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려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레 창가 쪽 끄트머리로 시선이 향했다. 커다란 몸을 구부리고 책상에 엎드린 너를 발견했다. 너른 등위로 내려앉은 아침 햇살이 하얗게 반짝였다. 오늘 볕이 참 좋다. 나는 가만가만 네 곁으로 다가갔다.

행여나 햇살이 너의 잠을 방해하진 않을까. 허공에 손바닥을 길게 펼쳐 볕을 가려보았다. 당연히 내 작은 손으론 쏟아지는 빛을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귀찮음도 감수하고 블라인드를 내려 빛을 차단했다.

다시 너의 곁으로 다가갔다. 살금살금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햇빛을 머금고 있어서 그런지 따스한 머리칼이 손가락에 사이사이에 부드럽게 감겨들었다. 손끝에 닿는 포슬거리는 머릿결과 온기가 좋아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내 손길에 잠이 깬 건지 나지막이 앓는 소리를 내며 너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몽롱한 눈동자 한가득 오롯이 내가 담기는데, 그 장면이 뭐랄까. 설렌다고 하면 너무 간지럽고, 황홀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고. 뭐라고 뚜렷이 정의할 순 없지만, 그 엇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괜히 웃음이 났다.
 

“큭- 너 오늘 되게 존못.”
“너는 매일 존못.”
“씨발. 근데 잠 못 잤어? 야동보다 밤샜냐? 오늘 유난히 못생겼다니까?”

 
화사하던 너의 얼굴은 어디 가고, 잔뜩 부어서는 눈 밑은 내려앉은 다크서클로 거뭇거뭇하다.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매점 가서 비타오백이라도 사 먹여야겠다. 걱정이 담기려는 눈매를 애써 찌푸리고 퉁퉁 불은 너의 양 볼을 짚게 손가락으로 잡아 옆으로 쭈욱 늘렸다. 와, 더 못생겨졌다.
 

“아으- 아파.”
 

고개를 양옆으로 도리질을 하여 내 손을 털어낸다. 떨어진 손끝이 못내 아쉬워,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폈다. 그사이 내 볼이 따뜻한 온기에 감싸였다.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너의 커다란 손바닥이 꾸욱 내 뺨을 눌러왔다. 입술이 오리 주둥이처럼 삐죽 튀어나왔다. 심장도 같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심 없는 너의 장난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는 심장을 다스려야 했다. 아무리 해도 여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아이고, 못났다.”
“아으, 손 치워라.”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양 볼을 주물럭거리면서 비실비실 웃는 너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프다고 울상을 짓더니 마침내 너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봐. 하마터면 표정이 허물어질 뻔했다. 허전해진 볼을 손등으로 비벼 문질렀다. 달아오른 뺨은 쉽사리 숨겨지지 않았다. 그저 살결이 약해 붉어진 것이라, 네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어젯밤에 갑자기 삘 받아서 노래 만들었어. 가사까지 다 쓰고 났더니 아침이더라. 졸려 죽겠다.”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더니 다시 책상 위로 엎드린다. 뒤통수를 한 번 더 톡톡 두드리고 옆자리에 앉았다. 손으로 턱을 괸 채 너의 머리통을 바라봤다. 머리칼 사이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커다란 귀조차 예뻤다. 너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때나 이렇게 마음 놓고 볼 수가 있었다.


“야.”


네가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바람에 흠칫하고 놀랐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표정은 분명 이상할 테였다. 부리부리한 큰 눈망울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뭐, 뭐. 새끼야.”


아이씨, 말은 왜 더듬고 난리야. 컨트롤이 안되는 주둥이가 야속했다.


“내가 만든 노래 네가 불러야 해.”
“어? 내가 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너에게 시선을 떨어트리니 그나마 담담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내 첫 자작곡인데. 당연히 네가 불러줘야지.”
“싫어.”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하지?”
 

너의 첫 자작곡.
입으로 하는 일 중, 숨 쉬는 거 다음이 노래하는 거지만 안된다. 만약 너의 곡을 부르게 된다면, 내 마음을 고스란히 들킬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 순간까지 표정을 숨길 자신이 없으니까. 지금도 툭툭 튀어나와 버리는 마음이 이렇게나 버거운데. 절대, 절대로 부르지 않을 거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싫어.”




 
* * *
 
 
 


 
“노래 불러 줘.”
“싫다니까.”
“불러 줘.”
“종대한테 불러달라고 해.”
“너 아니면 안 돼.”

 
‘노래 불러 줘.’ 요즘 찬열의 입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다. 볼일 보고 있는 와중에도 옆으로 와서 저러고 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얼른 지퍼를 추켜올렸다.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는데 포기를 모르는 찬열이 등 뒤로 몸을 바짝 붙여오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안녕 내게 다가와
수줍은 향기를 안겨 주던 너


 
“으아!! 씨발 뭐야. 이 개자식아!!”
 

멜로디와 가사가 나지막이 고막을 타고 흘러들어오는데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미친놈이 누구 죽일 일 있냐고. 벌렁거리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첫 소절인데, 좋지? 막 부르고 싶지 않, 윽!”
 

