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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스파이더맨 (2) 에서 이어집니다.


 

 -자의로 남을 구하는 일- 히어로를 할 때 한 번은 찾아오는 사건이자 생각이었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단 한번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티는 안 냈지만, 원망이 두려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적지 않았다. 그 감정들이 두려워 소코비아 협정에도 서명한 것이었으니까. 그 일은 잘 안 끝났지만. 지금이라고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감정들을 남을 구해야 하는 이유의 원동력으로 쓸 뿐이다.



 피터는 나의 과거를 반복하고 있다. 나와 다른게 있다면, 도움이 될지 확신은 못 하는 경험자가 곁에 있다는 거?


 "맞아. 네 책임이 있기는 하지."


 피터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탓이라고 저렇게 말해도 마음 속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원했겠지. 토니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너가 불 지르기라도 했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무시하기라도 했어?"


 "하지만, 하지만 제가 구하지 못해서 죽은 사람들은 어떡해요."

 "그건-"

 "어제, 사고 직전에, 하교할 때 샌드위치 사다가 만난 아주머니가 콘크리트에 깔려 있었어요. 저녁에 자기 딸의 생일 파티를 한다고 자랑하시더라고요."

 "오랜만에 가족 얼굴 보는데 선물을 뭘 해갈지 고민하고 계시던 분이셨는데."


 "두 번 다시는 가족 얼굴을 못 만났겠죠."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본 토니의 등에 한줄기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거기에 누워있는 모든 몸들이 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을 거에요. 아니, 혼자였더라도 거기에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을거에요. 그 장난감 백화점에서!"


 서글픈 이야기이지만, 맞는 말이지만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뭐? 피터는 계속 자기를 갉아먹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잠시 피터가 입을 다문 사이에 목소리에 힘을 줘 말을 꺼냈다.


 "피터."

 "네."

 "제발 너가 구한 사람들 좀 생각해줄래?"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어. 나도 이런 말 하는거 못 돼먹은거 알고 있는데, 죽지 않았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는거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어."

 "너는 그 때 도움이 부족했다고. 너가 아무리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너가 혼자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이렇게 매번 너가 관계된 사람들이 다치고 죽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널 망가뜨릴 것이라면,"

 

 토니는 잠시 숨을 골랐고, 피터는 마른 침을 삼켰다.


 "히어로를 해서는 안돼."


 피터는 이미 한참 전부터 격양된 상태였기에 별다른 표정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스, 스파이더맨을 그만두라는 뜻인가요?"

 "아니? 아니. 그건 네 의사에 달리긴 했지만. 내가 말하는 건, 너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면, 지금이랑은 다른 마인드로 해야한다는 뜻이야."


 "죽음에 익숙해지라는 건 아니야. 익숙해지면 안돼. 무뎌져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가 구한 사람들까지 잊으면 안되지, 스파이더링."


 피터는 평소와 다른, 갑자기 쏟아져나온 토니의 말들에 벙쪄있었다. 이렇게까지 자신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처음인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처음이었다. 그런 피터의 벙찐 표정을 보고 있는 토니는 지금 이 애가 괜찮은 걸까 약간 걱정되기도 했지만, 확실히 듣고는 있는 듯 했으니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거 자기위로야. 하지만 자기위로라도 안 하면 이 짓거리 못해. 소방관들이나 그런 직업들이랑 마찬가지야.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구하지 못 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은 끝까지 따라올거야. 우린 그걸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어. 그거 더럽게 무거운데, 계속 짊어지고 가는게 우리가 하는 일이고, 그게 히어로가 환대받는 이유라는 거, 알고 있잖아. 아무나 못 하는 일."


 토니는 계속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는 피터의 입이 마르기라도 할 것 같아 턱을 올려서 꾸욱 닫았다. 그러자 창피했는지 자세를 고쳐앉는 피터였다. 피터는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운 복돋아줄 차례다.


 "뭐 하나 알려줄까?"


