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내 목소리 들려?”

“…으으윽, 머리가 띵한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다행이다, 너희 넷은 정신을 차렸구나. 분명 혼란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일단 어떻게 된 건지부터 설명할게. 다름이 아니라 너희들이 ‘신세계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프로그램 내부로 ‘바이러스’가 침입해서 문제가 발생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규 종료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제 종료’로 너희들을 깨운 거야.”

“…‘신세계 프로그램’…”

“…‘바이러스’…”

“…‘강제 종료’…”

“…으으으음…”

“……………………”

“…역시 그렇게 된 거군요…”

“어, 어라? 혹시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겪은 일이 기억이 나는 거야?”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따지자면 오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말이지.”

“너무 흐릿할 뿐인 기억이라 전혀 실감이 나지를 않았는데, 그래도 나에기 씨가 설명해 준 덕분에 금방 납득이 갔어요.”

“솔직히 따지자면 페코가 죽어버린 건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된 거였구만…”

“…그렇구나, 기억을 하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

“뭐 기억이니 뭐니 난 전혀 모르겠고, 밥은 안 줘? 나 배고픈데.”

“…태평한 소리 하고 있네. 너희들은 이제부터 ‘절망’의 영향이 남아있는지 조사를 받아야 하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철컥!

“으, 으악, 수갑까지 채우다니…”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런데 잠깐만, 아까 ‘너희 넷은’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 그러게요?! 그러고보니 히나타 씨가 안 보입니다!”

“아, 그게… 나중에 설명하려고 했는데…”

“…사실 지금 히나타 군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하고 있어.”

“뭐, 뭐라고?!”

“어, 어째서?!!”

“…그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분명 히나타 군은 ‘신세계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부터 이미 기억에 문제가 있는 상태였으니, 아마 그 영향이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 그럴수가…”

“하아, 어려운 소리나 하지 않고, 그냥 한 대 세게 쥐어패면 깨는 거 아니야?!”

“넌 사람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할 일이 있냐?!”

“나, 나에기 씨, 히나타 씨는 깨어날 수 있을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 깨어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그렇군요.”

“어쨌든 히나타 군이 의식을 회복하는 대로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테니, 너희들도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키리기리 씨, 그리고 토가미 군, 저 친구들 잠시 부탁할게.”

“…알았어,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무전으로 연락하고.”

“…그래.”

……………………………………………………

“…하아, 정신 차리자마자 범죄자 취급이라니, 정말 기분 나쁘구만.”

“…그래도 저희가 저지른 일이 있으니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뭐, 소니아 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아 그러게, 지금 와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느낌이랄까.”

“…그러게요, 당시엔 ‘에노시마 준코’의 속삭임이 그저 달콤하게만 느껴졌으니 말이에요.”

“뭐 그것도 결국, 우리 자신이 알게 모르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서 그랬겠지만 말이지.”

“…그렇겠죠.”

“다 모르겠고,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장땡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넌 정말 태평하구만.”

“그것보다 말이야, 히나타 그 자식은 언제쯤 돼야 정신을 차리는 거야?!”

“오와리, 우리 여기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 좀 침착하게 기다리지 그래?”

“애초에 말이야, 그 ‘초고교급 희망’이니 하는 잘나신 분이 왜 아직까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거야?!”

“아까 못 들었냐?! 기억에 문제가 있어서일 것 같다잖아.”

“…하아, 난 그런 얘기 들어봤자 잘 모르겠다고…”

“…그러고보니 히나타 말이야, 설마 ‘그 사람’인 건가…”

“‘그 사람’이라니?!”

“그 뭐냐, 우리 말이야, 히나타를 제외하고는 같은 반 출신이니까 서로 이미 아는 사이잖아. 그런데 ‘신세계 프로그램’ 참가자 중에 처음 보는 얼굴이 딱 1명 있었단 말이지.”

“…뭐야 설마, 그 대놓고 음침한 놈 말이야?!”

