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왕자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나의 노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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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초인종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모두가 퇴근을 마친 새벽, 나는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간만에 생각난 그 자에게 맥주라도 한 잔 하자며 기분 좋은 방문을 하려고 했던 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초인종 소리 너머로는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아, 마침 전해줄 물건도 있었는데. 나는 메고있던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들었다. 이전에 업무를 위해 인수인계를 받았던 파일들. 그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할테니, 돌려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내일 다시 들르는 건 힘들 것 같으니 지금 전해둘까, 나는 다시금 문을 쿵쿵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침묵 뿐이었다.

" 일찍 주무시나. "

아무래도 오늘은 글렀나보다, 나는 굳게 닫힌 현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에 만나면 전해줘야지, 조만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자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커튼이 열린 채 내부가 훤히 드러난 창문이었다. 맙소사, 이 생물은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 누군가가 집안 내부를 보면 어쩌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내부를 흘긋 바라보고는 다시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내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아니, 청바지였나? 옷이 널부러져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딱히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건 조금 민폐 아닌가, 나는 꿋꿋하게 발걸음을 앞으로 옮겨 나갔다. 나의 집은 그가 사는 곳보다 한 층 높은 곳이었기에 계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코너를 돌아 계단을 마주하자 아랫층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좋은 아파트는 아니었기에 철제로 이루어진 계단이 발걸음에 맞춰 통통,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내 앞에 나타난 자는 쌍안경의 헤드를 가진―하지만 어째서인지 헤드를 거꾸로 돌린 채 후드를 쓰고 있는―자였다.

" 좋은 밤입니다. "

" ... 좋은 밤이에요. "

여전히 우중충한 생물이었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오늘도 입니까? "

" 그거, 무슨 의미죠? "

" 여기에 오시는 이유는 그거 하나 아니십니까. "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를 만나러. 내가 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이 아파트에서 그를 마주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아무래도 그거겠지, 무직이 되어버린 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기왕 만났으니 가벼운 인사라도 해야하나, 싶어서 다시 그를 돌아보려던 찰나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그 자랑 연락, 닿았어요? "

" ... 네? "

" 사실 며칠동안 연락이 안 닿았어서 말이죠. "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며칠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까의 그 침묵도 실은 부재였던 것일까. 나는 시선을 위로 올린 채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 사실 아까 집에 가 봤는데, 없는 것 같더군요. "

" 없었다고요? "

" 분명 며칠동안 집을 비운 탓이겠죠, 연락 부재도.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는 다시 잠깐의 침묵.

" 아, 혹시라도 그 집에 들어가신다면 커튼은 꼭 쳐주시길 바랍니다. "

옷가지도 조금 치워주시고, 다른 이들이 보는 것 자체가 민폐이긴 하지만 세상에는 민폐 투성이의 생물들이 꽤 많으니까요. 나는 작게 웃음을 내뱉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그의 음성이 작게 울려퍼졌다.

" 그 자가 커튼을 열어두었어요? "

" 네, 내부가 보일 정도로요. "

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춘 채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통통,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갔다. 널부러진 옷가지는 잘못 본 걸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런 자잘한 것들을 신경 쓸 여력조차 내게는 없었다. 나는 지금 막 야근을 끝마치고 돌아온 새내기 신입사원이었으니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철컥, 묵직한 소리가 차가운 정적을 뚫고 울려퍼졌다. 그래, 조금은 쉬자. 무엇인가 찝찝한 구석을 애써 외면한 채 나는 묵직한 철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