 이제 토니의 목소리는 마치 동화라도 이야기해줄 듯 상냥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어. 나 같이 직접 능력을 만든 사람들을 제외해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고 숨기고 지내지. 뉴욕에도 한다스는 있다고. 원하면 리스트도 보여줄게."

 "근데 전세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힘을 사용해서 남을 구하는 사람은, 한 번이라도 구해본 적 있는 사람은 절반의 절반도 안돼. 꽤 많은 사람은 범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 중에 학교도 병행하는 사람은 너가 유일해. 대단한거 아냐?"


 피터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토니는 계속해서 피터의 눈을 뚫어져라 마주어보고 있었는데, 피터도 피하지는 않았기에 토니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아무 반응도 없는 피터에 약간은 불안해지려 하는 참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자기들이랑 같은 사람, 인간이라고 잘 생각 안 해. 우리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일 뿐이고 딱히 특별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 이상하지? 혼자서 전부 다 해결 가능한...그래, 신같은 존재도 아닌데, 실수라도 했다가는 대차게 까이지. 그래서 사람들이 이 일을 꺼려하는거야. 위험수당도 없는데 잘못하면 매장당하니까. 나는 뭐, 알잖아. 토니 스타크의 이름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


 "너는 그 힘을 가지고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썼잖아.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너가 어제 한 것을 아주 객관적으로 말해줄게. 남들보다 힘이 세고 벽을 탈 수 있는 15살 소년이 불타고 무너지는 45층짜리 건물에 뛰쳐 들어가서 400여명을 대피시키고,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줬지. 본인은 거의 전신에 화상과 멍이 들고 갈비뼈에도 금이 간채로. 전부 사실이야."


 "내가 빼먹은게 있는데, 건물에 있던 500명 중에 너가 400여명을 심해봤자 손바닥 1도 화상인 채로 꺼내놨지. 몇십명은 경찰이랑 소방관들이 꺼냈고. 심각한 부상자는 68명, 유독가스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24명. 그런데, 너가 집중하고 있는 건 후자뿐이야. 후자도 당연히 집중해야지! 근데 후자만 보지는 말라고. 후자만 봐봤자 너 스스로 죽이는 꼴이야."


 "다시 말하는데, 피해자를 잊으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에게 구해진 사람도 잊지는 마. 너로 인해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은 사람은 네 상상보다 많을거야. 너가 없었다면 아직도 퀸즈, 뉴욕에서 싸돌아다니면서 남들을 위협했을 강도, 강간범, 살인범 등 범죄자들이 정확히 72명이라고, 피터. 뭣하면 리스트 보여줄까?"


 킥, 드디어 피터가 그럴듯한 반응을 보였다. 자꾸만 리스트를 보여주겠다는 토니의 말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에 토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꺼두었던 뉴스를 틀었다. 알고 튼 거긴 하지만, 때 맞춰 뉴스에서는 스파이더맨이 반나절 동안 없어지자마자 지난 몇 시간동안 급증한 범죄율에 대해 떠들며 스파이더맨의 행방을 묻고 있었다.


 "봐, 쟤네 벌써 너 찾고 있잖아."


 "너가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생 미안해만 하면서 너까지 죽는 것 보다는, 열심히 선행으로 갚는 수밖에 없어. 쓰레기도 줍고, 길안내도 하고, 강도도 잡고...평소처럼 친절하고 강력한 이웃으로 지내라고."


 토니는 피터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낮게 소곤거렸다. 포옹에 가까웠는데, 그게 아주 따스해서 피터는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일은 없어."


 이 곳에 온 후로 나오려 하다 말다 하던 눈물은 이번에야말로 터져버렸다. 겨울 산의 꼭대기에서 홀로 서 있었는데, 그 험한 산에서 갑자기 스타크씨가 나타나서 몸을 녹여준 기분이었다. 눈물 콧물이 죄다 나와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귀가 얼얼할 정도로 우는데, 스타크 씨가 다시 귀에 뭐라 소곤거렸다.


 "대학진학 빼고. MIT 갈래?"


