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이 또 마지막으로 향해 가는 이 시점, 가장 강렬했던 반전이자 클리프행어였던 시즌 2 마지막화가 끝나고 나온 레이첼 블룸의 인터뷰를 번역해 둔다. 여기저기서 찾아본 레이첼 블룸의 인터뷰들 중 쇼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원문은 여기.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시즌1과 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첼 블룸은 누군가 우리를 염탐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는 Echo Park’s Andante Coffee Roasters 카페에서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한때 지금은 세상을 떠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것이었던 빈티지 선글라스와 한때 그의 쇼 Crazy Ex-Girlfriend 속 캐릭터 레베카 번치의 것이었던 붉은 Free People 페전트 드레스를 뽐내는 중이다. (“인터뷰 하고 나서 맥주 축제에 갈 거거든요, 그래서 맥주 마신 배가 들어갈 만한 드레스를 입고 싶었어요”, 자리에 앉은 지 90초만에 그가 설명해주었다) 흥미진진하고 뒤틀린 Crazy Ex-Girlfriend 시즌 피날레 결말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던 블룸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예의 그 홀로코스트 선글라스를 추켜올리고, 낮은 목소리로 음모를 꾸미듯 속삭인다. “우리 지금 작게 말하고 있는 거죠?” 그가 묻는다. “저기 앉은 남자가 내 말을 받아 적고 있는 건 아니죠?”

 블룸이 약간 피해망상적인 것도 이해할 만하다. 블룸이 공동 집필자이자 총제작자로서 참여하고 있는 Crazy Ex-Girlfriend는 최근 TV에서 가장 특이한 성공작 중 하나로, Freaks and Geeks’My So-Called-Life 같은 쇼들처럼 보통 탁월한 시즌 하나를 끝으로 종영을 맞는 괴짜 패배자 이야기다. 블룸과 공동 창작자 알린 브로쉬 맥케나의 머리에서 문득 떠오른 이 쇼는 원래 지난 2014년 쇼타임이 사갔지만 비참하게 버려진 전적이 있다. 2015년 CW가 이 쇼를 데려와 살려놓은 후, 지지부진한 시청률에도 두 시즌째 이어 가고 있다. 전통적인 인기작이나 미국적 취향(Bachelor 시리즈나 케빈 제임스 시트콤을 보라)을 생각해 보면, Crazy Ex-Girlfriend는 여전히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쇼다. 이 쇼를 생존시킨 건 모두가 인정할 만한 비평적 찬사와– 재디 스미스는 이 쇼를 일컬어 “절묘하다”고 했고 뉴요커의 에밀리 누스바움은 트위터에 이 쇼가 자신의 “패닉 룸”이라고 썼으며, 골든글로브는 작년 블룸에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안긴 데 이어 올해도 후보에 올렸다 – 주제와 형식 면에서의 남다른 개성이라는 게 일반적 의견이다.

 Crazy Ex-Girlfriend는 다크 코미디 뮤지컬 풍자극인 동시에 정신 질환에 대한 깊은 고찰이자 아직까지도 널리 쓰이는 백마 탄 왕자 판타지의 전복이며, 여성들의 우정에 보내는 러브레터이고 여성의 삶을-과장할 위험을 무릅쓰고- 완전히 새로 해체한 작품이다. 이 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도 있고-최근 에피소드에서는 한 캐릭터가 침착하게, 그러나 충분히 심사 숙고해서 임신중단 시술을 받는 과정을 다뤘다-완전히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그리기도 한다. 블룸이 연기하는 레베카는 망상 경향이 있는 불안장애와 우울증 환자로, 시리즈 첫 화에서 유난히 심각한 우울을 겪던 중 뉴욕 거리에서 한때 여름 캠프에서 사귀었던 남자친구 조쉬 챈(빈센트 로드리게즈 3세)과 우연히 마주친다. 그녀는 단숨에 연봉 높은 탑 로펌 변호사 자리를 때려치우고, 마침내 행복을 찾고 말겠다는 희망을 가득 안고 조쉬를 쫓아 나라 반대편 캘리포니아주 웨스트코비나로 간다. 가망 없어 보이던 두 사람은 첫 시즌 피날레에 이르러 빨간 스포츠카 위에서 ‘일을 치르며’ 다시 함께하게 된다. 금요일에 끝난 시즌 2는 스스로 원한다고 믿었던 모든 것-레베카의 경우, 꿈꾸던 남자와의 동화 같은 결혼식-을 얻고 난 뒤에도 너무나 불행하고, 그러다가, 이런 망할, 그런 감정의 풍파에 맞서는 동안,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해버리는 바람에 그것을 잃게 되는 이야기다. 이 시즌은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서 눈앞에 닥친 조쉬의 파멸을 계획하는 레베카와 들러리들을 담은 항공 샷으로 마무리된다. “쇼가 아주 어두워질 시점이에요,” 블룸은 신나서 속삭인다.

