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스토커 씨. 내 말 안 들려요? 고개 좀 들어보라니까요. 귓가에 콕콕 박혀오는 목소리에 태형은 저도 모르게 눈가를 찌푸렸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고개를 더욱 아래로 끌어내린 태형이 이내 눈가를 구기며 울상을 짓는다. 온통 당황으로 범벅이 된 눈가에서는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투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태형의 사정을 모르는 상대편은 오히려 답답하다는 듯이 제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결이 좋은 머리카락이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형은 현재 오장 육부가 다 저릿저릿 저려오고 팔다리가 후덜덜 떨리는 중이었다. 금발에 가깝게 탈색한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끝까지 신경세포가 돋아나 달달 떨리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태형은 아득하게 멀어지는 정신을 애써 다잡으며 시선을 도르륵 굴렸다. 태형의 시선 끝에 걸린 것은 남자의 운동화였다. 주인을 닮아 깨끗하고 새하얀 운동화의 앞코에 어쩐지 태형은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졸지에 스토커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담한 기분에 태형이 한숨을 삼켜냈다.

 

 

김태형은 억울하다. 스토커라니, 내가 스토커라니! 김태형은 정말 한사코 억울하다.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억울했다. 나는 스토커가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교내 방송용 마이크를 휘어잡고 ‘철학과 3학년 B반 김태형은 맹세컨대 스토커가 아닙니다!’를 외칠 수 있을 정도로 김태형은 억울했다.

 

그러나 김태형의 억울함을 지금 저 남자가 알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김태형이 억울하다고 한들 저 남자의 눈에 비친 김태형은 한낱 스토커에 불과할 것이었다. 이 오해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좋을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오해를 풀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김태형을 억울해 돌아가시도록 만든 이 오해의 시작은 약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팝핑레드

w.김목련(@magnolia_KV)

 

 

따끈따끈한 김이 폴폴 올라오는 라떼를 손에 들어 올린 태형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 그리고는 후후 소리를 내며 라떼를 입으로 분 태형이 힐끗 시계를 쳐다본다. 째깍대는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는 초침을 보며 태형이 호로록 라떼를 마셨다. 태형은 입술 끝에 부드럽게 묻어난 크림을 핥아내고는 눈을 깜빡인다.

 

교내방송으로 틀어놓은 음악이 막바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신나는 박자의 댄스곡이 태형의 흥을 한가득 끌어올린다. 내적 댄스를 숨기지 못한 태형이 까딱까딱 몸을 움직이자 태형의 옆에 있던 지민이 탁 소리를 내며 태형의 어깨를 때렸다.

 

 

 

 

“아!”

“오버한다. 김태, 곧 음악 끝나니까 준비해.”

“알겠어, 알겠어.”

 

 

 

 

내가 교내방송 짬이 몇 년인데. 이것도 못할까 봐? 태형이 지민을 향해 말하며 찡긋 눈가를 구겨 윙크했다. 그에 지민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퉁퉁 소리와 함께 두꺼운 방음유리가 울렸다. 그에 고개를 들어 올린 태형은 방송실 부스 밖을 쳐다본다. 음향을 조절하던 윤기가 태형을 향해서 제 손목시계를 들어서 보여준다. 닥치라는 뜻이지, 뭐.

 

네에, 네. 태형이 고개를 주억인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올린 태형이 따끈따끈한 라떼를 한 모금 더 들이켠다. 태형의 손이 라떼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경쾌한 댄스곡이 끝을 알리며 멈췄다. 윤기의 손가락이 익숙한 폼으로 음향 기계를 건드렸다. 띠리링,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 후 태형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나는 댄스곡으로 졸음은 모조리 물리쳐버렸겠죠? 다음으로는 국화대학교 방송의 꽃, 인기 중의 인기인 비밀 고백 코너입니다.”

