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한국이며 신분제도는 없지만, 그사세 격으로 5작 제도(공후백자남작)가 존재합니다.
    *피스틸버스에 오메가버스를 섞었습니다.
    *비중없는 인물들은 A, B, C, D 알파벳으로 표시합니다.


"연속 재생"으로 배경음악과 함께 읽어주세요

  2030년,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성층권에 돌입하며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운석은 지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지의 피스틸(pistil)이라는 성분으로 되어 있었으며, 피스틸이 지구의 공기와 결합한 순간,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의 신체에 뿌리내려 유전자에 이상작용을 일으켰다.

  이후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진화 상황을 학자들은 ‘피스틸버스’라 부르게 되었고, 본서에서는 피스틸버스에 관하여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1. 유형

    1) 케일릭: 2차 성징(각성) 전의 사람으로, 스테먼이나 피스틸로의 각성 전인 상태를 말한다.

    2) 피스틸: 척추를 따라 나무가 새겨지는데, 스테먼과의 성관계 시 등에 스테먼의 꽃이 새겨진다.

    3) 스테먼: 피스틸과의 성관계 시 피스틸의 등에 자신의 고유 꽃을 새길수 있다.

    4) 베놈 스테먼: 고유 꽃이 독초인 스테먼으로, 전 인류의 상위 4%에 속한다. 피스틸이 베놈 스테먼과 한 번이라도 성관계를 한 후 다른 스테먼과의 성관계를 하면 스테먼은 독초의 독에 중독돼 사망한다.

    5) 안티 스테먼: 베놈 스테먼과 관계한 피스틸의 독초를 정화할 수 있는 상위 1%의 스테먼이다.

  2. 각성(2차 성징)

    케일릭은 18세가 되는 생일을 기점으로 스테먼이나 피스틸로 각성하게 된다. 피스틸은 스테먼과 달리 각성통과 함께 보름에 걸쳐 등에 나무가 새겨진다. 각성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0.05%의 매우 희박한 확률로 각성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스페셜 피스틸 같은 경우는 단 시간에 각성하기도 한다.

  3. 피스틸의 꽃

    피스틸의 등에 새겨지는 꽃의 개수는 성관계 횟수에 비례하고 종류는 성관계한 스테먼의 수에 비례한다.

  4. 피스틸의 재각성(3차 성징)

    피스틸의 등에 더는 스테먼의 꽃이 새겨질 자리가 없을 경우 재각성이 일어난다. 몸의 곳곳으로 가지가 뻗어 나가는데, 그 가지가 다 채워질 경우 피스틸은 사망하게 된다.

  5. 스페셜 피스틸

    지금까지 인류의 99.9%를 차지하는 유형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형에 들어가지 않는 피스틸이 있다. 피스틸버스가 시작된 지 60년 동안 전 세계를 통틀어 0.1%의 희박한 확률로 열 케이스만 발견된 사례이다. 바로 스페셜 피스틸이라고 부르는 희소 유형으로 이칭 베놈 전용 피스틸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피스틸과 스테먼. 피스틸은 성별과 관계없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었고, 스테먼은 피스틸을 임신시키고, 등에 난 가지에 자신의 고유 꽃을 새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법적으로 각성 전에 병원에 가서 피스틸인지 스테먼인지 알기 위해 형질 검사를 해야 했다.

내 나이 18살에 외삼촌이 근무하는 병원에 갔고, 검사를 끝낸 외삼촌이 말한 결과를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스피라니! 거짓말이지!?”

동행한 엄마는 믿을 수 없다며 당사자인 나보다 흥분해서 소리치셨고, 나는 외삼촌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검사는 거짓말 안 해. 말 그대로, 호석인 스페셜 피스틸이야. 들어봤지? 통칭 베놈 스테먼 전용 피스틸. 전 세계 인구의 0.1%에 해당하고, 베놈하고만 관계할 수 있지. 그 외의 스테먼과 관계하면 100% 죽어.”

“!”

그리고 덧붙이기를, 곧 18번째 생일이 지나면 각성함으로써 내 등에 피스틸임을 상징하는 가지가 생기고, 스테먼처럼 몸에서 향이 날 거랬다. 그러나 그 향은 피스틸을 유혹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베놈 스테먼은 일반 스테먼과 달리 향이 나지 않아. 그래서 종족 번식을 위한 유전자의 메커니즘으로 스피가 향을 내뿜지. 베놈을 유혹하는 향을.”

