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멀리서 드라이기 소리가 들리고, 오래지 않아 꺼졌다. 아까의 옷에서 바지만 갈아입은 사장님의 머리가 아무렇게나 말라있었다.


“뭘 또 웃어. 뭘 잘했다고. 앉아있으랬더니 말도 안 듣네 이제.”


그렇게 날 구박한 사장님은 날 일으키는 대신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주었다. 잘생기고, 귀티나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진상인줄 알았지.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내가 참 띨하다.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예요.”


새카만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마주보았다. 부드럽게 쏟아지는 할로겐 불빛을 받은 눈동자는 차분하고 고요했다.


“고삼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엄마가 갑자기 편찮으셨어요. 아, 아빠는 저 한참 어릴때 먼저 하늘로 가셨고.”


이석원도, 경준이 형도 자세히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냥 엄마 아빠가 일찍돌아가셔서 내가 좀 어렵다, 그런 정도가 전부였다. 자존심을 세우려고 그런건 아니고, 그냥 구구절절 늘어놓기 싫으니까 한 번도 자세히 말 한 적 없다. …아니 사실, 자존심 때문인것도 맞는 것 같다. 힘들어도 우는 소리 안하고 꿋꿋하게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췌장암이었어요. 그게 초기엔 별로 증상이 없대요."


사장님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랬구나, 하는 쓸데없는 맞장구가 없어서 고마웠다.


“원래 그 병이 5년 생존율이 5퍼센트가 채 안 돼요. 일찍 발견해서 수술 받으면 그래도 산다는데, 엄마는 아니었어요. 저 수능치고 바로 돌아가셨으니까.”


엄마는 그래도 내 수능까지는 기다려주었다. 그게 엄마의 최선이었을거다. 그래도, 아들 놈 시험 앞두고 큰 일은 안 치르게 하려고.


“면허는 그래서 못 땄어요. 바로 장례치르느라 그런 것도 있고 엄마 병원비가 빚으로 남아서 그런 것도 있고요.”
“그럼 지금은.”
“혼자예요.”


나는 가능한 한 짧게 이야기를 끝냈다. 누가 들으면 그게 다야?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평범하죠.”


병으로 가족을 잃는 사람은 많다.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혼자 남는 아이들도 많고.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나는 홀짝홀짝 마셔서 바닥을 본 빈 머그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장님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떤 분이셨어.”


나는 대답했다. 나를 혼자 키워내면서 엄마는 많이 지쳤었고, 가끔은 그 감정을 나에게 풀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나를 위해서 삶의 끝까지 버텨준 사람이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요.”


사장님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다시 시선이 가까워졌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세상에 흔하고,”
할로겐 등 불빛이 점점 가려졌다. 역광때문에 사장님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이전에 알게 된 타인의 체온이 닿았다. 맞닿은 가슴을 타고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도 다들 알지만.”


사장님은 나를 쓰다듬거나, 토닥이지 않았다.


“그래도. 흔하다고해서 익숙해지거나, 덜해지는 건 아니니까.”


외로웠겠네, 힘들었겠네 하는 말도 하지않았다. 마주안고 그저 체온을 전해줄 뿐이었다.


그 품에 한참을 안겨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이미 오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다 듣는사람이 덤덤해서 더 그랬다. 나는 오랜만에 내 것과는 다른 온도를 느낄 뿐이었다.


“사장님.”
“이제와서 무슨 사장님이야. 난 너 맥 못추고 가게에서 머리박고 자고 있는 걸 그냥 뒀을 때 부터 이미 사장되긴 글렀어.”


사장할 거였으면 그 자리에서 뒤통수 후려치고 눈물 쏙 빠지게 조져놨어야지, 라고 자길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사장님이 말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냥 형해.”
“사장형?”
“그건 또 무슨 끔찍한 혼종이야.”
“혼종까지야…….”
“…이건이형.”
“이건이형?”


생소한 부름에 끝이 올라갔다. 그거에 또 ‘이건이형’이 대답을 해준다.


“왜.”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요?”


그와 동시에 내 배꼽시계가 울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술을 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새벽 세시야.”


사장님이 나를 둘러 안은 그대로 내 손에서 머그잔을 가져가며 말했다.


“저녁 안 먹고 술 부터 펐어?”
“…네.”

“내가 자꾸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디로 들었어.”


나는 그냥 등신같이 웃었다. 이히.


“혼자 땅파다가 사람을 새벽 두시에 불러내고.”


사장님, 아니 이건이형이 양 손에 머그컵 두 개를 들고 부엌쪽으로 걸어갔다. 형은 내가 유독 실버라이닝에 정을 붙이고, 자신과 대화하는걸 즐거워했건 이유를 이래서 그렇다 저래서 그렇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형의 뒤를 따라 갔다.


“밥이 없네.”


