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warning

본 소설은 체벌 요소, 폭력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W. 편백









야, 이제 좀 일어나지?


S가 개별의 방(더 정확히는 개별이 지내는 방) 문을 쿵쿵 두드리며 말했다. 애가 문을 꼭 잠가 둬서 열지도 못하고 노크만 하고 있다. 물론 따서 여는 방법도 있지만 개별이 개인 공간에 침입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히 반응하여 S의 집에 오자마자 제시한 조건 때문에 시행하지 못했다.


첫째, 본인이 지내는 공간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 것

둘째, 사생활 간섭 금지

셋째, ND 관련 업무 지시 및 교육 금지


누가 보면 지가 갑인 줄 알겠어. 두 번째 조건까지는 상대가 개별임을 떠나서 사람과 함께 지내면 당연지사로 지켜야 할 덕목이었기에 그렇다 치고, 세 번째는 또 뭐람. 휴가를 아주 지대로 즐길 생각인 것인지 입주부터 싹을 잘라서 ND와 관련된 얘기도 못 하고 있다. 모두 썩 내키진 않았지만 부당한 요구가 아니었기에 하는 수 없이 받아들여 주기로 했다. 대신 개별도 S와 함께 사는 만큼 그의 공간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오늘은 개별이 S의 사가에 들어온 지 닷새 째 주말 낮이었다.


그런 계약이 성사 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S가 개별의 방문을 쾅쾅 두들기는 이유는 애가 심각하게 오랫동안 방에서 안 나오기 때문이었다. 자는 건지 아니면 뭘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침엔 자나 보다,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고, 점심 너머도 그러려니 했는데 3시가 넘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더니 이윽고 시간이 다섯 시를 향해 갔다. 이쯤 되니 자다 돌연사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움직이고 말았다.


정직원으로 승급하면서 ND에서 최신형 휴대폰과 GPS를 지급했고, 이를 감독하는 이는 S였기에 출근해서 간간히 확인해보면 항상 집이었다. 안 움직이는 게 좀 수상해서 전화를 해보면 잘 받았다. 바깥 소리가 안 들리기도 했고 잔뜩 졸린 말투였던지라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개별은 S의 집에 오고 부터 매일 잠만 잤다. 무슨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아니고 퇴근하고 오면 자고 있길래 원래 얘가 좀 일찍 자는 건가 했더니 토요일이었던 어제도 내내 방 구석에서 안 나오고 밥 달란 소리도 안 하고 저녁까지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 밤이 오고 나서야 좀비 얼굴을 하고 화장실로 가는 걸 보고 그간 계속 자고 있구나, 예측하고 있을 뿐.


분명 일원이 하나 늘었는데 혼자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절 소통도 없고 되려 얘가 휴가 전일 때 보다도 덜 마주치고 있다. 봐도 아주 잠깐 스치듯이 보는 게 다다. 그게 뭐 잘못 됐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런 반응도 없자 S가 다시 한 번 문을 쿵쿵 두드렸다.


또 묵묵부답이다. 뭔가 꺼림칙해지려고 해서 문을 따야겠다, 마스터키를 찾으러 돌아서는데 '철컥...' 힘 없이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드러난 개별은 머리에 새 집을 짓고 눈을 비비고 있었다.


하, 살아있긴 했나 보네.



"하루 종일 자냐, 넌?"



S가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휴식'이란 이렇게 나태하게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하고 잘 챙겨 먹고 자기 계발도 하는, 쉬는 것 조차도 효율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살아온 그이기에 개별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저러다 근손실 오는데. 이런 생각만 들 뿐.



"그만 자. 가서 세수하고 와."



S가 제 팔을 억지로 끌어당겨 방 밖으로 끌어내자 '아... 뭐야.' 탄식하며 짜증을 부렸다. 뭔 일이라도 난 줄 알았더니 그냥 깨운 거였어? 억지로 일어난 탓에 개별은 잔뜩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걸 알 리가 없는 S는 개별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다.



"계약 위반 아닙니까?"



막 일어나서 까끌까끌한 목소리로 말한다. S가 미간에 힘을 주고 개별을 내려다봤다.



"생활 패턴 꼬이면 나중에 너만 더 힘들어 지는 거 몰라?"

"그건 팀장님이 신경 쓰실 게 아니,"

"매 가져와?"



위협적인 말투에 개별이 입을 다물었다. 더 토 달면 한 대 칠 기세였다. 또 매로 협박질이야, 짜증나게... 저 인간은 7일 7 출근이나 해버릴 것이지. 왜 아닌 주말에 단잠을 깨우고 난리란 말인가.


질린다는 얼굴로 S를 노려보던 개별은 휴가 중에 이런 허접한 일로 맞기는 싫은지 하는 수 없이 욕실로 갔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머리칼을 헤집는 녀석을 탐탁치 않은 얼굴로 바라보던 S가 혀를 쯧 찼다. 차마 표정 가지고 뭐라 하진 못했다. 쟤 말마따나 내가 신경 쓸 바도 아니고 간섭인 건 맞으니까.


근데 왜 이리 빡치는 거지.


열을 식힐 겸 주방으로 와 냉수나 들이켰다. 잠시 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개별이 젖은 머리를 털고 거실로 나왔다. S를 지나쳐 자연스레 컵을 들고 물을 따라 마신다. S는 그런 개별을 눈으로 쫓았다.



"너 집에 있으면 뭐 하냐."

"...계약 위반입니다."



노이로제 걸리겠네. 그 놈의 계약 위반. 뭐만 하면 계약을 거론하며 대화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개별에 S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계약이고 자시고 간에 그냥 팰까? 지장 찍은 것도 아니고 구두약속 일 뿐인데.


그러면 또 쟤가 날 싫어하겠지.



"너 나랑 대화하기 싫어?"



S가 잔잔한 말투로 따져 물었다. 수분을 충전하던 개별이 컵을 반만 비우고 S와 눈을 마주쳤다. 물잔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머뭇거리던 개별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대답을 뱉었다.



"...하기 싫다기 보단 굳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에 S가 안면에 힘을 서서히 풀었다. 대화하기 싫은 건 아닌데 굳이 말하고 싶진 않다는 건, 그거나 그거 아닌가? S는 개별을 한참이나 말 없이 응시했다. 안 그래도 조용한 집에 사람 소리 마저 안 들리니 정적 그 자체였다.



"...왜."

