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 전 제주도의 한적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와 카페를 열었다. 제주도이지만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고 간간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는 찾아오는 동네 단골손님도 어느 정도 생겼고 총각이 혼자 야무지게 산다며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종종 반찬을 챙겨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형이나 오빠라는 소리를 듣고 있어 그렇게 많이 외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이거나 누가 보아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뿐. 그러나 한 달 전부터 얼굴이 아주 희고 민트색 머리의 남자가 매일 밤 8시에 카페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유자차 한 잔 주세요.”

 

얼굴색만큼이나 희지만, 자신보다 한 마디가 큰 손으로 카드를 건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민트색의 머리는 끝이 살짝 뻗쳐있었고 약간 푸석해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 그 남자를 본 날 굳게 닫힌 입술과 쭉 찢어진 눈으로 한참이나 쳐다보길래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나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한 달째 저 얼굴인 것을 보아 그냥 저게 저 남자 표정인 듯했다.

 

“3000원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계산을 마치고 유자청을 꺼내려고 보니 새로운 병을 따 놓는다고 해놓고 깜빡한 것이 떠올랐다. 여름에는 뚜껑이 잘 열렸는데 겨울에는 절 열리지 않아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며 열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 뒤돌아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 말을 하니 그 남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잘 열리지 않았다. 다른 병을 가져와야 하나 심히 고민하며 얼굴이 벌겋게 물이 들 때까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혼자 낑낑대며 유자청을 잡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열리면 다른 거로 주세요.”

 

“네?”

 

“괜찮으니까 다른 거로 먹을게요.”

 

한 달 동안 내가 남자와 나눈 대화는 ‘유자차 한 잔 주세요.’ ‘3000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밖에 없어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멍청하게 계속 쳐다만 보고 있으니 남자가 메뉴판으로 눈을 돌렸다.

 

“음... 여기 레몬차도 있죠?”

 

“아, 네. 있어요.”

 

“그럼 유자차 대신 레몬차로 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나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살짝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유자차 먹으려다가 사람 먼저 죽을 것 같아서요.”

 

“네?”

 

“그쪽 얼굴이요, 지금 완전 빨개요.”

 

그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그가 낮고 작은 목소리로 웃는 것이 들려왔다. 웃는 표정을 처음 보는 그의 얼굴은 의외로 까칠해 보이는 평소의 모습과 달리 아주 순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레몬차를 만들어서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쇼케이스에서 초코 쿠키 한 개를 꺼내어 같이 건네주었다. 쿠키를 본 그가 이건 뭐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제가 미안해서 드리는 거예요. 원래 유자차밖에 안 드셨었잖아요.”

 

나의 말에 그가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쿠키 싫어하세요?”

 

“아뇨, 싫어하는 건 아닌데 제가 단 걸 잘 못 먹어요.”

 

“음... 그럼 아몬드 쿠키는 어때요? 초코쿠키보다 많이 달지 않고 고소하거든요.”

 