어이가 없었다. 듣고 있는데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맙소사. 베놈은 전 세계 인구의 4프론가 5프론가뿐이라며! 대한민국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베놈을 기다리며 우리 아들이 평생 수절해야 한단 말이야?”

“응.”

뭐가 이렇게 단호박이야. 망설임이라곤 1도 없는 정말 단호한 대답이었다.

인류 상위 4%에 속하는 희귀 유형인 베놈 스테먼. 한국에도 한두 명 나올까 말까인 그런 귀한 형질이 내 운명의 짝이라니. 이건 말도 안 돼. 평생 동정으로 살든지 한 번의 섹스로 죽든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너무 가혹하잖아.

“원래라면 정부에 보고는 해야 하지만…… 숨기자.”

“……네? 왜요?”

“호석아, 스피는 70억 인구 중 0.1%의 존재야. 그런 존재가 나타났다고 하면 전 세계의 내로라 하는 베놈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지 않겠어? 오직 자신만을 위한 피스틸인데.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세상엔 미친놈들이 다양하거든. 그만큼 귀한 유형이니, 네 목숨과 안전과 정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숨겨야 할 거 같네.”

“그래도 괜찮아?”

“응, 누나. 검사 결과는 바로 폐기하고 내 거로 하면 돼. 설령 발각되어도 벌금 300만 원밖에 안 내니 괜찮아. 누구나 이러한 일을 대비하여 통장 속에 300만 원쯤은 가지고 있잖아? 지금부터 호석인 평범한 스테먼이 되는 거야. 다만 이건 죽을 때까지 우리 세 사람만의 비밀로 해야 해. 그리고 호석아, 술 같은 거 절대로 마시지 말고, 마약도 하지 마. 혹시나 술이나 약에 취해서 인사불성으로 누구랑 관계 맺으면 큰일 나니까. 네 목숨이 달린 일이야. 알겠지?”

“……네.”

“사람들은 네 몸에서 향기가 나니 스테먼으로 알 거야. 하지만 등에 가지가 있는 걸 보면 단번에 네가 스피인 걸 알아차릴 테지. 그러니 절대로 네 등에 있는 가지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마. 공중목욕탕, 수영장, 바다는 일절 접근하지 말고.”

하지 말라는 게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수영하는 거 좋아하는데 이젠 여름에 수영장도, 바다도 아무 데도 못 가겠네.

“그리고…… 혹시나 운이 진짜 좋아서 베놈을 만난다고 해도, 걍 도망쳐. 베놈치고 성격 좋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으니까. 학계 정설이야.”

“…….”

나는 집으로 가는 내내 나보다 더 우울해하시는 엄마를 보며 한숨 쉬었다. 18년 인생 중 오늘을 단연 기대했었다. 과연 내 형질이 뭘까 싶어서. 그러나 아이를 만들 스테먼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평범한 피스틸도 아니었다.

내 짝은 베놈 스테먼. 전 세계 4%밖에 없는 희귀한 놈이란다. 나 그냥 이대로 신부님이 되는 게 어떨까? 베놈 외의 스테먼과 섹스하면 죽는다니 이건 그냥 평생 동정으로 살라는 거잖아. 이게 대체 뭔 개떡 같은 소리야.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외삼촌의 말대로 나는 스테먼으로 살았고,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연인 01

SUGA X J-Hope

written by 휴위







토요일, 크로스백을 멘 호석은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서둘러 헐레벌떡 아르바이트 장소로 뛰어갔다.

청담동 핫플레이스로 소문난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 ‘Eat JIN’. 엔틱 디자인의 3층 건물 앞에 넓게 펼쳐진 야외 정원이 돋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10시 오픈에 현재 시각은 10시 20분. 이른 시간임에도 야외와 실내 테이블은 만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오너. 교통사고가 나서 길이 막혔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카운터에 서 있는 석진에게 울상 지으며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호석이다.

“왔어? 괜찮아, 괜찮아. 어서 옷 갈아입고 나와. 대신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해.”

한눈에 봐도 명품임을 알 수 있는 고가의 슈트를 입은 석진이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물론이죠!”

호석은 탈의실로 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웨이터처럼 하얀 셔츠에 검은 조끼에 검은 바지, 그리고 허리에 검은색 앞치마를 둘렀다.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홀로 나가려고 하는데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    석아 엄마 오늘 저녁 소고기 먹고 싶은데^^

‘어떻게 또 월급날인 줄 아시고…….’

호석은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낸다.

넨네~ 한우 사 갈게요^♡^

알바생 주제에 뭔 한우냐 싶겠지만, 여기는 정말 귀족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았다.