 여성이 쇼에 자신의 페르소나를 등장시키면 그냥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거라는 편견이 짜증날 정도로 만연해서 하는 말인데, 블룸 개인은 레베카와 전혀 닮은 점이 없다. 레베카의 눈에 보이는 불안정함도, 공포에 질린 기운도 그의 것은 아니다. 29세의 블룸에게는 스스로를 완전히 파악하고 자신의 내면을 물끄러미 응시한 후, “좋아, 알았다”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굳건한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함께 보낸 90분 남짓 동안, 블룸은 자신이 앓았던 우울증과 버터 크로와상 사이 화제들을 손쉽게 오가며 날카롭고 재치 있는 시선으로 자신이 관찰한 바를 이야기했다. 그는 머릿속 생각을 늘어놓으며 설명까지 해주느라 굉장히 말이 많았다. 자리에 앉은 지 몇 분 되지 않아, 그는 튀어 오르듯 일어나서 커피를 사러 줄을 서더니 지갑을 열어보고는 다시 돌아온다. “썅, 신용카드를 두고 왔어,” 그는 말한다. 미처 내 카드를 권하기도 전에, 그는 “솔직하고 털털한 스타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이 모든 상황에 웃음을 터뜨렸다. “일부러 이런 건 아니에요. 너무 연출된 상황 같네,” 그는 말한다. “아니라고 맹세합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나 던햄 타입 스타들의 시대에 남발하는 문구를 사용하자면,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거침없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 그렇다. 하지만 다른 ‘진짜 여자’들과 블룸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 성격이 전략적으로 계산된 것이라거나 털털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블룸은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는 진짜로 이상하고, 강박적일 정도로 솔직하고, 돌덩이를 손으로 가리키고 그걸 채 뒤집기도 전에 밑에서 기어가는 벌레에 대해 허를 찌르는 농담을 지어내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소식은, 그가 자신의 그 모든 불편하고 꼴사나운 아이디어들을 Crazy Ex-Girlfriend에 깔때기로 곧장 들이부었다는 것이다. 블룸은 한 인간으로서도 예술가로서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고, 모든 것을 코미디로 재창조하려는 의지에 불탄다-그와 그의 쇼는 모든 사회적 규범을 천진난만하게 무시한다. 캐리 브래드쇼가 항문 섹스를 두고 낄낄거렸다면; 레베카는 카메라 앞에서 항문 왁싱을 한다. 밀라 쿠니스가 허핑턴 포스트에 동일 임금에 관한 사설을 쓴다면; 블룸은 뉴욕 타임즈에 어린 시절 변기 사용을 거부한 경험을 기고한다.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스스로를 파헤치는 블룸의 보기 드문 재능은 개인적 삶과 일 사이의 선을 흐리긴 했지만, Crazy Ex-Girlfriend를 이토록 대체 불가능한 단 하나의 쇼로 만들었다. 블룸은 레베카가 아니지만, Crazy Ex-Girlfriend 자체가 블룸이다.

 이렇게 구별해서 말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에게 Crazy Ex-Girlfriend를 보는 것은 – 블룸의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쇼 자체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 같기 때문이다. 쇼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데, 벤 다이어그램으로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 우울증 환자들, 연극적인 사람들, 불안에 시달리는 유대인 여성들, 표현력이 과하게 좋은 연극 하는 어린이들, 병적인 괴짜들, 양념 광고 보고 우는 사람들 – 인생 내내 ‘너무 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그 과함에 고삐를 매라는 명령을 받아온 사람들. Crazy Ex-Girlfriend는 이 고삐를 부수고, 불을 지르고, 연기가 솟아오르는 동안 큰 소리로 깔깔 웃는다. 블룸이 연기하는 레베카가 버터 광고를 보고 공황 발작을 겪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기름진 자아 인식의 파도를 맞은 기분이었다.

