로 발을 디디고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초롱초롱하고 둥근 금색 눈 두 개와 마주쳤다. 깊은 바다같은 푸른 머리카락과 화려하게 펄럭이는 망토, 타이코가네다. 그 옆에는 타이코가네에게 허리에 두른 숄을 붙잡혀 끌려나온 오오쿠리카라도 있었다.

 

“오! 진짜 밋쨩이잖아! 거봐, 나와보길 잘 했지?”

“...미츠타다인가. ...흠.”

“뭐야- 안 반가워? 나 현현하고 나서 밋쨩 처음 보는데! 카라쨩은 이미 본 적이 있는 거야?”

“...별로. 그런 게 아니다.”

 

타이코가네는 쇼쿠다이키리 주변을 방방 뛰면서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야만바기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테의 검들을 보자 이즈미노카미에게 호리카와의 말을 전하겠다고 하며 자리를 피했다. 


“어쨌든 밋쨩이 오니까 좋네! 그동안 주인한테 밋쨩을 현현시켜달라고 해도 어물쩍 넘어가서 혹시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라는 검을 싫어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그럴 필요 없었네.”

“사다보가 어딜 그리 급히 가나 했더니 미츠보가 있었구만! 이야, 반갑네. 그나저나 사다보는 지금 나와 밭일을 하러 가야 하지 않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츠루마루가 타이코가네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올리고 쇼쿠다이키리를 향해 미소짓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츠루마루의 눈에 언뜻 연민이 스쳐 지나갔다. 그 감정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쇼쿠다이키리는 알지 못했다.  


“사다보는 내가 좀 빌려가도록 할까.자, 사다보! 어서 밭을 더 흥미롭게 꾸미러 가자고!”

“어? 응, 그렇지! 그럼 이따가 봐, 밋쨩!”

 

타이코가네는 손을 펄럭이고 츠루마루와 함께 복도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복도는 순식간에 식어 공허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인이 널 데려왔다는 건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겠지. 아니면 적어도 그런 척 하고 싶거나. ...네가 불편해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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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 어이,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 일어나라.”

 

본채와 약간 떨어진 볕 잘 드는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 안, 이즈미노카미는 대나무 발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을 쬐며 대자로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정자 입구에서 해를 등지고 선 야만바기리는 이즈미노카미를 몇 번 불러 깨우려 했다. 미동도 없는 이즈미노카미를 보며 흔들어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차, 이즈미노카미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으음... 뭐야... 잘 자고 있었는데. 긴급 출진이야?”

 

눈을 비비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이즈미노카미는 몸을 뒤척이더니 손을 포개 배게 삼고 다시 돌아누웠다. 

 

“...형제가 네게 대련 잊지 말라고 전해주더라군.”

“악! 지금 몇 시야? 이번에도 빼먹으면 쿠니히로한테 혼날 텐데!”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이즈미노카미는 몸을 벌떡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정각 약간 지난 시각이다.”

“뭐야, 그럼 아직 좀 남았네.”

“옷 갈아입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다!”


이즈미노카미는 살짝 구겨진 옷자락을 늘리며 입구에 서있는 야만바기리를 스치듯 서둘러 정자를 빠져나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길고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달리던 이즈미노카미는 마당 끄트머리에 있는 자그마한 화단 앞에 서있는 두 인영을 보고 잠시 멈춰 섰다.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에 잔잔히 나부끼는 보라색 망토 옆에 선 왜소한 체격의 아이가 화단에 핀 가을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수, 인 것입니까.”

“그래. 너라면 날 이해해 주겠니?”

“이해... 합니다. 하지만 카센 님까지 이런 감정을 갖게 되실 줄이야...”

 

사요와 카센 사이의 대화를 듣던 이즈미노카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사다? 언제 온 거지?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왠지 심각해 보이는데다 당장 해야 할 더 급한 일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고개를 붙잡고 본인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한 이즈미노카미는 서둘러 전투복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일사천리로 내의, 하의, 상의, 하의를 입고 허리띠를 두른 후 마지막으로 옥색 하오리를 걸쳤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거울 앞에 서서 하오리를 한 번 펄럭이고 자신의 모습을 살핀 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최신 유행 검은 언제 봐도 태가 살잖아!


“...이즈미노카미? 아직 대련실 안 간 건가?”

“지금 가! 지금!”

 

열려있는 문 사이로 지나가던 야만바기리가 살짝 참견했다. 이즈미노카미는 머리를 넘기며 성큼성큼 대련실으로 향했다. 주인의 초기도랑 쿠니히로는 안 그런 것 같아도 묘하게 닮았단 말이지. 요만큼이지만. 이즈미노카미는 대련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우렁차게 외쳤다.

 

“크흠! 아직 늦은 거 아니지? 내 상대는 누구냐!”

“나다.”

 

대련실 안 쪽에서 오오쿠리카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살짝 어두운 대련실 안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두 눈을 가진 그 옆에도 비슷한 금빛 외눈을 가진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이즈미노카미를 잠시 쳐다보더니 먼저 입을 떼었다. 

 

“...나는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만나서 반가워. 조금 구경해도 될까?”

“난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 구경하는 건 상관 없는데 댁 친구가 지는 걸 보고 너무 충격 받지는 말라고!”

“...말이 많군. 어서 시작 해라.”

 

희한한 일이다. 노사다에 쇼쿠다이키리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지금은 그런 것보다 눈 앞에 있는 대련 상대에게 집중해야 한다. 고요해진 대련실 안은 두 남사의 목검이 공기를 가르고 맞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CASE 7: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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