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귀기 전의 이야기

*아카네도 나도 제정신은 아닌듯합니다 전개 두서없음 주의


평소와 다른 상태임에도 평소와 같은 모습을 연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상대가 오랜 세월을 보내온 사람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 상황이 좋아하는 마음을 자각한 다음 날이라면 더더욱. 짧았던 밤의 대화. 그 찰나의 순간에 깨달아버린 마음은 자신을 자신으로 있지 못하게 한다. 


평소처럼 흐트러지지 말자. 오늘도 열심히! 얼굴을 양 손에 묻고 근심 걱정 두근대는 심장소리 등등을 한숨에 담아 내뱉는다.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마주할 얼굴. 동요해서 좋을 것은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손을 얼굴에서 뗐다. 다시, 너와 함께하는 하루의 시작이야.


비장한 마음으로 방을 나선 것과는 달리, 정말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서류들은 어제 다 결제했고, 원정을 간 2부대가 돌아오려면 한참 남았으며, 평소라면 곁에 있어야할 그는 대련으로 인해 자리를 비웠다. 너무나도 느긋하고 맥빠지는 일상은, 바짝 들어간 긴장을 풀게 만들었다.


"정말, 이러면 이렇게 마음을 먹은 의미가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니?"


뒤에서 불쑥 인기척이 나타났다. 몇 년을 함께 지내온, 자칭 타칭 아카네의 보호자인 카센 카네사다. 오늘 그는 당번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긴장을 완전히 놓고있던 아카네는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내뱉었다. 


"으악!"


"이런이런, 비명이라니 우아하지 못한걸.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니? 얼굴이 어두운데. 고민이 있다면 말해보렴."


아, 평소를 연기하자는 다짐은 어디로 갔는가. 표정에서부터 심란함이 비쳤다면 행동은 말 할 것도 없었다. 밀려오는 창피함에 아카네는 카센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오래 알고지내서 금새 눈치챈걸까, 아니면 그 누가봐도 무슨 일이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안색이 어두운 것일까. 이런저런 잡생각이 뭉게뭉게 떠올라 아카네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말이 들리지 않는건지 고개를 더욱 숙이는 아카네의 모습에 카센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카네의 곁에 앉았다.


"걱정이 있구나. 괜찮으니 말해보렴."


그 말에 아카네는 빠끔 눈만 보이도록 고개를 돌렸다. 말해도 괜찮은걸까? 순간 아카네의 머릿속에는 카센이 길길이 화를 내며 결투를 신청하러 가는 것부터 오만가지 시나리오가 흘러갔다. 그래도, 카센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 사실......"


"주인."


하필 지금.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가. 와버렸다. 침착하자, 침착. 아무렇지 않은 상태를 가장하고 인사하는거야. 


"아, 대련 끝난거야 토모에?"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말을 하는 것이 좀 더 빨랐다. 이상해보이진 않았을까. 그가 자신의 상태를 눈치채지 않길 바라며 아카네는 할수있는 최대한으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렇게 된 거로구나. 알겠어. 그 다음은 점심식사 후에 이야기하자."


확실히 그럴 때긴 하지. 카센이 웃으며 자리를 떴다. 설마 카센에게 들킨건가. 안그래도 싱숭생숭한 마음은 카센의 발언으로 더욱 난장판이 되었다. 거기에 토모에와 마주한 상황까지, 안그래도 좋지 않았던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놀랄만큼 나빠졌다.


"주인, 무슨 일 있나? 안색이 좋지않다."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심란한 일이 있어서........."


아, 실수했다. 그 누구보다도 아카네를 염려하는 남사가 셋. 그중에서 무서울 정도의 충성을 보이는 남사가 둘. 토모에가 그 중 하나임은 오십여명 되는 남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심란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그 원인을 알아내고, 없애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그그그그 아까 미다레가 도와달라던게 있어서 가볼께 미안해 토모에!"


"....?"


누가봐도 버벅거리는 말투와 몸짓으로 급히 자리를 떴다. 아, 들켰을까? 역시 들켰겠지. 아무리 눈치없는 사람이어도 아까처럼 행동하면 적어도 무언가 이상함은 알아챌 것이다.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도 아까 핑계를 댔기에 미다레를 찾아야 한다. 대강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하면 조금의 놀림은 있겠지만 어울려 줄 것이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을 손등으로 식히며 아카네는 한숨을 쉬었다.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아카네의 뒤를 토모에는 쫓지 않았다. 무언가 어두웠던 표정과 갑작스레 붉어진 얼굴. 저토록 당황한 표정까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뒤를 쫓아가도 좋은 반응이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기에, 토모에는 조용히 뒤를 돌아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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