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이코는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아으….”


창백한 안색의 드레이코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덜덜 떨리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드레이코?”

“…세베루스.”


고개를 들자 눈에 고여 있던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세베루스가 몸을 굳혔다. 드레이코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세베루스는 충격을 받은 듯 망연하게 서 있었다.

눈물을 대충 손으로 닦아내는 모습을 보고서야, 굳어있던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잠깐 사이 악몽이라도 꿨나.”

“…네.”


세베루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드레이코를 살폈다. 물에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처연하게 움직였다. 물기로 흐려져 은회색의 눈은 아직 초점 없이 멍했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여전히 꿈에 있는 것 같은 눈이었다.


“드레이코, 나를 봐라. 여기가 어디지?”

“세베루스의 방이요.”

“그럼 너는 누구지?”

“…”


가장 간단할 질문에 드레이코는 침묵했다. 다시금 떨어지려는 고개를 세베루스가 붙잡았다. 희고 부드러운 볼은 아직 솜털이 남아 있었다. 드레이코가 아직 어리다는 게 느껴졌다.

볼에 흐른 물길을 살살 닦아냈다. 세베루스는 찌푸려져 있는 미간을 피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런 것이 어려웠다. 사람을 상대하고, 우울함에 빠져 있는 이를 달래주는 게 어려웠다. 애초에 그는 누군가를 달래는 데 소질이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제 대자였다. 대부가 되고 드레이코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눈도 못 뜨는 갓난아이는 아기 침대에 뉘어져 잠들어 있었다. 숨소리가 너무 작고 조용해 죽은 거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툭 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아이였다. 그리고 드레이코는 지금도 그랬다. 툭 치면 정말 죽어버릴 것만 같이 불안했다. 세베루스는 허리를 굽혀 드레이코와 눈을 맞췄다. 흐리멍덩하던 은회안이 세베루스를 보았다.


“너는 드레이코 말포이다. 언제나 호그와트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말썽꾸러기이자, 나의 자랑스런 제자지.“


세베루스는 그 멍청한 시리우스 블랙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드레이코에게 애정을 느끼고 마음이 쓰이고, 아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약하고 나의 대자가 된 말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꾼 건 드레이코였다. 들러붙을 때는 귀찮으면서도 나쁘지 않았고, 아픈 날에는 그답지 않게 걱정이 들었다. 드레이코에게 상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에야 알았다. 그는 이미 드레이코를 마음속에 들여놓은 상태였다.

릴리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치겠다 다짐했다. 삶에 미련도 없었고, 잡힐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젠 어린 대자가 걸렸다. 저 어린 것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겨, 그가 완전히 떠나지 못하게 할 족쇄가 되었다. 초점이 잡혀가는 은회안을 보며 숨을 골랐다. 더듬더듬 기억을 더듬어도 언제부터 네가 나의 족쇄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작디 작은 손으로 제 망토 자락을 꼭 쥘 때였나. 손이 차갑다며 울상인 얼굴로 온기를 나눠줄 때였나. 책이 어렵다며 불퉁한 얼굴로 나를 찾아올 때였나.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세베루스는 작고 연약한 제 족쇄를 바라보았다. 분명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을 거라, 모든 것을 밀어낼 거라 다짐했었는데. 그런데.


“내가 다시금 누군가를 아끼게 만들었다.”


난로 속 불이 흔들렸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닫혔다가 열리자, 또렷한 은회안이 보였다.


“네가 누구지?”

“드레이코 말포이.”

“그래.”


*


미묘하게 다정해진 세베루스를 보며 목덜미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어색한데… 나쁘지 않네.’


간질간질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 지금의 세베루스가 아끼고 애정하는 건 원작의 드레이코가 아니라 나였다. 빙의한 나. 그 사실이 놀랍고 기뻤다. 환생라이프 최고…!


“일단 심장이 안 좋은 것 같으니, 심장 관련해서 만들었다. 이건 환상통을 억제하고. 또 이건 꿈은 안 꾸게 해준다. 질문 있나?”

“저 심장 괜찮은데요.”


세베루스가 미간을 구기며 눈가를 좁혔다. 주로 덤블도어가 개소리할 때 나오는 얼굴이었다. 드레이코는 억울하지만 세베루스는 지금 드레이코가 개소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네 상태에 무심한 경향이 있다. 네 의견보단 주변의 의견이 더 수용할 가치가 있지.“

”주변 누구요…?“

”네가 끼고 도는 포터 녀석과 디고리, 노트. 그리고… 블랙의 의견이다.“


반박할 게 없었다. 시리우스는 뭔 개 출신이라서 그런지 드레이코보다 더 드레이코를 잘 보좌했다. 드레이코가 ”아, 그거 없나?“ 라고 이야기만 해도 귀신같이 알아서 물건을 찾아와 건네줬다. 드레이코는 그런 일이 하도 반복되자 시리우스를 ‘개쩌는 개’라고 인정했다. 드레이코가뭔가 마시고 싶을 쯤이 되면 알아서 도비를 시켜 코코아나 밀크티를 타오게 했고, 도비를 시켜 책도 가져다줬고, 간식도 가져다줬다.

대체 어떻게 드레이코의 행동을 예측한 건지 아무도 몰랐다. 드레이코가 괜히 심술이 나 가져온 쿠키를 놔두고 다른 것을 간식으로 먹었다가 후회한 적도 있었다. 시리우스는 그것 보라며 코웃음 쳤다. 개가 코웃음 치는 모습 보면 진짜 어이가 없어진다. 뭔 개가 저렇게 표정이 풍부하지? 싶어진다. 드레이코는 세베루스에게 약에 대한 당부와 언제 먹어야 하는지 들었다.


”이 약은 언제 먹으라 했지?“

”이건 일주일에 세 번, 식후 30분 뒤에 먹고요. 저건 잠들기 1시간 전에 마시고, 이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마셔요.“

”그래. 그럼 이제 가라.“


드레이코는 물약들을 잔뜩 받고 덤으로 사탕 하나까지 받고 난 뒤 보내졌다.


”전생에 보다가 끊겼던 드라마가 사실 새드엔딩이라니… 진짜 슬퍼. 남주는 그래도 살아서 여주 만날 줄 알았는데. 하아….“


드레이코는 우울한 얼굴로 사탕을 까 입에 넣었다. 꿈 악마가 악몽이 안 통하자 이제는 전생을 이용해 몰랐던 슬픈 사실들을 전달했다. 어떻게든 드레이코에게 타격을 주고 말겠다는 악바리가 느껴졌다. 커다란 영화관 스크린으로 틀어주는 드라마는 아직도 생생했다. 전생에 마지막 화를 못 보고 끊겼던 드라마의 끝을 드디어 봤다. 그래도 대중성을 생각해서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그런데 남주를 결국 죽여버리다니. 너무 충격적이라 꿈에서 깨고도 눈물이 쏟아졌다. 원래 드레이코는 남주가 죽어도 울고, 여주가 죽어도 울고, 주연이 죽으면 그냥 다 울었다. 드레이코는 다른 차원에 있을 드라마 작가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취향 확고해서 돈 벌기를 포기한 작가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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