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외려 꼼꼼이 살피며 손끝을 재차 뻗는다. 이미 한 번 거부 당했다는 것조차 잊은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아도 그것은 키스 마크가 틀림없었다. 손으로 짚어본들, 그렇지 않은들 그 자국이 달라질 리 없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거세게 빨아들인 흔적. 피가 몰려 붉디 붉은 흔적. 그런데 어떻게 이게, 왜. 소리없이 눈짓으로 묻는다. 설명을 요하는 눈빛을 쏘아도 상대는 경계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너,"





이번엔 소리내어 물어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곧 음성은 다른 소리에 묻히고 만다. 아래서부터 거대한 알람 소리가 울린다. 댕-댕. 이 가옥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은 소리는 연달아 두 번 울리고나서 감쪽같이 멎었다. 첫째 박씨. 박명록이라는 자가 말해준 시계 소리가 이것이었다. 하루에 두 번. 정오와 자정에 울린다는 알람. 해가 떠있는 지금은, 정오라는 소리였다.





"가야 돼."





시간에 쫓기는 신데렐라, 혹은 앨리스라도 되는 듯한 초조함 섞인 몸짓으로 기태가 몸의 방향을 틀었다. 다다미 위를 조신하지 못하게 구르는 발이 벌써 문간에 다다랐다. 가야 돼, 빨리. 손 부채질까지 더해 재촉하니, 상연도 몸을 틀어 그 뒤를 따랐다. 방을 나와 어두운 복도를 걸어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에, 키스 마크에 대한 생각은 접어버린다. 어쩌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여긴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라면……



식기들이 부딪는 소리가 한창이다. 간간이 웃음과 말소리가 섞여있다. 앞선 뒷모습 따라, 홀Hall로 향하니 일전에 본 사내들이 모두 거기있었다. 한 사람을 빼놓고는 모두 착석한 채다. 입장하는 기태와 상연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기태가 익숙하게 제 자리를 찾아 앉는 것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비어있는 옆자리로 슬그머니 착석한다. 앞에 이미 가지런히 준비된 식기들이 주인을 맞는다. 서양의 긴 테이블. 그리고 무명의 테이블보. 준비된 식기 세트는 서양 것이다. 작은 접시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놓여있다. 젓가락 같은 것은 테이블 위에서 일체 찾을 수 없다. 한국 내의 일본식 목재 가옥. 그리고 서양식으로 이루어지는 식사라. 위화감이 강하게 드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라면 몇 년을 머문다한들 정 따위는 들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가장 상석의 마스터 자리와 한 자리를 빼놓고는 모두 착석한 상태다. 그리고 비어있는 자리 중 한 자리의 주인인 것 같은 사내가 탐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온몸에 음식 내와 열기가 만연한 것으로 보아, 금방 나온 곳은 주방인 듯했다. 근육이 우둘투둘한 왼팔에 음식을 담은 큰 접시를 장식처럼 걸치고 나타난 사내는, 요리사 추씨라고 불리는 자다. 거친 말투로 식사의 시작을 알린 그는, 음식을 다 내려놓고난 뒤에 제 자리에 착석했다. 상연이 착석하자마자, 비워진 상석의 주인에 대해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애초에 듣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저들끼리 침 튀기며 떠드느라 듣지도 못한 것일 테다.


겉보기에 잘 손질되어 보이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꽤 강한 향신료의 소스를 듬뿍 끼얹은 상태로, 큼지막한 덩어리째 접시 위에 자리했다. 미관에 좋은 장식 등은 생략됐으나 보기에 썩 나쁘지 않다. 향도 강하긴 하나 구미가 당겨지는 것이다. 외관은 이만하면 됐으니 다음은 맛 차례다. 맛도 외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아마도 저 추씨라는 사내는 일류는 아니나 그럭저럭 좋은 평판을 가진 레스토랑에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신난 사내들은 먹으며 떠들기 바빴다. 그중, 거칠게 음식을 뜯어 씹던 자 하나가 요리에 대한 평을 내놓기도 했다. 상연의 눈이 그 자를 담았다. 일전의 소개받은 기억을 더듬어 그가 정원사 이씨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오늘 음식은 좀 비리군."


"그러게. 바닷놈인가."


"간만에 선원이 좀 늘었다길래 하나 구했지."


"…쓸데없기는. 마스터가 알면,"


"그래서 부재중에 특별히 내왔잖나. 그 분은 '해물海物'을 즐기지 않으시니까."





음식에 대해 평한 자가 고개를 비뚜름하게 돌리자, 요리사는 만족스런 얼굴로 잘근거리며 고기를 씹는다. 


상연과 기태의 앞에도 음식이 담긴 접시가 놓였다. 기태는 곧바로 손을 뻗어 가장 큼지막한 살덩어리 하나를 골라 포크로 찍어 제 앞접시로 가져간다. 그 모습을 보고 포크를 따라 들었으나 어쩐지 먹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안 드슈?"





저를 보고 하는 말이란 것을 직감해, 고개를 돌리니 이미 모두가 상연을 주시하고 있었다. 양껏 음식을 담아 씹어내던 거친 볼들의 움직임이 멎어있다. 여섯 쌍의 눈동자 아래, 제각각 마뜩찮은 기색을 담은 얼굴들이 상연에게로 쏠렸다.





"..아...."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고기를 못 먹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고기를 못 먹나? 아니면 채식주의자? 묘하게 말끝 위로 솟아있다. 못마땅한 것이 말투로부터 드러나있다.





