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리컨(@twolican)님의 연성을 보고 떠올려 쓰게 된 이야기입니다

*유중혁이 펫샵에서 김독자를 사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외로울 때면

별을 헤아려봐

그 중에 내가 있다는 걸 너는 알고 있으니까



인외인종

희생과 구원과 선택





가게에 덩그마니 남은 새하얀 날개의 남자는 창문에 붙어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얇은 옷 한 장밖에 걸치지 않은 그를 십이월의 추위 속에 던져 넣을 수 없다는 상냥한 배려 덕분이었다. 금방 차를 가져오겠다며 나간 유중혁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만한 돈을 지불해 놓고도 그를 두고 갈 리 없건마는, 하얀 날개를 바들바들 떨며 유리창에 달라붙은 그의 애처로운 얼굴엔 서운함이 묻어났다.

“이리와.”

가게 주인은 유리창에 붙은 그를 떼어냈다.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가게 주인은 빙긋 웃다가, 허리를 숙였다. 커다란 키가 반으로 접힌다. 들여다보는 눈동자는 마치 광활한 우주처럼 반짝거렸다.

“떠나기 전에 인사는 해야지.”

주인의 손이 팔린 물건을 살살 쓰다듬었다. 햇빛이라곤 보지 못한 것처럼 창백한 얼굴에 살짝 올려놓은 꽃잎처럼 붉은 입술. 외관으로만 본다면 최상급이었으나, 그가 취급하는 인외인종 중에서도 특수한 남자였다.

남자는 흘끔흘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만난 그의 ‘주인’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가게 주인은 낮게 웃었다. 정말로 그가 원하지 않았다면 팔지 않았겠지. 처음부터 그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이 모든 건 그들의 ‘격’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었으니까.

“구원의 마왕.”

찌익.

가게 주인의 손톱이 붉은 입술을 짓이겼다. 얇은 피부는 쉽게 찢어졌다. 벌어진 상처의 틈으로 붉은 입술보다도 더 붉은, 검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나왔다. 가게 주인은 그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멍하게 벌어진 입술 틈으로 밀어 넣었다. 새하얀 몸이 움찔 떨렸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시죠.”

마치 혀에 떨어진 피처럼, 새하얀 날개가 천천히 물들었다. 검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별처럼 빛나던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았다. 조금 표정이 달라졌을 뿐인데,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 기분이 든다. 가게 주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끝나지 않는 결말]이라고 불러줄까? 이제 너는 그 ‘격’을 손에 넣었으니.”

새하얗고 순수한 생명체가 타락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남자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손톱이 까맸다. 머리 위로 자라난 두 개의 뿔조차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아무렇게나 걸쳤던 로브를 좀 더 여몄다. 벌어진 옷자락이 아무래도 신경쓰였다.

“은밀한 모략가시여, 이 상황을 즐기시는 건 알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별거 없네.”

톡 쏘는 듯한 물음에 가게 주인이 말했다.

“계약은 처음과 똑같아. 그가 자네를 붙잡지 않으면 꿈은 깨질거라네.”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긴장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리고 이 꿈이 영원히 깨지 않는다면?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베어 나왔던 자리가 아렸다. 유리창 건너편에서 묵직한 검은 차가 멈춰서는 게 보였다.

“저 차인 모양이군.”

가게 주인은 손수 문을 열었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남자는 잠깐 그를 돌아보았다.

“성공을 바라네.”

“감사합니다.”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 새하얗게 변한 날개가 그의 등 뒤에서 눈부시게 반짝였다. 가로등 빛으로도 그의 찬란함은 가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눈을 가늘게 뜬 가게 주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대형특수인외인종 따위는 몰랐을 유중혁은, 새하얀 등이 부서지도록 꽉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는 남자도 함뿍 웃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면 날개를 자르는 게 좋을 거야.”

문에 기댄 채로 가게 주인이 말했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도로의 소란에도 묻히지 않고 기이할 정도로 뚜렷하게 들렸다.

“물론 훌륭한 날개를 도려내라는 게 아니네. 그냥 새들처럼, 나는데 중요한 깃털 두 개 정도만 부러뜨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 필요하다면 가게에서 도와주도록 하지.”

소중한 애완동물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 말을 들은 유중혁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남자를 꽉 끌어안았을 뿐이었다. 입술을 꼭 깨물고 매달려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남자는 눈을 감았다. 유중혁은 원체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자는 두 팔을 벌려 그를 마주 안았다. 그의 심장박동 소리에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유중혁이 살고 있는 집은 자유로를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가, 통일로 끝에 있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헤이리의 끝자락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있을 때에는 일산 근처에서 살았으나, 홀로 남은 그는 굳이 북적거리는 곳에 살 이유가 없었다. 은퇴하고 난 후에는 더욱.