“아 ‘그 녀석’?! 크크크크크킄킄 대놓고 중2병 패션이라 대체 뭐하는 놈이지 싶었는데 설마 히나타가 ‘그 녀석’이었을 줄이야 크크킄크크크킄크”

“…뭐, 따지고보면 우리는 ‘신세계 프로그램’ 내에서 대략 3년간의 기억을 뺏긴 상태였으니. 3년이면 그렇게나 모습이 바뀌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쨌든간에, 히나타 자식 깨어나면 왕창 놀려줘야겠구만?! 크크크킄크킄”

“…그것마저도 히나타 씨가 깨어나야 가능하겠지만요…”

“하아, 더 이상 못 참겠네! 그냥 그 자식 한 대 쥐어패면 안 돼?!”

“오, 오와리, 제발 참아 줘…”

“…쳇, ‘신세계 프로그램’에선 그렇게나 멋진 척은 다 하더니 정작 본인이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

“……………………”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나랑 히나타 군 단 둘이서만 있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네.”

침묵 속에서 헬리콥터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나에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게.”

이에 조용히 헬리콥터를 운전하고 있던 나도 그의 말에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확실히, 이렇게 나와 나에기 단 둘이서만 있는 것은 나에기 일행이 ‘신세계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자바워크 섬에 남겨두고 떠난 이후로 처음인 것이었다. 이후론 둘 다 각자의 할 일을 하느라 바빴으니까 말이다.

“뭐, 새삼스럽게도 말이지. 그래도 이렇게 있으니까 왠지 히나타 군이 막 ‘신세계 프로그램’을 마치고 의식을 회복했을 때가 생각나는 거 있지.”

분명 나에기는 ‘신세계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던, 나를 포함한 생존자 5명을 ‘강제 종료’로 깨운 뒤를 언급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헬리콥터 운전석에서 조종간을 쥔 채로 ‘당시의 일’을 회상해내기 시작했다.

“…나타 군! 내 목소리 들려?”

………………

“다행이다, 정신을 차렸구나! 일어날 수 있ㄱ…”

…………………

“호, 혼자서 일어났네, 도와줄까 했는데. 몸은 좀 ㄱ…”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부끄러우니까.

“아, 음, 미안…”

………………

“………………”

…가위, 있나요?

“가, 가위?! 아마 옆 방에 있을 텐데, 금방 다녀올게!”

…………………

“…헉, 헉, 자 여기!”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우, 우와, 혼자서도 잘 자르네, 대, 대단한데…?”

…………………

“…이제 끝난 거야? 그러면 슬슬 갈까…?”

“…나나미, 나는…”

…여태껏, 도대체 무엇을 해 온 걸까…

“…히, 히나타 군…”

“아, 그, 그 때 말이구나. 왠지 살짝 부끄러운데.”
…그렇다. 당시 막 의식을 회복한 ‘나’는 왠지 모를 감정에 복받쳐 기껏 나를 걱정해 주는 나에기를 오히려 멋쩍게 만든 것이었다…

“그 때 말이지, 히나타 군,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어서 엄청 신경 쓰였다고.”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나에기는 역시나 그답게, 혼자서 상념에 빠져 있던 나를 걱정해 줬다고 하고.

“하하, 걱정 끼쳐 버렸구나. 괜히 미안한데.”

“아니야, 히나타 군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괴로웠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괴롭다, 라…”

분명 나에기가 언급한 ‘내가 처한 상황’은, 나 ‘히나타 하지메’가 ‘카무쿠라 이즈루’로서의 죄업을 짊어지게 된 ‘가혹한 현실’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어떤 심정을 느꼈던 걸까, 나는 이제 와서 ‘당시의 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나타 군! 내 목소리 들려?”