 

 

 

 

태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교내 곳곳에 울려 퍼졌다. 교내 스피커를 통해서 송출되는 목소리에 많은 교내의 여학우들이 한껏 집중하고 있었다. 교내 매점에서 사온 컵밥이나 샌드위치 따위를 들고 공터에 앉은 김태형의 그녀들은 김태형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놓치기 싫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오늘의 비밀 고백, 그 익명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빠르게 오늘의 비밀 고백 주인공의 글을 만나봅시다.]

 

 

 

 

와, 김태형 선배 목소리 진짜 미쳤어.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긴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한 여학우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 있는 다른 여학우가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국화대학교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태형은 멘트를 끝냄과 동시에 흘깃 고개를 돌려 지민을 쳐다본다. 지민은 커다란 박스의 구멍 속으로 제 손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박스 안을 뒤적이다가 손에 잡히는 편지를 꺼냈다. 지민의 손안에 구겨진 분홍색의 편지지가 있었다.

 

태형은 속으로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비밀 고백 코너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절대로 미리 편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 즉시 바로 뽑아서 방송에 내보내는 것. 덕분에 학과 내 교수 고발이나 학과 비리 등과 같은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서 폐지가 되었던 불운의 코너가 바로 이 코너였다. 물론 많은 학과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서 다시금 코너가 되살아났으니 마냥 불운의 코너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태형은 지민의 손에 쥐여진 분홍색의 편지지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줄지어 다양한 사건들만 줄줄이 터지던 이 코너에 오랜만의 연애편지가 등장한 것이다. 지민의 손에서 편지를 건네받은 태형은 익숙한 손길로 편지를 펼친다. 그리고 다시금 교내에 태형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화대학교 3학년 여학생입니다. 저는 학과에서 꽤나 알려진 CC예요.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친구랑 꽤 장기간 만나고 있는 커플입니다.”

 

 

 

 

태형의 목소리가 덤덤한 말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분홍색의 편지지에 정갈하게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체가 귀엽다. 마이크에 대고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태형의 눈동자는 점점 편지의 아랫부분을 향해서 흘러간다.

 

 

 

남자친구랑은 약 1년간 만나고 있어요. 남자친구가 워낙 잘생기고 인기도 많은 탓에 사귀면서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예쁘게 잘 만나고 있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기계공학과의 보석을 아시나요? 스스로 글을 쓰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데, 네. 모르는 사람이 없으시겠죠. 어느 방면으로 보나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바로 그 보석남이요. 한 번을 보면 석 달을 굶어도 배가 부를 거라던 바로 그 보석남을, 제가 좋아하게 됐습니다.

 

 

 

태형의 눈매가 잠시 가늘어졌다가 이내 원상태로 돌아온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편지를 다 읽은 후면 그 남자친구의 휴대폰에는 아주 불이 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보석남에 관한 거라면 김태형 역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보면 석 달은 굶어도 배불러서 보석남,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서 보석남, 눈이 반짝이는 보석을 닮았다던 바로 그 보석남. 익명 편지에서 몇 번이고 거론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교내 익명 사이트에서도 수십 번은 보았던 별명이었다.

 

그러니까, 기계공학과의 전정국이라고 했던가. 가물가물한 이름을 떠올리며 태형이 눈가를 구긴다. 그러나 태형의 입은 여전히 기계적으로 편지를 읽는 중이었다. 몇 년의 대학 방송부 짬이 있는데, 이 정도는 껌이지.

 

 

 

저는 한사코 제가 보석남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옆에는 이미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더라고요. 때는 교내 우체국에서 제가 택배를 보내던 때였습니다.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다가 그만 동전을 바닥에 쏟고 말았어요. 데구루루 떨어진 동전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당황하면서 동전을 줍고 있는데 시야에 불쑥 흰 운동화 앞코가 들어왔습니다. 보석남의 운동화였어요. 운동화조차 주인을 닮아서 얼마나 반질반질 하얗고 깨끗하던지. 아무튼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보석남이 제가 떨어뜨린 동전을 내밀었습니다. 보석남의 하얗고 단단한 손에 얌전히 올라탄 동전을 보는데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편지를 읽던 태형의 눈가가 점점 구겨진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내용의 글이었다. 흔한 멜로 영화에 들어갈 것만 같은 서사라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누군가를 통해서 들은 적이 있는 내용인가. 태형의 눈가가 점점 가늘게 떨려왔다.