작년에 친한 동기가 미국으로 유학 간다며 호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넘겼는데 시급이 높고 오너도 젠틀맨에 대우를 잘해줘서 1년 넘게 정규직처럼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마음 놓고 한우를 구울 수 있었다.

“15번, 26번 테이블!”

홀로 나와 주방으로 가니 땡 종소리와 함께 쉐프가 요리를 내놓았다. 호석은 빠른 걸음으로 가서 음식을 서빙했다.

카운터에 앉아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호석의 움직임을 좇는 석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늘 방실방실 웃으며 열심히 일하는 호석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기분이 좋아져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서버가 많아도 호석만큼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은 없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성격도 좋아서 아예 여기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었다. 물론, 그가 원한다면.










“수고했어. 많이들 먹어.”

“수고하셨어요~ 잘 먹겠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에 실내 식탁에 앉아 간단하게 식사하는 잇진 식구들이다.

잇진은 오너 1명, 매니저 1명, 쉐프 4명, 서버 5명 총 11명의 남자가 근무했다. 특히 서버들은 일부러 얼굴 보고 뽑은 것처럼 훈남들이었다.

호석은 쉐프가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얌얌 먹으며 행복해했다. 잇진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 비싸고 맛있는 파스타를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근데 오너, 오늘 저녁에 3층 통으로 예약 잡혔던데 대단한 손님이라도 오나 봐요? 그렇게 한 층 통째로 예약하는 일 없잖아요.”

서버 A가 석진에게 물었다.

“미국에서 일하던 친구가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대서 환영 파티해주려고. 근데 뭐,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녀석이긴 하지.”

석진은 바게트 한 조각을 입에 앙 넣어 햄스터처럼 볼을 부풀리고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네? 뭐가요?”

서버 B가 관심을 갖고 물었다.

“소공작이거든.”

석진의 무심한 대답에 서버들과 셰프들의 눈이 커졌다.

“소공작이라면…… 그, 송월그룹 민가의 장남 민윤기요!?”

“우와! 대박!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에 공작가라니! 그런 사람이랑 친분이 있으셨던 거예요? 오너!?”

서버 C와 D를 비롯한 나머지 서버들도 입을 벌리고 놀랐다.

그러나 호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와는 연관 없는 세계인지라, 호로록 스파게티를 먹는 거에 집중했다. 카톡으로 모친과 사이좋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야야, 너희 날 무시하는 거 아니니? 나도 나름 백작가의 차남이거든? 게다가 민윤기 걔 나랑 꼬꼬마 유치원 시절부터 베프라고.”

“그래도 백작가는 다섯 개나 되지만, 공작가는 하나뿐이잖아요.”

“우와~ 서러워서 살겠나. 지금 다섯 개라고 무시하니? 안 되겠네. D 군은 앞으로 밥 먹지 마세요. A 셰프님, D 군 밥은 내일부터 빼주세요.”

“라져.”

“으아~ 잘못했어요~ 오너~”

“잘못했으면 애교 3종 세트.”

“너무하시네요! 그런 수치스러운 짓을 시키시다뇨~”

“싫어요?”

“뿌잉뿌잉~ 1 더하기 1은 귀요밍~”

“때려쳐.”

“어쩌라고요!”

오늘도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이었다.

학교 공부도 적성에 맞고, 알바하는 곳 직원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밥은 맛있고,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져서 행복한 호석은 하트 입을 만들며 하하 웃었다.

이곳 사람들은 피스틸인 석진과 A 셰프를 제외하곤 스테먼이었다. 그들 틈에서 호석은 잘도 스테먼을 연기하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그 소문의 소공작을 뵐 수 있겠네요.”

3층 전담인 서버 D가 기대된다며 말했다.

“서른 중반에 불과한데 실력이 너무 좋아서 공작보다 더 잔혹하기 짝이 없다든지, M&A를 밥 먹듯이 해서 송월그룹을 한국 1위에 세계 10위 안에 들게 했다든지, 또 매일매일 여자가 바뀌어서 그의 꽃을 등에 새긴 피스틸이 한둘이 아니라든지. 근데 그걸 너무 잘해서 한번 잔 피스틸은 소공작을 잊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으아~ 그런 소문까지 났어? 대체 민윤기, 소문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걔가 능력 좋아서 공작님보다 저돌적으로 회사를 부유하게 하는 건 맞는데, 피스틸 문제는 아니야. 내가 보장하는데 민윤기 걘 그런 난잡한 짓 안 해. 왜냐면! ……아니다. 이건 너무 사적인 부분이니까.”