"아뇨. 해산물을 잘 못 먹어서요."





떨쳐지지 않는 시선들을 애써 떨치기 위해 들고있던 포크로 아까 본 것처럼, 큼지막한 덩어리 하나를 푹 찍어내 제 접시로 옮겨온다. 아직 입에도 넣지 않은 음식을 벌써부터 삼킬 준비하느라 속이 긴장했다. 그러자 꽤 떨어진 자리에서 실소가 터진다.





"걱정마쇼. 해산물은 아니니까."


"예? 그렇지만 아까…,"





반문하며 제 접시 위에 놓인 덩어리를 포크 끝으로 파헤친다. 아직 식지 않은 까닭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리고 곧 드러난 덩어리의 정체는 퍼석한 살코기, 육류였다.


그냥 간단한 점심 식사일 뿐인데. 어렵고도 지독했다. 입안에서 씹히는 고기는 어떤 가축의 어떤 부위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애당초 요리에 대한 것은 잘 알지 못하니 말해 줘도 모를 테지만, 처음 느끼는 식감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왁자하게 떠들며 식사 중인 사내와 상연 사이에 기태가 있었다. 사내들과 상연의 사이를 갈라놓는 어떠한 선처럼. 그것이 못내 불편하다고 느낀 탓인지, 상연이 느릿하게 오물거리던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저, 근데 왜 이 큰 저택에 시계는 저거 하나 뿐입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는다. 시끄럽던 말소리와 식기소리는 물론, 입안의 내용물을 씹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또 모두가 마뜩찮은 기색을 띤 얼굴로 이쪽을 쏘아보는 것이다. 그 시선을 받으며, 도무지 정이 붙을 사람들이 아니라고 여겨버린 상연 또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파도처럼 쓸고 지나간 뒤에 김씨, 김판호의 음성이 나즈막히 깔렸다.





"..궁금한 것이 많으믄 수명이 짧다 안 카요."





그것은 또 한 번의 경고였다.









M

A

S

T

E

R









벽에 기대 앉으면서, 상연은 속이 영 불편해 가슴팍을 여러 번 두드렸으나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속도 안 좋은 마당에, 기댄 벽이라고는 곰팡이 잔뜩 슬어 쾌쾌한 내음이 가시질 않으니 아주 최악이었다. 상연은 어떻게든 체기를 눌러보려 애썼다. 입안에 남아있는 자잘한 음식물 덩어리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비릿한 것 같은데. 녹슨 쇳덩이라도 씹은 듯한 비릿함을 뒤늦게 자각한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욕지기가 치밀어오른다. 당황한 상연이 몸을 일으켜 당장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지체할 것도 없이 계단을 밟아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입을 틀어막고 다리를 재빨리 구르는 그 몸짓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뒤쫓는 이가 있는 것도 모른 채로 상연은 속을 게워낼 곳을 찾아다녔다. 컴컴한 복도를 지나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문고리를 잡아 돌리니 오래된 서적의 큼큼한 내가 확 끼쳐왔다. 옛 서가 같은 곳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다행히도 그 향이, 음식내와는 아주 다른 것이라 상연의 속을 진정시켜주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 비틀거리며 문턱을 밟아 안으로 들어서니 빼곡히 차있는 책장들이 대여섯 개나 서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서재일까. 신물 흐르는 턱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걸음을 옮겨 책장 가까이 다가설 때였다.





"나와!"





언제 거기 서있었는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김씨가 달려들어 상연의 앞을 막았다. 그러더니 위팔을 움키고 당장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쾅. 벽면의 촛불이 크게 일렁이도록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그리고 초조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표정의 김씨가 상연을 노려보고 서있었다. 위팔은 여전히 강하게 움킨 채다.





"이짝은 선대와 마스터가 가장 아끼는 공간이요. 가지마소."


"…이럴 거면 왜 처음부터 다 설명해주지 않는 겁니까.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 되는지 진작 알려주었더라면,"


"아도 아니고. 왜 나가 그런 수고까지 헌다요?"


"……."


"살펴만 보이소 살펴만. 마스터가 호출하면 바로 뛰갈 수 있도록. 알았소?"





마지못해 고개 끄덕이니 움킨 팔을 놓아주었다. 이 삼초간 그대로 노려보더니 얼굴을 홱 돌리고 거실 쪽으로 걸어간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주시하다 치미는 스트레스에 콜록거리며 헛기침을 해본다. 그럼에도 찝찝함은 기침처럼 토해낼 수 없었다.


다시금 제 방 안으로 돌아온 상연은 다다미 위에 그대로 엎드려 숨을 짧게 내쉬었다.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순간이 짜증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까지 불안함과 기분나쁨이 생길 만한 이유는 없는데도 그렇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엉망이고 복잡한 심정이 드는 지 알 수 없었다. 정체불명의 감정은 포크 끝으로 헤집은 살코기에서부터 오른 김처럼 퍼졌다. 불안함으로 점철된 김은 사라지지 않고 시야를 부옇게 물들인다. 이제는 연기가 되어버린 그것은, 서서히 정신을 좀먹는 것만 같다. 어느새 꾸벅, 잠에 든 상연이었다.



저택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오랜만의 마슷허................... 동명의 영화 개봉보다 먼저 완결날 일이 업슬 거 가튼 슬픈 연성이라네..(죤

이후로는 꾸금, 꾸금 밖에 업스니 부디 어린 친구들은 찾지 마시어라...


연성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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