 

어쩐지 글씨체도 익숙한 것 같다. 네모반듯하고 아기자기한 글씨체가 태형을 향해서 질책한다. 나 익숙하지 않아? 익숙한 글씨체 일텐데? 활자가 편지지에서 뛰어나와 태형의 손등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태형의 귓바퀴에 매달려 마구 악다구니를 지른다.

 

설마, 설마. 태형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편지지를 쥔 태형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태형의 손안에서 분홍색의 편지지가 구겨졌다. 그래, 어딘지 익숙한 글씨체다 했다. 그래, 어딘지 익숙한 편지지 같았다! 이 편지지는 태형의 여자친구가 태형의 생일에 준 편지와 같았다.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보석남의 잘생긴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보석남이 너무너무 좋아져 버렸는데 역시 남자친구와는 헤어져야겠죠? 차마 남자친구의 얼굴을 보고 말할 용기가 없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미안해, 헤어지자 태형… 씨발.”

 

 

 

 

태형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뱉어낸다. 그에 화들짝 놀란 지민이 팔을 뻗어 태형의 입술을 덮는다. 기겁을 한 윤기 역시 다급하게 태형의 마이크 음향을 꺼버렸다. 그러나 다급히 일어난 지민의 팔이 지민의 앞에 놓인 마이크를 치면서 우당탕 소리가 방송실을 울린다.

 

삐- 하울링 소리와 함께 지직대는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교내 전체를 울렸다. 물론 태형의 입이 뱉어낸 욕설이 전교에 방송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김태형 인생 최초의 방송 사고였다.

 

 

 

 

 

 

 

 

김은지 전화 좀 받아라, 제발. 태형이 눈가를 구기고는 제 손톱을 질겅질겅 물어뜯었다. 휴대폰을 귓가에 댄 태형이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척척척 발소리라도 날 것처럼 재빠른 걸음이었다. 태형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태형의 뒤로 시선이 옮겨붙는다. 그리고는 저마다 수군대며 태형의 뒤통수를 향해서 다양한 말을 뱉어낸다.

 

덕분에 태형은 푹 눌러쓴 버킷 햇을 더더욱 눌러썼다.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는 화려한 색의 머리카락과 늘씬한 몸매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래가 유명 인사였던 태형은 방금 전 교내에 울려 퍼진 그 방송으로 인해서 더더욱 유명해진 상황이었다.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철학과의 얼굴, 철학과의 모란으로 불리는 김태형과 김태형의 여자친구 김은지는 교내에 꽤나 유명하게 알려진 CC였다. 얼굴이 잘생긴 것으로도 모자라 목소리까지 심금을 울린다는 철학과의 모란남 김태형이 1년을 사귄 여자친구 김은지. 그런데 그 김은지가 방금 전 김태형을 찬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남자친구가 직접 방송하는 교내 비밀 고백 방송을 통해서.

 

태형은 다시금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는 휴대폰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톱을 물어뜯는다. 배경화면으로 돌아온 태형의 휴대폰에는 수많은 이들에게서 온 문자와 카톡이 넘쳐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김태형은 몰랐다. 누군지는 몰라도 오늘 휴대폰에 불이 나겠다고 생각했던 익명 편지 속 주인공이 자신이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태형은 다시금 휴대폰 버튼을 눌러 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신호음이 이어지지도 않고 바로 넘어가는 전화에 태형이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얘 지금 휴대폰 끈 거야? 아니면 나 차단한 거야? 하, 하하. 태형이 허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태형이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눈두덩을 덮는다. 그리고는 꾹꾹 피곤한 눈을 눌렀다.