찬열의 정강이를 힘껏 까버리고 화장실을 튀어나왔다. 요란스러운 심장이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 노래 절대로 죽어도 안 부를 거다.






* * *


 
 

그 후 찬열은 틈만 나면 귓가에 가사의 부분 부분을 속삭여대고, 내 교과서 여백에는 이미 ‘너의 미소에 내 마음이 녹아내려’, ‘눈이 마주쳤을 땐 두근거려’ 이런 낯간지러운 가사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흥얼흥얼 허밍으로 멜로디를 불러대는 통에 이제는 찬열의 노래를 다 외울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새끼가 나를 괴롭히려고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눈을 최대한 뾰족하게 떠 찬열을 쏘아봤다.
 

“그만 좀 부르면 안 되냐?”
“노래 진짜 좋지 않냐? 네가 불러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싫어, 절대 싫어.”
“네가 안 불러주니까 나라도 불러야지.”
 



희미한 꿈속에서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어




박찬열은 진짜 나쁜 새끼다.



 

* * *
 



 
“점심 안 먹을래.”
“돈가스 나온다는데.”
“너나 많이 드세요.”
“꼬맹아, 많이 먹고 키 커야지.”
“야이 씨발놈아. 내가 키 얘기는 하지 말랬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큭큭- 거리는 찬열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요즘 그 망할 노래 탓에 심장이 쉴 틈 없이 무리하고 있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찬열은 밥 먹는 와중에도 그 노래를 부를 것이 분명했다. 점심시간이라도 좀 쉬게 해줘야지 싶다.


 
 
육중한 철문을 밀었다. 삐걱-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따스한 봄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파삭파삭한 느낌이 좋아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 돈가스를 과감히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볕이 가장 잘 드는 옥상 중앙으로 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머리칼, 손끝, 교복 밑단 사이로 드러난 발목까지 곳곳에 빛이 내려앉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량하기만 한 하늘을 올려보다 슬며시 눈을 감았다. 운동장에서 축구 차는 아이들의 고함,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 사락거리는 바람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백색소음을 자장가 삼아 살풋 잠이 들려는 찰나, ‘삐걱-’ 거슬리는 소리가 잠을 밀어냈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마음이 언짢아졌지만, 노곤노곤하게 풀어진 몸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내가 먼저 왔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나가줬으면 바랐다. 하지만 방해꾼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싶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지척까지 와서야 멈추었다.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게 느껴졌다. 방해꾼이 햇빛까지 가려버렸다.
 

“자냐?”
 

아, 목소리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박찬열이다. ‘밥찬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밥 좋아하는 놈이 여긴 왜 따라 왔대. 잔잔했던 속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혼자 있고 싶은데. 특히 너는 보고 싶지 않은데. 아무 말도, 반응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자 발끝이 톡톡 머리꼭지를 두드려 왔다.
 

“자냐고.”
 

톡톡-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더 못났다.”
 

톡톡-
톡톡톡-
 

“아씨!”
 

꿋꿋하게 자는 척을 해보려 했지만, 자꾸 건드리는 통에 결국 감았던 눈꺼풀을 신경질적으로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후회하고 말았다. 눈뜨지 말걸. 곧 죽어도 자는 척할걸. 

등 뒤로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 반짝거리는 찬열이 곧은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자네.”
 
 
입매가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내가 좋아하는 미소를 머금은 채.
휴식은 사치였던 듯 심장이 발작했다.
 

“돈가스 나온다고 좋아하더니.”
“난 키 더 안 커도 되잖아.”
“키 커서 차암- 좋기도 하겠다.”


심장박동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더 비딱하게 툴툴거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본 찬열이 “날씨 죽인다.” 중얼거리곤 내 옆에 드러누웠다. 너와 나의 어깨 사이의 간격이 손바닥 하나만큼 가까워졌다. 다시 눈을 꼭 감아 내렸다.
 

“노래 불러 줘. 기타도 가지고 왔어.”
 

귓전에서 너울대는 목소리에 홀려, 거절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너의 손끝에서 기타 반주가 흘러나왔다.
 
 
안녕 내게 다가와
수줍은 향기를 안겨 주던 너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지고 목 안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박찬열이 줄기차게 불러 대서 이미 외워버린 그 노래가. 

너의 자작곡이.

 



노래가 끝났지만,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터질듯한 심장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뚫고 너에게 들릴 것 같다. 아니 이미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그다지 상관없었다. 하늘을 향해있던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시선은 이미 나를 향해있었는지 눈동자가 맞닿았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마주한 채, 왜 웃음이 나오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쿡쿡거렸다.

웃음소리가 살랑살랑 바람결에 번져갔다.
 

“존나 좋다.”
“좋네.”


순순히 대꾸했다. 정말로 좋았으니까.


“이 곡 쓴 날 밤에 네가 너무 보고 싶은 거야. 당장 너희 집 앞에 달려가고 싶은 걸 꾹 참았어. 온통 널 생각하면서 만든 거야. 네 노래야. 그래서 네가 불러주길 바랐어.”

“…….”

“제목이 뭔 줄 알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근거려.”
 
 
 




fin.


찬백러

하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