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매 중지 날짜는 3월 2일(월)로 정했습니다. 그동안 두 책을 예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당수입니다.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3월이 되면 <빨개요>와 <이렇게 쓰면 떨어진다>의 판매를 중단하려 합니다. 외전 증보판을 내거나 출판사를 변경하여 재출간하는 일은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놀라실 것 같아서,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조금 길고 무거운 이야기니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몇 년 전, 이런 장면을 인터넷에서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당시 PC에 저장해 둔 파일을 찾았습니다.)




2014년 당시 청소년이었던 세대들은 참사를 자신들의 일로 받아들이고 공감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내 친구의 일인 동시에 어쩌면 내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서요.


막연히 그렇구나 했던 그 기사가, 특정 연령대에서만 나타나는 제목을 보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른들이 정치적인 문제로, 서로의 이익 문제로 싸우고 있을 때 10대는 친구들의 기사를 읽었던 거겠죠. 너네도 졸업식했구나, 우리도 오늘 했는데, 하면서요.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만약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쓴다면 2014년의 일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요. 어른들의 입장과는 다르게 공감하고 슬퍼하면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 사건으로 남았을 테니까요. 제가 유년 시절을 돌아봤을 때 절대 지워지지 않는 사건 사고가 몇 건 있는 것처럼요.


<빨개요>와 얽힌 고민은 바로 그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2016년 5월에 출간된 <빨개요>는 201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학원물입니다. 두 주인공은 2012년 3월에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2015년 2월에 학교를 졸업합니다. 스토리는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지만, 시대를 정하고 디테일을 넣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저는 가상의 시대, 가상의 국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옆에 존재하는(혹은 존재할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빨개요> 역시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현실적 요소를 담았습니다. 부모 세대가 겪은 IMF 사태부터 시작해서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나 중고 카페 거래 사기, 당시 유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등이 그 예입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잠깐 언급되는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2014년에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이라면, 위에서 말했듯이 반드시 그때를 기억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하는 것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추모의 한 방법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지닌 독자님들이 계셨습니다. 등장만으로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사고를 섣부르게 썼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자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군가 소설을 읽고 상처받는다면, 창작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누군가를 상처 입히면서까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 내 창작관이 그 정도로 중요한가? 위로를 전하고 싶어 글을 쓰는 작가가 독자의 상처를 모르는 척하는 게 정당한가? 애초에 내가 제대로 쓴 게 맞나?


고민하는 사이 2020년대가 시작되었고, <빨개요>는 지금 내 주위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빨개요>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습니다. 판매 중단이 올바른 선택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몇 년이 지나도록 작가가 자기 작품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소설은 더 읽히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쓰면 떨어진다>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판매 중단을 결정했습니다.(이쪽은 사적인 문제라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지금 남기는 이 글 역시 누군가를 상처입히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더 많이 고민하면서 글을 쓰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완결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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