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하게 느껴지는 약품의 냄새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난 도윤은 익숙하게 여러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첫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봉을 잡고 걷는다던가, 건강검진을 하는 것처럼 시력을 잰다던가. 평범한 일을 하며 지나는 복도에는 기괴한 이들이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기괴함은 '인간'의 기준이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피부와 섬뜩한 하얀 눈동자까지. 도윤은 간호사가 처음 건네주었던 거울을 보며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 역시도 좀비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기에. 

 검은 머리카락은 창백한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자 거울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낯설었다. 특수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어색한 꼴은 몇 번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말을 일삼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익숙해질 수 있었던 건 단 한가지 이유였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목의 상처는 자신이 인간이었을 적 마지막으로 났던 상처였기 때문일까. 그에게 이 흉터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편린이었다.

 "한도윤 씨?"

 "아, 네."

 목의 상처를 만지작대던 도윤에게 간호사가 다가왔다. 정신을 차린 지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그는 다른 PDS 환자들과 매일 같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벌써 모임 시간이었다. 치료를 위해 매주 넓은 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절대 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였다.

 복도를 지나던 도중 생포된 환자, 아니. 아직 환자가 되지 못한 좀비가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걸 보는 모두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좀비에게 향하는 시선은 동정에 가까웠으니. 도윤 또한 좀비를 바라보는 시선에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어차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는 다 멋들어진 말로 포장된 좀비들이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처지를 비웃으며 홀에 들어서자 도윤을 반긴 조원, 오인하가 그를 잡아끌었다. 그녀는 도윤과 동갑으로 이곳에서 제일 먼저 말을 튼 환자 중 하나였다. 도윤이 자리에 앉고, 둥글게 모여앉아 기다린 마지막 인원이 도착하자 중심에서 준비를 마친 의사가 손을 들었다. 집중하라는 표시는 곧 치료를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부분적 사망 증후군입니다. 치료 전 상태에서 저지른 짓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

 PDS의 뜻을 그대로 외운 의사를 따라 환자들은 익숙하게 말을 따라 했다. 치료를 하기 전 필수로 읊어야 하는 문장. 매일같이 사람다운 삶을 위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절대 없어선 안 될 말이기도 했다. 

 단체 심리 치료 시간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가끔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가 실려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도윤은 가만히 앉아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앞 차례의 단조롭고 평범한 이야기엔 가족, 혹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과거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한도윤! 같이 가!"

 "병실 반대편인데."

 "으이구. 눈치 없긴. 너랑 얘기 좀 하겠다는 거 아니냐."

 무난한 치료가 마무리되고 바로 제 병실로 올라가던 그를 붙잡은 건 인하였다. 오늘 일정 전부 끝났잖아. 그녀의 말에는 강한 압력이 존재했다. 지금 당장 자신과 이야기해달라는 듯 손에 힘을 잔뜩 준 그녀의 눈빛이 이글거리자, 도윤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을 위한 홀 옆에 붙어있는 휴게실로 들어간 둘은 북적이는 환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장소는 환자들의 작은 사회였다.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달리 상황을 인정하고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휴게실은 바로 그런 환자가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의사들이랑 좀 친하거든."

 "아하."

 "반응 좀 봐라? 야, 여기서 나가면 다 내 덕분인줄 알아."

 "나간다고?"

 시시하다는 얼굴로 대충 이야기를 흘려 넘기던 도윤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덩달아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한 인하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건수 잡았다는 의기양양한 얼굴은 이내 도윤에게만 목소리가 들리도록 몸을 밀착했다. 

 "좀비 되기 전에 이규혁이라는 형이랑 같이 살았댔지? 그 사람이 널 찾았대."

 언젠가 인하에게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는 이름. 이규혁이 자신을 찾았다? 도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내 옆 병동에 찾으러 왔다고 하더라. 워낙 환자가 많으니까, 한도윤 널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거 같아서 고민하던 걸 이 오인하가 도와줬다 이 말!"

 그녀의 말의 뒷부분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그저 도윤에게 남은 건 이규혁이 저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뿐이었다. 살아 있었다. 형이 살아 있어. 잊고 있었던 안도감이 파도처럼 몸을 덮쳤다. 그동안 어떻게 잊고 있던 건지 모를 그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꺼운 뿔테안경을 끼고 덥수룩하게 얼굴을 가리던 앞머리. 성장기였던 도윤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컸던 키와 꾸준히 건장한 몸까지 전부 생각났다. 그러나 중요한 건 외형이 아니었다. 규혁은 도윤에게 이상하리만큼 상냥하고 소중한 남자였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해낼 정도의 유대 관계가 있는 사이. 그가 잊지 않고 찾아주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에 가까웠다.