 블룸도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유대인들의 생활 환경이랑 좀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나 같은 여자들을 자주 보거든요,” 그는 말한다. “섹스에 집착하면서도 섹스를 두려워하고. 죽음에 집착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뮤지컬을 좋아하면서 그것 때문에 놀림 받고. 이런 사소한 모순들이요. 그리고 남들과 좀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다: 같이 커피를 마시기 며칠 전 Crazy Ex-Girlfriend 촬영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인사 대신 나를 껴안고,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혼란스러워 우리가 전에 만난 적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정말? 확실해요?”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농담을 던졌다. 그는 과장해서 뒷걸음질을 치더니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처음부터 시작해봅시다,” 그가 말했다.


블룸은 싱글 유대인 자전거 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아직도 디즈니랜드 연간 회원권이 있는 “뮤지컬 덕후” 부모의 외동아이로 태어나 캘리포니아 맨하튼 비치에서 자랐다. 해변에서 한 시간 거리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동시에 모욕을 줬던 “탄탄한 몸매의 금발 서퍼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았고, 스스로 설명하기를 “어두운 것들에 집착하면서도 소름 끼치게 안 그런 척하는” 신경증 환자가 되었다. 그는 손드하임과 토드 솔론츠 영화에서 안식을 찾았다. “학교에 가면 으레 이러고 [“Adelaide’s Lament”(*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넘버)를 부른다], ‘A person can develop a cold’(*Adelaide’s Lament의 가사 중 일부), 사람들은 그랬죠,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블룸은 웃는다. “영화 인형의 집에 어서 오세요를 본 게 진짜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왜냐면 [치어리더들이 돈 와이너에게] ‘씨발 너 레즈비언이냐?’ 하고 묻는 장면을 보고 ‘아, 나 혼자 이런 게 아니구나’ 깨달았거든요.” 대화 내내 여러 번 그랬듯, 블룸은 나에게 주의를 돌리며 그 경험이 공통된 것임을 확인했다. “잘 아실 거에요,” 그가 말한다.

 블룸은 이 모든 게 “테일러 스위프트도 고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대”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그 모든 게 자신이 의도했거나 ‘이제 와 돌아보니 오히려 좋았던’ 경험이 아니라고, 심지어 “다 꺼져, 나는 곧 스타가 될 거니까” 식으로 즐기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내 의지로 이상한 애가 되려고 한 적 없어요,” 그는 말한다. “잘 나가 보이려고 하거나 적당히 어울리려고만 해도 비참하게 실패했죠. ‘자, 너의 광기를 뽐내봐!’ 타입은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인기 많아지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인기 많아지지? 알겠다, 탤런트 쇼(*아마추어가 데뷔할 목적으로 하는 쇼)를 하면 되겠군!’ 그러면서 그게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 전혀 몰랐던 애였죠.”

 Crazy Ex-Girlfriend가 아직 막연한 아이디어 형태로조차 존재하지 않던 옛 시절, 블룸은 이 트라우마를 일종의 일종의 디지털 탤런트 쇼로 재창조했다: 유튜브에 영상 몇 개를 올린 것이다. 이 영상들은 이후에 브로쉬 맥케나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가 블룸에게 연락을 취하고 결국에는 함께 Crazy Ex-Girlfriend라는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일조한다. 2010년 영상 “Fuck Me, Ray Bradbury”에서는 23살의 블룸이 브리트니 스피어스 코스프레를 하고 나이든 SF 작가에게 “화씨 69도 살짝 읽어보자” 고 애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1년의 “I Steal Pets”에서는, 블룸이 광기 서린 미소를 띄고 침착하게 “나는 인기 있는 사람들의 애완동물을 훔쳐서 그 사람들처럼 꾸며놓고 내 창고에 가둬 둡니다.” 하고 설명한다. “전 지금도 그 영상 좋아해요,” 블룸이 말한다. “내 영혼이에요.”

