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https://twitter.com/im_garten/status/1091976021769826306)에서 풀던 썰에서 보고 싶은 장면만 뚝 떼다가 썼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 아직 60화까지밖에 안 봐서 지금 연재분에 비해 캐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ㄹ서 당해보질 않았거든요. 이점 감안해주시면 감사합니다:) (특히 아직 4번 밖에 못 만난 성현제씨)(장르파괴의 ㅈ도 아직 안 나온 성현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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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동생 생각에 빠져 있군.”


상념을 깨고 귀를 파고드는 끝내주는, 아니, 매혹적인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자 조각 같은 얼굴과 목소리에 비례하여 인격이 유감인 남자가 유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케이크가 입에 맞지 않은 건 아닌 것 같고. 짓궂게 덧붙이는 이의 시선이 조각 한 톨 남기지 않은 유진의 빈 접시를 향한다. ……맛있긴 했지. 유현이 취향은,


“한유현의 취향은 아니겠지만.”


……아니겠지만.

정확히 제가 생각하던 것을 입 밖으로 낸 남자를 도로 쳐다보자 반쯤 접힌 두 눈이 유진의 생각을 모두 읽은 듯 유쾌하게 웃는다.


“도련님의 취향은 조금도 아니겠지만, 유진 양이 그 포크로 한 조각 떼어다 주면 기쁘게 받아먹을 걸.”

“…….”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러하였기에 유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다만, ‘기쁘게’는 아니고, 워낙 착하고 말을 잘 듣는 동생이니 누나를 곤란하게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받아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만이 성현제의 의견과 달랐다. 괜한 반발심에 아니라고 부정해볼까 하는 찰나에 성현제가 비서실을 통해 간식을 더 주문하는 것을 보고 유진은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하였다.


“남매간에 우애가 참, 깊어.”

“그래서요. 성현제 씨도 근친상간 어쩌고 하고 싶은 겁니까?”


그 말에 성현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야 스스로의 발언을 인식한 유진이 제 주둥아리를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필 성현제가 말을 걸기 전까지 전남친 개새끼를 생각하던 것이 아직까지 머리에 남아 그만 심사가 단단히 뒤틀린 반응을 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성현제 앞에서 방심한 자신을 1, 전남친(개새끼)을 9 정도의 비율로 욕하고 있는데 성현제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의외의 말을 했다.


“한유현 그 녀석은 제 누나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는 필요 이상으로 숨기고 있으면서, 그런 소문은 누나의 귀까지 들어가도록 순순히 두고 있단 말인가?”


……정말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단 말이야?

그러나 유진의 감상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그대로 성현제가 오해하도록 내버려둘지 0.1초 정도 고민하던 유진이 결국 불퉁한 목소리로 앞선 질문에 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 ……전남친이요.”

“……아아. 전‘남친’.”


마치 ‘한유진의 사전에 그런 단어도 있었군.’이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냥 그런 표정인 게 맞다. 어설픈 거짓말이 통할 상대도 아니거니와 지금 같은 화제라면 차라리 잠깐의 수치심을 선택하고 뒤끝을 부릴 여지를 주지 않는 게 나을 사람이라 솔직하게 말하는 쪽을 택하긴 했지만, 역시 얄미운 남자였다.


유진의 첫 애인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애인의 자리도 차지하고 있는 전 남자친구는 동생의 뒷바라지로 바쁘던 유진을 이해해주는 좋은 애인이었다.

……사귀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여자친구의 남동생에 대해 하나 둘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에는 평범하게 ‘남매가 사이가 좋네.’라는 감상 정도였다. 평범하던 그 말에 어느 순간부터 남매의 친밀함을 언짢아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실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직접적인 말들로써 차례차례 유진의 앞으로 날아왔다. ‘네 동생이 널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친동생이라고 해도 스킨십이 지나쳐 보여.’ ‘네가 키운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 이해해, 이해한다고, 그런데 정말 시스콤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그 자식, 아니, 네 동생은…….’ ‘아무리 걱정되어도 남자친구도 있는 누나를 저렇게 싸고 돌 수 있어? 나는 장식이야?’ ‘네 동생 놈 이상하다고!’

결국 오랫동안 서서히 벌어져 어느새 단단히 굳어버린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연인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진은 울지 않았다. 얼굴에 조금이라도 운 흔적이 남으면 하루 종일 누나의 걱정밖에 하지 않는 것 같은 착한 동생이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신경을 쓸 테니까. 누나, 무슨 일이야, 라며 저를 달랠 그 얼굴을 버티지 못하고 다섯 살이나 어린, 교복도 채 벗지 않은 동생에게 매달려 하소연하고 말 테니까.

다행히 그날은 큰일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유진을 본 유현이 안색이 나쁘다며 걱정하긴 했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대신 남자친구와 싸웠다고 해두자 유현도 잠시 얼굴을 찌푸릴 뿐 더는 캐묻지 않고 일찍 쉬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진짜는 헤어진 뒤였지. 개새끼.’


눈앞에 성현제가 있지만 않았다면 욕설이라도 내뱉었을 것이다. 그래도 쌌다. 뭐가 그리도 억울했는지, 주변 여기저기에 유진과 헤어진 이야기를 하며 남매 사이가 지나치다느니, 근친상간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느니, 가끔 감정이 격해지면 이미 잔 것 아니냐느니 하는 말까지도 떠벌리고 다녔으니까. 그를 알게 된 유진이 전 남자친구가 한창 입을 털고 있는 술자리에 당장 쳐들어간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개판도 그런 개판은 없었을 것이다. 네가 뭔데 우리 유현이를 가지고 그딴 말을 해! 내 동생이야! 내 동생이라고! 그런데 남의 동생한테, 너새끼 따위가!! 그렇게 분노로 점점 더 이성을 잃어가던 유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난동을 피우는 와중 반으로 깨져 굴러다니는 술병이었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 병을 향해 뻗었던 유진을 다급히 막은 것은 누구에게 연락을 받은 건지, 어느새 술집에 나타난 유현이었다. 누나, 누나! 다치잖아! 동생을 키우겠다고 궂은일도 가리지 않아 여성 중에서는 힘이 센 편인 저보다도 더 강한 힘이 유진을 붙들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꿈쩍도 않는 ‘남자’의 힘에 유진의 모든 행동이 멎었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예나 지금이나 저만 졸졸 따라다니던 작고 순하던 아이가. 유, 현아……. 고장 난 기계처럼 힘없이 동생을 올려다보던 유진의 두 눈에 그제야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물밀 듯이 올라오는 설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유혀나, 나, 나……. 그러나 결국 다음 말들은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목 놓아 울기 시작한 유진의 울음소리에 모두 파묻혀버렸다.

서럽게 우는 누나를 도닥이던 두 손이 이내 유진의 등과 다리를 감싸 품속에 가두듯 안았다. 집에 가자고,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달래는 목소리에 유진은 더 크게 울고 말았다.


결국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유현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유현 역시 정황상 유진이 애인과 좋지 않게 헤어졌다고 짐작했는지 굳이 이유를 물으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싸웠든 자신은 무조건 누나 편이라고 말하는 동생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품 안에서 긴장이 풀린 유진의 눈꺼풀이 점점 무겁게 깜빡였다. 유혀나, 누나는 있지이…….

이제 남친 같은 거 안 만들 거야. 그런 거 피료 업서……. 누나는 우리 유현이만 있음 돼…….

점점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눈을 깜빡였을 때,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 유현의 얼굴이. 웃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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