따라서 그는 사람이 적고 한적한 곳으로 이사했다.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다만 특이한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술적으로 꼬아 올린 건물들 중 마음에 드는 걸 샀다. 그가 선택한 건 예술가들의 마을에서도 더 외진 곳에 있는 회색 투박한 건물이었다. 물론 커다란 건물은 기하학적으로 꼬여 있어서 겉에서 보면 거대한 성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사층짜리 건물의 일층과 이층은 세를 주었다. 층마다 테라스가 딸려 있어 제법 예쁜 카페처럼 보였다. 물론 일층은 공방으로 쓰이고 이층은 근처에 있는 잘나가는 카페의 빵공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덕분에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햇빛이 거실을 가득 메우며 쏟아져 들었다. 삼층과 사층은 그의 거주공간이었다. 한쪽 벽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하루 종일 볕이 쏟아져 들었다. 회색의 투박하고 딱딱한 건물 안쪽은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포근한 분위기를 냈다. 애초에 그는 살림을 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어린 동생을 손수 거둬 키우고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식구가 하나 느는 것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거라 여겼으니까.

그의 생각보다 대형특수인외인종은 알아야 할 사항이 많았다. 유상아라는 여자에게 임시로 빌린 자격이긴 했지만 그가 주인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자격증이었다. 그는 날개달린 남자를 집에 들인 다음날,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 자주 있는 시험이 아닌지 시험 날짜는 반년 뒤였다.

[딩동.]

짧게 벨이 울렸다. 나물을 다듬던 그는 재료를 놓고 앞치마를 풀었다. 지금 시간에 방문할 사람이라면 딱 한 명 뿐이었다. 애초에 이 먼 곳까지 오겠다고 언질을 준 것도 그녀뿐이었다. 유중혁은 인터폰도 확인하지 않은 채 순순히 문을 열었다.

“허, 얼굴 멀쩡한 거 보게.”

마치 자신의 얼굴이 팍삭 삭길 기도했다는 투였다. 그녀와의 대화는 대부분 그런 식이었으니 딱히 신경쓸 것도 없었다. 유중혁은 턱짓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를 가리켰다.

“네가 궁금해 하는 건 저기 있다.”

“오케.”

한수영은 쏜살같이 그를 지나쳐 창가로 달려갔다. 겨울 햇볕은 따갑지도 강렬하지도 않았다. 그저 은근히 쏟아져 들어와 하얀 뺨을 간질일 뿐. 유중혁은 이제 익숙해진 광경을 흘끗 돌아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잠이 많았다. 빛이 쏟아질 때는 게으르게 낮잠을, 달이 떠오를 땐 이불에 둘러싸여 포근한 잠을.

“와, 돈지랄.”

푹 잠들어 있는 남자를 확인한 한수영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부엌에 있는 그의 귀에까지 들렸으니 대놓고 소리를 지른 게 확실했다. 그는 한숨을 쉬고 손을 씻었다. 어차피 찬은 많았다. 나물들이야 쓴물 좀 빼고 양념을 섞어야 더 맛이 좋을 테니.

“깬다.”

“이미 깼는데?”

한수영은 부러 거실에 놔둔 둥지 사이로 파고 들어가 그를 올려보았다. 둥지. ‘그’가 생활하는 곳은 거실의 둥지였다. 원래는 네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동그란 모양의 둥지 쇼파는 거의 초등학생 만 한 동그란 쿠션들로 채워져 있었다. 새하얀 날개와 동글동글한 알, 그리고 그 모든 걸 받치고 있는 갈색 둥지는 그의 평범한 집을 한순간에 기이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처럼.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느리게 눈을 뜬 남자는, 눈앞의 한수영을 의아한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발견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늘 그래왔던 것처럼 눈이 마주치자마자 불쾌함과 짜증은 눈이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누가 그랬던가.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활짝 핀 꽃처럼 해사한 얼굴을 한 남자가 두 손을 뻗었다. 그는 지나치게 가벼운 몸을 쉽게 들어올렸다.

“저거저거, 저 여우같은 게.”