 평소라면 정색했을 농담이었지만 오늘은 계속 킬킬 웃음이 터져나왔다. 피터는 더미가 가져와준 휴지를 받아들고 대충 흘러내린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고는, 토니를 바라보았다. 저보다 눈높이가 약간 위에 위치한 토니는, 팔은 제 어깨에 올려 뒀으면서 자신과 눈을 마주하려니 어색한지 시선을 먼 곳에 두고 있었다. 피터는 갑자기 이 어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솓아올랐다. 읍, 피터가 갑자기 품에 파고 들어오는 바람에 토니가 당황해 밀어내려고 손을 갖다댔으나, 피터가 뱉은 한 마디에 밀어내려던 손을 얌전히 그 애의 등 위에 얹어 두었다.


 "부모님 보고싶어요."


 정말 곤란한 말을 잘도 던지네. 당황의 표시로 크게 눈을 뜬 토니는 순간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지만, 아마 이럴 때는 쓰다듬어야 한다고 읽었던 것같다. 아니, 그건 애완견 훈련 서적이었나. 토니는 제 어깨맡에 얼굴을 묻고 있는 피터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기를 택했다. 피터는 입어볼 엄두도 못낼 값의 작업복이 눈물로 축축히 젖어가고 있었지만, 토니는 아랑곳 않고 피터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터는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을 울었고, 토니는 그냥 그런 피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평생을 이 애와 다르게 살아왔지. 그러니 피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는 어려울거야. 하지만, 적어도 이 아이가. 이 햇살같은 아이가 덜 상처받게 해주고는 싶은데. 그렇게 다시한 번 피터는 영원히 제대로 이해 못 할 책임감을 느끼는 토니였다.



-



 회색의 작업복은 피터가 얼굴을 땔 때 즈음에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으, 눅눅해. 피터가 그 거대한 자국을 휴지로 닦으려 하는 것을 가볍게 막아낸 토니는, 피터가 울고 있을 때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기면 더 빨리 지원을 갈게. 더 빨리, 함께하면 구조할 기회가 많을테니까. 그리고 다음부터는 더 피해자를 줄일 수 있도록 더 훈련을 해. 여기 재난 상황 대비 훈련소도 있으니까, 원할 때 와서 훈련하다 가."


 피터는 제가 말을 하면 할 수록, 느릿느릿 눈이 커져서 마지막에는 눈알이라도 튀어나올 듯 휘둥글게 눈을 뜨고 있었는데, 그 반응은 언제 봐도 흥미로웠다. 어떻게 매번 저러는 거지.


 피터가 들어올 때 칠흑같이 어두웠던 하늘은 어느새 뿌연 하늘 색을 띄고 있었다. 새벽 3시네. 피터는 이미 낮에 충분한 숙면을 취했던 터라 졸리지 않았지만, 토니는 원래 잘 안 잤어도 오늘만큼은 이 두어시간의 대화에 온통 기운을 쏟느라 온 몸이 피곤해 하품이 쩍쩍 나왔다. 눈을 두어번 느리게 껌뻑이는 토니에게 피터가 조심스레 담요를 덮어주고 베개를 머리맡에 둔 피터는 토니를 조심스럽게 소파에 늬였다. 제 손길을 거부조차 하지 않는 걸 보니, 정말 피곤한 모양이었다. 잠시 그런 토니를 흐뭇하게 보던 피터는 카펫이 깔린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차가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카펫이 너무 푹신해서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피터는 카펫의 결을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이제 머릿속이 깔끔히 정리된 기분이었다. 청소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자리는 잡은 듯한. 뭐하지. 지금은 해피도 잘 것같고, 배도 고프고… 으, 순간 바짓단은 지금 어떨지 궁금해서 살짝 손으로 만져봤는데, 고약한 냄새에 구역질하는 시늉이 절로 나왔다. 위이잉-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더미였다. 더미와 유, 둘 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 별로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나한테 오는거야!? 피터는 저에게 다가오는 더미에게 놀라서 벌떡 일어섰지만, 더미는 제 앞에 오더니 멈춰섰다. 날 깔아뭉개려는 건 아니었구나.