밥솥을 확인한 형이 날 쳐다보면서 말했다. 거기다대고 무슨 대꾸를 해야 할 지 몰라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시키자.”
“네?”
“족발?”


인간은 단순했다. 새벽 두시에 그 난리를 치고, 사장님을 형 만들었다가 족발 먹겠느냐 물으니 또 허기가 해일처럼 커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형은 족발 중짜리를 주문하다가 나를 보고는 대 짜리로 바꿔 주문했다. 나는 얻어먹는 주제에 아니 괜찮다고 말할 염치가 없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사장님.”
“형.”
“네, 형.”
“왜, 또.”
“우리 가게요, 매출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나는 아예 욕실을 빌려 간단히 씻고 빌린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여전히 술냄새는 나지만 한결 뽀송뽀송해진채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사이좋게 족발을 기다리며 물었다.


“월급 밀릴까봐? 밀리면 노동청 신고 해.”


형은 어쩔 수 없는 체격차이 때문에 한 쪽으로 축 쳐진 티셔츠 어깨 선을 바로 잡아주면서 날 놀렸다.


“카페 쪽 수익은 없다고 봐도 되는데.”
“헐.”
“말했잖아. 거기 작업실이라고. 수익은 로스터리에서 내니까 상관없어.”
“로스터리요?”
“이연씨가 너한테 가게 넘겨주고 어디로 가게.”


형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끊임없이 날 만졌다. 아니 이러면 표현이 이상한데. 어쨌든 이건이 형은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다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옷을 추슬러주다가 했다. 간지럽기도 하고 그렇게 대답하는 형의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라 이상하게 자연스럽기도 했다.


“로스터리 출근해서 주문 들어온 거 확인하고, 원두 상태 보고서 주문대로 배송까지 해.”
“아….”


가게 망할 까봐 걱정했냐, 하고 형이 웃었다. 로스팅까지 매장에서 하기 어려운 개인카페들 하고 꾸준히 거래하고 있단다. 나는 내 눈앞의 이 남자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진상인줄 알았는데 카페 사장이라질 않나, 그냥 사장인 줄 알았는데 영화 시나리오 작가래. 아, 시나리오.


“혀엉.”
“…말꼬리 늘리진 말고.”
“이제 가르쳐 주셔도 되지 않아요?”
“뭘?”
“작가시라면서요. 영화 시나리오.”
“아 그거.”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죽이는 타이밍에 족발이 도착한 것이었다. 형은 내 머리를 아무렇게나 쓱쓱 빗어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결국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따끈한 족발은 야들야들하고 잡내없이 쫀득했으며 같이 온 막국수는 시원하고 칼칼했다.


                                                × × ×


눈을 감은 채로 정신이 깼다. 뺨에 닿는 침구가 낯설다. 겨우 메모리폼 매트 하나 깔아 놓은 내 자취방은 이렇게 훈기가 돌지않고, 내 몸을 탄탄하게 받쳐주지도 않는다. 내 몸에 닿은 낯선이의 체온도 없다. 그렇다. 여기는 침대 위. 남의 집이었다. 나는 어젯 밤 이제는 형 동생 사이가 된 사장님의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같이 자요?’


족발과 막국수로 가득 배를 채운 내게 새 칫솔을 뜯어준 이건이형은 기꺼이 침대 한 구석을 내주마 하고 이불을 들췄다.


‘어.’
‘…소파에서 잘게요.’
‘시험기간에 그러다가 감기걸린다.’
‘다른 방…’
‘다른 방 내 서재랑 옷방이랑 창고인데.’
‘…손님용,’
‘손님용은 무슨 손님용이야.’


훅 줄어든 심리적 거리, 확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 나는 미묘하게 경고를 울리는 내 육감에 쭈뼛대며 버텼다.


‘이 나이에 집에 데리고 오는 손님하고 따로 잘 일이 뭐가 있다고.’

‘…아니, 혀엉!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도 성인이다. 알 거 다 안다. 실전 경험이 없어도 알건 다 안다고! 나는 얼굴로 급격하게 술기운도 아닌 열기가 후욱 끼쳐올라오는 것을 애써 내리눌렀다. 이건이 형이 눈에 힘을 줬다.


‘난 건조한거 싫어서 난방 안 해. 따로자다 얼어죽는다 너.’
‘…….’
‘안 덮칠게.’
‘아 진짜!’


그렇게 된 이야기였다. 형은, 진짜 손만 잡, 아니 손도 안 잡고 얌전히 누웠다. 낯선 장소에 내가 몇번 꼼지락 대자 형은 눈도 뜨지 않은채로


‘형 오늘 피곤하다, 찬아.’


했다. 나는 잠이 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을 하다가… 기절했고. 구스이불 따뜻하더라. 육감의 경고는 무슨. 아무튼 분명히 그렇게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까 이 곳은 따뜻한 이불 속, 형의 품 안이다.

BL을 씁니다. Be happy(완결) 실버라이닝(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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