"뭐라고 하실 거 잖습니까."



S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말했다. 분명 그럴싸한 이유인데 기분이 좀 안 좋았다. S는 대꾸없이 개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싱크대로 발을 옮겨 물컵을 헹궜다.



뭐야 저 표정은...?



물어봐서 대답했는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뭔가 나 때문인 것 같은 느낌에 개별은 S를 흘깃 거렸다.


["요즘엔 S가 잘 안 때리나 보네?"]


대략 일주일 전에 Medi 팀장님이 내게 서운함을 표시했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엔 내 안부나 물어보는 건 줄 알았는데


["아~, 그래서 잘 안 찾아 오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본론을 말하기 전에 쌓은 빌드업이었다. 아니 어쩌면 비꼬았을 뿐이지 처음부터 그 말의 의미는 '너 왜 나 보러 안 와?'의 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개별은 S의 어딘가 굳어 있는 표정을 살피며 방금 제게 '너 나랑 대화하기 싫어?' 그 물음을 되새겼다. 설마 저 말도 다른 핵심이 있는 것인가.



"...서운하십니까?"



말투는 조심스럽고 내용은 직설적인 질문을 했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제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이것이었다.


'서운하다'라.


모르겠다. 서운할 이유가 있는 건가. 녀석은 우리 집에 지내면서 거슬릴 법한 행동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나가서 사고를 치지도 않았고 제게 협박했듯이 집을 어지럽히지도 않았었다. 천방지축으로 굴어 동거하는 내내 정신 사나울 줄 알았는데 더럽게 평화롭다. 물론 재앙을 바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인데.


그럼 나는 왜 지금 기분이 안 좋은 걸까. 같이 사는데 너무 남남처럼 지내서? 난, 무슨 기대라도 한 건가. 같이 살면서 조금은 더 가까워 질 거라는 그런 바램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렇게 대단한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선을 그으니 빈정 상하는 것 같다.


툭, 컵을 건조대 위에 올린 S가 싱크대를 짚고 개별을 응시했다.



"좀."



그 짧은 단답에 개별이 벙 찐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긴 했으나, 개 팀장의 입에서 정말 저 답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 서운하다고...?



"...뭐, 어쩌라는..."

"뭐, 인마?"



예상을 벗어나는 개별의 대답에 S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껏 말했더니 '어쩌라고?' 라는 대답을 뱉으니 기분이 잡칠 법도 했다. 



"아니, 그,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 아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S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시겠지. 쟤랑 지내 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쟨 웬만한 말에 악의가 없었다. 난 여태 그걸 몰라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쟤를 쳤다. 


진급식 날에도 애를 조지려고 했으나 J가 얘랑 할 말이 있다며 보스 있는 데서 애를 데리고 튀었다. 걔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중에 Medi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J한테 소식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다짜고짜 ["별이는 말 하는 법을 잘 모를 뿐이지 나쁜 애가 아니야."] 라며 만류했었다. 진급식에서는 내가 싫다고 말한 게 아니라, 나랑 살면 휴가를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 뿐이라고. 보스한테 개기려고 한 것도 아닐 거고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거일지도 모른다고.


걔가 다른 팀장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의도적으로 내 기분을 해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나 뭐라나. 얘한테 돈 받는 것도 아니면서 변호질 한 덕에 쟨 다행히 내 손에서 살아남았다.


Medi의 논변에 의하면 방금 개별이 한 말도 '내 알 바냐?' 라는 의미가 아니라 진짜 '어쩌면 좋지?' 라는 순수한 의도시겠지. 


근데 나도 모르겠다. 쟤가 물은 것에 대해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애당초 마음이 없는 애한테 좀 친근해지자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간섭 받기 싫다는 놈한테 뭘 어쩔 쏘냐.



"됐다, 네가 뭘 어째."



뾰족한 수가 없으니 별 수 없지. S는 개별의 빈 컵까지 가져가 씻은 뒤 방으로 홀연히 들어갔다.








-








서운하다

: 마음에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있다.

섭섭하다

: 서운하고 아쉽다.



뭔 국어사전이 뭐 이따구야? 서운하다는 건 섭섭한 거라 그러고, 섭섭한 건 또 서운한 거란다. 개별이 답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여튼 Exi. 마음에 안 든다.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액정을 막 두드렸다. 그러더니 뭐가 눌린 건지 추가적인 내용이 나왔다. 개별이 미간을 찌푸리며 내용을 살폈다.



2. 없어지는 것이 애틋하고 아깝다.

3. 기대에 어그러져 마음이 서운하거나 불만스럽다.



뭐가 없어진다는 거지? 난 아무것도 가져간 적이 없는데. 이건 패스하고 3번... 은 또 기대에 어그러진다고? 그럼 개 팀장이 뭔갈 기대했다는 소린가...? 뭐가 불만인 건데. 내가 딱히 잘못을 하지도 않았고 얌전히 있었구만. 그럼 기대에 충실하게 임한 거 아닌가? 알면 알 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상황에 개별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은 조심히 다룰 최신형 휴대폰을 바닥에다 아무렇게나 던진 개별이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빙글 빙글 돌아가는 생각들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10번, 아니 김준수한테 물어볼까?


몸을 뒤집어 다시 휴대폰을 가져왔다. 화면을 열자마자 곧장 노란 아이콘을 눌렀다. 이름을 굳이 찾지 않아도 맨 위에 준수의 채팅방이 떠 있었다. 뭘 그렇게 보낸 건지 빨간색 아이콘에 300+가 찍혀 있다. 미리 보기엔 '시발놈' 이라 떠 있다.


왜 욕질인가 싶어서 들어가 보니 'ㅁㅎ'로 시작해서 'ㅇ'만 오조 오억 개로 도배를 해 놨다. 생각해보니 휴가 첫 날에 계속 연락질 해서 알림을 꺼뒀던 것 같다. 매일 같이 내게 메세지를 보냈으나 내가 안 보니 저렇게 도배를 하다 마지막에 욕을 보낸 거다.



[와 이 새끼 이걸 이제야 보네]



아 씨. 깜짝이야. 연락을 보자마자 메세지가 하나 날아와 눈을 땡그랗게 키웠다. 내가 볼 때까지 벼르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ㅇㄷ]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어디냐고 물어 보는 준수에 개별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ㅈ]



그거 한 글자 치는데 뭐 그렇게 조심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머함]

[걍 있음]

[개새끼야]

[걍 있었으면서 왜 답장 안 했냐?]