서버 C의 말에 석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항변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왜요? 뒷말 왜 삼키시는 건데요?”

“너무 사적인 거라서.”

“흠. 그럼 소공작님은 무슨 꽃인지 아세요? 다른 명문 귀족 스테먼 자제들의 꽃은 정보가 다 퍼졌는데 유일하게 공작가 자제분들만 정보가 없더라고요. 베프니까 알지 않아요?”

스테먼의 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관계를 통한 질내 사정뿐이었다. 피스틸의 등에 새겨지는 꽃을 보고서야 스테먼은 자신의 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프라이버시니 노코멘트. 자자, 소공작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 먹었으면 정리하고 오픈 준비합시다.”

“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진은 열심히 정리하는 호석에게 말을 건다.

“호석인 공작가 얘기 관심 없어?”

“네? 네.”

유독 무관심으로 핸드폰을 만지던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 석진이었다.

“흐음~? 어째서?”

“어째서라뇨? 그야…… 저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니까요.”

“가십거리 같은 거 안 좋아하는구나.”

“네. 관심도 없고요. 제 인생 모토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 두고, 잘해주자’ 이거든요. 저와 인연이 없는 구름 위에 사는 사람에게 괜히 헛관심 두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네요.”

호석은 쿨하게 대답하며 의자를 밀어 넣고 식탁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본 석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결정.”

“?”

“이따 예약 잡힌 3층 서빙 호석이가 담당해.”

“네?”

호석은 놀란 눈으로 석진을 바라보았다. 청담동에 위치한 잇진은 귀족 가문 자제들에게도 호평이었다.

특히 3층은 귀족 전용층으로 만들었기에 인테리어도 1, 2층과는 확연히 다른 고급스럽게 꾸몄다. 그러나 호석은 근무하는 동안 3층에 올라간 적이 없다. 정직원이 아닌 알바생이었기에 1층이나 야외를 담당했다.

“정말로 3층 가도 돼요?”

“응.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윤기라서. 쟤들은 호사가들이잖아.”

“네에…… 음, 베프라서 그런지 되게 보호하시네요. 많이 소중하신가 봐요. 설마, 연인이세요?”

“뭐!? 아니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릴 해!”

석진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길길이 날뛰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반응에 호석이 괜히 민망했다.

“네, 아니시군요…….”

“그냥 사정이 있어서 그래. 아무튼, 서빙 잘 부탁해.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네.”










여름이 끝나갔지만, 7시가 되어도 바깥은 환했다.

‘3층은 이렇게 생겼구나. 고급지네…….’

처음 3층에 올라온 호석은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벽이 온통 금빛으로 번쩍였고, 의자와 테이블은 고급스럽기 짝이 없었으며, 벽에는 진품으로 보이는 유명한 명화가 걸려 있고,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에 눈이 부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봐. 그사세라니까.’

호석은 정말 세상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붕붕 저었다.

‘알 게 뭐야. 나는 내 인생에 만족하는걸.’

예약 시간이 되자 3층 예약 손님이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3층으로 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걸 보곤 호석이 앞으로 다가가 인사할 준비를 했다.

띵, 문이 열리고 코를 찌르는 숲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아무리 스테먼이라도 이건 좀 과한데?’

지독한 향이었다. 스테먼에게서 나는 고유의 향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향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들이부은 듯했다. 왠지 역해서 속이 울렁거렸지만, 직업의식이 투철한 호석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호석은 명부를 보며 이름을 체크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뭐야, 왜 말을 안 해?’

호석이 고개를 힐끔 들어 남자를 보곤 흠칫했다.

‘뭐, 뭔데. 왜, 왜 저렇게 째려보는 건데?’

오늘 처음 보는데, 마치 원수를 보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째려보는 남자의 시선에 호석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뱀파이어처럼 새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사자처럼 서늘한 삼백안이 쏴 죽일 듯이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석진이 한 떨기 꽃처럼 예쁘다면, 이 남자는 고고한 맹수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순간 두근거렸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저…… 손님?”

무서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호석은 온 힘을 다해 다시 웃으며 이름을 물었다.

“성함, 말씀해주시겠어요?”

“……민윤기.”

목소리조차 낮아서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아, 너구나…….’

이 사람이 그 민윤기구나 싶었다. 호석은 떨리는 손으로 겨우 이름 옆에 동그라미로 체크했다.

