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는 꿈을 꾼다. 

넓은 들판에 저 홀로 서 있는 꿈을. 들판 위로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나붓하게 흐르는 달큰한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힐 뿐. 우수수 흩날리는 것은 봄의 종말이었던가, 아니면 여름의 시작이었던가? 알 수 없었다. 다만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걷고 또 걸어갈 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주저앉지 않을 것. 그가 결심해야 하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어렴풋이 바람이 그를 천천히 훑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바람이었다. 아마 잭이 처음 태어나 땅을 딛은 순간에조차 이 바람이 그를 훑었을 것이다.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세상의 이치란 늘 그런 법이다. 언제나 흘러가는 시간은 잡히지 않고... ... 하긴 얹혀 가는 입장에서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따라 걸어갈 뿐이지. 그것이 길이기를 바라면서. 


이매는 종종 꿈을 꾼다. 깊게, 깊게 파 들어가면 항상 같은 꿈이다. ■■아. 보리빛을 닮은 여자애가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님. ■■■ ■. ■아. 통 뭉개져 들리는 통에 알 수 있어야지. 들판 위로 발자국만이 찍힌다. 바람결에 불어 온 목소리들이 그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면... ... .


■■. 연꽃 향이 난다. ■■, 당신이 그... ... . 방향은 알 수 없다. 그저 불고 있다. 어제 그러했고 오늘 그러하고 내일 또한 그러하리라, 그는 꼭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 즈음 가면 더 걷기도 뭣한 것이, 힘은 빠져 오고 눈꺼풀은 잠기듯 내려앉고 거세게 휘몰아치는 탓이다. 무엇이? 알 수 없다. 그저 꿈에서 깨려나 보다, 싶어져서. 그는 다시 눈을 감는다. 


-


"갑자기 졸더니 그냥 자 버리고. 내가 그렇게 편해졌어?"


"그래, 그런가 보다. 그보다 나 눈 가려 주면 안 돼?"


"뭐야, 안 어울리게."


그리 말하면서도 순순히 흰 손이 눈을 덮는다. 그는 그 손 위로 제 손을 올린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느낀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냥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그래, 더 자. 우리 자자. 낮잠을 자자. 잠에 들어 버리자... ... .


-


불현듯 자윤은 깨닫고야 만다. 온전히 부서져 내리는 세계를 목전에 두고.


날 데리러 온 거지, 그렇지.

연화야, 내가... ... 내가 정말로.

내가 잘못했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나도 알아. 그렇지만 어쩔 수 없네.

너 내가... ... 더 이상 강하지 않더라도. 더 이상 어리지 않더라도 날 사랑해 줄 수 있어?

혹시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 .

네가 내 태양이고, 내 봄이었고, 영원히 남을 겨울일 텐데.

우리 함께 갈래? 함께 가자.


사랑해,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손을 맞잡았다. 들판이 부서져 내린다. 종말을 목전에 두고야 만 세상처럼. 불꽃이 치솟지도 않고, 물이 세상을 뒤덮지도 않고, 그저 부서져 내린다. 종말은 잔잔한 어항에 담긴 물고기처럼 세상을 집어삼킨다. 그 한 가운데 사내와 여인이 서 있다.

두렵지 않다는 듯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보듯 서로를 마주 잡아... ... .


창공을 가르며 수없이 많은 돌덩이가 연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연인의 맞잡은 손을 세상에 보이지 않으려는 듯.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네게서 봄의 향이 나. 깨어나는 봄이야, 치솟는 여름도 타오르는 가을도 스러지는 겨울도 아닌 깨어나는 봄... ... . 


전하지 못한 말을 껴안고, 연인을 잡기 위해 손을 뻗고. 





보고싶은 부분만 날조하는 자윤연화.......마더를 무찌른 직후 자윤이 본 환상?입니다 어쩌면 진짜 심연 언저리에서 나눈 대화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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