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이 죽었다.

 일주일 만에 출장에서 돌아오니 그 꼴이었다. 술루는 보나 마나, 맥코이의 살도 빠졌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사실이 되기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물끄러미 죽은 화분을 내려다보고 있었더니 휴게실을 지나치며 비척비척 걸어오는 맥코이가 금세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제 책상 앞에 선 술루를 보고 놀란 얼굴을 지었다가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힘없이 걸어 들어왔다. 그리곤 대뜸, 인사도 없이 “언제 왔어?” 하고 묻는다. 면구스러워 그런다는 걸 알면서도 짓궂어지는 순간이었다. 

 술루는 대뜸 맥코이의 손목을 잡아채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꼼꼼히 뜯어보고 만져보고 문질러보더니 뼈만 남은 손목에 입을 쪽 맞추고서야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밥은 먹고 다니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맥코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묻는 거였다. 그 기색을 알고 있던 맥코이는 곧바로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네가 가고 나서 더 바빠졌다. 팀의 절반 이상이 다 야근을 했고, 오늘도…. 내버려 두면 계속 변명할 것 같은 모양새라, 술루는 그 바쁜 입술을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맥코이에게서 말을 빼앗았다.


 “제가 돌아왔으니, 더 굶는 건 안 됩니다. 일단 나가요. 뭐든 먹죠.”


 술루가 손을 잡아끄는 대로 맥코이는 끌려 나왔다. 아마 충분히 본인 힘으로도 술루를 흔들 수 있을 텐데도 끌려오는 모습이 순하다. 술루는 앞서 걸으면서 절로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모습들이 귀여웠다, 겁도 많고. 손목을 꽉 붙잡았더니, 맥코이는 잡힌 손목을 한 번 쳐다보곤 주변에 누가 없는 지 확인하고 있었다. 잘 닦인 대리석 위로 주위를 살피는 맥코이의 얼굴이 훤히 비쳤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 나가고 없을 텐데. 그렇게 말해서 그를 진정시킬 수도 있었지만, 술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걷고 걷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물었다.


 “레너드. 오랜만에 만났는데, 키스해도 될까요?”


 맥코이는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리고 주변을 황급히 살피다가 버럭 화를 낸다. “여긴 회사야!”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르고서도 슬금슬금 뒤로 도망가려는 게 귀여웠다. 덩치는 본인이 한참 크면서도 힘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을 않는 게 그의 무른 점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팀장님에게 휘둘리지.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처럼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맥코이에게 “연인이잖아요.” 하고 말했더니 왈칵 얼굴을 구기는 것도 좋았다. 귀엽네, 귀여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나서 손을 뻗었다. 안 가요? 하고 물으면 또 쭈뼛쭈뼛 앞으로 걸어오는 게 꼭 곰 인형 같았다. 한참 큰 곰 인형. 술루는 샐쭉 웃으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맥코이가 스스로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곤 여전히 얼굴을 조금 구긴 채인 그에게,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아무 짓도 안 할게요.” 라고 놀렸다. 그러면 또 맥코이는 크게 투덜거리면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 누굴 스무 살 어린애로 보는 거냐며 큰 소리다. 본인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건 하나도 모르는 모양이지 싶어서 그냥 닫힘 버튼을 꾹 누르고, 커다란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폭신폭신하지는 않은 그의 몸은, 껴안기 딱 좋을 정도의 살집과 덩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허리가 얇아 마음에 꼭 들었다. 술루는 그를 꽉 껴안았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위쪽에 있는 그의 시선이 술루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쑥스러운 탓에 여전히 찡그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술루는 결국 맥코이의 입술에 키스했다. 

 맥코이는 놀라서 조금 버둥거렸지만, 그래도 술루를 내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입술에 힘을 주고, 입을 완전히 다 벌리지 않는 것으로 미약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술루는 그런 맥코이에게 입을 맞춘 채로 푸스스 웃어버렸고. 맥코이는 그런 술루의 행동에도 아랑곳없이 층수를 나타내며 깜빡이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루는 말을 해야 할 순간임을 느꼈다. 

 그의 연인은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생각이 많은 상대라, 종종 술루는 보통의 자신이 평소에 뱉는 말보다 더 많은 말을 떠듦으로써 그의 시선을 잡아내야 할 때가 있음을 진작 알아챘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그의 옆자리를 비워 놓은 시간만큼 제 애정이 맥코이에게는 부족했다. 

