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my sun and the moon.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뜬 유찬은 옆자리가 텅 비어 있는 걸 느끼자마자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며 지난밤 있었던 모든 순간들이 꿈인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눈뜨면 옆에 제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은 잔인하게도 또 혼자 남아 있었다. 


유찬은 이불을 끌어다가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불에, 방안에 가득한 제민의 체취에 서러운 마음이 더 크기를 키워갔다. 단 한 번이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다. 차라리 다정하게 굴지나 말지, 다정했던 그 모습들은 전부 섹스의 일부였던 것일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저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전(前) 대표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유찬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고 있을 때, 제민은 샤워가운을 걸치고 젖은 머리를 털어내며 욕실에서 나왔다. 방에도 욕실이 있었지만 혹여나 물소리에 유찬이 깰까 봐 부러 거실에 있는 욕실을 사용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본 제민은 주방으로 가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고, 이모님이 손수 만들어 둔 수제 딸기잼과 크림치즈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식빵을 접시에 담아 역시 식탁 위에 올려둔 뒤, 제민은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이불 안에 몸을 숨긴 유찬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가는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라갔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가며 침대에 걸터앉아 유찬을 불렀다. 


" 유찬 " 

" .... " 


 눈에 보일 정도로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혹시 자신이 지난밤 너무 몰아붙여 아프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러브젤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쓰여야 할 핸드크림을 쓴 것이 문제가 되진 않았을까 신경 쓰였다. 이불을 잡아 끌어내리자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리는 유찬의 행동에 제민의 얼굴이 구겨졌다. 혹시 후회하고 있는 걸까. 


" 유찬 " 

" ... " 

" 대답 안 하지? "

" ... 네 "

" 왜 울어 " 

" ... " 


제민은 유찬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낮게 한숨을 내 쉰 제민은 이불을 어깨까지 다시 끌어올려 주고서는 쉬라는 말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섰다. 제민이 신고 있던 거실 실내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해진 유찬이 제민을 붙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다가 찌르르 울리는 허리 통증에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 윽.. " 


문고리로 손을 뻗던 제민이 그 소리에 움직임을 멈췄고, 허리를 짚고 끙끙거리는 유찬을 보다가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없는 줄만 알았던 제민의 등장에 놀랐기도 했고,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으며, 쪽팔리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건데 제민이 나가버리자 이번에는 정말로 저를 두고 갈 것만 같아서 끙끙거리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겨우 몸을 일으켜 바닥에 발을 내딛는데 또다시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아픔을 참아보려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침대를 짚고 엉덩이를 떼어 일어나려는데 제민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고 저를 훑어보는 제민의 시선에 그제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불을 끌어다가 제 몸을 가렸다. 


" 엎드려. "

" 네? " 

" 엎드려 누우라고 " 


그러니까 왜.. 


눈을 껌뻑이며 멍하니 쳐다보자 제민은 걸음을 옮겨 침대 옆 협탁에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 눕혀 줘? " 

" 아... 아, 아니요! " 


힘들게 겨우 일어난 몸을 다시 침대 위로 엎드려 눕히자 제민은 유찬의 등허리에 마른 수건을 덮어내고서는 그 위에 찜질팩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나아질진 모르겠지만 그냥 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따뜻한 온기에 괜히 가슴이 간질거리는 것도 잠시 엉덩이를 잡고 사이를 벌리는 제민의 행동에 유찬은 창피함에 몸을 꼼지락대며 피하려 했다. 


" 쓰읍, 가만히 있어. " 

" 아... 저.. 흐.. " 


밤새 여러 차례 들락거렸던 작은 구멍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자 제민은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왔다. 여기서 또 아이를 탐하면 짐승보다 못한 놈이다. 생각하며 올라오려는 욕정을 꾹 누르고 그 주변을 살폈다. 그래도 뒤를 풀어준 덕분인지 찢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살짝 부어올라 있었다. 엉덩이에서 손을 떼고는 허리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 배는 괜찮아? " 

" ... 네 " 

" 그래, 잠깐만 그러고 있어. " 


제민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유찬은 손을 뒤로 뻗어 제민을 붙잡는다는 것이 그만 샤워가운의 허리 끈을 잡아당겨버렸다. 허리 끈이 풀어진 가운은 자연스레 벌어지며 그 사이로 제민의 몸이 드러나면서 반쯤 일어난 그것도 살짝 보였다.  


" 아... 아, 아니 그게... 이게 어... 그게 아니고.. " 

" 말해 " 

" ... 아니에요 " 


끈을 놓고 고개를 돌리는 유찬의 표정이 어쩐지 시무룩해 보여 제민은 샤워가운의 끈을 다시 묶으며 침대에 걸터앉아 유찬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 아깐 왜 울었어 " 

" ... " 

"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대처를 하지 " 

" .. 그냥... 이사님 가버린 줄 알고... 또 혼자 남겨진 줄 알고.. " 


유찬의 말에 제민은 아이의 부모님 일이 생각이 나면서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워했을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흔히들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바쁜 부모님과 우애라고는 전혀 없는 형제들, 남부러울 것 없이 가졌지만 그만큼 외로운 삶이었다. 