유중혁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기분 좋은지 그가 날개를 파닥이고 있었다. 그는 움직임도 거의 없는데다가, 하루에 간신히 우유 한 컵 정도만 마셨다. 그나마도 꿀을 섞어주면 간신히 다 먹는 정도였다. 고작 그런 것만 먹어대니 움직일 기운이 날 리가 없었다.

“다음 작품 때문에 인외인종을 관찰하려던 거 아니었나?”

“움직여야 관찰도 하지.”

그 말은 일부러 잠을 깨웠다는 뜻이 된다. 유중혁이 미간을 모으자 한수영이 손사레를 쳤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었다. 그녀와 함께한 지난 이십년이 빠르게 스쳤다.

한수영은 싸가지가 없는가? 예쓰.

이번 일에 그녀의 지분이 많은가? 예쓰. 우선 그녀가 자격증을 알선해주지 않았다면 ‘그’를 데려오지도 못했을 것이므로.

그녀를 집에 들인 것은 자신인가? 예쓰. 수 년동안 그녀가 막무가내로 그의 집을 찾긴 했지만, 이번에 문을 열어 준 것은 확실히 자신이었다.

애초에 현관에서 그녀에게 대놓고 입을 막지 않은 제 탓이었다. 유중혁은 한숨과 함께 그를 내려놓았다. 떨어지기 싫은지 제 목에 팔을 매다는 게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매일 이래?”

“대부분.”

유중혁은 가볍게 대답했다. 둥지는 그가 어질러 놓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책이었지만, 봉제 인형과 스마트폰과 베게와 담요가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너 버릇 잘못 들이면 큰일 난다.”

“…….”

대꾸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자신이 유난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미아를 키울 때에도 이렇게까지 어리광을 받아주진 않았다. 지금도 옷을 안 입겠다는 걸 억지로 달래고 조여서 간신히 사람 꼴을 만들어 놓은 참이었다. 한수영은 대놓고 킬킬 웃었다.

“그보다, 얘 이름은 뭐야? 인외인종이라는 것 외에 내가 아는 건 없는데.”

한수영은 그의 날개를 쭉 잡아당겼다. 장난이었겠지만, 그가 미간을 찡그리는게 눈에 보였다. 유중혁은 그 손을 탁 쳐냈다. 한수영은 곧장 욕을 쏟아냈다. 이 미친새끼, 지가 얼마나 무식하게 힘이 쎈 줄 아직도 모르지! 내가 이렇게 가녀린데! 그는 그 말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지금은 제 품에 파고들어 덜덜 떠는 그의 상태가 더 중요했으니까.

“날개종이다. 그리고 이름은,”

대형특수인외인종은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인간형, 동물형, 식물형, 무생물형. 굳이 인간형을 따로 빼놓은 것은 그 개체수가 적고 값이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가 데려온 남자는 인간형 중에서도 날개종이었다.

“이름은 독자라고 지었다.”

그가 이 집에 와서 제일 처음 한 것은 책을 꺼내 든 것. 거실에 몇 권 꽂아놨던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는 결국 그날 책 한권을 다 읽었다. 신기한 건 말은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의 성대가 인간과 다른 구조인 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글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말을 할 줄 몰랐다.

“책을 좋아하더군.”

가볍게 덧붙인 자신의 말에 한수영의 표정이 구겨졌다. 독자. 자신이 부르자 나긋한 날개종은 그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다.

“미쳤어, 정말.”

한수영이 패악을 부리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가볍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서 밥 안 먹을 생각인가? 자신의 말에 그녀는 신경질을 내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그의 집에서의 철칙이었다. 그녀는 쿵쾅거리며 부엌을 돌아다녔다. 아마 상이라도 차리는 거겠지. 그동안 유중혁은 한 팔로 독자를 안은 채 거실을 치웠다. 그의 가슴에 기댄 독자는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와서 밥이나 먹어!”

그녀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는 조심스럽게 독자를 둥지 안에 내려놓았다. 담요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자 눈을 가늘게 뜬 게 보였다. 묘하게 야한 눈이었다. 가늘게 떠진 눈동자 밑에서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꼭.

“자라.”

그는 독자의 눈을 감겨주었다. 독자는 그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수영이 눈을 뾰족하게 뜨고 말했다.

“넌 나한테 진짜 잘해야 돼, 나쁜놈아.”









-To be continue



아..... 전 날개 팡인이예요 날개 많은거 정말 너무 좋아요





레즐리Lesely Christmas=체리크렉Cherry Crack 마약처럼 중독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iss, 크리스마스라고 불리고 싶었던 라스트네임은 잊혀진 지 오래. with all my XO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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