 "아마 얼마 안 가서 퇴원하게 될 거야. 첫 퇴원 확정 환자 명단에 네가 올라갔거든."

 도윤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자 인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 새로워서 그런 것일까, 그녀는 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고 먼저 휴게실을 떠났다. 눈치 빠르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겠단 배려는 지금 도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잊을 수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걱정했어야 할 이가 규혁이었는데, 도윤은 정작 그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병실로 올라와 주사를 맞고 누운 도윤은 심란한 마음으로 이불을 덮어썼다. 

 자신이 좀비가 된 지 육 년이 흐른 지금. 규혁이 어떻게 변했을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머리는 단정하게 잘랐으려나. 키는 자신과 있었을 때 다 컸으니까 더 크지 않았을 거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으니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명히 생각나는 과거의 모습을 애써 큰 모습으로 상상하려던 도윤은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기대와 달리 하루하루는 평소처럼 흘러갔다. 심리 치료를 받고,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다 몸을 유지하기 위한 주사를 맞고 잠자리에 든다. 거기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퇴원을 위한 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은 퇴원하고 나서도 인간처럼 보일 수 있도록 화장품이 지급됩니다."

 "매일 해야 하나요?"

 "집에 있을 때는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밖을 나갈 때는 하는 걸 추천합니다."

 의사의 말엔 숨길 수 없는 우려가 담긴 채였다. 법으로 PDS 환자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지만, 세상은 법만으로 바뀌는 세상이 아니었다. 가끔 병실에 틀어두는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환자 퇴원 금지에 관한 이야기가 그들의 상황을 대변했다. 아직, 이 세상은 좀비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감시와 약물 투여를 위해 정부 측에서 파견한 보호인이 한 명 붙을 겁니다. 그들과 떨어지면 바로 재입원 조치가 취해질 수 있으니 명심하세요."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존재했다. 좀비 치료제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뉴로트립틸린을 하루에 한 번씩, 매일 맞지 않는다면 환자는 바로 좀비로 돌아가 버렸다. 시한폭탄 같은 존재를 누가 곁에 두고 싶어 하겠는가. 도윤은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혹시 문제가 생겨 자신의 손으로 규혁을 해친다면. 비단 그만의 고민이 아닐 터였다.

 그런데도 PDS 환자가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보호자들이 끊임없이 요구를 보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잊지 않고 약을 놓기만 하면 될 일이다. 엄연히 인격이 돌아온 이들을 좀비 취급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말이다. 첫 퇴원 대상도 엄격하게 뽑힌 상태였다. 도윤이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규혁이라는 울타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퇴원은 언젠가요?"

 "한도윤 씨의 보호자인 이규혁 씨가 다음 주 토요일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나가게 될 겁니다. 의사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훑으며 말했다. 어쩐지 이규혁이란 이름에 도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았지만, 착각일 정도로 시선은 빠르게 사라졌다. 분명 그 안에 담긴 건 도윤을 향한 동정심이었다. 어째서?  그 시선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챈 건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


 퇴원 당일 도윤을 배웅 나온 인하의 손에도 큰 가방이 들려 있었다. 짜잔, 사실 나도 오늘 퇴원이라고! 기세 좋게 그의 등을 팡팡 내려친 인하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람 같았다. 허연 피부는 생기있는 색으로 변해 있었고, 마찬가지로 허연 눈은 외국인에게서 볼 수 있을 푸른 눈이 되어 있었다. 빈틈없는 화장은 그 누구도 인하가 좀비였단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오오. 너 꽤 미남이었네?"

 "너야말로."

 평소에 입는 스타일로 옷을  차려입은 도윤도 화장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퇴원을 앞두고 빈 시간 동안 미리 지급받은 화장품을 이리저리 발라본 그는 아무리 해도 능숙해지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지 다시 생각해도 한숨이 나왔지만, 그는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붉은 렌즈는 좀 과했다. 완전 컨셉충같아."

 "시, 시끄러워." 

 "얼굴이 되니까 그나마도 괜찮은 거지."

 신중하게 고른 파우더와 렌즈를 구해달라고 했을 때, 도윤은 두 가지 색을 요청했다. 처음 규혁을 만났을 때 끼고 있던 붉은 렌즈와 평소 생활을 할 때 쓸 검정 렌즈까지. 인하의 놀림에 도윤은 볼을 긁적였다.