[ㅅㅂ 알림 껐냐?]

[ㅈ빡치네]



갑자기 급발진이야. 걍 있다는 소리에 욕부터 박을 줄은 몰랐다. 아 물론 닷새 동안 기다리게 한 건 맞지만 지가 귀찮게 하지를 말든가. 벌써 기가 빨리는 기분에 개별은 한숨을 푹 내쉬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됐고]

[만나실?]



어플을 나가기 전, 채팅방 미리보기에 뜬 내용에 개별이 잠시 고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만나서 물어 볼까?



[아니 ㅅㅂ]

[이 새끼 또 씹네]

[야]

[야]

[야!!!!!!]



혼자서 별의 별 쌍욕을 퍼붓는 걸 가만히 바라보던 개별은 고민을 끝 마쳤는지 다시 채팅방을 눌렀다.



[어디로 가면 됨?]

[하]

[일단 Exi 본사 앞으로 오삼]

[몇 시]

[최대한 빨리]

[출발하면 말해라]

[ㅇ]

[개새끼]



알겠다는데 왜 욕질이야. 미간을 한 번 찌푸려주곤 폰을 내려뒀다. 개별은 대충 검은색 후드 티와 그것의 세트인 트레이닝 조거 팬츠로 갈아입은 뒤 방 밖으로 나왔다. 


텅 빈 거실을 둘러 보다 S의 방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어 서재로 방향을 틀었다.


똑똑, 똑



"...들어와."



여기 있었군. 개별은 문 너머로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고리를 밀고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S는 검은 테의 안경을 낀 채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주말인데 쉬지도 않나.


잠시 생각하던 개별은 몸을 완전히 안으로 집어 넣었다. 고개를 든 S가 개별의 차림새를 훑었다. 아까랑 옷이 바뀌었다. 집에서 입는 옷 같아 보이진 않았다.



"나가게?"

"김준수 요원 만나고 오겠습니다."



S가 대답 없이 개별을 빤히 바라봤다.


...왜 보내주기 싫지. 노크 소리에 내심 반가웠는데 와서 한다는 소리가 나가서 김준수를 만나고 오겠다는 말이라니.



"만나서 뭐하게."



S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상한 짓 안 합니다."



그걸 묻는 게 아니라, 


뭐 이상한 짓 할까 봐 물어본 게 아니라 나도 순수한 의도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다. 얜 내가 지를 항상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그건 다 지 업보면서. GPS 끊고 독단 행동하고 내 커피에 몰래 약 탄 놈인데 어떻게 안 하냐고.


하, 됐다. 보호자 노릇 그만 해야지. S는 개별을 아니 꼽게 훑어보던 시선을 떼고 가보라며 손을 내저었다. 개별은 잠시 주춤거리더니 이윽고 허리를 한 번 숙이고 서재에서 나갔다. S는 그가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 마음에 안 들어."






-







"아오, 아싸 새끼."

"닥쳐, 방탕한 새끼."



준수와 혜성이 서로 불량한 시선을 주고 받았다. 준수는 저를 죽일 듯이 째려보는 혜성의 손을 제대로 붙들고 룸술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 마저도 가기 싫다고 잔뜩 뻗댔지만 동무라면 응당 술 한 번 걸쳐야지! 


혜성은 여러모로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으나 하는 수 없이 들어가 줬다. 원래는 클럽이었다. 시끄러운 곳은 딱 질색인 지라 딱 잘라 거부하니 강제로 끌고 가려 하길래 아닌 저녁에 추격전을 벌였다. 냅다 도망치다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 했다. 사실 치였다. 세게 박은 건 아니었으나 내가 잘못한 건데다 괜히 경찰서 가게 되면 개 팀장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를 일이니 사과하고 병원비도 청구 안 하기로 했다. 아직도 부딪힌 오른쪽 팔다리가 욱씬거린다.


결국 준수에게 목덜미 잡히고 말았고, 가기 싫다고 발악을 하는 혜성에 준수도 클럽을 포기했다. 혜성이 저를 몰래 암살할 거라고 협박해서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합의한 곳이 동네 술집이었고 그 덕에 조용한 룸술집으로 고르고 골라 오게 된 것이다. 하, 이런 데는 재미 없는데. 자리를 잡고 앉은 준수가 주변을 불만스럽게 둘러 보았다. 벌써부터 지루해서 좀 쑤시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안 지루해지면 그만이니까! 긍정적으로 사고 회로를 틀고는 직원이 오자마자 술부터 주문했다.



"먼저 꼴은 놈 카드로 긁는 걸로."



얘 날 진짜 담글 생각인가? 초장부터 고량주를 시킨다. 직원은 안주를 내주기 전에 술부터 내줬다. 도수를 슬쩍 살펴보니 40도였다. 안 그래도 빈속인데 속 다 버리게 생겼다. 혜성이 얼빠진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봤다. 화장실 가는 척 하고 튈까...? 생각 중인데 개자식이 제 지갑을 뺏어 카드부터 빼 갔다.



"튀면 내 친구들 다 불러서 이걸로 긁을 거."

"아... 왜 사냐, 진짜."

"씨발 진짜 튀려고 했냐?"

"......"



대답 없는 거 보니 진짜였구나? 준수가 개별을 한껏 노려봤다. 그 사이에 안주와 술이 나왔다. 그는 부릅 뜨던 눈을 거두고 혜성의 잔에 술을 채웠다.



"무조건 원샷이다. 꺾으면 벌주."



존나 잔인한 새끼. 혜성은 준수를 위 아래로 째려보더니 잔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살짝 머금기만 했는데도 목이 찌릿 찌릿 했다. 냅다 삼켜버렸다가 식도에 번개가 쳤다. 속이 어찌나 쓰리는지 술이 지금 어디까지 넘어갔는지 다 느껴질 정도였다. 아오 이딴 걸 왜 마시는 거야, 대체.


준수는 그런 혜성을 보며 호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도 안 내빼고 마시는 걸 보니 주량은 좀 되나 보다. 신난 얼굴로 안주를 집어 먹었다. 



"팀장님이랑 지내는 거 어떠냐?"

"좆 같아."

"야 그래도 그렇지 보스한테 대놓고 그러면 안 되지."