“네, 민윤기 님.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호석이 등을 보이고 이동하자 뒤따라오는 구둣발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마치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가까이 다가오는 맹수처럼 느껴져서 뒷골이 서늘했다. 서버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구나. 이렇게 무서운 얼굴로 수많은 회사를 홀라당 잡아먹었겠지. 나는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야. 잡아 먹힐 일 없어서.’

윤기를 시작으로 그의 친구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호석은 인이어로 석진에게 손님이 다 도착했음을 알렸고, 석진이 샴페인을 들고 3층으로 올라왔다.

“민윤기~ 귀국 축하한다~!”

다짜고짜 샴페인을 터뜨리며 민윤기의 귀국 환영 파티가 시작되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호석은 덤웨이터를 통해 올라오는 요리와 음료를 바지런히 서빙했다.

‘아 진짜 신경 쓰여 죽겠네.’

호석은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음악과 와인에 취해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으나 그 낮고 으르렁거렸던 윤기의 목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제게 쏟아지는 따끔한 시선에 당장이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죽일 것처럼 쏘아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신경 써서 석진만 바라보았다.

‘절대로 고개 돌리면 안 돼.’

그러나 윤기가 저를 향해 손을 들었고, 어쩔 수 없이 서버로서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너…….”

“네?”

‘다짜고짜 너라니요. 뭐 이런 무례한 인간이 다 있어. 손님이면 다냐?’

속으로는 벌써 정강이에 니킥을 먹였지만,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을 뿐이었다.

윤기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한숨을 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커다랗고 마디마디가 굵은 남자다운 손가락이었다.

‘손은…… 멋있네.’

여자처럼 가늘고 긴 저와 비교하면 확실히 멋진 손이었다.

“손니임!?”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윤기는 호석의 손목을 낚아채 화장실로 향했다. 뒤에서 친구들의 야유가 들려왔고, 석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히 바라보며 눈이 동그래졌다.










3층 화장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인테리어도 파우더룸처럼 잘 꾸며져 있었다. 화장실 인테리어도 눈이 돌아갈 것처럼 고급스러웠다.

다짜고짜 잡혀 화장실로 들어온 호석은 잡힌 손목이 화끈거렸다.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거워졌다. 잡힌 부분부터 시작해 온몸에 열기가 퍼지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소, 손님!”

심장이,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해서 머리에서 적색경보가 울렸다. 당장 이 손을 놓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존을 향한 본능이 당장 도망치라고 외쳤다.

“이거 놓으세요!”

호석은 있는 힘껏 손목을 돌려 뿌리쳤다. 그러나 퍼뜩 뒤돌아본 윤기의 서늘한 눈빛에 졸아 도망치진 못했다. 다시 윤기의 손에 잡혀 벽에 밀어졌다.

“읏!”

등에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키도 크고 덩치 있는 윤기가 호석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힉! 뭐 하시는 거예요! 비켜요!”

이거 성추행이잖아!

호석이 경악하며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윤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호석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깊게 심호흡했다.

“하아…….”

거칠어져 가는 윤기의 숨소리에, 뜨거운 열기에 호석의 얼굴이 한껏 붉어졌다. 잡힌 손목과 그의 피부가 닿은 목덜미에 열감이 퍼져가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너…… 스피지?”

“!”

귓가에 끈적하게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호석이 움찔했다.

‘서, 설마…….’

윤기는 목덜미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호석을 내려다보았다.

마주친 삼백안은 폐부를 찌를 것처럼 서늘하기 짝이 없어서,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상위 4%의 베놈 스테먼이 눈앞에 있었다. 마치, 운명처럼. 자기도 모르게 베놈을 유혹해 버린 듯했다.

―혹시나 운이 진짜 좋아서 베놈을 만난다고 해도, 걍 도망쳐. 베놈치고 성격 좋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으니까. 학계 정설이야.

그 옛날에 들었던 외삼촌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호석은 도망칠 수 없었다.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베놈 전용 피스틸인 이상, 그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윤기는 놀란 눈을 하며 경직된 호석을 보며 싱긋 웃었다. 흠칫 떠는 그의 볼을 어루만지더니 얼굴을 숙여 그의 입술을 제 입안에 머금으며 빨아들였다.










피스틸버스!!! 아대물!!! 임출육!!!! 가즈아~~!!

갑자기 어제 새벽에 삘 받았어요. 그래서 쓰려고 합니다.

후원 답례글로 썼던 Sweet Scent(https://posty.pe/wpfjej)의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빻은 취향의 19금입니다. 스페셜 피스틸은 제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취향이신 분들은 저와 함께 해주세요.ㅎㅎㅎ 중편이라고 했지만 출산과 육아까지 하면 장편이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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