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법 시대에 부활을 꿈꾸는 도쿄조 마피아들의 이야기

※ 전반적으로 약간의 개그를 첨가하여 그리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전제로 함

※ TRIGGER WARNING : 범죄 미화 / 고증 오류 주의





내가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 새하얀 눈을 좋아하셨다. 하늘서 내리는 것들 중 가장 성스럽고 무구한 존재라며, 언젠가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순백의 설원이라면 파묻혀 죽어도 여한이 없단 얘기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었지. 새하얀 눈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그처럼 새하얀 것에도 사족을 못 쓰셨다. 새하얀 것에 환장한 아버지는 ‘마약왕Drug Lord’이라 불리는 카르텔의 큰손이었다. 

아버지가 리볼버 한 발을 정통으로 심장에 맞았을 때 당신의 피는 흰색일 줄 알았다. 눈처럼 새하얗고, 성스럽고, 무구한 색.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창녀 출신인 어머니는 밤처럼 새까만 사람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흑을 내두른 어머니의 피부는 눈처럼 새하얗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분을 칠해 눈이 되곤 하셨다. 눈이 되어 아버지를 꾀고, 밤이 되어 외간 남자를 꾀는 어머니. 눈처럼 새하얘질 수 없던 어머니는 그만큼 차디찬 사람은 될 수 있었다. 

당신의 뿌리는 검은색이었다. 머리도, 손끝도, 출신도. 밤처럼 새까맣고 눈만큼 차디찬 검정. 그러나 심장은 달랐다. 크리스탈이 삶의 동반자였던 어머니가 눈앞에서 손목을 긋던 날, 당신의 피는 검지 않았다.


내가 이끄는 패밀리의 상징은 혈액. 아버지의 흰색도, 어머니의 검은색도 모두 혐오하지만 그들이 흘린 피가 지닌 색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들 또한 좋아하는 걸지도. 그 둘은 새하얗지도 새까맣지도 않았으나, 그럼에도 두 가지 저주받은 색을 모두 갖고 있는 되먹지 못한 인간이니까. 선악이 애매한 족속이니까.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리고 종국에는, 믿음을 덧대어 감춘 거짓말로 말미암아, 우리 셋 모두 붉은 색을 흘리며 삶을 마감하게 되겠지.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선명한 색을.




1.


─ 1920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파타고니아는 여름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시린 지대였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내비치는 비경은 지나치게 새하얗고 새파랬다. 만년설로 덮인 아콩카과와 웅장하게 펼쳐진 빙하와 빙하호, 청량하기보다 매서운 산바람. 영구히 인간의 손길을 타지 않을 것만 같은 얼어붙은 자연미, 그것이 전부였다.


아직은 여명이 도래하지 않은 시간대, 고양이들의 입김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타오른다. 이가 빠진 자리를 찾는 것보다 이가 빠지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빠른 미완성 다리 위에 열댓 명도 되지 않는 남자들이 모인 광경은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그는 항시 경박한 비대칭 머리에 중절모를 마다하며, 붉은 넥타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네코마 패밀리의 보스 쿠로오 테츠로는 저 혼자 기대가 만발하단 웃는 상을 흘리고 있었다. 유유히 파이프 담배를 꺼내 물자 모히칸 머리의 남자가 곧장 성냥에 불을 붙여 대령해온다. 보스가 부드럽게 파이프를 한 모금 빨자 여타 조직원들도 각자 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를 찾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이나마 손과 폐를 얼른 녹이고 심신의 안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늙다리 통나무로 지어진 이 다리는 도저히 왕래를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만, 그들을 긴장케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따로 있었다.


“이런 나사 빠진 야옹이 자식들, 장소를 골라도 꼭 지들 같은 데를 골라요.”

“여어, 노헤비는 손발이 퇴화된 뱀이라 단체로 기어서 오셨습니까?”


하하하하, 악의 넘치는 웃음꽃을 터뜨리며 노헤비 패밀리가 도착을 알린다. 보스 다이쇼 스구루는 평소보다 격한 단어를 선택해 쿠로오를 매도하고 있었다. 디트로이트 출신임에도 유독 추위에 약한 스구루에게 익숙할 턱이 없는, 심지어 동도 안 튼 파타고니아의 기온은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얇은 정장 한 벌과 남색 캐시미어 코트 하나로 버티기엔 무리인 날씨였다. 아 정말,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야옹이 뺨에 내 사랑의 증표를 한 발 먹여주고 싶은데. 꿍꿍이 가득한 실눈. 코트 안주머니를 비집고 기어 들어가는 손. 야마모토 타케토라는 저도 모르게 장전한 리볼버를 겨누며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쿠로오가 그의 오른팔을 붙잡고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벌써부터 죽음의 냄새가 자욱해졌을 것이다.