 숫자는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점점 작아지며 1에 닿으려고 했지만, 술루는 맥코이를 안은 팔을 풀지 않은 채로 떠들었다.


 “혹시 밖에 누가 있어서 우리 둘이 이렇게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사귄다는 사실을 들키면 많이 곤란해지겠죠.”


 맥코이는 대답 없이 술루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조금 더 내버려두면 한숨까지 쉴 모양새라서, 술루는 말을 더했다.


 “사내연애를 하지 말라는 조항은 없지만, 대부분 배척하는 분위기라는 것도 압니다. 저는 바보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닿고 싶은 걸, 참을 수 없는 그냥 남자일 뿐인 나는 당신에게 많이 부족한가요?”


 맥코이는 대답이 없었다. 여전히 숫자는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두근거림이 조금씩 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술루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시작부터 무엇이든지 아주 천천히 하기로 마음먹었던 관계였다. 레너드 맥코이는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닦달해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벌써 여기저기에서 손을 타면서 잔뜩 시들어 버렸을 성정이라는 것을 술루는 단번에 알아봤다. 

 자신의 시선을 휘어잡아버린 이 사람은 난초 같은 성격이라서, 정말 티도 나지 않을 조그마한 다정함과 말 한마디로 세상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에겐 과한 것은 독이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회사 안에서 소문이 났던 것처럼 이혼 직후의 일인지 술루는 온전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관심과 애정이 분명 그를 질리게 했고, 이후에는 그런 것들을 배척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만은 아주 확실했다. 그래서 레너드 맥코이라는 남자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 뿌리가 마르지 않을 정도의 적은 물 같은 관심, 잎에 쌓인 옅은 먼지를 걷어주는 마른 수건 같은 말 몇 마디. 거기에 가끔은 그에게 속삭이기까지 하면 금상첨화라서, 술루는 말을 했어야만 했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 사랑한다고. 

 아무리 난초 같은 성정을 지닌 남자라고는 해도 그는 사람이지 식물이 아니니까. 말로 해서 전하지 않는 사이에 생기는 오해 같은 것, 돌보지 않은 화분에서 피어나는 조그만 잡초 같은 것들을 술루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는다. 끽해야 3분, 길면 5분. 그 안에 내가 당신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상대는 알아듣는다. 그는 사람이지 식물이 아니니까.

 그래서 숫자가 줄어들수록 두근거리는 맥코이의 심장 소리 정도만 들으면서 그를 껴안는 것으로도 적당히 괜찮았다. 대답을 듣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말끝은 살짝 올라가 있었지만, 그 끝이 올라가 있는 것은 맥코이에게 대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조금 올라간 끝말로 그에게 쏟아지듯이 내리고 있는 제 관심과 애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않은 입술이 다시 술루에게 닿았다. 

 입술 위로 아주 조그맣게 흐트러지는 그 호흡을 온전히 다 삼켜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파르라니 떨리는 속눈썹과 살풋 찡그린 맥코이의 미간을 바라보며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술루는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쪽,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는 맥코이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술루가 떨어져 나온 이후에도 맥코이는 살짝 내민 입술과 감은 눈을 뜨지 않았고. 술루는 여유롭게 엘리베이터가 땅에 닿고서, 맑은소리를 울리기를 기다리며 맥코이의 손을 다시 잡았다.


 “당신이 하려던 말은 다 알아들었어요.”


 술루가 잡아끄는 힘에 이번에도 그대로 잡혀서 따라 나온 맥코이는 딴청을 부리듯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검게 변한 창밖의 풍경을 보여주느라 거울처럼 변해버린 유리창 위로 다 번져 있는데. 그걸 모르는 것처럼 여전히 허공에 시선을 주는 맥코이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은 술루는 다시 홀로 떠들었다.


 “저는 식물을 정말 좋아합니다. 솔직하거든요. 내가 주는 관심과 사랑 만큼으로 피어나죠. 그리고 레너드, 내 눈에 당신은 이미 활짝 피어 있네요.”

 “활짝 피우기는… 시들지나 않았으면 모를까.”


 술루는 조금 볼멘소리를 하는 맥코이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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