…이 목소리는 ‘나에기 마코토’의 목소리. 아아 그렇죠, ‘저’는 ‘신세계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죠, 그리고 명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곳에서 저 ‘히나타 하지메’는 ‘강제 종료’를 선택했…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사실 전부 꿈이 아니었을까, 지금 들리는 ‘나’를 부르는 저 목소리마저 꿈이 아닐까,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평범한 일상’이 나를 반기고 있지 않을…

“다행이다, 정신을 차렸구나! 일어날 수 있ㄱ…”

…꿈이 아니다. 전부 현실이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 내 시야에 비치는 얼굴, 몸을 전혀 뒤척일 수 없는 감각, 그리고…
…이 ‘비현실적으로 길기만 한’ 머리카락마저…

“호, 혼자서 일어났네, 도와줄까 했는데. 몸은 좀 ㄱ…”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부끄러우니까.

“아, 음, 미안…”

…부끄럽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다. 이 따위 현실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그저 계속, 눈을 감은 채 꿈만 꾸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나 ‘히나타 하지메’가 처한, 도망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나나미 치아키’가 ‘나’에게 선사해 준 미래, 그녀가 나에게 남겨 준 유산, 그러니 나 ‘히나타 하지메’는…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갈 뿐.

…가위, 있나요?

“…확실히, 그랬을 지도.”

나의 나지막한 고백에 나에기가 곧바로 나에게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막 정신을 차리고 ‘히나타 하지메’로서의 기억이 되돌아왔을 때에는 그저 모든 것이 꿈만 같더라고.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겪은 일, ‘카무쿠라 프로젝트’ 피험자로서의 생활, 그리고 결정적으로, ‘카무쿠라 이즈루’로서의 행적 전부 말이지.”

“히, 히나타 군…”

“그러게, 그 땐 정말 괴로웠던 것 같아. ‘다른 사람’이 된 상태로 저지른 죄업을 떠올리니 ‘나’로서는 도저히 그 괴리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 그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신세계 프로그램’에서의 결의를 다시금 떠올리니, 그 ‘가혹한 현실’마저 그저 받아들여야겠다 싶은 것 있지.”

…그렇다. 결국 ‘나’는, 분명 괴로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야 나에기에게 그 솔직한 심정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랬구나. 그래도 히나타 군이 이제서라도 나에게 그 진심을 이야기해 주다니, 정말로 기쁠 따름이네. 뭐 그것보다 나는 히나타 군이 먼저 깨어난 다른 참가자들과 재회할 때의 행동이 더 신경 쓰였지만 말이야.”

나에기의 말대로, 당시 나는 다른 생존자들이 의식을 회복한 지 한참 지나서야 의식을 회복했기에, 그 동안 동료들은 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던 것이었다. 나에기의 언급에 나는 다시금 회상에 빠져 먼저 깨어난 동료들을 만나러 갈 때를 떠올려 보았다.

“키리기리 씨, 그리고 토가미 군! 히나타 군이 깨어났어! 곧 데리고 갈게!”

………………

“히, 히나타 군, 그러고보니 히나타 군 동료들이 히나타 군 많이 걱정하더라.”

………………

“…표정이 좋지 않네, 일단 히나타 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

“…이 방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 자 그럼 들어가자.”

끼이이익…

“히, 히나타 씨! 깨어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뭐야 히나타 너, 머리 자르고 온 거냐?! 젠장 김샜네, 잔뜩 놀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하아 그것보다, 오와리 저 녀석이 너를 쥐어패서라도 깨우겠다고 난리였어서 말리느라고 힘들었다고…”

“넌 진짜 ‘초고교급 희망’이니 뭐니하면서 이제서야 일어나는 거냐?! 참나.”

“나도 솔직히 걱정됐다고?! ‘신세계 프로그램’에서는 혼자서 멋진 척은 다 하더니.”

“그래도 이걸로 저희 5명이 무사히 다시 만난 거군요.”

“그러게, 그럼 이제 밥 먹을 수 있나?”

“넌 머릿속에 밥 생각밖에 없냐?!”

………………

“…하하, 다들 걱정 많이 했구나, 미안미안.”