누가 들을 세라 '보스'라는 단어는 아주 작게 말했다. 사실 준수는 혜성이 답장이 없는 동안 진급식 사건으로 S에게 맞아 죽은 줄 알았다. 걷는 폼을 보니 생각보다 멀쩡했고, 그 사건 이후로 어떻게 됐냐 물어보니 별 일 없었다며 무심하게 이야길 하는 걸 듣고 놀란 동시에 안도했다. 앓아 누운 것도 아니면서 내 연락을 씹다니. 조금 괘씸하긴 했지만.



"...넌 어떤데."



혜성이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 개꿀잼이지. 우리 팀장님 개 재밌어. 어제도 같이 클럽 감."



아씨, 개꿀잼이라길래 하마터면 부러울 뻔 했네. 나도 현장 팀장님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어제도 같이 클럽갔다는 소리에 곧장 마음이 사라졌다.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돼. 개 팀장은 그런 델 안 좋아해서 다행이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던 준수가 혜성에게 제 술잔을 들이 밀었다. 템포가 좀 빠른 것 같은데. 그닥 내키진 않았지만 저도 술찌는 아닌 지라 내빼지 않고 잔을 부딪혀 준 뒤 들이켰다. 준수가 '크,' 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근데 팀장님이 자꾸 네 얘기 해. 짜증나게."



네 폼이 좋다느니, 표적 맞힐 때 몇 분 몇 시간이나 미동도 없이 온집중 하고 있는 거 아무나 못 한다느니. 질겅질겅 마른 안주를 씹으며 무심하게 이야기 했다.



["내 앞에서 다른 팀장 얘기 꺼내지마. 업무 외적인 사유면 이유 불문하고 맞는다. 알았어?"

"기분 잡치니까 꺼내지 말라고. 내가 너랑 10번이랑 비교질 하면 좋냐?"]



순간 S의 목소리가 스쳐갔다. 혜성이 빈 술잔을 만지작 거리다 중얼거렸다.



"...그게 짜증나?"



음? 준수는 당연한 걸 묻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내 앞에서 딴 놈 얘기하면 기분 상하는 게 일반적인 거 아닌가?



"아니, 내 앞에서 딴 놈 얘기하는데 당연히 짜증나는 거 아냐?"



되려 반문 했더니 혜성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그렇구나...' 라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뭐지 이 새끼. 얘는 누가 지 앞에서 남 얘기 하면 안 짜증나나? 자기애가 그만큼 대단한 건가? 준수가 의아하게 혜성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읽은 혜성이 잠깐 머뭇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개팀장도 나보고 딴 팀장님 얘기 꺼내지 말래."

"엥?"



작전 팀장님이? 그런 말을 하셨다고? 눈코입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 팀장님 앞에서 다른 팀장님 얘기라도 한 거야?



"아, 몰라... 나랑 너랑 비교질하면 좋냐고. 기분 잡치니까 하지 말라던데."

"야씨. 네가 잘못했네."



나 같아도 기분 잡치겠다. 식당에서 왜 얘 얼굴을 음식물에다 쳐 박았는지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역시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니까. 작전 팀장님이 성격이 더럽고 질투가 많아서 그렇다기엔 뭔가 이상하긴 했다. 쌓인 게 터진 거였군. 대체 얼마나 비교질 했으면 팀장님이 그런 말을 했을까. 준수는 혜성의 갓난 아이만도 못한 사회성에 혀를 끌끌 찼다. 그 소리에 혜성이 가지런한 눈썹을 어그러뜨렸다.



"이게 내가 잘못한 거야? 말 그대로 딴 사람 얘기인 거잖아. 거기서 나를 대입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아냐?"



무슨 철학자나 내뱉을 법한 대사였다. 정말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준수는 그만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디 쉬운 줄 아나.


재수 없어 질라 그러네. 


뭔가 킹 받아서 벌떡 일어나 혜성의 이마를 챱, 때렸다. 난데 없이 맞은 혜성은 눈을 번쩍 뜬 채 돌처럼 굳었다. 놀랬나보다. 그가 서서히 인상을 구기며 버럭하려던 찰나, 준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예의가 아니지, 인마! 그 팀장님 말대로 팀장님이 네 앞에서 3번 얘기 꺼내면 좋냐? 걘 성격이 달가워서 참 귀엽다느니, 그러면 좋아?"



혜성은 아까보다 더 벙찐 얼굴로 '아...' 탄사를 뱉었다. 그 틈을 타 다시 술을 채운 준수가 짠이나 치라며 잔을 내밀었다. 얼떨떨하게 움직인 혜성은 감상에 잠긴 얼굴로 술을 들이켰다. 고량주라 그런가 향이 시원했다.


["3번처럼 이쁨 받고 싶어?"]


생각해보니 개팀장이 나한테 3번 얘기를 한 적이 있긴 했다. 미국에서. 이쁨 받고 싶으면 너도 3번처럼 이쁨 받을 짓을 하라고 했었다. 그때 나도 빡쳤다. 순간 울컥해서 정보 팀장님과 3번의 관계성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 주며 잔인하게 비교질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네 말대로. 스스로 대입하는 거야. 그 사람이 날 대입했건 말건 간에 혼자 비교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 아니냐?"

"...맞네."



그럴 수 있겠네. 물론 속으로 비교했던 건 맞지만 내가 개 팀장 앞에서 다른 팀장님 이야기를 꺼낸 의도는 대부분 사실 전달에 더 가까웠다. 아예 안 그랬다고는 못하겠지만.



"너 작전 팀장님 앞에서 다른 팀장님 얘기 조지게 했지."



정곡을 찌르는 말에 개별은 슬쩍 눈을 피했다.



"키야... 그냥 팀장님 가슴에다 냅다 못을 박았네. 순수악도 아니고 무슨."



그게 가슴에다 못 박는 일까지 간다고? 나는 못 안 박혔었는데? 막 두고 두고 생각나서 3번이 질투나고, 개 팀장이랑 3번의 관계가 더 가까워질까 봐 불안하고 그런 거 없었는데.



"그거에 상처 받는 게 더,"

"네가 사람 차별을 좀 하냐? 솔직히 너 작전 팀장님 볼 때마다 눈으로 욕하는 거 다 보이는데. 당사자는 오죽하겠냐? 너 예전에 나 야릴 때도 그랬던 거 알지?"



...내 눈이 뭐 어쨌다고.



"그때 네 눈빛도 좆 같았어."



예쁘게 생겼다느니 찬사를 보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좆 같대. 이젠 하다 하다 눈 모양으로도 다른 사람 기분 맞춰 줘야 하는 건가.