그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알겠다며 쿠키를 받았다. 쿠키를 건넬 때 잠시 스친 손은 생각보다 보드라웠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마감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서 청소를 하기 위해 빗자루를 바닥을 쓸다가 문뜩 생각이 났다. 단 것을 잘 못 먹는다는 그의 말. 이상하다? 유자차도 많이 달 텐데... 왜 하루도 빠짐없이 유자차를 먹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일이 있는 이후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찾아오는 민트색 머리의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민윤기 31살이며 작가라고 했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온 지는 두 달 정도. 왜 이곳에 이사를 왔냐고 물으니 그냥 한적하고 조용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처음에 느꼈던 차가운 얼굴은 그저 낯을 가렸던 것뿐인지 요즘 대화할 때 종종 그날과 같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턱에 손을 괴고 한가롭게 유리창 너머를 보고 있다가 문자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카톡 몇 개와 방금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나는 문자 메시지는 읽어 보지도 않고 카톡창을 열었다. 태형에게서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였다. 나는 별 탈 없이 살고 있다고 답을 보낸 후 핸드폰을 테이블이 엎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오늘 토요일이라는 것이 생각이 났다. 평일에는 9시에 문을 닫지만 주말은 8시면 문을 닫았다. 주말에 따로 쉬지 못하는 나에게 주는 나름의 짧은 휴식 시간 이었다. 그래봤자 하는 것은 가게 앞바다에서 삼십여 분 정도 앉아 있는 일밖에 없었다.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기도 했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기도 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8시가 되어서 대충 가게 정리를 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옆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바다를 마주 보고 앉았다. 늦가을의 저녁 바다는 어둡고 고요했다. 주위의 소음이라고는 파도의 철썩거리는 소리와 간혹 들리는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혼자 바다에 앉아서 맥주를 마는 것을 누가 본다면 청승맞게 보일 것이다. 그래도 혼자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사라지지는 않아도 무뎌지기는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눈을 감고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다가 맨바닥에 앉아있던 엉덩이가 점점 시려와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핸드폰이 잡히지 않았다. 편의점에 두고 온 건가 생각을 해봤지만 계산을 할 때 이미 손에는 지갑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카페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어차피 바로 앞이니 들려서 핸드폰을 가져나올 생각으로 몸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불이 꺼진 가게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밤이라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는 사람은 민윤기, 바로 그였다. 그러고 보니 매일 왔다고는 하지만 주말에는 보지 못한 것이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다.

 

“윤기씨?”

 

내가 말을 걸자 그가 살짝 놀라서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말에는 8시에 문 닫는데 혹시 몰랐어요?”

 

나의 말에 그는 주말에 오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했다. 혹시나 아파서 문을 닫은 줄 알았다고 그런데 아닌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그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이 잡힌 그는 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보다 훨씬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저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문 다시 열어야 해요. 유자차 마시러 온 거면 해드릴게요.”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지 않아도...”

 

“아뇨, 금방이니까 해드릴게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었고 계속 말을 이었다.

 

“단골손님이니까 해 드릴게요. 저희 가게에 윤기씨처럼 매일 오는 손님도 몇 없어요. 진짜 매일매일 찾아와줘서 기분이 너무 좋네요.”

 

“......”

 

“이 동네에 사시는 분 중에 제 나이 또래가 없어서 다들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어도 대화를 할 상대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윤기씨랑 짧지만 매일 대화하니까 재미있어요.”

 

가게 문을 열고 고개를 돌렸다.

 

“금방 해드릴...”

 

“...혹시 오늘 술 같이 안 마실래요?”

 

“네?”

 

“저랑 대화가 즐겁다면서요. 저도 그래요.”

 

“아...”

 

“그러니까 오늘 시간 괜찮으면.”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살랑거리며 다가오는 바람에 그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눈을 살짝 깜빡였고 이내 그가 다시 말했다.

 

“저랑 같이 있어요.”

 

 



 

우리는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과 마른안주, 과자 같은 안줏거리를 사서 바다 앞 벤치에 앉았다. 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속으로 술 냄새가 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맥주 한 캔으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술 마시러 가자고 했는데 이미 술 냄새가 나면 참으로 민망한 상황이지 않은가.

우리가 앉은 벤치는 한쪽에 벽이 있어서 바람이 세게 불어오지 않아 추위가 심하지 않았다. 그냥 밖에서 대화하기 딱 좋은 정도였다. 캔 맥주를 각자 하나씩 손에 잡고는 자연스럽게 건배를 했다. 서로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고는 새우깡 하나를 입에 물었다.

 

“술 잘 마셔요?”

 

“아뇨, 소주는 한 병 맥주는 네 캔 정도? 지민씨는요?”

 

“저도 그 정도 해요.”

 

“다행이네요.”

 

“뭐가요?”

 

“주량이 비슷하면 술 친구 하기 딱 좋죠.”

 

“술 좋아하나 봐요?”

 

“아뇨, 그냥...”

 

그가 손에 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대답했다.

 

“술 마시고 싶은데 혼자는 싫은 경우 있잖아요.”

 

그의 표정이 약간 쓸쓸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가 살짝 웃으며 자신의 미간을 손으로 톡톡 치고는 표정을 풀라고 했다. 저 술 자주 안 마셔요, 정말 가끔 마셔요. 그렇게 말한 그는 어느새 빈 캔을 손에 힘을 주어 찌그려버렸다.