네가 날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을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려욱 - 어린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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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정적이 낮게 깔린 복도에서는 나의 발소리만이 작게 빈 공간들을 메우고 있었다. 며칠동안 닿지 않았던 연락에 조금은 걱정이 되어 먼저 왔더니 예상치 못한 등장인물에게 그의 근황을 스포일러 당해버렸다. 뭐, 확실한 근황은 아니니까. 찝찝함을 안고 돌아가기엔 조금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몇 미터 채 되지 않는 이 거리가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나는 조금씩 나를 엄습해오는 의미모를 조급함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 너머로 들렸어야 했을 평소의 밝은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맙소사, 정말로 집을 비운 거야? 문도 두드려보고 초인종도 몇 번 더 눌러봤지만 여전히 들리지 않는 대답에 나는 한 발 물러섰다. 다시 집에 온다면 연락 주겠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부재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모를 조급함은 곧 이유모를 불안감으로 변해 내 발목을 꽉 붙들고 있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철문을 앞에 두고 잠시 서있던 나는 문득 아까 마주친 우산머리의 말이 떠올랐다.

" 아, 혹시라도 그 집에 들어가신다면 커튼은 꼭 쳐주시길 바랍니다. "

커튼이라,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문 바로 옆에 자리잡은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커튼은 보기좋게 열려있었고, 그 틈새로 집안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부를 들여다봤다. 아득하게만 보이는 시야에 나는 창문 너머를 대충 훑어보다가 벽 너머에 살짝 튀어나온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 ... 옷? "

어두컴컴한 내부에 굉장히 멀리 보이는 시야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청바지.  그가 자주 입고 다니던 것이었다. 순간 발목을 콱 붙들고 있던 불안감이 등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어째서, 어째서 이 순간에 해맑은 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일까.

나는 다시 문앞으로 돌아와 초인종을 꾹 눌렀다. 띵동, 맑은 소리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울려퍼졌지만 대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관문에 걸린 계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끝에 닿은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 감촉을 따라 손을 꺼내자 내 손에는 열쇠가 들려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열쇠를 놓고 왔다며 계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그의 모습을. 그것마저도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이었지만.

" 진짜 순진한 생물이라니까. "

나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철컥,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웅장하게 차가운 정적 사이로 울려퍼졌다. 나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문고리를 천천히 돌렸다. 분명 평소와도 같았던 철문이 지금만큼은 나의 어깨만큼이나 무겁게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내부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 ... 살아있어요? "

예상한대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집을 비운 것이리라 생각하고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괜히 걱정한 것이었다. 아, 진짜 이게 다 내 성격 때문이라니까. 현관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조용히 집안 내부를 둘러보았다. 거꾸로 된 헤드때문에 아득하기만 한 시야였지만 그래도 왠지 둘러봐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커튼정도는 쳐주라고 했으니까.

오지랖인가? 뭐, 아무렴 어때.

이곳은 나보다도 오지랖이 더 심한 사람의 집이었으니까, 별로 상관은 없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 ... 하? "

―말없이 누워있는 벽돌모양의 헤드였다.

-


바람 같은 맘을 내게 머물게 하는 건
어렵다는 걸 나도 알면서
말하지 않고 널 기다려

려욱 - 어린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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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무슨? "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시야가 너무나도 멀었으니까, 그래서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으며 손을 뻗었다. 아니지, 아니지? 스르륵,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내 손끝에 닿은 것은 그의 옷이었다. 그래, 옷. 옷이긴 한데.

옷 뿐이었다.

왜, 왜? 왜 옷 뿐이야? 평소같았으면 이쯤에 자리잡고 있었을 팔은, 손은?

나는 시선을 천천히 옆으로 돌렸다. 바닥에 널부러진 베이지색 후드티의 모자 부분에는 벽돌만이 놓여있었다. 분명 당신의 모습이었는데, 당신이 좋아하던 옷이었는데. 그마저도 나에게는 너무 아득하게만 보였다. 나는 벽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르르, 손끝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뻗어 벽돌을 매만졌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차가운 돌의 촉감과 함께 젖은 흙의 촉감이었다.

아.

" [어린왕자]라는 책, 알아? 내 머리는 거기에 나오는 상자라구! "

그런 것이었나. 그 말이, 이런 것이었던가.