 굳이 붉은 렌즈에 관해 설명하자면 컨셉충이 맞다고 할 수 있어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미 규혁이 마중 나오기로 한 시간이 가까웠다. 위치를 알 수 있게 정부에서 나눠주는 워치를 보며 문 앞에서 마른침을 삼킨 도윤이 괜히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이 앞에 규혁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연락처 알지? 난 부산으로 내려갈 거라서 자주는 못 보더라도 연락은 하자고."

 "그래. 잘 있어, 인하야."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병원의 입구가 열렸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도윤을 부르는 관계자의 부름에 따라 그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정확히 정오가 된 시간, 한도윤은 인간으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세상 밖에 모습을 비췄다. 

 거대한 철문을 지나 건물을 등지자 도윤은 감회가 새로웠다. 좀비에게 깨물리는 순간 잃어버린 삶이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치료제가 나온 것도, 인간 의용군에게 잡혀 죽지 않은 것도. 이 모든 게 운이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건 바로 이규혁이라는 존재였다.

 "도윤아."

 꿈에서 몇 번이고 그려보던 남자가 도윤의 앞에 서 있었다. 규혁이 예전과 변하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차량을 뒤에 세우고, 뻣뻣하게 보일 정도로 주름 하나 없는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 피곤해 보일지도. 도윤은 예전과 달라진 규혁의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이마가 드러나게 세팅한 머리는 단정하지만,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완전히 어른이라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풍기는 얼굴선은 웃고 있어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잘 빚어진 얼굴을 따라 내려오면 꽉 매인 넥타이의 핀과 잘 잠긴 정장이 몸 선을 보였다. 그는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남자라고 할 수 있게 자라 있었다.

 "도윤아. 한도윤."

 "……형."

 그런 이규혁이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진짜 울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진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자리에 서서 규혁을 관찰하던 도윤은 요동치는 마음을 바로잡았다. 분명히 이 퇴원에는 시선이 쏠렸을 터였다. 조금 더 뒤를 보자 거짓말처럼 몰린 기자들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리 와. 규혁이 도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감동의 재회는 굳이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다. 도윤은 꼼꼼히 화장품이 발린 손을 들어 올렸다. 의식하지 못한 새 움직이기 시작했던 몸은 이미 규혁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오랜만이야. 정말로."

 "네가 무사한 거로 충분해. 나는, 네가."

 "다녀왔어."

 규혁이 먼저 도윤의 손을 잡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대하듯이. 살아있는 진짜 인간과의 접촉에 도윤은 손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제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울 것이 뻔한데, 규혁은 차에 올라탈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정말로 돌아왔구나. 이규혁의 곁으로. 

 "바로 집으로 가주세요."

 "운전사도 있어? 형 돈 많이 벌었나 보네."

 "응. 정말 많이 있어. 네가 원하는 모든 걸 해줄 정도로."

 절대 놓지 않을 것 같던 손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멀어졌다.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인 얼굴은 도윤의 반대편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마주보기를 피하는 것 같은 행동에 도윤은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해한다. 눈앞에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단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니. 그래도 도윤은 규혁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장난스럽게 말을 받아주는 것은 옛날과 같았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 생각했다. 차라리 규혁을 보며 눈물이라도 흘렀으면 나았을까. 그러면 잘 표현하지 못한 그동안의 그리움을 그에게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되살아난 몸뚱이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약 덕분에 사람으로써의 이성을 되찾게 되었을 뿐, 완전히 정지한 몸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피가 돌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체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가 쓸 방은 2층에 마련해뒀어. 너와 나의 집이니까, 뭐든 마음대로 사용해도 돼."

 "예전에 우리 완전 어릴 땐 같은 방 썼는데. 기억나? 내가 형 이불을 뺏어가서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잖아."

 도윤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모든 몸의 부분이 생소하고, 삐걱거렸다. 렌즈가 끼워진 눈도 왠지 모르게 서로 맞물리지 않아 멋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잠시 렌즈의 불편함에 창문에 얼굴을 비춘 도윤은 조금 전의 대화로 규혁이 저를 쳐다본단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전부 기억하는구나."

 "당연하지. 약을 사 온 게 나니까. 괜히 병원 안 가도 된다고 했다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혀, 형!"

 "정말 너였어. 정말로 한도윤이 맞아."

 "그럼 내가 누구겠어. 이규혁의 하나뿐인 동생 한도윤이지." 