" 일어날 수 있겠어? " 

" 네? " 

" 배고프다, 뭐 좀 먹을까? " 

" 아... 네 " 


유찬의 허리에 올려둔 찜질팩을 치워주고서는 제민은 샤워가운을 가져다가 유찬에게 주었다. 가운을 받았지만 눈치만 보고 있는 모습에 피식 웃으며 뒤돌아섰다. 제민이 돌아선 틈에 재빨리 팔을 끼어놓고 허리 끈을 묶은 유찬이 침대에서 일어서려다 끙끙거리자 제민은 다시 유찬을 향해 돌아서서는 유찬을 안아 들었다. 


" 어어? " 


놀란 유찬이 내려달라고 버둥거렸지만 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의자에 앉히고서는 식어버린 식빵을 버리고 새로 구워내며 우유도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했다. 유찬은 꿈같은 현실이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제민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유찬의 앞에는 따뜻한 우유를, 저의 자리엔 커피를 내려놓고서는 식빵을 담은 접시를 식탁에 올리며 의자에 앉았다. 


" 먹어 " 

" .. 잘 먹겠습니다. " 


컵을 들고 적당히 데워진 우유를 마시며 빵에 잼을 바르고 있는 제민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동안 늘 단정하게 넘긴 스타일만 보다가 이마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낯설면서 새삼스레 심장이 두근거렸다. 제민은 잼을 바른 식빵을 유찬의 앞에 놓아주었다. 


" 얼굴 뚫어지겠다. " 

" 아... "

" 뭐라도 묻었어? " 

" 아니요, 그냥... 신기해서요. " 

" 뭐가 " 

" 이사님 모습이요... 이사님 머리 그러고 있으니까 어려 보여요. " 


다른 식빵을 집어 들고 다시 잼을 바르기 시작하던 제민은 움직임을 멈추고 유찬을 쳐다보았다. 


" 뭐 그동안은 나이 들어 보였다. 그건가? " 

" 네? 아, 아니요! " 

" 그럼? " 

" 아... " 

" 들어 보였군 " 

" ... 멋... 어요.. "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리는 유찬의 귀가 붉어진 것을 보고는 제민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침 식탁이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아 놀리려던 생각을 접었다. 이미 한차례 울었으니 기운도 빠졌을 텐데 또 울리면 안 될 것 같았다.  


" 아, 오늘 스케줄 다 취소했어. 집에서 쉬어. " 

" 괜찮은데... 이사님은 언제 나가세요? " 


그러고 보니 평소 같으면 벌써 출근을 했을 시간인데 아직 집에 있는 게 이상했다. 바쁘다는 걸 알면서 곁에 없다고 울다니‥. 제민의 눈에 얼마나 한심스럽고 어리게 보였을까. 


" 나도 쉬려고 " 

" 네? " 

" 나도 사람인데 쉬어야지. " 

" 어... 그럼 집에 계실 거예요? " 

" 어. " 

" 와... " 

" 빨리 먹어. " 


제민의 말에 멍하니 있던 유찬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꿈이면 빨리 깨. 꿈이 아닐 수가 없잖아. 꿈이야 꿈.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갑자기 머리를 흔든 탓인지, 꿈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는 건지 허리의 통증이 다시 한번 온몸을 타고 오르는 듯했다. 


" 흣.. " 


제민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유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티 내지 않으려 표정을 감춘다고 감췄지만 이미 제민이 그 표정을 봐버린 후였다.  깨작거리며 먹던 빵을 크게 베어 물어 오물거리자 제민 역시 피식 웃었다. 어쩌면 조만간 정말 꾸밈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기면서 저렇게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데 알아채지 못했던 저의 무심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누군가의 기분을 파악하며 행동할 필요도 없었으니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비워진 그릇을 제민이 치우는 동안 유찬은 턱을 괴고 제민의 모습을 시선으로 쫓았다. 그동안 혼자 끙끙댔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입꼬리가 자꾸만 실룩거렸다. 그러나 제민의 도움을 받아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은 유찬은 거실 가운데 늘어진 어제 저의 만행들을 보고는 힐끔 제민을 쳐다보았다. 제민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스스로가 신경 쓰여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저기... 이사님.. " 

" 어? " 

" 죄송해요.. " 

" 뭐가? " 

" 저거 다 환불할게요.. " 

" 왜? 그냥 써. 쓸려고 산 거 아니야? " 

" ... 아, 그게.. " 

" 뭐 샀나 구경이나 좀 할까? " 

" 안 돼요!! " 


그러나 이미 제민은 보고 있던 태블릿PC를 내려놓고는 하필이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결혼 선물이라고 산 커플 커플 잠옷이 든 쇼핑백에 손을 뻗었다. 


아... 제발 그것만은... 왜 하필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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