 아웃사이더로 자란 블룸의 경험은 Crazy Ex-Girlfriend에서 레베카의 이상 행동이 아니라(“레베카는 전형적인 동부 쪽 유대인이니까, 뉴저지에서 자라 하버드를 나온, 완전 전형적 모범생 타입 [브로쉬 맥케나]에게서 많이 따왔죠”) 그렉(산티노 폰타나) 캐릭터에 더 잘 드러나 있다. 비꼬는 농담을 잘하는 알코올 중독 바텐더로, 행복에 젖은 서퍼들과 요기들 사이에서 자라 레베카의 집착적인 지적 면모에 빠지는 그렉은, “많은 면에서 그냥 저 자신이죠,” 블룸은 인정한다. 다른 웨스트코비나 사람들은, 그가 말하길,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에게서 따온 캐릭터들이다. 나는 확인을 위해 잠시 그의 말을 막는다: 어린 시절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미소 짓는 쇼를 만들었다고? “그래요,” 그는 말한다. “그래도 남캘리포니아에 대한 이 쇼를 만드는 지난 1년 반 동안, 나와 함께 자란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좀 이해하게 됐어요. 그 사람들 그러니까, 이런 거죠, ‘헤이 맨, 그냥, 뭐, 현재를 즐겨.’ 이제 정신이 건강해져서 그런지 옛날보다 훨씬 캘리포니아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블룸이 말한 건 어릴 때부터 간헐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불안장애, 우울증, 그리고 강박장애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긴 말과 글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나에게 NYU에서 뮤지컬-연극 학사 과정을 밟는 동안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은 많은 부분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잠 못 자는 날들”이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 이 증상들이 발발했던 것은 Crazy Ex-Girlfriend 파일럿 에피소드를 쓰기 시작했고 또 지금의 남편인 댄 그레고르와 약혼한 해였다. “이 모든 걸 잃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는 회상한다. “불안장애가 있으면, 그 불안장애에 대해 불안해하게 되고, ‘불안장애 때문에 내 인생은 끝났어,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또 이렇게 불안해지겠지’, 뭐 이렇게 돼요. 꼬리 삼킨 뱀 같은 거죠.” 그 시기를 쇼에 녹여내기도 했다. “레베카가 올려다보며 ‘사람이 안 자고 얼마나 버틸 수 있지?’ 하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그랬어요. 이 쇼에선 남자 하나 때문에 나라 반대편으로 이사하는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려고 해요. 현실적인 관점으로 이 사람을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로맨틱 코미디 버전으로는, ‘그녀는 슬프고 고양이를 키워.’ 현실 버전으로는, ‘이 인간 심각한 우울증이 있네.’”

 명상, 인지행동학적 치료,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려는” 의지가 정신 건강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이제 불안장애나 우울증이 예술적 진보에 영감을 준다는 로맨틱한 관념을 혐오한다. “그거 내 예술 활동이랑 별로 상관없어요,” 그는 말한다. “왜냐 하면 나는 그런 것들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면서 작가로서 발전했거든요.”

 사실 로맨틱한 관념들을 파괴하는 건 블룸의 특기다. 시즌 1의 결말이 상대적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이야기였던 반면, Crazy Ex-Girlfriend 시즌 2 피날레는 블룸이 처음부터 계획해놓았다고 하는 새롭고 장대하고 잔인한 이야기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알린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를 비롯해] 로맨틱 코미디를 써 왔고, 나는 항상 디즈니와 클래식 뮤지컬들을 사랑했어요. 그 서구적으로 이상화된 사랑: 로맨틱한 사랑, 집착,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를 획득하는 이야기들이요. 우리는 항상 그런 것들을 놀려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죠,” 그는 말한다.

 그러고 나서 적절하게도 블룸은 이 쇼에 맞는 형식이, 말하자면 FelicitySex and the City-블룸은 전자를 안 봤고, 후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캐리가 빅과 해피엔딩을 맞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무책임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가 아니라 Breaking Bad처럼 기존의 가치관을 산산조각 내는 형식이라고 말한다. “쇼 제목이 ‘분별 있는 여성,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다’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 말고 진짜 행복을 추구해보지 못한 사람의 내면을 탐구한다는 게 좋았어요. 그가 자신이 불행한 이유의 핵심을 찾아내려면 어느 정도 성장해야 합니다,” 그는 말한다. “쇼라는 건 늘 그런 거죠: 누군가 완전히 망가지고,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게 되죠 – 그렇게 망가졌을 때에야 다시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 있어요.”

 블룸이 갑자기 일어선다. “화장실 갔다 올게요.” 그는 몇 분 있다 돌아오고, 나는 그의 선글라스를 칭찬하며 어두운 화장실에서 그걸 착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감탄을 보낸다. “남편의 돌아가신 할머니 안경에 렌즈를 바꿔 끼운 거에요,” 그는 말한다. “얘를 정말 사랑해요.” 나는 그것을 탁자 위에 두고 갔다면 내가 훔쳐갔을 거라는 농담을 던진다. “뭐, 그럼 이제 당신한테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영혼이 달라붙겠죠,” 그는 차분하게 말한다.