“당근 농담이지!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

시체 구경하기엔 부쩍 이른 시간이잖아."   성질 좀 죽이자, 응? 스구루는 두 팔을 들어 올려 과장된 제스처를 선보였다. 그나저나 정말 무슨 용건으로 부른 거지? 견원지간보다 더 파멸적인 관계를 자랑하는 뱀과 고양이의 사이였기에 일방적인 호출이 달가울 턱이 없었다. 하지만 삼대三代 걸친 원수관계를 기반으로 다져진 기묘한 신뢰감이 있었기에 기꺼이 파타고니아까지 내려왔다. 스구루가 평생을 염탐해온 쿠로오 테츠로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쓸데없이 저를 부르진 않을 남자였다.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란 소리지.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야옹아.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야.”

“좀만 더 기다려, 뱀 새끼야. 아직 다 도착한 게 아니,”


“헤이헤이헤이! 최강 후쿠로다니 패밀리, 드디어 행차하셨다고!”


조용한 신경전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 서식하는 생명들의 단잠을 모조리 두들겨 깨울 만큼 우렁찬 목소리, 그것도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요란한 서두에 쿠로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면 노헤비 쪽은 술렁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잠시 굳어있던 스구루는 오른손을 휘휘 내저어 조직원들을 진정시켰다. 


다리 한 가운데에 군림한 네코마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노헤비, 왼쪽은 후쿠로다니 패밀리가 위치한 구도. 네코마를 제외하면 여타 두 패밀리는 다리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서로가 2미터 이상 거리를 둔 채, 굉장한 대치가 형성되었다.


“주역은 늦게 등장한다는, 그런 건가요? 부엉부엉 부엉이 씨?”

“더럽게 늦게도 행차하셨는데 자칭 최강이라니. 어휴─ 한숨 밖에 안 나옵니다요, 부엉부엉 부엉이 씨.”


부엉부엉 부엉이 씨라고 부르지 마! 그럼 시끄러운 부엉부엉 부엉이 씨는 어때? 그건 더 싫다고! 나이와 직업을 의심케 만들기 충분할 만큼 시답잖은 말장난을 반복하던 중 후쿠로다니 패밀리의 돈Don, 보쿠토 코타로가 진지한 얼굴로 시가를 물었다. 높이 솟구친 회색과 쥐색이 뒤섞인 머리칼을 한번 쓸어 올리던 그의 눈썹이 잠시 일직선으로 펴진다.


“아, 잠깐만.”   그의 심복이자 언더보스Underboss 아카아시 케이지가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불을 붙여주자 지독하게 매혹적인 시가 향이 사방으로 퍼져간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 말이 딱이로구만.”   두어 번의 헛기침 후, 보쿠토가 뿌듯하게 내뱉은 대사에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쿠로오와 스구루는 그의 입에 물린 멋들어진 시가가 아깝다는 사족을 속으로 동시에 덧붙였을 뿐.


“보쿠토 상. 그냥 한번 말해보고 싶은 것뿐이었죠?”

“알아차렸음 너라도 좀 받아줘, 아카아시!”   오늘은 그럴 상황이 도저히 아니라고 판단되어서, 징징대는 보쿠토에게 아카아시가 중절모를 벗어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그렇다. 오늘은 D-DAY다. 후쿠로다니의 위상을 회복할 일생일대의 찬스가 될지, 혹은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청청한 루카 말렌 강물을 시뻘겋게 장식하는 데 한 몫 하고 시체 더미 속에서 허덕이는 몰락을 맛보게 될지.


“그렇게 어깨에 힘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니까. 우리도, 노헤비도, 후쿠로다니도 말이야.

오늘은 평화협정을 맺으러 부른 것뿐이라고.”

““뭐?””   두 패밀리에게 쿠로오의 말은 사실상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무엇이었다.


“그래, 나도 알아. 스타디오 올림피코 개장식 기념 축구 경기를 관전하러 간 후쿠로다니의 전 보스를 노헤비네 전전 보스가 훌리건으로 위장하고 쏴 죽인 것도.”

“그리고 보복으로 우리 쪽 보스랑 내연녀가 녀석들에게 독살 당했지.”

