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들이 모두 팀장 회의에 들어간 월요일 오전 9시. 연구소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와 더불어 가벼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넌 무슨 콜라냐는 윤기의 핀잔에도 꿋꿋하게 원샷을 때리던 남준이 손뼉을 마주치곤 주의를 환기시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 그거 들었어요?”

“뭐?”

“얼마 전에 면접 본 거 있잖아요. 우리 팀하고 1팀하고 각각 1명씩 뽑았다던데. 3팀은 결국 못 뽑았고.”


맘에 드는 애 없다고 공고 다시 올리고, 다시 올리고 하더니. 결국 뽑긴 뽑았나 보네? 라는 윤기의 말에 남준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수긍했다. 경영지원에 물어보니까 공고 3번이나 올렸대요. 마지막에 올렸던 거에는 의외로 팀장님들 맘에 드는 사람들 있었나 봐요. 그래서 인적성 검사 결과가 지난 주 화요일에 나와서 최종 통보 금요일에 했다던데요?


“경력으로 뽑았다는 거지?”

“3년 이상이 조건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그냥 신입으로 뽑아서 쓰지. 어차피 신입처럼 쓸 거면서. 야. 근데 넌 뭐 이렇게 병든 닭이냐?”


평소와는 달리 추욱 처진 얼굴로 원탁 테이블에 쓰러져있는 지민의 모습에 윤기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 늙었나봐요..”

“...갑자기?”

“어제 명성산 산행 다녀왔거든요? 올라갈 때까진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 괜히 암석루트로 와서 그런가. 저 지금 왼쪽 무릎 아작난 거 같아요.”


감각이 없어. 감각이. 펴지도 굽히지도 못하겠어요. 진짜 저 작년까지는 이런 적이 없었거든요?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러는 건가, 지금? 하고 나이타령을 하는 지민에 윤기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우리 막내가 뭐라는 거냐, 남준아.”

“어리다고 재는 것 같은데요.”

“아, 무슨! 그런 거 아니에요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우리 막내 못 쓰겠다, 진짜. 안 그러냐는 윤기와 남준의 대화에 지민의 입꼬리와 눈꼬리가 끝을 모르고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뭔 놈의 등산이야, 등산은. 나는 진짜 회사 처음 입사했을 때. 사내 동아리가 축구랑 산악회가 있다길래. 산악회에 들어가는 젊은 사람 누가 있겠어? 했는데. 얘가 들어가더라?”

“왜요. 산타면 재밌는데.”

“무릎 아작 났다면서.”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 더 워밍업 운동을 하고 산을 타야겠다? 라는 뭐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필요 없어. 아무튼 우리 팀에 새 사람 들어와도 우리 막내는 영원히 막내겠다. 그치?”

“왜요?! 나 보다 어릴 수 있지!”

“매우 희박하지 않냐?”


윤기의 말대로 이미 근속연수 4년차인 27살의 지민은 입사 이래로 꾸준히 개발 2팀의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경력 3년 이상의 새로 들어올 직원이 지민보다 어릴 가능성이라... 지민보다 근속연수가 짧은 사람 자체도 연구소에 적기도 적다지만, 근속연수가 짧더라도 나이나 직급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지민은 여전히 막내일 것이 분명했다. 마치 근속연수가 3년밖엔 되지 않지만, 개발 3팀의 팀장자리에 앉아있는 곽동식 수석연구원의 케이스만 보더라도 명확했다.


다른 팀이기에 애매한 상황은 맞이하지 않았다만 한 가지 예로 보자면. 개발 3팀의 남진형 연구원은 이전 직장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29살의 나이에 연구원 직위를 받았다지만, 나이가 지민보다 2살이나 많은 29살로. 만약에 지민의 팀으로 남연구원이 들어왔었다면, 과연 남연구원을 막내로 뒀을까? 싶은 그런 애매함 말이다. 아마, 유교사상의 논리대로 나이로 따져서 지민이 막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푸우-. 나는 그럼 막내 탈출 언제 해요.”

“막내 얼마나 좋냐?”

“그럼요. 막내가 얼마나 좋아.”


쿵-짝하고 주고받으며 막내가 얼마나 좋냐는 윤기와 남준의 말에 지민은 가늘어진 눈초리로 한껏 둘을 노려보았다. 뭐가 좋아요. 잡일 맨날 나 다 시키면서어-!