 

 

 

 

 

 

 

 

“야야, 너 아까 교내방송 들었냐? 김태형 공개 이별 당했대!”

“들었죠, 그럼. 실시간으로 김태형이 욕하는 것까지 다….”

 

 

 

 

어유, 씨발. 태형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저마다 난리가 나서 수군대던 이들이 태형의 등장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태형은 뒷문을 열고 자리에 앉기 위해 걸어가며 놀라울 정도로 싸늘한 정적을 마주해야만 했다.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이 갈라지는 현상을 이렇게 직접 겪을 것도 상상조차 못했는데.

 

태형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대충 끝자리의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는다. 태형이 털썩 엉덩이를 대고 앉는 것을 보며 학과 사람들이 저마다 시선을 주고받는다. 모두들 적잖이 김태형의 공개 이별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공개 고백도 아니고 공개 이별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쇼크인데 그 대상이 김태형이니 말 다 했지.

 

언제나 잘생긴 외모로 대학교 소문의 중심에 있던 김태형이라 묻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게 뻔했다. 그러나 태형은 자신을 쳐다보며 수군대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한 마디도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하루아침에 차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였다. 그래, 어쩐지 교내 우체국에 다녀왔다던 김은지가 이상하게 멍한 표정이기는 했다. 교내 우체국에서 누군가가 떨어진 동전을 주워줬다며 말하는 얼굴이 미묘하게 밝다 했다. 근데, 근데 그게 보석남에게 반해서였다니.

 

태형은 휴대폰을 꺼내 빠르게 대학교 익명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글에 눈가를 찌푸린다. 약 30분 전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글은 굉장한 핫플레이스였다. 바로 자신과 김은지, 그리고 보석남에 관한 글이었다.

 

태형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글과 댓글을 읽어나간다.

 

 

방금 전 교내방송 들은 분 있나요? 대박, 철학과 모란남이 이렇게 차일 줄이야.

└모란남 실명 ㄱㅌㅎ 맞죠?

└ㅇㅇ, 그 CC 되게 유명한데 와 이렇게 폭탄이 터질 줄이야.

└나 저번에 모란남 실물 보고 헉 소리 질렀는데 어떻게 그 모란남을 참?

└보석남 실물 못 봤구나, 보석남도 실물로 보면 말이 안나와요.

└나 보석남 모르는데 보석남 실명 알려주실 분?

└? 혹시 타대학교 학생 아니죠? 어떻게 보석남을 모르지?

└ 보석남 실명 ㅈㅓㄴㅈㅓㅇㄱㅜㄱ

└실명 거론 삭제 아님? 초성까지만 된다고 아는데.

└근데 모란남 진짜 당황했나 봐. 교내방송 실시간으로 들었는데 욕하던데ㅋㅋㅋ

└나라도 육성으로 욕하겠다. 공개 이별 실화야?

└여러분 모란남이 이제는 솔로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나 당장 모란남한테 편지 쓰러 감.

 

 

하. 태형의 눈가가 한껏 일그러졌다. 누가 보아도 확연한 핫플레이스인 그 글에는 수많은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태형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익명 사이트를 벗어난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sns를 켠다.

 

태형의 손끝에서 익숙한 sns 창이 떠오른다. 전정국. 차마 입 밖으로 뱉어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그 이름을 곱씹으며 태형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태형의 손가락이 빠른 속도로 휴대폰 화면 위를 날아다닌다.

 

힐끗힐끗 태형의 옆으로 많은 시선들이 닿았지만 태형은 그 시선에 일일이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자신을 차단해버린 여자친구, 지금은 전 여자친구가 되어버린 김은지에게는 화조차 나지 않는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마치 화를 내는 방법을 까먹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분노는 이내 부글부글 끓어올라 애먼 사람에게 닿는다.

