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오지애 외전입니다!

할로윈 외전으로 가볍게 써 본 글로, 조금 늦게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옥오지애 스포!!!! 있습니다!!!

본편을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나는 본편 다 읽고 그간 올라온 외전까지 다 봤다!

하시는 분들만 스크롤 내려주세요.

물론 본편을 아직 다 읽지 않으셨어도 '아 스포 상관 없는데...' 하신다면 괜찮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옥오지애 1화 바로보기: https://posty.pe/grb5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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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아.”


철썩대는 파도 소리에 눈을 떴다. 가물가물한 시야 너머로 그의 얼굴이 보인다.


“이지운!”


장난기 가득한 표정. 잔뜩 풀어헤친 와이셔츠를 입고 해사한 미소를 띤 린 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땅에 발을 디디니 그곳은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니라 햇빛에 달궈진 모래사장이다.


“빨리 와!”


맨발로 모래사장을 박차고 뛰었다. 부드럽고 따듯하다. 내 손을 꼭 잡고 린이 온 곳은 파도가 치는 바닷가였다. 시원한 물이 발에 닿자 저절로 정신이 번쩍 든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노을이 지는 해변. 갈매기 울음. 저 멀리 서 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


“얼마나 피곤했으면 여기 와서도 정신을 못 차려.”


영원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도 봤던 사람들인데 왜 이리 반가운 걸까? 그의 목을 껴안고 웃으니 어느새 다가온 린도 나를 안아주었다. 따듯하고, 포근하다.


“뭐야?”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사람을 잊을 때 제일 먼저 잊는 게 목소리라던데, 그런데도 차마 잊지 못한 목소리였다.


“나 빼고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해?”


틱틱거리는 말투. 가볍고도 청아한 목소리.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수현을 보고 나서야 내가 지금 꿈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다는 오랜만에 오네.”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 지평선을 바라봤다. 나는 어째서인지 내 바로 옆에 있는 수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바라보면 사라질 것 같고, 바라봤다가 내가 기억하는 수현의 모습이 아니면 어쩌나 두려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계속 다른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저 둘은 달라진 게 없어...”


수현이 바닷가에서 장난을 치며 노는 영원과 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은 꿈에서도 한결같았다. 언제 사 온 건지, 폭죽을 들고 서로에게 겨누고 있는 꼴이란. 영원은 저리 치우라며 정색하고 린은 그런 영원을 향해 폭죽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저러다 다칠 것 같은데.”


지운이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린이 라이터로 폭죽에 불을 붙였다. 놀란 영원이 소리를 질렀고 수현은 본능적으로 튀어나갔다.


“최린!”


둘 사이로 달려간 수현은 린의 손에서 폭죽을 빼앗아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진한 주홍빛 하늘로 폭죽이 연달아 터졌다. 폭죽 하나를 모조리 쓰고 나서야 수현은 린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다치면 어쩌려고 이래! 장난해요?”

“장난 맞아.”

“진짜 제 명에 못 살아.”


투덜대며 싸우는 것도, 늘어놓는 잔소리도, 그 아래로 터지는 웃음도. 전부 예전 같아서. 눈물이 울컥 솟았다. 멀리서도 그 울음을 본 수현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뭐야? 왜 울어?”


대답도 못 하고 한없이 울었다. 수현은 그런 나를 조심히 안아주었다.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 나를 누구보다도 따듯하게 안아주고 있다. 그 사실이 너무도 비참해서 나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울지 마.”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어.


“다 괜찮아.”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어.


울음에 벅차 꺼내지도 못할 말들을 속으로만 되새겼다. 떨리는 손으로 수현의 등을 껴안았다. 따듯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게 가혹했다.


“좀 진정했어?”


어느 정도 울음이 멈췄을 때, 수현이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무슨 일 있어?”


그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나는 코를 훌쩍이다가 대답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하염없이 편지를 보내고, 추모공원에 찾아가고, 사진을 끌어안고 잠들어도 찾아오지 않던 그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꿈에 나온 이유를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늘 네 곁에 있었어.”

“거짓말 하지 마!”