“…그 땐 솔직히 많이 놀랐던 것 같네, 동료들이 그렇게까지 걱정해 줬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당시 일을 떠올려 보니 계속 눈을 뜨지 못하던 나를 걱정해 준 동료들에게 다시금 고마워질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평범한 감상에 나에기는 의외의 반응을 내비쳤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랬구나. 그것보다 나는 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히나타 군 표정이 계속 어둡다가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는 그런 기색을 전혀 안 보여서 오히려 걱정됐다고.”

…그렇다. 어제 미타라이가 말한 대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내 고민을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나를 계속 지켜봤던 나에기는 내가 진심을 숨기기 시작한 그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을 테고.

“…그런가, 그러고보면 언젠가부터 동료들에게 걱정 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만이 들던데,  아마 그 때부터였던 걸까…”

분명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 터. 나는 다시 한 번 당시 심정을 떠올려 보기로 결심했다.

“키리기리 씨, 그리고 토가미 군! 히나타 군이 깨어났어! 곧 데리고 갈게!”

…‘나’ 때문이다…

“히, 히나타 군, 그러고보니 히나타 군 동료들이 히나타 군 많이 걱정하더라.”

…단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했다…

“…표정이 좋지 않네, 일단 히나타 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신세계 프로그램’에서의 ‘살육 생활’도 결국 ‘나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나’ 때문에 결국 10명의 참가자들이 언제 깨어날 지도 모르는 채로 누워있을 뿐이다. 다른 생존자 4명도 결국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깨어나게 되었다. 분명 나에게는 ‘에노시마 준코’에 의한 희생자들을 위해 ‘신세계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텐데, 아니지…
…어쩌면 ‘내’가 ‘에노시마 준코’의 계획을 진작에 저지했더라면,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스스로 ‘그녀’에게 이용당하기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다른 참가자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죄스럽다. ‘나’는 대체, 그들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하는 것일까…

“…이 방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 자 그럼 들어가자.”

끼이이익…

“히, 히나타 씨! 깨어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뭐야 히나타 너, 머리 자르고 온 거냐?! 젠장 김샜네, 잔뜩 놀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하아 그것보다, 오와리 저 녀석이 너를 쥐어패서라도 깨우겠다고 난리였어서 말리느라고 힘들었다고…”

“넌 진짜 ‘초고교급 희망’이니 뭐니하면서 이제서야 일어나는 거냐?! 참나.”

“나도 솔직히 걱정됐다고?! ‘신세계 프로그램’에서는 혼자서 멋진 척은 다 하더니.”

“그래도 이걸로 저희 5명이 무사히 다시 만난 거군요.”

“그러게, 그럼 이제 밥 먹을 수 있나?”

“넌 머릿속에 밥 생각밖에 없냐?!”

…어라? 먼저 깨어났다는 생존자들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저 평범하게 ‘눈을 뜨지 못하던 동료’가 깨어났음에 안도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나’를 순전히, ‘신세계 프로그램’ 내에서 동고동락한 ‘히나타 하지메’로서만 바라보고, 또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뭐야, 이러면 ‘나’는 결국…
…‘그들’에게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조차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피해자’인 그들이 ‘가해자’인 나를 걱정해 주는 일 따위, 더 이상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하, 다들 걱정 많이 했구나, 미안미안.”

“…돌이켜보면 난 동료들에게 정말 미안한 짓을 해 버렸구나.”

“미안하다니?!”

의외의 답을 들었다는 듯 나에기는 나의 말에 궁금증을 표했다.

“나도 자각하지 못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줄곧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야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살육 생활을 강요받은 것도 따지고보면 나 때문이고, 게다가 어쩌면 그들이 ‘절망’에 빠진 것도 내가 ‘에노시마 준코’에게 협력한 게 계기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히, 히나타 군…”

“그런데 막상 먼저 깨어났다는 동료들이 순전히 ‘히나타 하지메’로서의 나를 걱정해 주고 있으니, ‘나’로선 도저히 그런 ‘죄책감’조차 그들에게 드러낼 수가 없었나 봐. 참 바보같게도 말이야.”

“…그러게. 확실히 히나타 군, 그 즈음부터 힘든데도 히나타 군 동료들 앞에서는 억지로 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정말 걱정이 많이 됐다고.”