“나중에 또 폭발사고로 위장해서 우리 돈과 콘실리에리Consigliere를 골로 보내버렸잖아!”   그것도 아주 비열한 수법으로. 까드득, 하고 보쿠토의 어금니가 매몰차게 갈렸다.


“100세가 넘었으면 살만큼 살고 간 거잖아. 애초에 화해의 뜻이랍시고 보낸 캐딜락Cadillac을 그렇게 선뜻 받아들인 그 영감이 이상한 거라고.”

“자기 아들을 죽인 패밀리인데 어떻게 아무 의심 없이 덥썩 받을 수 있냐고 되묻고 싶을 지경이네.”   스구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사키시마 이스미의 장난스런 주근깨가 광대를 따라 올라가다가, 격노로 조용히 끓어오른 황금색 눈동자와 마주치자 금세 식어버린다. 곧장 달려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절할 줄 아는 부엉이군. 스구루는 혀를 다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도 후쿠로다니 전 보스의 리볼버에 맞아 즉사했지.”

“그건 양측 패밀리의 서약 아래서 마약 거래 구역과 시가 공급권을 걸고 행한 정정당당한 결투였습니다. 그리고 승자는 후쿠로다니였죠.”

“뭐, 결과적으론 그럴지 몰라도 최종 승자는 정확하겐 노헤비지. 제3자가 끼어든 것도 우스웠지만 짭새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아카아시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지적할 부분은 확실히 짚고 간 쿠로오는 찢어진 눈웃음이 뱀 새끼의 전매특허만은 아니라는 듯, 능청맞게 흉흉한 웃음을 자아낸다. 너네랑 우리 쪽 간부 급 인간들이 대거 감방 간 사이에 거래 구역을 기습하다니. 시가 공급권의 전권을 후쿠로다니에게 넘긴 네코마 입장에선 아주 큰 타격이었다. 이름 뒤에 패밀리가 들어간다 해도, 영향력은 거의 골목 갱단 급 약소 패밀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새하얀 것을 지독히 꺼려한 나머지 사업 자체를 갈아엎은 현재 보스의 성향과 아주 무관한 행보는 아니었다.


후쿠로다니 패밀리는 결투의 수확으로 확보한 시가 공급권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훌리건 소동과 폭발사고가 발발한 뒤로, 현재 가장 불안정한 과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훌리건 소동으로 후쿠로다니의 전 보스가 목숨을 잃었을 당시, 패밀리 내에서 차기 후계자였던 보쿠토의 나이는 5세였다. 일찍이 아들에게 돈Don을 물려주었던 보쿠토의 할아버지는 재차 그 자리를 위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와 콘실리에리가 폭발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이제 후쿠로다니에 지혜를 짜낼 고문 격 연장자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돈의 칭호를 물려받은 보쿠토는 성인이 되자마자 카포Caporegime였던 아카아시 케이지를 언더보스 자리에 앉혔다. 반대하는 이 ─ 설령 반대하는 이가 있었더라도 힘으로 밀어붙였겠지만 ─ 는 아무도 없었으나, 그것과 마을 주민들의 전폭적 지지와 협력을 되찾는 수고로움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분쟁이 곁들여진 지난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니, 피비린내가 난무하는 어리석은 진흙탕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돌아가면서 침을 뱉고 엿을 먹이는, 언제 누가 속고 속일지 몰라 절대 경계를 풀지 못하는 관계에 믿음이 꺼진지 오래였다.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패밀리 사이서 쿠로오가 꺼낸 ‘평화 협정’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격 개소리인 셈이다.


“나름 「피의 의식」 같은 것도 치른 사이인데.”

“많이 절박한가 봐, 쿠로오. 그게 언제 적 얘기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들이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따라해 본 것뿐이지, 뭐.”   좋은 반응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자 쿠로오는 파이프를 한 번 깊숙이 빤 뒤 단말마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쓰레기장에서 굴러먹을 순 없잖아.”


쓰레기장. 적절한 비유였다. 주된 거래 상품을 포기하고 약소 패밀리로 전락한 네코마. 경제력이 약하진 않지만 전성기만큼의 장악력이 부족한 후쿠로다니. 경찰을 매수해 상도덕 없는 뒤통수치기 1인자로 불리며 타 세력의 공공의 적, 벤데타Vendetta의 표적이 된 노헤비.


“큰물에서 한번 놀아봐야지 않겠어?”


이번엔 오메르타Omerta보다 더한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부엉이도, 뱀도 새빨간 고양이의 혀만 바라보며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행동으로 보였을 뿐.