 숨을 쉴 수 있었다면 숨이 맞닿을 거리로 불쑥 다가온 규혁의 눈이 젖어있었다. 이미 흘러내린 눈물이 떨어지는 것만큼의 모든 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는 의심하고 있었다. 차갑기 짝이 없는 손을 잡았을 때부터, 외모가 같은 좀비 따위가 한도윤을 연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어서 와."

 밖에선 말해주지 않은 환영의 말이 드디어 전해졌다. 도윤은 울고 있는 규혁에게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가까워졌지만, 절대 닿지 않는 손을 애써 무시하면서. 

 병원에서 집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강남이란 표지판을 내다보며 잠시 주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차는 미끄러지듯 시내 근처의 주택단지에 들어섰다. 넓게 분포한 저택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위용을 자랑했다. 도로를 감싼 모든 집에 정원이 있다는 사실은 도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마치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에 알았던 부자들의 동네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도윤을 태운 차가 곧 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저택의 경관을 구경할 새도 없이 규혁은 자연스럽게 매끈한 철문을 열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허둥지둥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도윤의 입은 종일 열려있을 셈인지, 닫힐 생각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감탄만을 내뱉었다. 

 "로또라도 당첨됐어?"

 "하하. 로또 당첨된 것보다 더 많을걸."

 "말도 안 돼."

 거짓말이라는 말을 하기엔 집이 너무 좋다. 태연하게 잘 손질된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연 규혁은 도윤에게 어서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곱게 휘어진 눈꼬리,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듯 잔뜩 기뻐하고 있는 눈빛에 도윤은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뭐, 뭐야."

 집 안은 더했다. 대체 어디로 가야 거실이 나오는지 모를 긴 복도에는 고풍스러운 그림이 걸려있었다. 말끔한 인테리어에 맞는 조명마저 고급스러워 보일 지경에 이르러, 도윤의 걸음도 위축되어갔다. 규혁은 이런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큰일을 하게 된 건가? 대체 무슨 일이길래. 튀어나오는 질문을 삼키며 그를 따라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거실이 나타났다. 

 "규혁이 형. 진지하게 묻는데, 혹시 대부업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평범하게 사업하는 회사야."

 규혁이 후후 웃으며 소파에 앉아 넥타이를 풀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 넥타이도 굉장히 비싼 명품일 것 같았다. 쉽사리 앉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거실을 훑던 도윤은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내 방은 2층이랬지."

 "아아. 네가 좋아할 거야, 확신해."

 금세 다시 일어나 도윤의 곁으로 온 규혁이 문을 열어줄 때와 같이 난간을 잡고 기다렸다. 먼저 올라가라는 듯 기다리는 행동에 기대가 묻어났다. 지금보다 더 화려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품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도윤은 그새 표정을 굳힌 규혁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때?"

 계단을 오르자 보인 2층의 모습에 도윤은 방금과 다른 의미로 말을 잃었다. 1층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전형적인 저택의 인테리어였다면, 2층은 달랐다. 마치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익숙한 벽지와 가구들은 도윤과 함께 살던 과거 집과 같게 배치되어 있었다. 

 예전 집과 다른 점은 여기가 너무 넓다는 것일까. 도윤은 예전 집을 생각하며 거실을 지나쳐 가장 가까운 방에 다가갔다. 닫혀있지 않은 문 너머엔 역시 익숙한 물품과 가구가 놓여 있었다. 규혁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둘만이 살게 됐을 때의 작은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썼던 자신만의 방에 놓았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존재했다. 

 "침구는 같은 걸 구해서 뒀지만, 나머지는 전부 네가 쓰던 거야."

 "진짜 말도 안 돼. 형. 진짜로."

 "나를 구한 건 너야. 너에 대한 건 단 하나도 버리지 않았어."

 사뭇 안타까운 느낌이 가득 담긴 목소리. 방에 들어오지 않고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규혁은 어떤 표정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도윤에게 이 방은 엄청난 선물이었지만, 동시에 위화감이 들었다. 자신과 닿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일정 거리는 유지하며 친근하게 굴어온다. 솔직히 묻기엔 애매한 태도를 고수한 그는 교묘하게 도윤에게 선을 긋고 있었다.

 "날 감시할 사람이 온다던데."

 "그 사람은 1층에서 지낼 거야. 여긴 너만의 공간이 될 테니까."

 또다. 다시금 구역에 대한 선이 그어졌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모든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집주인은 '자신'은 2층에 오지 않겠다 하고 있었다. 너만의 공간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만큼 도윤은 멍청하지 않았다. 

 "저녁에 약이랑 같이 올려보낼게. 그때까지 푹 쉬고 있어. 그 후에 밥을 먹자." 

