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가 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여느 때와 같았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곤두세우면서도 너무 가까우니 오히려 무뎌진다고. 그리 위태위태 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너를 보며 어느 한구석에서는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설마 진짜로, 라던가. 생각해버렸을지도. 수술실에서 시간이 한없이 늘어질때도 어쩐지 현실감없는 감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도 너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곧 나올 것이고, 의사가 이번엔 진짜로 위험했다고 수십번 즈음 들었던 말을 재현할 것이고, 며칠 있어 눈을 뜨고선 케이토, 안녕, 하고 여상히 인사해 올 것이라고. 막연한 느낌이었다. 넌 언제나 그랬으니까.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지만 끝내 죽지 못한다는 듯 아득바득 기어 삶으로 올라오는 너를 보고서.



그래서, 마침내 의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왔을 때,


나는....



...



 

네 사망일은 기묘하게도 졸업하고서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악착같은 미련, 꿈에 대한 갈망이 너를 살아가게 했던 것은 아닐까. 졸업 이후, 네 미련과 독기가 서서히 빠졌을 때 즈음 해서, 너는 내 곁을 떠났으니. 그건 떠난 거라기 보단 이내 놓쳐버린 거라고. 안심한 나머지, 아 이제 괜찮아, 하고 힘이 빠져 그만 놓쳐버린 것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향내가 자욱하다.



언제나 맡아왔던 향이었지만 이번엔 어쩐지 매캐하다기 보단 깔끔한, 소독약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말대로 장례 절차를 진행하며 눈을 깜빡인다. 조문객들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맞이하고서 자리를 지켰다. 한참 죽음을 준비해 왔으니 생각보다는 슬프지 않은 걸지도. 막연히 든 연상. 몇번이고 시뮬레이션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눈물 한번 흘리지 않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독하다 했던가. 그런 말을 많이 듣던 제 소꿉친구가 자연히 떠올라 헛웃음지었다. 닮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붙어있던 시간만큼 서로는 스며들었다.




그러니 에이치. 그곳에서는 잘 지내고 있나. 말하지 못한 것들이 허공에 한숨처럼 흩어진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영을 위로하기 위한 눈물이다. ㅡ내가, 기도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과오였을까. 안온함에 젖어 간절함이 줄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날따라 의식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는 지도 모른다. 수십가지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리광부리는 너를 안다. 병실에 틀어박혀 죽기 싫다고 울부짖었던 목소리나. 제법 날카롭게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보던 눈. 그 모든 것들이 너를 이룬다. 나를 이룬다. ㅡㅡ너는 나를 채우고 있었음을. 네가 없으면 불완전해지는 나를 몰랐을까. 에이치. 대답없는 부름은 익숙할 텐데도 한없이 물기를 띈다.




너는 누구보다도 인간다웠다. 그렇다면 너는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의사나, 그렇게 낳아버린 부모님을? 혹은 영특한 아이니 제 몸을 망가트린 신이나 세상 그 자체를 저주할까. 죽기 직전에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막연히 아픈게 싫다는 생각이나, 혹은 내가 그럤던 것처럼 여느 때와 같았을까. 주마등 따위를 보았을까. 부모님이나 친구들 생각을 했을까. ㅡ내 생각을, 했을까. ......물들어 버린 이기심에 헛웃음짓고는 눈을 감았다.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써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비가 내린다.



젖어들어가는 제 머리카락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다른 네 머리칼을 생각했다. 푸르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네 눈동자색을 떠올렸다. 에이치, 보고 있나. 비가 내리고 있어. 보통 이럴때 비를 맞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에이치였다. 그런 에이치를 나무라며, 안경을 올리곤 구제 불능이군, 하면 아하하 웃으며 케이토는 여전히 걱정이 많네, 했던 것들. 그래놓고선 다음날 지독히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던 것들. 그 옆에서 책을 읽어주던 것들. 추억의, 조각들.




스며든 것은 성격만이 아니라고,

문득 생각했다.



볼에 흐르는 건 물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고, 앞으로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번 입을 두어 번 달싹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다가,

네 앞에서 똑바로 서서.




사랑해.

끝내 말하지 못했던가.

그 어느날에 가슴떨리게 사랑하고 있다고,

너는 그게 뭐냐고 웃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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