 

전정국. 그 숨 막히게 잘생기고 헉 소리 나게 잘생겼다는 전정국의 얼굴이 미치도록 궁금했다. 얼마나 잘생겼길래 감히 천하의 김태형을 공개 이별의 늪으로 빠뜨렸는지. 김태형은 전정국의 면모를 낱낱이 파헤칠 생각에 사로잡혔다.

 

물론 공개 이별에 있어서 전정국이 잘못한 것이라고는 단 1퍼센트도 없지만. 그래도 김태형은 전정국의 얼굴을 보지 않고는 못 견딜 것만 같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김태형은 얼굴로는 그 누구에게도 진 전적이 없었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들은 말이 ‘어이구, 누구를 닮아 이렇게 잘생겼을꼬’였고, 동네를 걸어 다니면 항상 ‘아들이 정말 잘생겼네!’소리를 달고 다녔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누군가의 호감과 관심은 지극히 익숙했다. 덕분에 이별 역시 김태형의 입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까, 김태형은 처음으로 차인 것이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전정국이라는 그 놈팡이 녀석 때문에.

 

 

 

이미 김태형의 머릿속에서는 전정국의 얼굴 위로 놈팡이라는 낙인이 꾹 찍혔다. 대충 번지르르하게 생겼을 얼굴을 상상하며 그 얼굴 위로 놈팡이 글자를 꾹꾹 눌러 찍은 태형이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 찾았다. 태형의 눈이 반짝 빛나며 자신의 휴대폰을 향했다. 국화대학교 기계공학과 재학 중 전정국. 나이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리고… 참나, 김은지. 연하한테 홀렸어? 태형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전정국의 신상정보를 죄다 외워버릴 기세로 태형의 시선이 정국의 계정을 살폈다. 그러나 심심하게 기본 아이콘으로 된 계정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고작해야 나이와 생일, 이름, 대학교와 학과가 전부.

 

 

태형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금 재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IT 강국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이 휴대폰과 손가락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이야. 태형의 손가락은 재빠르게 정국의 앨범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전정국의 sns계정 앨범에 있는 것은 풍경 사진이 전부였다.

 

뭐야, 얘. 무슨 앨범에 지 얼굴 사진 한 장이 없어? 태형의 얼굴이 더더욱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그 와중에 사진은 또 제법 제 취향으로 잘 찍었다. 카메라를 사용해서 찍은 것인지 빛의 세기와 앵글, 색감이 퍽이나 마음에 든다. 태형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정국의 앨범 속 풍경 사진을 훑다가 저도 모르게 탁 소리가 나도록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니야, 김태형. 정신차려.”

 

 

 

 

저도 모르게 중얼중얼 자신을 향해서 되뇐 태형이 시선을 옮겨 제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휴대폰 화면 속에는 놈팡이 전정국이 찍은 풍경 사진이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사진은 꽤 마음에 들지만 사진작가는 김태형의 신경을 긁어도 한참을 긁었다. 휴대폰을 한참 동안이나 노려보던 태형은 이내 눈가를 구기고는 제 휴대폰을 향해서 손을 뻗는다. 그리고는 곧 전화번호부에서 익숙한 번호를 찾아 눌렀다.

 

신호음은 몇 번 이어지지 않고 끊겼다. 휴대폰 너머의 익숙한 목소리가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귀찮다는 듯이 이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형은 더 이상은 참을 겨를이 없었다. 결국 김태형은 한가득 억눌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야, 박찜.”

[어?]

“너 전정국 번호 있지.”

[…야, 설마 찾아가서 꼬장이라도 부리려고?]

“꼬장을 부리든 욕을 하든 싸우든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야야, 하지 마. 괜히 이상한 짓 할 거면….]

“잔말 말고 걔 번호 좀 내놔.”

 

 

 

 

전정국과의 길고 긴 전쟁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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