"표정에서 다 드러나. 짜증, 하찮음, 같잖음. 뭐 그런 거."



뜨끔. 혜성이 준수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난 쟤가 좀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예리한 놈이었다. 알면 알 수록 대단한 새끼다. 눈썰미도 감도 더럽게 좋다. 사람 생각을 꿰뚫는 능력이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심지어는 말도 잘 해.



"너 정보 팀장님 볼 땐 안 그러는 거 알지? 동경 그 자체면서 작전 팀장님 볼 땐 성가시다는 얼굴하면 어떤 인간이 안 비교하냐?"



아니 근데 그건... 그럴 만도 하잖아. 애초에 둘이 날 대한 방식이 달랐는데 어떻게 똑같이 대우를 하냐고.



"아휴, 팀장님 상처 받았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 아이고오."



준수가 가슴을 쥐어 뜯으며 애통함을 표했다. 저렇게 격하게 공감하니 억울함이 밀려오는 동시에 양심이 쑤셔왔다. 만일 쟤 말대로 상처가 맞았더라면, 수도 없이 많이 받았을 테니까. 어쩐지... 꽤 일정한 강도로 매질하다가도 딴 팀장님 얘기만 꺼내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했어. 그렇게 생각하니 개 팀장의 행동들이 퍼즐 조각처럼 딱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럼 서운한 건 뭐야?"

"...서운한 거 있냐고?"



난 데 없이 '서운하다'라는 단어를 꺼내는 혜성에 다시 의문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서운하다는 게 어떤 감정인 거냐고."

"응...?"



이건 또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준수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순간 룸에 정적이 흘렀다. 잠깐 벙쪄 있던 준수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허, 헛웃음을 치더니 머리를 마구 쓸어 넘겼다. 



"와 씨발, 너 혹시 싸패냐? 그것도 뭔지 몰라?"



모를 수도 있지 그거 가지고 싸패라니. 혜성이 인상을 빡 찌푸렸다. 내가 싸패였으면 준수는 진작에 내 손에 암살 당했을 거다. 우리가 앙숙이었던 시기가 얼마였는데.



"내가 싸패면 내가 널 살려 뒀겠냐?"

"맞네."



바로 수긍한 준수는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서운하다' 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껴만 봤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거 어려운 질문이네.



"그러게. 뭐냐?"



저도 잘 모르겠다는 듯 대답하곤 안주를 집어 들었다. 혜성은 믿었던 준수 마저도 대답을 내어주지 않자 심각하면서도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을 가만히 읽고 있던 준수가 술잔을 내밀었다.


천천히 술을 넘긴 혜성은 다시 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개팀장이 서운해 해."



툭. 노란 노가리가 식탁으로 맥 없이 떨어졌다. 상상치도 못한 말에 놀라서 그만 손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준수는 또 한참 벙 쪄 있더니 갑자기 식탁을 쾅 짚고 서서 혜성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왜왜? 뭐 어쨌는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준수에 부담스러운지 혜성이 고개를 뒤로 물렸다. 뭐, 뭐야...



"...아니, 그, 표정이 좀 이상해서 서운하냐고 물었는데, '좀' 이래."

"그니까 왜? 팀장님 표정이 왜 이상했는데?"



...왜 이상했을까.

혜성은 빈 잔을 만지작거리며 고뇌했다. 개 팀장이 표정이 이상해지던 순간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 제가 무슨 짓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사진첩을 뒤지듯 다시 회상했다.


["너 작전팀 올 놈이야. 근데 나한텐 숨기고 현장 팀장한텐 알린다?"

"알린 게 아니라 들킨 겁니다! 원래는 현장 팀장님한테도 알려줄 생각 없었습니다."]


["네가 내 별이라며?"

"제가 왜 팀장님 별입니까."]


["너, 내 출장 따라와라."

"안 갈 수도 있습니까?"

"안 간다고?"

"팀장님이랑 2주 동안 있는 건 좀..."]


그 표정은 어떤 일화에 갖다 붙여 비교해봐도 맞아 떨어졌다. 만날 때마다 보였던 표정 같은데.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 팀장이 아주 예전부터 내게 그 표정을 내보인 것 만큼은 알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냥 각자 신경 끄,"]


개 팀장이 처음으로 내게 약을 발라줬던 그 날에도. 내가 그 말을 하는 즉시 정색을 했다. 그땐 위압적으로 느껴져서 무서웠는데 잘 생각해보니 상처 받은 것 같은 표정도 0.01초 정도 보인 것 같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그런가."



혜성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



이거 완전 미쳤네? 자리에 털썩 앉은 준수가 충격 받은 얼굴로 혜성을 바라봤다. 이 새끼 싸가지 없는 건 알았지만 생각 보다도 더 싸가지가 없었다. 아주 무서운 놈이다, 이거.



"와... 팀장님 속 미어 지시겠네."

"그니까 그게 왜 속이 미어지는 거냐고."

"왜겠냐?! 신경 쓰고 싶은데, 신경이 쓰이는데 신경 쓰지 말라니까 속이 미어지는 거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며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럼 그냥 안 쓰면 되는 거 아냐?"



...뭐 이런 별종이 다 있지? 그 말에 준수는 술을 넘기지도 못하고 혜성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봤다. 쾅! 유리가 깨져라 잔을 세게 내려놓자 안에 담긴 술이 넘실거리더니 반절이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게 되냐고! 마음이 가면 그 사람이 뭘 하든지 간에 신경 쓰이는 게 보통 인간이라고!"



얘 사람 맞아? 로봇 아니야? 소리를 빡 지르며 질책했다.



"아니, 그래서 뭐 때문에 서운한 거냐고."

"와 씨발, 너 진짜 골 때린다."



모를 수도 있지 그게 왜 골 때리는 건데. 그의 성화에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되려 지가 더 답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혜성에 준수는 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이랑 같지가 않으니까! 잘 지내고 싶은데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속상한 거지. 너 진짜 빡대가리냐?"

"씨발, 욕하지 마라."



잔뜩 흥분한 어투로 욕을 하자 혜성이 결국 정색하며 경고를 날렸다.



"그래, 지금부터 욕하는 놈 벌주."



준수도 아차 싶었는지 잠깐 주춤하더니 알겠다고 수긍했다. 혜성은 그 와중에 벌주 조건을 다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한숨을 폭 내쉬었다.