…그런가, 나에기는 그 때부터 줄곧 ‘나’를 걱정해 준 셈이구나…

“…하하, 이거 너한테도 미안한 짓을 해 버렸네.”

“나한테도 미안한 일인 거야?”

“그렇지. 결국 ‘나’도 실수도 하고 남들에게 도움도 받는 ‘사람’일 뿐인데, 주변인들에게 걱정 끼칠 만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나 ‘초고교급 희망’이 동료들을 ‘책임’져 내야 한다고, 나 혼자서 멋대로 결론내려 버렸으니 말이야.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만’이지 않으려나 싶네.”

“‘오만’, 이구나…”

“쨌든, 나에기 너도 여태 내 걱정 많이 했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미안해지는걸.”

“아니야, 오히려 나로선 히나타 군이 힘들 텐데도 어려운 선택을 해 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인 걸. 게다가 이틀 동안 히나타 군 고향 마을에서 지내면서 히나타 군이 평범하게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 이젠 정말 안심이 되는 것 있지.”

“…확실히, 이번 일로 여러가지를 되돌아 볼 수 있었지…”

그 말과 함께, ‘나’는 여태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나의 진심’을 나에기에게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나에기, 너에게는 항상 고맙다고밖에 못 하겠네. ‘히나타 하지메’로서도, 그리고 ‘카무쿠라 이즈루’로서도 말이야.”

“고, 고맙다고…?”

“그래, 여태 그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이 없지만, ‘나’는 나에기 너 덕분에 ‘구원’받았으니까.”

그러자 나에기는 ‘구원’이라는 말에 살짝 놀란 듯 했다. 

“혹시 그거, ‘신세계 프로그램’의 일을 말하는 거야? 나는 그저 ‘에노시마 준코’의 피해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싶었을 뿐이었고, ‘구원’이란 말까지 들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신세계 프로그램’ 말고, 그보다 더 전의 일이야. 바로… 나에기 네가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살육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였어.”

“………!!!”

“‘나’는 계속 지켜봤어, 진정한 ‘초고교급 희망’의 탄생을 말이야. 그리고 직감할 수 있었지, 나에기 네가 ‘나’의 공허함을 해소해 줄 열쇠를 쥐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 그거 계속 보고 있었던 거구나, 왠지 부끄러운데.”

“아니야, 계속 지켜보게 만들 만큼 너의 ‘희망’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 그런가, 나는 오히려 히나타 군의 ‘강함’이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말이지.”

“나는 그 ‘강함’도 결국 나에기 너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걸?”

“그렇게 따지면 나도 지금은 히나타 군 도움을 잔뜩 받고 있지만 말이야.”

오랜만에 둘만 같이 있게 돼서 그런가, 나는 나에기와 평소라면 잘 못 했을 깊은 대화를 하게 된 것이었다. 나도, 그리고 나에기도 서로 쑥쓰러운지 둘 사이에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나와 나에기 사이에 흐르는, 그 이전보다 끈끈해진 ‘인연’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다시금 둘 사이에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에기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아 히나타 군, 둘이서만 있으니까 하는 얘긴데, 자, 잘 어울리더라, 웨ㄷ… 으악?!”

…그러나 갑작스레 헬리콥터가 격렬하게 흔들려 결국 ‘나에기 마코토’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히, 히나타 군, 위험하잖아!”

‘나에기 마코토’ 씨, 지금 이 헬리콥터를 운전중인 사람이 누군지 잊으신 건 아니신지.

“그, 그래도, 잘못하면 히나타 군마저 위험하다고?!”

어리석군요, 혹시 제가 어떤 존재인지 잊으신 것인지. ‘저’는 지금 이 높이에서 추락하더라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다만.

“……………!!!!!”

아아 그렇죠, 그러고보니 당신은 ‘초고교급 행운’을 지니고 있었죠. 갑자기 당신의 ‘초고교급 행운’은 어느 정도일 지 살짝 흥미가 생겼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히, 히나타 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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