여전히 떨리는―아니, 어쩌면 아까보다도 더 떨릴지도 모르지.―손을 거둬 움켜쥐었다. 온기를 머금고 있는 내 손과 너무나도 차갑게 식어버린 당신의 헤드. 그 이질감이 나는 아직까지도 익숙치가 않아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시 골랐다. 시야가 너무나도 아득해서, 까마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 진짜 떠나버린 거야? 이렇게 죽어버린 거야?

까마득한 시야가 너를 영영 멀리 보내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것 같아서. 나는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천천히 헤드를 정방향으로 돌렸다. 언제까지고 아득하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시야가, 다시 모든 것이 가깝게 보이게 되었다.

나, 이제 당신이 더 이상 까마득하게 보이지 않아. 바닥에는 시간이 그리 지나지는 않았는지 하얀 먼지가 얇게 쌓여있었다. 나는 천천히 기어서 그의 헤드 근처로 다가갔다. 평소와 같은 벽돌모양의 헤드.

아, 당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상처투성이였던가.

나는 천천히 그의 헤드를 살펴봤다. 그래, 당신은 이걸 바랐던 거지?

" 왜 거꾸로 보고 있는 거야? 더 멀리 있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건 어때? "

" 하다못해 내 머리 안은 어때! 혹시 알아, 네가 좋아하던 꽃이 있을지도? "

그가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구멍에는 젖은 흙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구멍에는 꽃 한 송이가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그래, 맞아. 당신은 화훼를 좋아했잖아, 그렇지?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꽃송이를 매만졌다. 붉은 색 잎이 탐스럽게 핀, 여전히 물기를 머금고 있는 붉은 장미.

" ... 하하. "

실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멍청하리만큼 순진했던 당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똑똑하시네요.

맞아요, 내가 좋아하는 꽃. 붉은 장미잖아.

이 꽃을 이렇게나 가까이 본 지 얼마나 되었더라. 나는 그 모습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그의 헤드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다리에 걸려 바스락, 무엇인가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 확인해보니 까마득하기만 했던 시야탓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포스트잇이었다.

[ 나는 더 이상 돌대가리가 아니야. 나는 예쁜 화분이야. ]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짧은 글. 마지막마저도 정말 그 자답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유서였다. 구겨진 포스트잇을 쥔 손이 더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시야는 마치 김이라도 서린 듯 뿌옇게 번져갔다. 나는 한 쪽 소매를 들어 렌즈를 벅벅 문질렀다. 맑아진 시야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뿌옇게 번졌고, 나는 그 짓을 몇 번 반복하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상처 투성이인 벽돌에서는 붉은 장미가 예쁘게 피어올랐고,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믿으며 세상을 떠났다. 그래, 당신은 돌대가리가 아니야.

당신이 돌대가리였다면, 나는 이렇게 다시 시야를 돌리지 않았을테지.

나는 여기서 이 이상 무얼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그냥 뿌옇게 번진 시야로 바닥을 조용히 응시하다가 앞으로 상체를 숙여 엎드렸다. 바닥에 펼쳐진 그의 옷이 내 손에, 팔에, 그리고 시야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떠났다. 돌대가리라며 자신을 무시하고 짓밟던 이 세상을, 자신의 손으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나는.

나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 한 채, 살아있을 적에 따뜻한 말 한 마디조차 건네지도 못 한 채.

그렇게 단 하나뿐인 친구를 말리지도 못하고 떠나보냈다.

―마지막 순간에까지도 곁에 있어주지 못했어.

" ... 왜, 왜 그렇게 외롭게 떠났어요? "

내 이야기는 그렇게 들어줬으면서, 왜 나한테 얘기도 안 했어? 목소리가 정처없이 떨려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 모르겠어. 나는, 나는 당신을 모르겠어. 나는 양손을 들어 후드를 썼다. 그리고는 그 후드를 움켜쥐며 몸을 움츠렸다.

고마워. 이 말 한 마디가, 당신이 살아있을 적에는 그렇게도 어려웠는데. 나는 왜 진작에 전하지 못했을까. 내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같고 한심했다. 유일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준 존재였는데, 나는 그 존재의 소중함조차 잊고있던 멍청이였다. 내 탓이었다. 그래, 다 내 탓이야. 내가 조금 더 다가갔더라면, 당신이 내게 해 준 만큼 나도 당신에게 해주었더라면.