잘 지내고 싶은데,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속상하다...


["너 나랑 대화하기 싫어?"

"하기 싫다기 보단 굳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뭐라고 하실 거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거였나. 아주 처음부터 최근까지. 내게 그런 표정을 내보였던 그 순간 순간들이 이제서야 납득이 가기 시작한다. 다른 팀장님 얘기를 할 때면 왜 그리도 화를 냈는지, 내가 무언갈 숨기는 걸 그토록 싫어 했고, 신경 끄라는 뉘앙스의 말을 할 때마다 정색하고, 팀장님이랑 같이 지내기 싫다는 말에 주먹을 쥐었는지.


자꾸만 S의 표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다른 상황 같은 표정. 무수히 많은 S가 개별의 머릿속을 훑고 간다. 


["네, 제가 팀장님을 이용했어요."

"그걸 말하기엔 팀장님에게 그 어떤 믿음도 없었어서요."

"도움은 무슨... 방해나 안 하면 다행이지."

"팀장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팀장님을 딱 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작전 팀에서 재적 당한 날, 그때 개 팀장에게 뱉은 말들이 제일 진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증오의 감정을 한껏 끌어 모아 가장 날카로운 말만 고르고 골라서 푹푹 찔러 넣었다. 상처를 줄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가리지 않고 표독하게 내뱉었었다.


["정 아까우시면 다른 팀으로 보내주세요. 어디든 갈게요. ND 문지기라도 좋으니 팀장님이랑 같은 팀원만 안 되게 해주세요."

"싫다면?"

"제가 팀장님한테 그런 짓까지 했는데 왜 고집이세요."

"네가 존나 대단한 새끼니까!!!"]


그렇게 분노하며 나를 때려 놓고. 나한테 별의 별 말을 다 들어 놓고도 끝까지 날 놓지 않으려 했던 그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내가 어떻게 포기할까?"]



쓸쓸하고, 애절했던 그 말투 그 얼굴... 살기 너머로 보인 절절함. 그땐 미처 몰랐던 표정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면을 쓴 것도 아니었는데 걷어내 보니 별의 별 감정들이 다 보인다. 그래서 그때 내게 백 대라는 어마 무시한 수를 제안했던 거였나.


그동안은 이해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말과 행동을 모른 척 무시했고 그의 감정을 살펴보고 말을 내뱉는 행동 따윈 일절 하지 않았다. 그때 그 거대한 사건을 겪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함께 지내길래 개 팀장도 쿨하게 넘긴 건 줄 알았다.


근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서야. 3급 초반 때부터 본 그 감정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다.



팀장님도,



나 못지 않게 상처 받았구나.



혜성이 술을 들이 켰다.



"...쓰다."



뭐가 쓴 건진 모르겠다.






-






AM 04:01



S가 벽에 걸린 시계를 노려봤다. 당장 몇 시간 뒤 출근인데, 아직도 잠이 들지 못 했다.


개별이,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성인인데. 성인이면 외박 정도야 밥 먹 듯이 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사내이고 조직원이니 야밤에 안 좋은 일 당할 걱정도 적다. 그렇게 몇 번이고 타오르는 마음을 억눌렀는데도 도무지 눈이 감기질 않았다. GPS는 어느 룸술집을 가리키고 있고 저녁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래도 김준수랑 술 마시는 중 인 것 같다. 둘이 같이 있으니 걱정할 건 더 없는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지 모르겠다.


전화라도 해볼까?


아냐,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 녀석이 바라지 않잖아. 휴가고 1년 넘게 놀지도 못 했으니 외박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러면 나한테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GPS가 있다고 한들, 그게 동거인으로서의 예의 아냐? 지가 쌓아 놓은 업보가 몇 갠데. 적어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인간인 걸 알면 알리는 게 맞지 않냐고.


S가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개별' 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들어 오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간섭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늘 들어올 건지 말 건지 확인만 하는 거다. 그래야 내가 잠이라도 잘테니까.



'연결이 되지 않아......'

"...허."



연결음이 끝까지 갈 때까지 기다렸음에도 들려온 소리는 개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휴가 중인 ND요원이 연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각인 시킨 것 같은데. 세 번의 전화에도 끝끝내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인상을 구긴 S가 휴대폰을 아작 낼 기세로 꽉 쥐었다.


...김준수.


걔는 받지 않을까? 


S가 곧장 컴퓨터를 키고 번호 목록에서 그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씨발, 좀 받아라.



탁,



- '...여보세요?'



와. 받았다. 이 새끼는 받았다.



- '누구세요?'

"...남혜성 바꿔."

- '헙, 어, 팀장님...?'



껄렁 껄렁한 목소리가 전화의 주인을 알자 마자 잔뜩 경직 되었다. S는 후, 긴 한 숨을 내쉬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남혜성 바꾸라고."

- '...아.'



어쩐지 주저하는 말투에 S의 표정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야."

- '아, 그, 죄송합니다, 팀장님. 남혜성 요원 지금 전화를 받기가 좀...'



바꾸라면 빠딱 바꿀 것이지, 우왕좌왕 둘러대는 준수에 S가 주먹을 꽉 쥐었다.



"너네 씨발, 거기 가만히 있어라."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S가 곧장 외투를 챙겼다.






-






"야 씨발,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준수가 테이블 위에 엎드린 혜성을 마구 마구 흔들었다. 작전 팀장님이 여기 온다는 소리에 술이 다 깬 저와는 달리 이 새낀 정신줄을 제대로 놓고 있었다.


아 안돼. 뭘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는 좀 많이 좆 된 것 같단 말이다.



"야!!!"



준수가 혜성의 귀에다 대고 소리를 빡 질렀다. 그제서야 혜성이 눈꺼풀을 꿈틀거렸다. 술에 잔뜩 취해 볼에 홍조가 발그레 하니 올라 와 있다.



"작전 팀장님 오고 계신다고!"



준수가 냉큼 소식을 알렸다. 혜성은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아니, 야. 제발 정신 차ㄹ,"



뻐억-!!



준수의 머리통이 앞으로 확 꺾였다. 뒤통수 전체에서 뻐근한 고통이 밀려왔다. 살아 생전 처음 겪어 본 아픔에 억 소리도 못 내고 벙찐 준수가 끼기긱, 고개를 돌렸다.



"...티, 팀장님."