“그럼 너 아니면 누구 시키냐, 인마.”

“치사해.”

“치사? 치사아?”

“저 민선임님 진짜 싫어요.”

“예~. 그러시구나.”


진짜 싫어. 저주인형 사다가 콕콕 찔러버릴 거예요.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럼 절 의심하셔도 되요. 라며 지민이 한껏 부루퉁하게 말을 하자, 윤기는 맘대로 하라며 코웃음을 쳤다.


“아, 맞다. 호석이형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뭘?”

“아니에요.”


윤기와 남준을 만난 게 벌써 4년이나 흘렀지만, 회사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호칭은 선임님으로 굳혀있었다. 다만 대학 동문인 호석만은 회의석상이 아닌 이상 편하게 형으로 부르던 지민은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사무실을 나서려고 하고 있었다.


“야, 뭐냐니까?”

“민선임님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친구 형이 호석이형 소개팅 해달라고 해가지고. 물어보려고요.”

“..뭐?”


그럼 저는 3팀 좀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지민이 사무실을 벗어나자 한껏 구겨진 얼굴로 윤기가 남준을 보며 물었다.


“..야. 내가 그렇게 티를 안 냈냐?”

“지민이가 눈치가 없는 거죠. 제가 제 엄지를 걸 수 있는데요. 연구소장님도 형이랑 호석이 사귀는 거 압니다.”


지민이 쟤는 우리 회사 사내 커플 하나도 모를 걸요? 쟤 우리 팀장님하고 이차장님 부부인 것도 모르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묻는 남준의 말에 윤기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어 갔다. 이차장님하고 우리 팀장님이 부부인 거 모르면 그거는 진짜. 설마, 우리 지민이가 그 정도겠니. 우리 그 정도로 지민이 무시하지는 말자, 며 윤기와 남준은 악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민아.”

“어때?”

“..응?”

“형 스타일 아니야?”


냅다 핸드폰을 내밀며 어떠냐는 말에 호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한 번, 지민을 한 번. 번갈아 보았다. 두 눈을 꿈벅거리며 무슨 말이냐는 반문의 행동을 본인 스타일이 아니다로 인식한 것인지, 지민은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실물로 봤었거든? 이 형 디기 잘생겼어. 형 나 눈 높은 거 알지? 응? 그리고 착해. 먼저 소개해달라고 이러는 형 아닌데. 형이 진짜 맘에 들어서 해달라는 것 같아가지고. 한 번 만나라도 봐봐. 응?”

“아.. 하하. 어.. 지민아. 음..”

“그렇게 별로야?”

“형.. 애인 있잖아, 지민아.”

“..헐?”


놀람 가득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지민에 호석은 머쓱함에 제 뺨을 매만졌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형이 애인이 있었어?”

“어..? 정식으로 사귄 건 3년..? 조금 넘었지.”


팀이 같지 않으면 같은 연구소 직원일지라도 교류가 왕성한 편은 아니다 보니까. 입사 동기이거나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한은 타 팀과 친분을 쌓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 덕에 지민보다도 1년 빠르게 입사하여 회사를 다니고 있던 호석과 윤기의 접점은 지민이 입사하기 전까지는 1년 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후배이자 아끼던 후배인 지민의 입사로 호석이 지민의 팀에 방문횟수가 늘어나면서 호석과 윤기의 대면도 늘어났고. 그 사이에 피어오른 싹이 결실을 맺은 게 벌써 3년이 넘었건만. 사랑의 큐피트 역할을 톡톡히 해낸 당사자가 그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 지민 못지않게 호석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헐. 어떻게 나한테도 말을 안 해줄 수가 있었어? 대박.”

“나는 너가 모르는 줄 몰랐는데..”

“말을 안 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아~.”


나 주말에 윤기씨랑 만나기로 했어. 어, 나 이번 주말에 민선임님 만나는데. 하고 썸을 타던 시기부터 착실하게 고해바쳤던 것 같은데. 억울함에 추욱 쳐진 눈망울로 지민을 바라보는 호석의 얼굴에도 지민은 찌릿하고 매섭게 호석을 노려봤다.


“배신이다, 형.”

“미안. 형이 진짜 모르는 줄 몰랐어.”

“쳇.”

“아~. 화났어? 형이 미안해. 어떻게, 응?”

“정선임 바람피우는 거야, 뭐야~. 내가 다 봤어~.”