소리를 빽 질렀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파도 소리도 희미하고 멀리서 웃고 떠들던 린과 영원도 말을 멈췄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챈 수현이 그제야 부드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냥. 전부 다.”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나를 바라보는데 마침 불어온 바람과 노을빛 때문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우리 일단 놀자.”


지금 그게 가당키나 하냐고 말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로 향하고야 말았다.

맨발이 모래사장에 닿았다. 영원과 린도 나란히 서서 걸었다. 4명이 동시에, 같은 공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건 꿈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더 비참해졌지만 깰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이 꿈에 갖혀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예전에 기억나? 최영원, 술 뒤지게 처먹고 와선 질질 짰잖아. 그때 왜 울었지? 무릎 까져서 울었나?”


담소를 나누던 중 린이 키득대고 웃었다. 정말 언젠가 영원 언니는 술을 마시고 넘어져 무릎 좀 까졌다고 운 전적이 있었다. 난데없이 까발려진 흑역사에 언니는 귀를 붉혔다.


“그러는 너는? 김형사랑 싸우고 울면서 들어온 게 몇 번이지? 10번 이후로는 세는 것도 까먹었는데.”

“아 뒤질려고.”


린이 짜증을 내며 영원의 발을 걸었다. 균형을 잃은 영원은 옆으로 넘어져 파도 근처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린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영원의 양쪽 발목을 움켜쥐었다.


“미쳤어? 뭐해?”


영원이 놀라 발버둥 쳤지만 이미 늦었다. 눈치 빠른 수현도 끼어들어 영원의 양쪽 겨드랑이에 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들어 올려진 영원은 바다에 빠져버렸다. 수현과 린의 웃음소리가 허공 가득 퍼졌다.

세 사람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늘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굴다가도 막상 서로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관계. 물을 튀기며 놀다가 뒤늦게 혼자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한 수현이 물 밖으로 나왔다.


“너도 들어와.”


잔뜩 젖은 그의 손이 손목에 닿았다. 너를 아무리 미워하고 원망하고 후회해도 결국에는 다시 네 곁으로 가고 싶어 하는구나.

그의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생생하다. 차가우면서도 묵직한 파도가 온몸을 감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공간. 숨이 찰 정도로 물속에서 뛰어놀고 나서야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금세 해가 져서인지 모래가 전부 차갑게 식어있다. 그 찬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숨을 고르는 소리만 들릴 뿐,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좋다.”


수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옆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매번 이러고 싶었어.”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주변이 더욱 조용해졌다. 영원과 린도 숨을 멈춘 듯, 조용하다.


“바닷가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놀다가 잠들고.”


수현은 계속해서 허공을 바라본 채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 말이 유독 쓰고 아리게 느껴져서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걸 알면서. 너는...”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수현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에게 미운 소리만 늘어놓았다.


“이기적인 새끼. 후회할 거면서 왜... 넌 진짜 멍청한 새끼야. 알아?”

“알아.”


그 단호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도 아니까.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나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또 다시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부연 시야 너머로 내 눈물을 닦아주는 수현이 보였다.


“미안해.”


따듯한 그의 손에 눈물이 하나 둘 닦여 나갔다. 마침내 눈앞이 선명해지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예전 그 모습 그대로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울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은 받아야지.”


학생 시절, 내가 울 때마다 수현이 해 주던 말이었다. 그래놓고 내가 정말 울음을 그치면 선물로 사탕을 건네주던 그였다.


“미친놈. 그래서 잘 지냈어?”

“별로. 너랑 언니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

“꿈에서라도 만나서 다행이네.”

“응. 다행이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는 영원과 린을 뒤로 하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해가 진 뒤의 바다는 새카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밤인데 거긴 해가 뜨고 있겠지.”


수현이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나도 담그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파도가 나만 피해 빗겨 지나갔다. 그가 점차 멀어지더니 이내 잡은 손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도 걸음을 뗄 수가 없다.


“그래도.”


물이 그의 허리춤까지 잠겼다. 안돼.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


“사람은 추억으로 사는 게 맞나 봐.”


하고 싶은 말을 아직 전하지 못했다. 보고 싶어. 그리워. 너무 보고 싶어.