그가 왔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한 준수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그을렸다.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S에 할 말을 잃고 만 준수가 곧장 무릎부터 꿇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꿇어야 할 것 같았다. S가 준수의 어깨를 발로 세게 찼다.



나 또 왜 맞는 거야...? ㅠㅠ



퍽, 자빠진 준수가 어깨를 비비며 다시 꿇어 앉았다. 이 와중에도 개별이 저 개새끼는 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S는 도끼눈으로 준수를 바라보다 이윽고 상판을 바라봤다.


술병이 한 가득이다. 그것도 죄다 고량주다.



"...얼마나 먹였어."



내가 먹인 게 아니라 쟤가 먹은 건데요...? 억울함이 잔뜩 밀려왔지만 지금은 차마 그걸 따질 타이밍이 아닌지라 대충 술병을 보며 계산 했다. 총 6병이니...



"...세 병 정도 먹었을 겁니다."



퍽!

"아읍!"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로 무릎을 찍는 건 좀 아니잖아!!! 준수가 두 손으로 무릎을 쥐고 잔뜩 앓는 소리를 냈다. 와, 술이 확 깬다. 죽을 것 같다. 내가 주량이 센 게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S는 그런 준수를 같잖게 내려다보다 개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잔뜩 꼴아있다. 지 친구가 나한테 쳐 맞는 걸 멀뚱 멀뚱 구경하고 있다. 원래라면 절 보자마자 바짝 굳어야 정상인데 끄떡도 없는 저 순진한 얼굴에 S가 허리를 쥐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개별을 험악하게 내려다 봤다.



"...일어나."



개별의 팔을 휘어 잡고 위로 당겼다. 엉덩일 조금도 떼지 않고 뻐팅긴다.



"일어나라고 했다."



낮은 목소리로 협박을 해도 개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를 빤히 바라보던 녀석이 뭘 말 하려는 듯 S에게 축 늘어진 손으로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이게 누구한테 손짓이야. 순간 열이 뻗친 S가 손을 높이 쳐 들다 문득 작전 팀장님의 얼굴이 스쳐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는 하,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개별은 저의 아래에 있는 S를 발그레한 얼굴로 응시하더니 느적하게 입술을 벌렸다.



"...개팀쟌."


"......"

"......"



S와 준수가 동시에 얼어 붙었다. 혀가 잔뜩 꼬인 개별의 말투에 그만 벙 찌고 말았다. 그 많은 말들 중에 왜 하필... 무릎을 쥐고 고통을 표하던 준수는 당혹스런 얼굴로 S를 바라봤다.



"뭐 이 새끼야...?"



하, 망했다. 준수가 얼굴을 탁 짚고 주르륵 쓸어내렸다. S가 개별에게서 준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흠칫, 또 제게 불씨가 떨어지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한 마음에 어깨가 절로 떨렸다.



"...너, 꺼져."



씨발, 살았다. 꺼지랜다. 준수는 너덜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바짝 일어나 경례했다.



"안녕히 계십쇼!"



개별아, 미안하다. 


미안해! 개팀장은 널 좋아하니 죽이진 않을 거야...!


개별에게 부디 행운이 닿길 바라며, 준수는 혜성의 카드를 챙긴 뒤 곧장 룸을 나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S는 이윽고 다시 잔뜩 피곤해진 인상으로 개별을 바라봤다. 뭐 묻은 것도 아닌데 멀뚱 멀뚱 계속 바라보고 있다. 


이 와중에 왜 쳐 예쁘고 지랄이냐고. 새색시처럼 달아오른 볼로, 더럽게 예쁜 눈으로 날 보고 있으니 차마 준수를 때렸 듯이 주먹을 꽂을 수가 없었다.



"하아아..."



이 새낄 어쩌면 좋지.


S는 입술을 잘근 깨물다 개별을 안아 들었다. 팔을 당겨도 안 일어나니 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아오 술 냄새. 내 머리가 다 아플 만큼 지독한 알코올 향에 S가 인상을 썼다.



"따뜻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에 S가 개별을 천천히 내려다 보았다. 제 품을 파고 들던 녀석이 번뜩 고개를 들어 올리고 눈을 맞춘다. S가 술래에게 들킨 사람처럼 눈을 확장했다.



"팀장니믄 지짜..."



눈꺼풀이 풀려 있어도 여전히 반짝인다.



"...저한테 팀쟌밈은 지짜..."



꿀꺽, 목젖이 눈에 띄게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조까타여."





"......"





아, 이 개새끼가...






-






"야, 씨발 문 안 열어?!"



S가 빽 소리를 질렀다. 몇 시간 뒤면 출근인데 아직도 얠 붙잡고 지랄 중이다. 얼른 이 놈을 던져 놓고 자려고 풀 악셀을 밟고 집까지 왔다. 신발을 벗기는 것까지 순탄하길래 이제 됐다 싶었더니 방문 앞이 최종 난관일 줄이야.


벌써 10분 째 옥신각신 중이었다. 이 개새끼가 정신줄을 놓은 줄 알았더니 되려 각성을 했다. 그동안 얘가 내게 보였던 지랄은 순도 70% 정도였고 지금이 비로소 순도 100%의 지랄이었다. 베일이 벗겨지니 결정체가 나왔다. 이 개새끼가 방문을 열려고만 하면 제 목을 조르며 계약 위반이라고 소리를 빽 지른다.



"그럼 네가 직접 열라고!"

"저능 손이 업씀니다."



이 씨발.


진짜 이 새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쇼파에다 눕히려고 하니 나무늘보처럼 매달려서 죽어도 제 목을 안 놓아준다. 주먹으로 몇 대 때려도 술기운이 더 독한지 아파 하지도 않는다. 헤실헤실 쪼개며 '안 아프지롱.' 약 올려서 대가릴 후렸더니 '저는 방금 목이 업써져씀니다' 이 지랄을 한다.



"하..., 내려 오라고 했다."

"저능 다리가 업씀미다."



난 아직 능지처참도 안 했는데 이미 목도 없고 팔다리도 다 없댄다. 그럼 걍 지금 싹 다 잘라버릴까...?


내가 지금 봐줘도 너무 봐주고 있는 거 맞지? 솔직히 이 정도면 패도 되지 않을까요, 작전 팀장님?


["네가 자꾸 배우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형처럼 굴면 안 되는데 자꾸 인내심이 바닥나서 눈이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S는 아직도 제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개별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시 안아 들었다.