 “내가 정상인 되기 수업을 빼먹은 걸까?” 블룸은 레베카가 가끔은 일도 하지만 대부분 베스트프렌드이자 동료인 폴라(도나 린 챔플린)와 함께 앉아 각종 음모를 꾸미며 시간을 보내는 Whitefeather and Associates 로펌 세트장 안 회의실에 앉아 있다. 레베카의 LOFT 스타일 출근용 원피스를 입은 블룸은, 발을 회의실 책상 위에 올리고, 입으로는 자신이 쓰고 있는 12화에 들어갈 노래 가사를 중얼거리거나 멜로디를 붙여 흥얼거리기를 번갈아 하며 맹렬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블룸과 함께 작사하는 잭 돌젠과 아담 슐레징어는 그의 양 옆에 앉아 새로운 의견이나 비평을 내놓기도 한다. 몇 분에 한 번씩 스탭이 들어와 다정하게 블룸을 부르고, 그러면 그는 자리에서 튀어올라 중앙 사무실로 달려가서, 챔플린과 함께 11화의 짧은 장면을 촬영한다.

 블룸은 최소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5일 동안 이렇게 넋을 놓아가는 여자를 연기하면서 자기 넋은 꼭 붙잡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가 연기, 각본 집필, 작사, 제작 업무, 거기다 한 번은 스무디 주문까지 해내는 일은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가 노트북에 완전히 집중해 있을 때면 나는 촬영장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그의 동료들에게 그가 어떻게 미쳐 버리지 않고 이 모든 일들을 해내는지 물어보았다.

레베카의 오픈마인드 바이섹슈얼 상사 대릴을 연기하는 피트 가드너는 처음에 블룸이 “완전히 미쳐버릴 것” 이라고 장담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군요,” 그는 여전히 감명 받은 눈치다. “절대 무너지지 않았어요. 이 모든 게 레이첼의 특기인 것 같아요. 해낼 만한 그릇인 거죠. 일이 정말 많지만 – 그러니 늘 그냥 재미있기만 하진 않겠죠- 자기가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여러 일을 유연하게 처리하는 블룸 덕에 세트장 분위기도 특별히 명랑해졌다. 가드너는 오디션에서 도시 이름 하나를 잘못 말해서 다 망쳤다고 걱정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런데 레이첼은 이러더군요, ‘그냥 계속하세요!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저도 그냥 했어요. 그 눈에서 애드리브에 대한 갈증 같은 게 보였어요.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 이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죠. 요즘도 뭘 할 때 보면 아직 그 에너지가 있어요.” 블룸의 이런 질주 성향에 단점이 있다면, 아주 잠깐 사이에 흥미를 잃는다는 것이다. “가끔 열심히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그가 시선을 왼쪽으로 한 번 돌리고, 그 다음에 한두 문장 정도 이어가다 보면 아는 거죠, ‘이 사람 이제 여기 없구나. 방금 떠났어,’” 가드너가 웃는다.

 블룸이 오늘 작사 중인 노래, “(Tell Me I’m Okay) Patrick” 은 신경쇠약에 걸린 레베카가 (세스 그린이 연기하는) 패트릭이라는 택배 배달부에게 불러주게 된다. 시즌의 이 시점에서, 레베카가 앞서 언급한 신경쇠약을 눈에 보이게 겪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녀는 막 엘리베이터 안에서 섹시하지만 중도 우파인 상사 나다니엘(스캇 마이클 포스터)과 키스했고, 그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조쉬와 2주 뒤에 뚝딱 결혼식을 치르기로 해버린 차다.

 블룸은 자판을 두드리면서 공동 작사가들에게 이 노래가 정신질환에 대한 건 아니라고 설명하는 중이다. “부담 주는 건 아니지만, 이제 내 삶은 당신 손에 달렸어요/부담 주는 건 아니지만, 이제 난 당신 책임이에요?” 슐레징어가 제안한다. “레베카가 자살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는 싫어요,” 블룸은 말한다. “그냥 이 정도는 어때요, ‘나 괜찮은 건지 말해줘요, 패트릭 / 부담 주는 건 아니지만 꼭 알야겠어요’?” 슐레징어가 답한다. “좋아요 – ‘당신 직업이 정신과 의사는 아니죠, 알아요 / 하지만 한 번 시도해봐요!’” 그가 박자에 맞춰 타자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정신과’ 가 맞는 말이긴 한데, 어감이 너무 의학적이네요. 레베카는 가벼운 확인 정도를 원하는 건데.”

