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이 사정없이 공기를 가른다. 웅웅거리며 바람이 잘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도장 안에 울렸다. 오공은 눈을 감은 채 몸이 기억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심장을 찌르고, 배를 가르고, 목을 베어버리기 위한 검은 잘 훈련된 맹수와도 같다. 쓸데없는 동작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목적은 오직 더 많은 적을 죽이는 것. 뛰어난 장수는 적군에게 창궐하는 역병(疫病)과도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역병. 꽤나 적합한 표현이라고 오공은 생각한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목숨을 베어왔는가. 얼마만큼의 비명과 저주를 등 뒤에 지었는가. 오공은 여전히 제 몸에서 나는 지독한 피비린내를 맡는다. 검을 처음 배웠을 때, 조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전사가 검을 드는 이유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검을 쓰는 자야말로 전사의 수치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 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공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오라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직은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몇십 배 몇 백배는 더 잘할 수 있다구. 그러니까ㅡ’

 

 오공은 검을 내린다.

 

‘오라도 이제부터 오메를 지킬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때 자신은 제 마음조차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그런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너는 역시 건방진 놈이라며 웃고 말았었다. 그도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 때부터 이 검은 오직 그를 위한 것이었다. 오공은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자신은 잘 잊는다. 어떤 일이라도 무덤덤하게 그런가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고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전장에서 오래 있다보니 왠만한 일은 무뎌진 탓이 아닌가 싶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잠시 동안 함께 검을 수련했던 동료는 마치 세상사에 달관한 사람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일만큼은 달랐다. 왜, 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만월이 뜬 날 밤 서로 서툰 검을 맞댔던 그 순간부터 그는 오공에게 특별했다. 한때 죽도록 증오한 적이 있었음에도 결국 잊지 못했고,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끝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오공은 쓰게 웃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다행일지도 몰랐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고 했었다. 그 하나만 이루어진다면 충분하다고 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기억해낸다면 분명 옆에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공의 검이 다시 맹렬한 기세로 공기를 갈랐다.

 

“......베지터.”

 

 실수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 날, 오공은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은 자명했다. 어쩌면 이미 자신에 대해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을 지도 모른다. 그래봐야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겠지만. .....제길. 오공은 땀에 젖은 금발을 거칠게 쓸어올렸다. 화가 났다. 가슴 아래가 용암이 찬 것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 했다. 그 날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다. 매일같이 수련을 해온 것은 감정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다시 황궁에 들어가 그를 만났을 때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독이 될 것이기에 그저 그림자가 되기로 했었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상처밖에 줄 수 없을 것이기에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도록 하려 했다. 그저 제국의 가장 뛰어난 장군 손오공으로서, 그의 곁에서 그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키려 했었다.

 

그런데 왜.

왜 자신은 아직도 카카로트로서의 바람을 버리지 못하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자신을 올려다보던 검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 때 내게 너는 전부였는데, 너에게는 달랐던 걸까. 생각해보면 너는 어린 나이에도 지고 있는 것이 참 많았던 사람이었다. 황족으로서의 몸가짐. 제국 황자로서의 품위. 한 명의 전사로서의 긍지와 자존심. 누구나 너를 천재라고 했기에 그들의 기대는 아무리 높아도 지나친 것이 되지 못했다. 그 때 나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너는 변함없이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나와 검을 맞댔고, 함께 이야기를 했고, 아주 가끔은 내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 나는 이제야 네가 어떤 가시밭길에 서 있어야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데, 그래서 여기까지 왔을 텐데. 네 앞에서는 여전히 돌아갈 곳이라곤 없었던, 외로움에 죽어가던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나리!”

 

 요란하게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공은 생각을 끊는다. 밖에 나가 있던 시종이 마당으로 뛰어들어온다. 손에는 서신이 들려 있다.

 

“부대에서 온 겁니다. 나리께 빨리 전해야 한다고......”

 

 서신을 넘겨받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어온 것인지 시종은 벌게진 얼굴로 헉헉댔다. 검을 시종에게 건네며 서둘러 서신을 펼친다. 급히 휘갈겨쓴 듯한 검은 글씨를 흩는 오공의 미간이 깊게 파인다.

 

“ㅡ의장(儀裝)을 준비해라.”

“예? 나리, 어디로......”

 

 오공은 땀으로 흠뻑 젖은 상의를 벗어던지며 짧게 말했다.

 

“황궁으로 간다. 폐하를 뵈어야겠다.”

 

 

 

 

 

“ㅡ합종(合從)이라고?”

 

 베지터의 반문에 타레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엄청난 말을 입 밖으로 내놓고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내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베지터는 한쪽 팔을 괸 채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자세로 생각에 잠겼다. 늘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검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베지터가 입을 연다.

 

“네 생각이냐? 아니면......”

“설마, 이런 일로 농담을 할 정도로 나사가 빠지진 않았어.”

 

 타레스의 깔끔한 대답에 베지터는 미간을 좁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가신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가담한 나라는? 얼마나 되지?”