셀프 팔짱을 끼곤 흥흥 거리고 있는 지민을 달랠 요량으로 지민에게 부비적 거리는 호석을 향해 회의를 마치고 나온 호석의 팀장인 곽수석이 손가락질을 하며 둘을 스쳐지나가자 지민의 얼굴은 다시금 경악에 물들었다.


“뭐야. 나한테만 안 알려준 거였어?! 곽수석님도 알아?”

“아.. 아니. 그게.”


너가 모르는 줄 나는 진짜 몰랐는데, 지민아. 라는 호석의 애절한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는 지민은 씩씩 거리며 복도를 걸어 나갔다.


“아고고..”


물론 의욕만큼은 사무실까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도착하는 거였다지만, 앞서 말했든 주말 산행의 여파로 제 기능을 못하는 왼쪽 무릎 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왜 그래요, 박선임님?”

“아. 안녕하세요.”

“무릎 다쳤어요?”


곧장 오른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지민의 왼쪽 무릎을 움켜쥔 채 저를 올려다보는 석진으로 인해서 지민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등산 갔다가, 좀 삐었나 봐요.”

“아.. 파스라도 뿌렸어요? 아님 테이핑은?”


고개를 도리질 치는 지민에 석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빠요?”

“아뇨..?”

“나 차에 테이프랑 파스 다 있는데. 휴게실 가 있을래요? 내가 금방 가지고 올게요. 아니다. 업혀요.”


너른 등판을 내보이며 업히라는 석진의 말에 지민은 손사래를 쳤다. 못 걷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라면서 말이다. 그냥 업히면 안 돼요? 시간 계속 흐르는데? 빙그레 웃으며 손목을 제 톡톡 치는 석진의 행동에 지민은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레 석진의 등에 업혔다.


“무겁죠..?”

“아니요? 너무 가벼워서 내가 지금 솜털을 업었나, 싶은데?”

“아~ 거짓말.”

“프흐흐. 근데 진짜 안 무거워요.”


나도 친구 결혼식만 아니었으면 같이 산행했을 건데. 나 안 갔을 때 다쳤다니까 좀 속상하다. 여기 있어 봐요. 진짜 금방 다녀올게요. 라며 석진이 나간 휴게실 안에서 지민은 무릎만 매만졌다.


“허으.”

“뛰어왔어요?”

“진짜 금방 왔죠?”


눈 몇 번 깜박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돌아온 석진에 지민이 놀라는 사이에, 석진은 테이블 위에 가방 속 물건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바지 올릴 수 있어요?”

“이렇게요?”


무릎 좀 만질게요. 이렇게 하면 어때요? 아아. 아파요. 이렇게는 어때요? 그건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묻는 석진에게 착실히 답을 하며 제 시선 밑에 있는 석진의 얼굴을 보는 지민의 얼굴이 미묘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김책임님 속눈썹 엄청 기네. 눈 깜박거릴 때마다 속눈썹에서 사라락 소리 날 것 같다. 모공이 하나도 안 보이네. 피부 엄청 좋다. 우와. 코도 엄청 높다. 눈도 똘망똘망하니.. 어? 넋을 놓고 석진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던 지민의 눈과 석진의 눈의 시선이 마주쳤다.


“프흐흐. 왜요?”

“네..? 네?”

“아니. 내 얼굴 너무 뚫어져라 보길래.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싶어서요.”

“아. 아뇨. 아무 것도 안 묻었어요.”

“잘생김도?”

“..네?”

“농담이에요. 자. 무릎 한 번 구부려 볼래요?”


통증이 온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에 비해 확연히 느껴지도록 편해진 감각에 지민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지민과 눈을 맞추며 훨씬 낫죠? 스프레이 한 번 뿌려줄게요. 라며 석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고마우면 저녁에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네, 좋아요!”

“그러면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요.”


일 잘해요, 라며 싱긋 웃고는 짐을 챙겨 석진이 휴게실을 나가고 나서도 지민은 한동안 휴게실에 서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린 핸드폰에 의해 정신을 차리고는 허겁지겁 사무실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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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즉흥적인게 제일인 것 같아요..😆

파핑은 시즌 3 분명히 일부 적어놨었는데 파일을 못 찾......겠다아아... 찾으면 챡챡 추려서 올게요..ㅋㅋ

방탄전자로 오세요는 ✋리맨물+알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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