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신체절단,PTSD)


키시베 로한은 악몽을 꾼다.

서걱거림, 헐떡임, 찰강이는 사슬 소리. 자신의 손을 아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었다. 자네의 이름은 상관없어. 자네가 이 이상적인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지. 욕짓거리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대답을 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대답을 한다한들 상대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멈출 것 같지도 않았지만. 

"자네의 손은 보존할 가치가 있어. 다른 손과는 달라."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아까부터 발버둥쳤는데도 묶인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감각이 완전히 차단당한 상태에서 자신의 잘린 손이 남자의 손으로 옮겨가는 것을 로한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만, 그만. 머릿속으로 되뇌인 말은 거품처럼 사그라들뿐이다. 

"만화를 그린다고 하던데, 이런 아름다운 손에 굳은살이 생기거나 모양이 변형되면 곤란하잖나. "

로한은 눈동자를 굴려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 자신을 키라 요시카게라고 밝힌 남자는 자신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로한의 손을 연신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뚝뚝 녹아 떨어지는 그 표정은 마치 예술품 애호가들이 제 구미에 딱 맞아 떨어지는 컬렉션을 볼 때와 다름없었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이 아름다운 보석이나 자기 따위가 아닌 피 묻은 절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손목이라는 점에서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네. 자네의 손을 자르는 것뿐이니까. "

로한은 몇 번이고 이 상황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몸을 덜덜 떨고, 이를 맞부딪치면서 온 힘을 다해 깨려고 노력했다. 제발, 그만. 서걱거리는 소리가 날름거리며 어깨를 타고 기어 오른다. 매캐한 알코올 냄새, 남자의 평온한 목소리, LP판에서 끊김도 없이 재생되는 매끄러운 클래식. 카페에서 들릴 법한 평온한 음악이 강물 대신 바닥의 타일에 고여 흘러내리는 핏물을 따라 흘러갔다. 남자는 평온하게 로한이 발버둥치는 것에 잠시 시선을 주다 몇 번째일지 모를 작업을 개시했다. 선율 사이에 기묘하게 녹아드는 쇳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자네의 손을 내내 갖고 싶었지. 모나리자의 손 이후로 그토록 아름다운 손은 처음 봤어."

 한숨과도 같은 짧은 탄식 속에 로한은 흐릿해져가는 시야로 남자를 바라봤다. 기계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몇 번이고 남자는 로한의 손을 자르고, 잘린 로한의 손을 어루만지고 찬양했다. 제발, 그만. 안돼. 그리고 들리는 폭발음. 그 순간 키시베 로한은 깨어났다.

몸이 덜덜 떨려 얼굴을 만지려 손을 뻗으면 그제서야 제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것도 없는 휑뎅그렁한 나뭇가지와 같은 양 손목. 그 붕대에 감긴 절단면. 한순간의 사고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악의적인 흔적이었다. 그날 이후, 키시베 로한은 두 손을 잃었다.

*

몇 번을 부정했는지 모른다. 눈만 뜨면 다시 그 날 이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 로한은 까득까득 입술을 물며 날을 샜다. 천재 만화가 키시베 로한의 비극에 통감하는 사람들이 동정을 보내왔다. 로한은 집 안에 틀어박혔다. 데뷔한 것은 16살이지만 그 전부터 계속 만화를 그려왔다. 그리지 못하게 되는 날 따위는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로한, 잘 잤음까?"

그 날 사고 이후 자신의 곁에 유일하게 남아있기를 자처한 사람은 히가시카타 죠스케뿐이었다. 또 왜 왔어. 몇 번이나 로한이 내던져 깨뜨린 접시에 담겨 있는 스프를 죠스케가 침대 위의 간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로한은 입술을 깨물며 그 접시를 바라본다. 잘 잤을 것 같아? 망할. 히가시카타 죠스케. 보란듯이 접시가 테이블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것을 죠스케는 바라보고 있었다. 로한은 죠스케의 얼굴을 바라보면 울컥 치미는 화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다. 저 스프가 요리가 서툰 죠스케가 몇 번이나 시도를 거쳐 만들어낸 완성작이라는 것도,  자신이 내던진 저 접시를 몇 번이나 고친 것도, 다시 먹을 것을 담아오는 것도 전부 죠스케라는 걸.  죠스케는 로한이 그럴줄 알았다는듯 간단하게 접시를 고쳐 원 상태로 만들었다. 

"씻고 밥 먹을래요?"

"꺼져."

로한이 뭐라고 하든 말든 죠스케는 담담하게 커튼을 살짝 열어 햇빛이 들어오게 하고는 로한의 어깨에 손을 대고는 가볍게 안아들었다. 덩치에 비해 바싹 마른 몸이 가볍게 들렸다. 손이 있었다면 당장 얼굴을 할퀴고 어깨를 쥐어잡아 때렸을 것이다. 그 생각까지 가자 병이 도지듯 울컥 악몽이 기억나 로한은 어깨를 떨었다. 죠스케는 떠는 로한의 어깨를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은 채 욕실로 향했다. 그 날 이후 새로 생긴 히가시카타 죠스케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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