 더미는 조용히 저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는데, 위의 뚜껑을 열자 안에는 쿠키와 우유, 그리고 잠옷으로 보이는 바지가 엉망진창으로 놓여있었다.


 "나한테 주는거야?"


 고개라도 끄덕이듯이 머리 부분을 흔드는 더미에게 고맙다며 손을 뻗었다. 별로 빠르지도 않던데, 마치 할머니가 저를 챙겨주는 듯한 느낌에 왠지 미안해진 피터는 고맙다며 빠르게 받아들고는 책장 뒤로 가서는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도 없긴 했지만, 어쩐지 통유리인 창 앞에서 갈아입기 민망하잖아.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는 창이라는 걸 알리가 없는 피터였다.


 몇 시간 전까지 우울했던 기억들이 전부 꿈만 같았다. 평화로운 시간을 멍 때리기로 보내던 중, 메이 숙모한테 연락을 안 보낸 게 기억이 났다. 헉, 허겁지겁 벗어둔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예상 외로 메이에게서는 한 통의 문자만이 와 있었다. 밤 11시에 왔던, 몸 조심히 오라는 한 마디. 해피씨나 페퍼 씨가 미리 손을 썼나 보구나.


 볼 것도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자 스타크 씨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아침 5시. 두시간 밖에 안 잤는데 벌써 일어나시는 거야? 스타크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 쪽으로 걸어왔다. 저를 보고는 멈출 줄 알았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길래 피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으악!"

 "왜, 왜 그러세요!?"

 "너, 너가 왜 여깄어."

 "왜 여기있냐니요...?"

 "내가 어제 분명히 너 집에 보냈- 꿈이었구나."


 피터는 그런 스타크를 보며 파하하 웃었다. 웃지 마. 지금 5시일 테고...오늘 스케줄도 없는데 더 잘 걸 그랬나. 고개를 두어번 흔든 토니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피터를 제대로 쳐다봤다. 내 집에서 태평하게 우유에 쿠키나 찍어 먹고 있다니...저 바지는...더미 센스네.


 "집에 보내줄게."


 해피도 간만에 누리는 휴식을 방해했다가는 한소리 들을 게 뻔했기 때문에 스타크는 자기 차고로 내려갔고, 동시에 피터는 무려 토니 스타크와 단둘이 새벽 드라이빙을 나가는 기회를 얻었다.



-



 아침 7시, 허름한 아파트 앞에 멈춰선 주황색 스포츠카는 제법 이목을 끌었다. 피터는 내리기 직전 자신을 한 번 꽈악 끌어안았는데, 아무리 그만하라 해도 안 듣더니 제 허리뼈에서 우득 하는 소리가 나자 그제야 멈췄다. 문을 닫고는 뽈뽈 집으로 들어가는 피터를 선글라스 너머로 보던 토니는, 아파트를 뒤로하고 다시 차를 돌렸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고, 오늘은 푹 자야지.


 집 문 앞에 도착한 피터는 열쇠를 챙겨나오지 않았던 게 기억이 났다. 으, 조용히 들어가려 했는데...꾹, 하고는 벨을 누르자 피터니? 하는 메이의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자신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우당탕 무언갈 넘어뜨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메이 숙모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건 숙모도 그랬나 보다. 피터! 숨이 막힐 정도로 조여오는 포옹이 좋아서 피터도 메이를 꼭 끌어안았다. 물론 힘 조절 하는 걸 잊지 않고. 


 "스케줄 조정은 잘 됐어?"

 "...아주 잘 됐어요."


 베시시 웃는 제 모습을 본 메이는 한시름 놓은 듯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토닥거리면서 들어가자 했다.


 앉아서 시리얼을 먹는데, 신문을 보던 메이가 말을 던졌다.


 "오늘도 학교 안 가고 더 쉴래?"