" 네 탓이 아니야. "

언젠가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시야를 돌려버린 내게,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은 죄가 아니라며 따스하게 건넨 그 말.

" ... 미안해. "

나는 작게 읊조렸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작게 웅얼거리며 당신에게 끊임없이 사죄했다. 사죄하고, 또 사죄하고. 꽤나 정확한 어조였던 사과는 점차 그 형태를 잃어서, 그렇게 점점 울음 속에 삼켜졌다. 목구멍을 콱 막고있던 죄책감을 뚫고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눈물은 흘릴 수 없었으나, 그냥 울고 싶었으니까. 미안해요, 마지막까지 나약한 모습만 보여서 미안해. 근데, 근데. 나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제발 떠나지 마. 돌아와.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어린 시절에도 쉬이 울지 않았던 내가, 당신의 앞에서. 당신이 떠났다는 그 사실 하나에 이렇게 울음을 터뜨렸다. 차가운 정적, 온기라고는 이미 사라져버린 이 공간에서 나의 오열이 온기를 머금고 천천히 공간을 물들여갔다. 새벽의 싸늘한 바람이 멎고,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어느덧 어스름한 새벽녘을 따라 퍼져가고 있었다.

-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피우려 애쓴 간절함 때문이야

려욱 - 어린왕자 中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잔뜩 갈라진 목소리와 함께 살짝 진정이 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뿌옇게 번진 시야를 양 소매로 깨끗하게 닦아내고는 다시 그의 흔적을 향해 고정시켰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가 좋아하던 베이지색 후드티를 천천히 정리하고 그의 청바지, 그리고 양말까지도 정리해 한 쪽에 고이 모셔둔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집안 곳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가구를 닦아냈다. 분명 그의 손길이 닿았을 그 모든 것들을, 천천히. 담담하게 정리해 나가면서 그의 흔적들을 눈에 담아냈다. 까마득했던 시야가 다시 가까워진 탓에 이곳 저곳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만이 남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덩그러니 남겨진 벽돌, 아니. 화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전보다는 떨림이 훨씬 잦아든 손으로 벽돌을 들어올렸다. 화분 바닥까지도 잘 만들어 둔 건지 흙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 나는 작게 웃었다.

당신은 진짜, 화훼를 했어야 했어.

양손으로 화분을 받쳐든 나는 집안을 물끄러미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의 온기가 남아있을 것만 같았지만 이미 이 공간에 그는 없었다. 그 온기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려 걸어갔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자, 어느덧 고개를 살짝 내밀고 올라온 아침 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에 살짝 시야를 가린 나는 천천히 손을 치워 앞을―세상을―바라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과 함께 푸른 하늘, 오늘도 평화로이 아침을 알리는 고요함. 그 중간중간에 고요함까지도 깨우는 새소리까지. 다시 넓어진 시야와 함께하는 세상은 새로웠다. 나는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 ... 그러게. 진작에 당신 말 들을 걸 그랬네요. "

그랬더라면 분명, 당신과 함께 같은 세상을 같은 시야로 바라보며 웃었겠지.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떠난 사람을 다시 찾아서 무엇하리.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는 꼭, 아름다운 꽃들을 키워주세요. 당신, 돌대가리 아니니까 분명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생명을 품고 있는 상자였잖아, 당신은. 그렇지?

" 가자, 장미야. "

어린왕자가 되어 다시 태어난 나는, 그렇게 쭉. 멈추지 않고 걸어나갔다. 앞으로. 그리고, 세상으로.




마감하고 노래하고 덕질하는 해피스윗라이프! 올라운더 크리에이터, 유넬입니다! Write * Vocal * Mix * Mastering * Video * Illust * Dubbing All Rounder Creator 올라운더 크리에이터 유넬 UNell ユネル Twitter :: @Hello_U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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