 볼일은 끝났다는 듯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린 규혁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2층의 적막이 덧없다. 방에 홀로 서 있던 도윤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텁텁한 마음을 갈무리했다.

 마음 한 쪽에 쌓인 불안감과 달리 시간은 막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되기 전, 칼같이 2층에 올라온 보호인은 통성명과 함께 큰 캐리어에 담긴 약을 도윤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하루 분량으로 나누어진 약병과 주사를 들어 올린 보호인, 민주영은 썩 친근한 사람이었다. 

 "매일 약을 놓는 시간은 네가 정할 수 있어."

 "아, 네. 그냥 이 시간에 계속 맞을게요." 

 "그리고 화장품이 떨어지면 말해. 당분간은 외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이라 하여 딱딱할 줄 알았는데. 도윤은 주사를 맞기 위해 등을 보이고 누우며 중얼거렸다.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포장을 뜯는 소리가 난 후 등에 바늘이 닿자 그는 점점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물론 외출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나가고 싶으면 내 방으로 와. 전화를 걸어도 되고."

 "핸드폰 없어요."

 "어머. 규혁이가 아직 안 줬어?"

 주영의 친근한 호칭에 도윤의 호기심이 동했다. 사적인 관계를 물어보는 건 실례일까 고민하는 도중, 그런 도윤의 마음을 알아챈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 좀 알던 사이야. 그래서 이 일도 내가 자원했고. 그 이규혁이 그토록 찾는 가족이 돌아왔다는데, 마침 그 일을 하는 친한 누나가 도와줘야지."

 "형이 잘 살았나 봐요."

 그럼. 주영의 목소리엔 규혁과 같은 다정함이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다르지만, 아이를 달래는 듯 나긋함은 자신이 아는 형을 닮았다. 닮은 사람끼리 논다는 얘기가 있으니 둘은 이런 면에서 잘 맞았을지도.

 몸을 타고 오르는 생생한 약물의 느낌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뉴로트립틸린의 주사가 마무리되자 주영은 등을 잘 닦아준 후 도윤의 옷을 손수 내려줬다. 과한 친절에 멋쩍게 침대에 걸터앉은 도윤은 문득 주사를 맞은 후 저녁을 먹자던 규혁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주영 씨도 저녁 같이 먹죠?"

 "누나라고 해도 돼."

 "누, 누나." 

 "응. 여기에 공짜로 얹혀살게 됐으니까, 규혁이가 밥도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

 배시시 웃는 표정과 달리 그녀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직접 좀비를 보살피는 일을 할 정도면 그녀는 좀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지금 주영이 걱정하는 것은 일반인도 아는 상식에 관한 문제였다. 밥을 먹자는 건 도윤에게 해서는 안 될 제안이었기에.

 "누나는 먼저 내려가요. 렌즈 좀 바꿔 끼고 갈게요."

 "도윤아. 먹지 않아도 돼. 넌 먹으면……."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게 주영의 등을 떠밀어 내보낸 후, 그는 병원에서 가져온 가방을 책상에 엎었다. 별거 없는 짐이 와르르 떨어지는 와중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렌즈 통을 집어 들었다. 붉은 렌즈와 함께 챙겨온 검정 렌즈가 렌즈 액과 같이 찰랑거렸다. 앞으로 자신의 눈이 되어줄 색을 바라보며, 그는 묵묵히 뚜껑을 열었다.

 그녀가 먼저 아래로 내려오자 규혁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차려놓고 앉아있었다. 넓은 식탁이 전혀 부족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양은 주영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규혁아. 우리 둘이선 이거 다 못 먹어."

 "도윤이도 왔는걸요. 엄청나게 말랐더라고요. 많이 먹여서 살찌워야지."

 "이규혁! 한도윤은 PDS 환자야. 좀비였단 말이야. 환자는 밥을 먹지 못하는 거 몰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누나."

 규혁의 태연한 말에 주영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반응은 모르는 척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로, 도윤이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말갛게 미소짓는 얼굴에선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주영은 물러설 수 없었다. 

 "네가 아무리 HVF 이사라고 해도 이런 건 잘못됐어. 도윤이는 예전의 그가 아니야."

 "전 좀비가 싫어요. 잘 알잖아요. 싫어하고, 또 싫어해서 증오할 정도로."

 "그럴 거면 도윤이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지."

 그녀의 정론에 규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윤이는 좀비가 아니에요. 지금의 한도윤은 규혁에게 비치지 않는 과거의 거울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도윤은, 진실을 끌어안고 섣불리 그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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