 "어-음...아니요.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푹 쉬어. 오늘은 일찍 들어올게."


 밤에 깨어있는 바람에 지금은 슬슬 졸리기도 했고, 하루쯤은 더 평화 속에 있고 싶었다. 학교는 아무래도 정신 없으니까... 메이의 출근 인사와 함께 문이 닫히자 피터는 다 먹어가던 시리얼을 싱크대에 넣고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찢긴 셔츠가 흩뿌려져 있던 어제 그대로였다. 피터는 구석에 던져놨던 배낭을 집어들고는,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피터.]


  "안녕 캐런. 거의 이틀만이지?"

  [그러게. 걱정했어.]

  "고마워. 난 괜찮아."

  [피터, 좋은 소식이 있는데 들을래?]


 나야 좋지, 그렇게 답을 하자마자 캐런은 눈앞에 수십, 수백, 아니 끝없이 이어지는 창들을 띄우기 시작했다. 모두 SNS 게시글들이었다. 뭐, 뭐야?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전부 #LUVUSpidey 라는 해시태그가 붙어있었다. 캐런이 몇몇 글들을 띄워주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읽다보니 낯 간지러워질정도로 전부 스파이더맨을 지지한다. 고맙다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와...이게 뭐야?"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캠페인인데, 주동자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어.]


 피터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이 딱 벌어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대단해 피터. 848,438명이 널 응원하고 있는거야.]


 기분이 좋아져 수트를 입고 나갈까 했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메이가 걱정하기도 할테고, 평소엔 저녁에만 하다가 자기가 결석한 날에만 오전부터 활동하면 미셸이 더더욱 저를 의심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자신에게 뭘 숨기고 있냐고 물었을 때 핏기가 가시던 느낌이 아직 생생한걸...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반성의 시간을 조금 가졌다는 건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리 방 안에서 펄쩍펄쩍 몸을 풀어도 좀이 쑤시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는 웹슈터를 끼고서는 일회용 마스크를 귀에 걸고, 캡 모자를 쓰고 거기에 후드 모자를 한 번 더 눌러쓴 후에야 거리에 나섰다. 범죄율이 급증했다는게 몸으로 느껴졌다. 원래 범죄가 잦게 일어나는 동네이긴 하지만, 집에서 나선 후 몇 걸음 나서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비명이 들렸다. 그렇게 5블록 정도 갈 때마다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다보니... 강도, 소매치기, 권총협박 등 3일에 한번 할 법 했던 일들을 반나절만에 하게 되었다. 큰일이네. 겨우 하루 안 봤는데 이 정도라니.

 

 바쁘게 주먹과 웹을 날리다가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눈치채고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덧 5시가 되어있었다. 시간이 되게 빠르게 흐르네. 어쩐지 배고프더라니. 마스크를 벗고 총총거리는 발 걸음으로 식료품 가게-라고 적혀있지만 사실상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간 피터는 여느 때와 같이 젤리 2개, 그리고 5번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오, 피터! 안 오는 줄 알았네. 어젠 안 왔던데, 무슨 일 있었냐?"


 반갑게 맞이하는 달마르 아저씨에 피터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 사이 머프가 다가와서는 다리 사이에 저의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어제는...아파서 집에 있었거든요."

 "너도 아프긴 하냐? 맨날 쌩쌩하더니"

 "그러게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답하던 피터의 뒷통수에서 뉴스가 들려왔다. 뉴스 화면을 보자 아까 스타크씨의 집에서 본 듯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은 어디로 갔을까요- 순간 여기서 마주쳤던 아주머니가 떠올랐지만, 피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달마르 씨는 제가 뉴스를 빤히 보고 있는걸 보고 잠시 같이 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언론에서 뭐라해도, 나는 스파이더맨 편이다."


 피터는 놀라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아저씨 가게를 부쉈잖아요?"