"아오, 씨발. 이걸 진짜."

"으응, 개팀쟌님. 입에 걸레 뱉읍시당..."

"하아..."



눈을 훼까집고 천장을 바라보던 S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김준수도 같이 조져야 할 것 같다. J가 그 새낄 조질 거 같지 않으니 다음에 마주치면 반 죽여버릴 거다. 



"...너 진짜, 내일 보자."



얜 두 말 할 것도 없이 뒤졌다.



"좋아영..."



이 미친 놈이.


앞 날도 모르고 좋다는 말이나 씨부리는 개별에 S는 순간 현타감이 밀려왔다. 이 밤에, 아니 곧 아침에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잠 자기엔 글렀다.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S가 지친 얼굴로 개별을 내려다 봤다.



"하아... 뭐 어쩌고 싶은데."



말은 뒤지게 안 들으니 바라는 대로 해줘야 끝날 것 같았다. 이대로 버텼다간 얘를 목에 달고 출근하게 생겼으니 일단 얘부터 떨어뜨려 놔야 했다. 피곤함에 눈 밑에 주름이 생긴 S를 멍하니 보던 개별은 잠시 침묵하더니 흘끔 시선을 옮겼다.


어딜 보는 거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무엇이 비치는지 파악했다.



"저, 저 방에서... 자면 안 돼요...?"



방 하나를 손가락질 하며 말한다. S는 그의 하얀 손끝을 따라 느즈막히 시선을 옮겼다.


저기...,


내 방인데.


S가 다시 개별을 바라봤다. 초롱초롱, 무슨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애원한다. 안 그래도 얘가 자꾸 귓가에다 콧바람을 불어 넣어서 미칠 지경인데 저렇게 쳐다보니 아래가 또, 뻐근해졌다. 안 봐도 또 선 게 분명했다. 현타에 현타가 겹쳐진 S는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다 개별의 몸에 저의 것이 닿을까, 그의 엉덩이를 더 높게 받쳐 올렸다.



"...안 돼."



위험해.

뒷말은 생략하고 기각했더니 개별이 실망감이 잔뜩 어린 얼굴로 S를 바라봤다.



"그럼 안 내려올래..."



퉁명스럽게 말하며 그를 꽈악 끌어 안는다. S는 목을 죄이는 압력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얘 원래 이런 애였나? 나한테 3M 이하 접근 금지 규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바이러스 취급할 땐 언제고 지금은 안 떨어지려고 난리니 도무지 뭐가 본모습인지 분간이 안 된다. 술 버릇인가? 그럼 김준수랑 계속 내버려 뒀으면 그 새끼한테 이렇게 매달렸을 거란 소린가?



"너 씨발, 앞으로 술 마실 생각도 하지마."

"시른데...~"

"......"



하, 말을 말자.


그나저나, 얘가 저기서 자면 난 빼도 박도 못 하고 쇼파 신세인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네. 내 집인데 참.


후우... 낮게 심호흡한 그가 하는 수 없이 터벅 터벅 걸음을 옮겼다. S는 펼쳐 둔 이불을 걷은 뒤 개별을 침대 위에 천천히 눕혔다. 내내 S의 목을 붙들고 안 놓아주던 개별은 그제서야 팔에 힘을 풀고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내 침대에 누가 올라가는 건 얘가 처음이다. 밖에 나갔다 막 들어온 애를, 씻지도 않은 애를 내 침대에... 결코 벌어질 거라고 생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안 씻고는 안 올라가는 고결한 공간인데. 한숨을 푹 내쉰 S는 이불을 개별의 가슴팍까지 끌어 올렸다.



"팀장니임..., 나 내일 혼나여?"



취한 주제에 혼날 건 걱정되나 보네. S가 개별을 흘끔 바라봤다.


아직도 술에 달아 올라 볼이 붉다. 몽롱하게 날 바라보는 그 눈가도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S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 피로와 분노가 동시에 씻겨져 나갈 만큼 매혹적인 인상이었다.



"...뒤질 줄 알아."



현혹되지 않고 답했다.



"개팀쟝..."

"아,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S가 살기 어린 눈으로 개별을 노려봤다. 끄떡도 없다. 동공이 S에게 고정된 채로 조금도 움직이질 않는다. 저 정도면 광기였다.



"하아..."



참자, 참자. 


지금 때리기 시작하면 쟨 죽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지금은 때려도 아픔을 못 느낄 만큼 정신이 나간 새끼다. 내가 자꾸 말 맞춰 주니 저렇게 지랄인 거다. 또 목에 매달려서 지는 손도 없고 다리도 없다는 소릴하기 전에 나가야겠다.


S는 더이상 대꾸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탁, 전등 스위치가 꺼지는 소리와 동시에 방 안이 어두워졌다. 곧 해가 뜨려는 건지 어두워도 보일 건 다 보였다. S가 벽에 붙은 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시간이 5시를 넘어갔다. 8시 출근, 9시 회의니 지금 많이 자도 한 시간 정도다.


이 새벽에 이게 뭔 짓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자는 거 깨우지 말고 내버려 둘 걸. 괜히 깨웠다가 이 생고생을 하고. 아 열 받아.


에휴. 내가 애를 키우지, 애를...,



"...웩."



...탁,



예사롭지 않은 소리에 도끼눈을 뜬 S가 스스슥...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내 침대, 내 이불.



...내 베개.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편백 입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셨나요? 이제 연휴의 마지막 날이 되었네요. 마지막까지 잘 쉬시고 귀가하시는 분들은 몸 조심이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빛준수... 오늘은 10번이 한 몫 했네요. 어릴 적부터 남과는 척을 지고 지내온 혜성이를 엉아로서 잘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S나 혜성이나 Medi랑 준수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요. 아마 둘이 계속 혐관에서 발전 없이 더더 멀어지다가 서로 피 튀기게 싸우고 ND 멸망했을 겁니다. S가 개별이를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개별이도 슬슬 S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네요. 30화 만에...

QnA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화와 게시 동시에 함께 올리려고 했으나... QnA를 다 쓰기 전에 글이 완성되어 버려 이걸 다 쓰고 약 두 시간 뒤에 같이 올려야 하는 건지, 더 늦은 시간이 되기 전에 30화부터 올려야 하는 건지 고민하다 글을 먼저 씁니다. 추첨까지 하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9/12 AM 07:00 전까지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올리지 못한 점, 깊이 반성하며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트위터: @PB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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