 

 왼손으로 빙글빙글 붓을 돌리던 타레스는 뜸을 들인다. 눈썹과 입꼬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가벼운 웃음을 담고 있지만 그 밑의 눈은 전혀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부.”

“......!!!”

 

타레스의 눈매가 싱긋 웃는다.

 

“합종이라고 했을 때 이미 예상했을 거 아냐.”

 

 베지터는 저 실실거리는 입을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얼마나 된 거지?”

“적어도 삼 년.”

“군세(軍勢)는?”

“황자님이 아는 대로지.”

“......빌어먹을.”

 

 베지터는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의자 사이의 작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주먹이 꽉 쥐어진다. 남자의 눈을 보고 보통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다. 제기랄. 단정한 입술이 다시 한번 욕설을 뱉어낸다. 빠르게 변방과 국경의 상황을 파악하고 각지의 역마를 재정비할 생각을 하고 있을 그의 표정은 마치 검술 연습을 할 때처럼 진지하다. 타레스는 자신보다 연상이면서도 여전히 앳된 기가 남아있는 얼굴을 말없이 바라본다. 새삼 신기해진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꼴보기 싫었는데. 철도 없었지만 막나가기까지 했던 과거가 떠올라 타레스는 슬쩍 얼굴을 가린다. 얼굴에 깐 철판이 그렇게 두꺼울 수가 없다는 말을 일상으로 듣는 자신이지만, 그와 처음 만났을 즈음의 자신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러운 건 둘째치고 도무지 쪽팔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 때 저 잘났다며 그에게 했던 온갖 유치하고 찌질한 짓거리들은 평생의 놀림감으로 삼아도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가끔 생각지도 못한 역공을 당하긴 하지만, 역시 검을 배운 사람답게 고지식한 데가 있는 자신의 연인은 그 때의 일을 그저 과거로 생각하는 듯 했다.


 타레스는 손깍지를 낀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머릿속으로 나랏일을 하느라 바쁠 연인을 느긋하게 관찰한다. 누구 연인인지 참 예쁘게도 생겼다. 입 밖으로 냈다가는 당장 수도 밖으로 추방당할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어차피 들리는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떤가 싶다. 까다로운 황자님께서는 예쁘다는 형용사를 질색했다. 몇 번 말했다가 정확히 반년 동안 침궁 출입을 금지당한 후로 타레스는 두 번 다시 황제 폐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거짓말도 아닌데 마음대로 말할 수도 없다니 좀 억울하기도 하다. 자신의 눈에 그가 얼마나 예쁘게 보이는지를 말해보자면 달포, 아니 한 해 동안 줄곧 침대에서 괴롭히고만 싶을 정도로 예쁘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진담이다. 타레스는 아마도 각 지방의 군대 재배치를 구상하고 있을 연인을 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연인이긴 하지만 자신은 왕국의 재상이고 그는 제국의 황제다. 서로의 위치상 매일 만나기는커녕 몇 달에 한 번 보는 것도 힘들 때가 많았다.

 

“......끈적대지 마라.”

 

 허리에 살짝만 손을 둘렀을 뿐인데도 귀신같은 반응이다.

 

“하지만 만지고 싶은걸.”

“여기는 내조(內朝)다.”

“상관있어?”

 

 먹물처럼 검은 눈동자가 그대로 타레스를 바라본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그 눈은 항상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그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냉정하리만치 철저하게 구분한다. 황제가 공무를 수행하는 구역인 외조(外朝)는 물론이고 일을 마친 후 휴식하는 공간인 내조에서도 베지터는 타레스에게 어디까지나 타국의 사신을 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암묵적으로 동맹을 맺은 거나 마찬가지인 왕국의 사신이라 다른 이들의 눈에는 상당히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정말 그뿐이다.

 

“......의외네.”

“무슨 말이냐.”

 

 부채를 만지작거리던 타레스의 손이 부드럽게 푸른 목깃 안쪽으로 미끄러진다. 갑작스레 맨살에 닿는 타인의 감촉에 베지터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자리,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어?”

 

 짙은 색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태양의 모습을 본뜬 듯한 원형의 옥 목걸이였다. 그 재료는 특정 산지에서만 소량으로 채굴되는 최상품의 청백옥(淸白玉). 그 빛깔은 질이 좋은 옥만이 가질 수 있는 짙은 초록색을 띠는 동시에 제국 황가의 색인 청람색 또한 머금고 있다. 제국의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보물이자 황제의 신분을 증명하는 물건. 그는 베지터가 걸치고 있는 푸른색의 예장(禮裝)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적당히 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자신은 이미 선택했고 그 결과는 오로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몫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강요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활시위를 잡아당긴 것도 자신, 그를 놓은 것도 자신이다. 뒤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었다. 외면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습관처럼 욱신거리는 가슴에 베지터는 말없이 눈을 감는다. 목걸이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은 손이 결후 쪽으로 올라오며 쇄골과 목 언저리를 희롱하듯 스친다. 침상에서처럼 농밀한 목소리가 낮게 속삭인다.

