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와 인물 설정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 약간의 캐릭터 붕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준은 아침부터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딱딱 소리를 내었다. 오늘...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어제 티비에서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라고 연인을 위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라는 뉴스를 보았던 창준이었다. 다소 유치하긴 했지만.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필 그 날은 공판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시목을 차장실로 불러낼 수 있기는커녕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창준은 초조하게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시계가 12시를 땡 치자 마자 들어 올린 전화기에선 오늘따라 빨리 식사를 하러 나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영은수 쓸데없이 부지런하지. 입술을 살짝 깨물던 창준은 입맛이 없어 가볍게 커피를 한 잔 하며 시목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길기도 했다. 창준의 입 안이 건조하게 말라갈 무렵. 1시가 되었다. 창준은 양비서에게 잠깐 나갔다오겠다고 한 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6층, 5층, 4층.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쩐지 손에 땀이 오르는 것 같아서 괜히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는 창준이었다. 4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만난 건 정말 반갑지 않게도 동재였다.

 

 

 

 

“아, 차장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잠깐 둘러볼까 하고.”

 

 

 

 

딱히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얼버무리는 창준을 향해 동재는 팔짱이라도 끼울 기세로 들러 붙어왔다.

 

 

 

 

“제가 마침 찾아뵈려고 했는데요, 잠깐 제 방으로 가시겠습니까?”

“급한 일인가?”

 

 

“아뇨, 그렇게 급하진 않습니다만. 기왕 오신 김에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러지.”

 

 

 

 

창준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동재 방에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주머니 속의 작은 상자가 달그락 달그락 움직였다.

 

 

 

1시간이 지나, 동재의 수다에서 벗어난 창준이 몸을 일으켰을 때, 창준은 이제야 시목의 방에 갈 수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6층까지 모셔다주겠다는 동재를 뿌리치고 시목의 사무실에 도착한 창준은 문 앞에서 약간 심호흡을 했다. 지금..지금 들어가자.

 

 

 

 

끼익-

 

 

 

 

“어, 차장님!”

 

 

호섭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섭의 목소리만 들렸다.

 

 

“황검사 안에 있나?”

“아...검사님 때문에 오셨어요? 어쩌죠? 방금 나가셨는데요.”

 

 

 

“...언제 나갔나?”

“한 10분 전에요. 영실무관이랑 자료 찾을 거 있다고요.”

 

 

 

“....그런가. 언제 들어온다고 하던가?”

“글쎄요오. 언제 들어온다는 소리는 안 하셨는데...급한 일이시면 제가 전화해볼까요?”

 

 

 

“아니, 아니 됐어. 나 왔다는 말 굳이 안 전해도 되네. 내가 직접 하지.”

“그러시면...네. 안녕히 가십쇼. 차장님.”

 

 

 

호섭이 꾸벅 인사하는데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온 창준은 괜시리 꼬옥 쥐어지는 주먹을 억지로 폈다. 황시목.... 얼굴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네.

 

 

 

창준은 방에 돌아와서 오후 내내 저기압이었다. 양비서도 창준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서 가만히 서류를 두고 나갈 뿐이었다. 6시가 다 되어가자 창준은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야근한다고 하기만 해. 벼르고 벼르던 창준은 시목의 사무실 앞으로 다시 향했다. 마침, 시목이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황시목.”

“차장님? 여긴 어쩐 일로..”

 

 

 

“퇴근인가?”

“네.”

 

 

 

“그럼 가지.”

 

 

 

창준은 딱 그렇게만 말하고 성큼성큼 앞장서 걸었다.

 

뒤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황시목 나 좀 봐.”

“부장님 무슨 일 생겼습니까.”‘

“아, 이거..”

 

 

 

 

“잠깐.”

 

 

 

창준은 다시 뒤돌아서 원철과 시목 사이에 서더니 시목의 손목을 채가며 말했다.

 

 

 

“강부장 미안한데, 내가 오늘 참을 만큼 참았거든. 더는 안 돼. 황검사는 내일 보지.”

 

“아...그러시면, 네. 뭐 그러죠.”

 

 

 

원철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데도 창준은 아랑곳 않고 시목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차에 탈 때까지 창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시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따라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뭘 참았다는 걸까. 자신을 끌고 가는 창준의 뒷모습이 유달리 화나보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고. 시목은 생각했다.

 

 

 

“뭘...참으신겁니까?”

 

 

 

차에 타자마자 그렇게 묻는 시목에게 창준은 한참이나 대답 없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굳어져있던 창준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너 만나는거 방해하는 사람들 많았어 오늘.”

“그랬습니까?”

 

 

“어. 넌 몰랐겠지만.”

“...죄송하다고 해야 합니까?”

 

 

“아니. 그냥 그러고 얼굴이나 좀 보여줘. 화가 슬슬 풀리는 것 같으니까.”

“화 나셨습니까?”

 

 

“다 풀렸어.”

 

 

창준은 그렇게 말하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시목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하루종일 만지작거리던 작은 상자를 드디어 꺼냈다.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지?”

“오늘 화요일 아닙니까?”

 

 

창준은 시목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손 줘봐.”

“이게 뭡...”

 

 

창준은 시목의 손가락에 살며시 반지를 꺼내어 끼웠다.

 

 

“다행이네. 딱 맞아.”

“이거 때문에 오늘 저 찾으셨습니까?”

 

 

“그래. 니 손에 끼워진 모습 보고 빨리 보고 싶어서.”

“...저는 아무 것도 준비 못했는데요.”

 

 

“할 필요 없어. 그냥 이거나 잘 끼고 다녀. 잃어버리면 각오해야 할거야.”

“감사합니다.”

 

 

“말로 떼우려고?”

 

 

창준은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두드렸다. 그러자 시목이 고개를 바짝 붙이며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키스가 끝나고 시목도 창준의 손에 나머지 반지를 끼웠다.

 

 

“사랑해. 황시목.”

“저도요.”

 

 

창준은 시목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이마끼리 가볍게 부딪히며 웃었다.

 

 

 

 

“자, 줄건 다 줬고 이제 받으러 가볼까.”

“어딜...”

 

 

“가 보면 알아.”

“근데 오늘 정말 무슨 날입니까”

 

 

“하하. 그래 너 진짜 모르지. 발렌타인데이라는데. 연인을 위한 날이라고.”

“그렇습니까.”

 

 

 

 

창준의 웃음소리가 차창을 타고 흘러나왔다. 연인을 태운 차는 다리를 건너 창준이 예약해 둔 호텔로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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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200팔 이벤트로 ‘창준시목/반지’ 키워드로 작성한 글입니다. 

소재를 제공해주신 그릿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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