 "그 토니 스타크가 다 배상 하기도 했고 문제 없지 뭐. 결국 스파이더맨도 마스크 아래에는 한 사람 일텐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해? 적어도 걔는 그 전에 위험한 무기 가진 사람들을 잡으려고 했잖냐. 결국은 잡았다던데."


 스타크씨와 대화했던 내용을 달마르씨의 입에서 듣자 기분이 묘해졌다.


 "스파이더맨이 아니었으면 언젠가 그 무기가 날 죽였을 수도 있잖아. 정부에서보다 스파이더맨이 더 치안을 유지하는데 뭐. 이거 동의하면 손 들어봐! "


 으악, 갑작스러운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려는 걸 참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자 이제 온몸이 후끈거리려고 했다. 가게를 향한 달마르 씨의 외침에 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손을 들더니 결국엔 모두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를 건내는 달마르 씨는 아팠다고 하니 서비스라며 젤리는 공짜라고 했다.


 "단골을 잃을 수는 없지."


 눈시울이 붉어지려 하는 피터는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는 가게에서 뛰어나왔다. 옥상에서 조금 훌쩍거리며 먹는 샌드위치는 역시나 맛있었다.



 일할 시간이야, 스파이더맨. 수트로 갈아입은 피터는 힘껏 몸을 날렸다.



-



 오늘은 평소보다 4배는 일했기에, 예정보다 빨리 지치는 바람에 평소보다 이른 7시 정도에 활동을 접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해가 지고 있어서 온 뉴욕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웹스윙을 날리며 지나가는데, 한 빌딩을 지나가자 갑자기 나온 군중에 놀라 추락할 뻔했다. 수천명을 될 듯한 규모의 사람들이 공중에 나타난 자신을 보더니 함성을 지르는 게 아닌가. 우연히 타이밍이 맞았다기에는 전부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뭐...뭐지? 시위라도 하나? 내려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지금 날아가는 도중에 멈췄다가는 빌딩에 몸을 박을게 뻔하기도 하고,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그대로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피터는 골목에서 옷을 갈아입고, 집 문으로 들어오면서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여전히 스파이더맨을 비난하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날 싫어하겠지...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박으며 조금 우울해지려던 차에, 짧게 우는 휴대폰을 다시 꺼내들자 네드로부터 메세지가 와 있었다.


 '어제 연락 못해서 미안. 바빴거든'

 '멋진거 볼래? 사실 방금 너도 보고 갔지만.'


 이어서 온 한 개의 사진 파일. 약간 하이앵글로 찍힌 사진에 피터는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봤던 군중들, 날 보고 환호한게 착각이 아니었다. 모두 스파이더맨을, 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던 거다.


 네드는 #LUVUspidey 를 적은 종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주동자가 너였구나. 뒤에는 리즈와 미셸, 심지어 플래쉬도 포함한 동아리 회원들을 선두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사진을 확대해보자 피켓에는 "우리에게 스파이더맨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따위의 문구가 적혀있었고, 몇몇의 피켓에 실려있는 패러디에는 실웃음이 나왔다. 계속해서 사진을 보고 있던 중에 네드에게서 2개의 문자가 연이어 왔다.


 그 문자를 읽은 피터는 울컥 나온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하지만 좀처럼 멈추지 않는 바람에 스타크씨에게서 연락이 올 정도였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많이 운담. 이미 퉁퉁 부은 눈으로 피터는 그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너한테 도움을 받은 적 있거나, 너한테 고마워 하는 사람들이야!'

 '이번 화재에서, 길거리에서, 집에서도.'

 '너가 구한 사람들!!!'









처음 써본 글이 끝이 났어요~ 와~아...왜 길어졌는지 모르겠네요.제기랄 

처음 주제-사람을 구하지 못한 것에 고통받는 피터와 멘토 역할 간만에 하는 토니. 거기에 넣고 싶은 인물들을 넣고 워낙 해피엔딩을 좋아하다 보니까 막막..음. 저는 해피엔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썸네일의 색감변화 파>초>노! 저작권프리 자료를 2차보정해서 씁니다. (원작 관련 사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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