 

“저 주말 저녁마다 가게 일찍 마치고 이 바다에 와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밤이라 깊은 색의 검은 물이 바위를 적시며 넘실거렸다.

 

“오늘도 바다에 있다가 윤기씨 만난 거예요. 매주 오기는 하는데 술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마셔요. 그게 오늘이네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어두운 저녁 바다 앞 벤치에 앉아 노란색 가로등 빛을 받으며 그를 보니 분위기 탓인지 술기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늘진 그의 진한 눈썹이 잘 생겼다고 느껴졌다. 시선이 눈썹을 타고 내려와 눈과 동그란 코끝 그리고 굳게 닫힌 그의 입술에서 멈췄다.

 

“윤기씨 괜찮으면 매주 바다 같이 보러 올래요?”

 

“매주 저랑 봐도 괜찮아요?”

 

“당연하죠, 말했잖아요. 윤기씨랑 대화하는 거 재미있다고.”

 

그의 입술에서 다시 그의 눈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말갛다고 할 만큼 크게 미소 지었고 나를 따라 그도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의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 특히 웃을 때 흔히 말하는 입동굴이 생기는 것이 매력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물어보세요.”

 

나의 질문에 그가 한 손을 턱에 괴고 대답했다.

 

“저번에 단 걸 잘 못 먹는다고 했잖아요. 근데 유자차는 좋아하나 봐요?”

 

“유자차를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와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낮밤의 경계가 잘 없어서요.”

 

“아, 작가라고 했죠?”

 

“그리고 커피를 줄곧 마셨었는데 최근에 위염 때문에 끊었거든요.”

 

“많이 심각한 거예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몸을 바짝 끌어당겨 앉았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이 더욱 가까워졌다.

 

“많이 심각한 건 아닌데 신경성이라 조심하는 거죠.”

 

“신경성이면 따로 치료 못 하는 거 아녜요?”

 

“일종의 직업병이죠, 뭐.”

 

그가 웃으며 마지막 맥주를 봉투에서 꺼냈다. 맥주 4캔을 사서 2캔씩 나누어 마셨는데 나는 이미 한 캔을 마시고 온 거라 지금 내 앞에 남아있는 반절 정도의 맥주를 제외하면 거의 주량과 가까운 양의 술을 마신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별것도 아닌 것에 실실 웃고 살짝 어지러운 것을 보니 취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유자차 마시는 이유 또 있는데.”

 

“왜요? 혹시 나 보러 오나? 하하하.”

 

내가 말을 하고 내가 웃어버렸다. 이쯤 되면 취한 것이 확실했다. 반절 정도 남은 맥주를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소리를 내고는 새우깡 하나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

 

“네.”

 

“네?”

 

“지민씨 보러 가는 거예요.”

 

새우깡을 먹던 입을 멈췄다. 지금 뭐라고요?

 

“좋아해요.”

 

술에 취해 이해하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내 그가 내뱉었던 말을 다시 곱씹어 보고는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아, 원래 얼굴에 홍조. 얼굴 많이 빨개요? 못생겼어요? 아니, 내 말을 그게 아니라...”

 

벌겋게 달아오른 볼을 황급히 두 손으로 가렸다. 아, 진짜...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을 내뱉은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종국에는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라 그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고개를 왜 숙여요.”

 

낮고 다정한 말투에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창피하니까요.”

 

나의 말에 그가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내 양 볼에 올라가 있는 나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나보다 한마디나 더 큰 손 때문에 나의 손은 완전히 그의 손아래에 가려져버렸다. 그의 손길에 고개가 들려졌고 그를 바라보았다.

 

“키스해도 돼요?”

 

그와 나 밖에 있지 않은 조용한 공간에 나의 심장 소리가 온 세상에 들릴 듯 쿵쾅거렸다. 나는 침을 꼴딱 삼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내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약간의 술 냄새와 그의 향이 나를 덮쳐왔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뜨거운 숨결을 주고받으며 꽤 오랫동안 입을 맞추었다.

 


♥지민이는 내 마음속 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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