“너와 함께 지내서 즐거웠어.”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무언가에 턱 막힌 듯, 숨만 헐떡거렸다. 서서히 물에 잠긴 그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작은 목소리인데 그것만큼은 크게 들려온다.


“사랑해, 내 친구.”


나도 사랑해. 사랑했어. 어쩌면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어. 너를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너를 구할 텐데.

숨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나를 놀리듯 그는 점차 멀어졌다. 갑작스레 땅이 꺼지고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시끄러운 알람음이 귀청을 때린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양손으로 귀를 움켜쥐었다.


나도 안다.

이건 그저 꿈이다.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었을 그런 꿈.

어쩌면, 닿을 수도 있었을 꿈이라서 그런지 되돌아온 현실이 괴롭기만 했다.


“이지운! 아직 자냐?”

“문 부서지겠다. 작작 해.”


방문 너머로 언니들이 문을 두드렸다. 잠이 덜 깨서 왜 린 언니가 우리 집에 있나 잠시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일찍 추모공원에 가기로 해서 어젯밤 우리 집에서 하루 묵은 참이었다.


“지운아. 일어났어?”


영원 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린이 투덜댔다. 미간을 잔뜩 구기며 ‘말투 토나온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있을 린의 얼굴이 눈 앞에 선하다.


“말투 뭔데?”

“닥쳐. 어디 아픈가?”


방문이 열렸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과 그 아래 침대에 앉아 눈물을 쏟고 있는 나. 그 꼴사나운 모습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내게 달려왔다.


“뭐야? 진짜 어디 아파? 지운아.”

“너, 울어? 울었어? 야, 울어?”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언니들을 끌어안았다. 따듯하다. 바다에 잠겨있던 수현보다 더.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우는 동안 두 사람은 나를 안아주기만 했다.


“좀 진정됐어?”


한참이 지나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어졌을 때, 영원이 물었다. 그는 소매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악몽이라도 꿨냐?”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린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책상 위에 올려뒀던 국화와 사진 한 장을 힐끔 바라봤다. 눈치 빠른 영원이 그 두 가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하얀색과 노란색 국화가 섞인 작은 꽃다발. 오래된 사진 속에는 수현이 웃고 있다. 언제 찍은 거였지. 아마, 린과 영원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함께 바다로 잠깐 놀러 갔던 그때 찍은 사진일 거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간신히 찾은 거였다.


“맞아요. 악몽이었어요.”


그 사진을 쓰다듬다 말고 가슴팍에 품었다. 어째서인지 그 사진이 꿈에서 만난 수현보다 더 따듯하게 느껴졌다.


“꼴도 보기 싫은 애가 나와서.”


내 말에 두 사람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원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내 잔뜩 뻗친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일단 나갈 준비 하자.”

“그래. 벌써 8시야. 그 꼴도 보기 싫은 애 만나러 가야지.”


린이 얄궂게 웃었다. 그 웃음이 뭐라고 나는 눈물을 닦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밖에 있을게. 준비하고 나와.”

“네.”


다시 홀로 남겨진 방. 잠시 햇빛을 맞으며 서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늘 날씨가 좋았다. 마치 오는 길에 슬퍼하지 말라는 듯이. 하늘의 눈물은 내가 다 거두어 두었으니, 부디 웃으면서 와 달라는 듯이.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떠나야 한다.

하지만 난 알아. 너는 평생 우리를 떠나지 못하겠지. 정말 떠났다면, 내 꿈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수현아. 나는 항상 여기에 있을 테니까, 너를 잊지 않을 테니까.

가끔이라도 좋으니 찾아와 줘.

같이 바다 보러 가야지.


잠깐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새 또 차가워진 공기가 폐를 채웠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채 가시지 않은 바다의 짠내가 코끝에 감도는 그런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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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꿈에 찾아온 그리운 이.

지운의 꿈에 나온 수현은 분명 진짜였을 겁니다.

이상하지만 항상 애틋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누구보다도 끈끈한 게 바로 지운의 가족이죠.

오랜만에 함께 있는 네 사람을 보고 저도 즐거웠어요.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tmi. 새소년의 새소년을 들으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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