 완성본에 이르러 아예 “가벼운 확인” 구절을 가사로 얻게 된 이 곡은 시즌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초현실적인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발라드로, 중간에는 택배 박스가 혼자 피아노도 친다. 세트장에서 브레인스토밍할 때 사람들을 가장 많이 웃긴 부분은 레베카가 노래를 멈추고 딴소리를 중얼거리는 파트로: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패트릭, 학교에서 정상인 되는 법을 가르치는 날 내가 아팠던 걸까요?” 블룸은 겁에 질린 그린에게 울부짖는다. “매뉴얼이라도 있나요…? 패트릭, 비결이 뭔지 말해줘요. 매뉴얼 있죠? 당신한테 있죠? 있는 거 다 알아, 패트릭! 당신 트럭 안에 있는 거 다 안다고, 패트릭!!!”

 ‘정상인 매뉴얼’은, 블룸이 말하길, “태어난 순간부터” 그 자신의 판타지였다. 지상파 텔레비전에서 생리 중 섹스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그 특이 성향 때문에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그는 아직 무리에 위화감 없이 섞이고 싶은 어린 시절의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 ‘진짜 여자’들의 시대엔 금지된 거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레베카처럼 저도 자라는 내내 비정상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평범해지고 싶죠. 평범한 아내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과 어울리고요,” 그는 말한다. “정상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 정상성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고 파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블룸은 배우와 관객 사이, ‘진짜 여자들’ 과 ‘진짜’ 진짜 여자들 (불안에 시달리고, 양념 광고에 귀를 기울이고, 블룸의 쇼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며 위안을 얻는) 사이에 놓인 가드레일을 힘차게 들이받는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감출 수 없는 성향 때문인 것 같다. “페이스북 메시지가 많이 오는데, 사실 제가 직접 다 체크하거든요,” 나이 어린 Crazy Ex-Grilfriend 팬들의 반응에 대해 묻자, 블룸이 말한다. “남자 얘긴 많이 없고, 제가 보기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나 LGBT 청소년들이 ‘대릴의 스토리 라인이 정말 중요해요’, ‘저 레베카 같아요. 늘 속상하고 제 자리를 못 찾는 느낌이에요’, 이런 얘기를 하죠.”

 메시지에 답장을 하느냐고 물어보자, 또 다시 전형적이지만 솔직한 대답이 돌아온다. “정말로 시간이 없어요,” 그가 말한다. “페이스북에선 자동 응답 메시지가 가요. ‘메시지 감사합니다. 다 읽어볼게요. 답장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어요.’” 나는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부담이 되는지, 어린 레이첼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책임감이 무겁거나 두렵지는 않은지 묻는다. “겁은 안 나요,” 그는 말한다. “저는 공포가 뭔지 잘 압니다. 무섭지 않아요. 내가 이 쇼를 보고 있다는 상상을 해봐요. 확실히 제 약점이 많이 드러나죠. 하지만 이 쇼는 저 개인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고, 예술은 감정을 교환하는 거니까, 그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거의 두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고, 나는 블룸에게 귀한 휴일을 즐기며 맥주를 양껏 마시러 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나에게 이것저것 더 물어보기 시작한다. 로스 앤젤레스에서 누구를 더 인터뷰하는지? 어디에 묵는지?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 있는 사람이 맨디 패틴킨이 맞는지? 그가 에미 시상식 뒤풀이에서 맨디 패틴킨을 만났을 때 그가 블룸에게 “스스로를 망치기엔 너무 재능 있는” 사람이니 담배를 끊으라고 설득해 결국 성공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블룸이 마침내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나는, 더 암울해진, 마약 공장에서 영감을 받은 세 번째 시즌이 팬들에게서 외면당할까 봐 두렵지는 않냐고 묻는다. “당연히 두렵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좋은 쇼를 만들려면 감수해야죠. 우리는 야망 넘치게도 뮤지컬 TV 쇼를 무려 지상파에서 방영할, 평생 다시 없을지도 모를 기회를 얻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만들고 싶은 쇼를 만드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만한 걸 만들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까요.”


*레이아웃과 사진, 동영상 등의 편집은 모두 원문을 따랐다. 다만 볼드체는 내가 한 편집으로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느낀 구절들이다. 


Haey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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