“그래, 까짓 것 해보자고!”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 주의인 거. 알지, 야옹아?”


후쿠로다니와 노헤비 패밀리의 보스가 양쪽에서 미완성 다리를 건너, 마침내 네코마가 있는 정 가운데로 모였다. 쿠로오는 시바야마 유우키를 제한 나머지 조직원은 다리에서 물러갈 것을 명령했다. 그것을 본 보쿠토와 스구루는 자신의 패밀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코미 하루키와 아카마 소우가 보스가 있는 중앙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팔에는 각 패밀리의 상징 동물이 얹어 있었다. 쿠로오에겐 전신이 새까만 고양이가, 보쿠토에겐 날개만 잿빛 깃털이 수놓인 순백의 올빼미가, 그리고 스구루에겐 짙은 풀색과 검정이 섞인 비늘을 가진 뱀이 전달되었다.


“자, 그럼.”   평화 협정에서 상징 동물 교환식은 빼놓을 수 없는 의식 중 하나였다.


“잠깐만, 스구루. 내가 네코마네 고양이 받으면 안 될까?”

“당연히 안 되는데? 지금 나더러 네코마를 포기하고 후쿠로다니 걸 받으란 소리지?”

“아아--- 내가 고양이 받고 싶은데에-----”

“참나, 부엉아. 떼를 쓸 거면 이유라도 말해주고 떼를 쓰렴.”


“아니… 사실 고양이는 안 받아도 되는데……… 내 동물은 꼭 쿠로오한테 주고 싶어서…….”   황금색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묘하게 상기된 보쿠토는 말을 길게 늘이다 못해 점점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아,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갑작스레 두 눈에 전구를 킨 보쿠토가 고개를 들더니 쿠로오의 어깨에 올빼미를 안착시켰다. 이로써 쿠로오의 왼쪽 어깨엔 올빼미가, 오른쪽 팔엔 뱀이, 양손엔 고양이가 들려 버렸다. 전례 없는 진풍경이자 살풍경이었다.


“보쿠토! 스구루! 이,”   본인의 상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기에 쿠로오는 목대에 핏줄을 세워가며 두 사람을 나무랐다. F자로 시작되는 상스러운 그것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왜, 뭐 어때서! 어차피 평화 협정 얘긴 쿠로오가 먼저 꺼낸 거니까 괜찮잖아?”

“게다가 우리 셋의 가장 큰 연결고리이자 이 평화 협정의 보증 자체가 ‘너’거든.”


저건 또 뭔 소리려나. 딴지 거는 것도 버거운 쿠로오는 모든 동물들을 시바야마에게 건네 버리곤 홀가분한 마음으로 의식을 재개하였다. 형용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은 이제 시바야마의 몫이었다. 미안, 시바야마. 나중에 오므라이스 만들어줄 테니까.


교환식의 가장 가까운 증인이라는 맡은 바를 모두 수행한 처리인evaporator들이 물러나자, 정삼각형으로 선 세 패밀리의 보스들은 서로를 직시하였다. 눈꺼풀을 껌뻑이는 사람도, 눈알을 굴리는 사람도 없었다. 개성이 지나치게 뚜렷한 세 사람의 눈동자는 무엇 하나 공통점이 없었다. 저 저릿한 안광을 품은 시선 속에 과연 믿음이 싹 텄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짝, 첫 번째는 가족을 낳아준 조상을 위해.

짝, 두 번째는 오랫동안 쌓아왔지만 오늘부로 청산할 모든 악감정을 위해.

짝, 세 번째는 평화로 맺어진 우리들의 새로운 형제들을 위해.


전 조직원들이 한 박자도 어긋나지 않고 동시에 쳐야 하는 단 세 번뿐인 평화의 박수. 약간의 정적 후 세 명의 보스가 허공으로 리볼버를 한 발씩 바친다. 무거웠던 박수는 갈채와 같은 형태로 변화한다. 이 협정을 가장 먼저 깨는 자는 반드시 나머지 둘이 패밀리의 이름과 전 가족을 걸고 숙청할 것이다. 결연한 평화에는 피가 서려 있었다. 세 사람 머리 위로 터오는 동은 지나치게 애끓는 모양새였다. 저 멀리 보이는 눈 묻은 봉오리뿐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가슴 한 구석에 쌓인 온갖 정념들을 녹일 만큼이나.


허나 후쿠로다니, 네코마, 노헤비 패밀리가 맺은 이 평화 협정은 세 달은커녕 3주도 가지 못하고 깨어질 판국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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