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넌......?"


이진은 자신이 말하고 놀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부디 못 들었기를 바라며 이진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정우와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껄끄러운 사람이고 또......이상하게 마주할 때마다 이진을 미워하는 걸 대놓고 드러내었으니까. 얌전한 이진이 딱히 그에게 해된 짓을 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뭘?"


되물음이 날아와 이진의 발목을 잡아챘다. 이진은 무시하려 애썼으나, 정우가 한 번 더 물었다.


"내가 무얼 했는데 그렇게 묻지?"


그의 목소리는 먹잇감을 찾은 늑대의 으르렁거리는 쇳소리와 흡사했다. 이진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며 뒤를 돌았다. 정우는 어느 새 나무 위에 일어서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너도,"


이진은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선생님께서 사냥을 하라고 하니 나온 거잖아."


"난 원래 사냥하는 거 좋아해."


정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건 이진의 속을 긁기 위해 보인 비웃음이었다.


"지켜만 보니 사냥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


"......"


"무엇하러 힘들게 쫓아다닐 필요 있지. 덫에 잡힌 사냥감의 멱을 따는게 진정한 재미인데."


가만히 듣던 이진이 눈썹을 찡그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생명을 해하여선 안 되는 거야."


"지금 나한테 설교 하는 거야, 하이진?"


이진은 솜털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정우가 혀를 내밀어 제 이름을 사뿐하게 굴리니 마음 속까지 오싹해졌다. 아무 말 못하는 이진을 향해 정우는 털썩 앉았다. 노파의 머리카락처럼 힘없는 나뭇잎들이 툭툭 끊겨 내려왔다.


"그럼 진중한 마음을 가지면?"


"뭐?"


"진지하게 임하면 죽여도 되냐고."


이진은 도대체 왜 정우가 자꾸 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지 알 수 없었다. 전부터 그랬다. 정우는 자신을 싫어한다. 정확하게는 진저리를 내며 미워한다. 그래서 이진은 그를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말 밉다면 말도 걸기 싫지 않나. 왜 자꾸만 제게 시비를 걸지 못해서 안달일까. 이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까 전의 소심한 목소리와 달리 이번에는 또렷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진중함을 가지면 사리분별이 명확해지고 그럼 정말로 죽이는 게 맞는지 잘 택할 수 있잖아."


"그래도 죽여야 한다면?"


정우는 팔짱을 꼈다.


"살해는 정당해지는 건가?"


"......"


"진중하게 택하나 재미로 택하나 어차피 결과가 죽이는 거라면. 그건 똑같이 죄라고 생각하는데."


"결과에만 치우쳐 생각하는 건 안 돼."


"과연 그럴까."


"너 대체 나한테 왜 그래?"


이진의 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한테 바라는 답변을 말해 봐. 계속 질문만 빙빙 돌리지 말고."


그 말에 정우의 미소가 가셨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조금 당황한거 같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동요에 이진 역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정우는 고개를 홱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진은 뭐가 그렇다는 지 알수 없었다.


"너한테 질문하는 내가 바보지."


어디선가 함성이 터졌다. 정우도 이진도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무언가를 잡았는지 잔뜩 흥분한 외침이었다. 이상하게도 이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진은 쿵쿵 뛰는 심장에게 침착하라고 되뇌었다. 방금 전까지 정우와 살해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서일지도 모른다. 살해의 묵직함이 머릿속을 아찔하게 만든거라 생각하며 이진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원으로 둘러싼 무리들 뒤로 찾아간 이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안 쪽에는 한참 어린 고라니가 그물에 걸려 버둥거렸다. 몸이 어찌나 빨리 헐떡거리던지 저러다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서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를 보다 이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새끼네."


"새끼라도 잡은 게 어디냐?"


아이들의 목소리는 당황과 흥분으로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산채로 데려가?"


"뭐하러 그래. 어차피 잡아 먹을 건데."


"헉, 죽여야 하나? 나 동물 한 번도 안 잡아봤는데."


난처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진은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다 다시 어린 새끼를 보았다. 새끼는 어떻게든 그물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저기......"


그의 작은 목소리는 소란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진은 다시 힘주어 불렀다.


"저기!"


떠들던 아이들이 뒤를 보았다. 가장 구석에 서 있는 이진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많은 시선이 쏟아지자 이진은 손이 떨렸다. 그러나 제 긴장을 감추기 위해 손을 뒤로 돌려 감추었다.


"아직 어리니 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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