 

“후회하고 있어?”

 

 베지터는 눈을 번쩍 뜬다. 순간 바람이 잘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빛이 깜빡였다. 타레스의 뺨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베지터를 응시했다. 여느 때의 차가운 눈이 아닌, 불길처럼 맹렬히 타오르는 눈은 타레스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죽고 싶으냐?”

“......여전하네.”

“뭐라고?”

 

 타레스는 한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에 묻은 핏물을 핥았다.

 

“‘감정이 격해질 때면 우선 웃음부터 되찾아라.’라고 했었잖아?”

“......”

“벌써 다 잊어버린 거야?”

 

 늘 미소가 머물러 있는 입가가 유려하게 휘어진다. 얼굴을 감싸는 손은 상냥하다. 그러나 말은 냉정하다. 거의 명령에 가까웠던, 되도 않는 부탁을 했을 때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을 비웃지도, 말리려 하지도 않았다. 답지않게 조용히 침잠(沈潛)한 눈으로, 이미 매끄러운 거짓을 말하는 데 익숙해진 입으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앞으로 지나가야 할 현실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런 사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은 그를 선택했다. 그에게 몸을 맡겼으며, 똑같이 날것 그대로의 말을 뱉었다. 그 때보다 굵어졌으나 꼭 같은 목소리로, 그가 경고하듯 속삭인다.

 

“잊으면 안 돼......”

“.....!”

“이미 선택했잖아?”

 

 베지터는 천천히 검을 내린다. 타레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손목을 붙잡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당연한 수순처럼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당황으로 굳어져 있던 혀가 이내 제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의 입 안은 언제나 열이 있는 사람처럼 뜨겁다. 속도 마찬가지다. 체온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님에도 머금고 있는 열은 마치 누군가를 달아오르게 만들기 위한 것 같다. 겉모습과는 정반대다. 그런 불일치는 몸뿐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모순덩어리 황자님이라고 생각한다.

 

“.....!”

 

 타레스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따끔거리는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입술이 떨어지는 동시에 멱살을 붙잡혀 끌어당겨졌다. 여느 때처럼 거만하고 냉담한 눈동자가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명백한 비웃음이 걸린 입술이 유난히 붉다.

 

“이 몸은 후회 따위 하지 않는다.”

 

 타레스는 항복이라는 듯 두 팔을 들었다. 진짜 고집하고는. 일부러 도발하긴 했지만 저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짜증나게도 그 대상에는 자신 역시 포함된다. 드물게 도움 아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거래 개념의 연장선인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번 말한 적도 있지만 당최 말을 들어먹질 않는다. 대체 왜 그렇게 완고하게 구는지. 공사(公私)구분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병신도 아니고 애초에 그걸 고려하지 않을 리가 없다.

 

“.....황자님은 아직도 내가 못 미더운가 봐.”

“흥, 당연하다.”

“와ㅡ, 심지어 안 망설였어? 너무한다, 황자님. 나 엄청 상처받았어......”

 

 방금 전까지 진지했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열심히 우는 척을 하는 타레스를 보며 베지터는 저걸 받아줘야 되는지 그냥 패야 하는지 고민했다. 평소에도 한없이 가벼운 남자의 태도는 제 주변의 일을 대할 때도 변함이 없었다. 베지터는 그것이 늘 못마땅했다. 오늘 아침에 도착한 왕국 세작의 보고를 받아본 후에는 더욱 그랬다. 네놈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녀석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조용히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얼굴만 뜷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놈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쪽은 신경이 쓰여 거슬릴 지경인데 당사자는 저런 얼굴이나 하고 있다니 기가 막혔다.

 

“떨어져라.”

“싫어어.”

 

 도리도리 고개를 흔드는 것이 영락없이 떼쓰는 애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힘으로 떨쳐내지 못하도록 있는 힘껏 끌어안기까지 한다.

 

“......항상 같이 있고 싶은데.”

 

 어깨에 머리를 묻은 남자가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인다. 여전히 칭얼대는 어린애같은 느낌이라 거슬렸지만 가슴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 목덜미에 내려앉은 입맞춤이 뺨으로 옮겨가고 어깨를 끌어안은 손이 옷자락을 살그머니 움켜쥔다.

 

“ㅡ폐하, 소인이옵니다.”

 

 바깥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베지터는 반사적으로 타레스를 밀어내고 도망치듯 방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방문 옆에 서 있던 시종들이 놀란 눈으로 주군을 쳐다본다. 베지터는 눈을 감으며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은 위험했다. 복도로 이어지는 두 번째 문을 열고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내관이 조용히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무슨 일이지.”

 

 내관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ㅡ표기장군 손오공이 독대(獨對)를 청합니다.”

 

 

 


초코칩쿠키를 좋아합니다:) 감상, 피드백 언제나 환영합니다!

쿠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