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판데모니움 호에 남은 사람은 단 둘이다. 죽어가는 행성의 인류를 보존시키기 위함이라는 숭고한 미명도 이제는 그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이 가져올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고 있던 이들은 이미 백발이 성성하거나, 혹은 죽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우주선 안의 중력을 지구와 비슷하게 유사하는 중력제어장치도 이제는 쇠하여 몇몇 집기들이 선 안을 둥둥 떠다녔다. 마르그리드는 물 속에서 헤엄치듯이 허공을 박차 로쏘에게로 날아왔다. 이제는 익숙한 듯이 로쏘가 먼저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자 마르그리드가 멈춘다. 그녀는 손으로 로쏘의 얼굴을 감쌌다.

 "이제 우리 둘 뿐이야. 어디로 가고 싶어?"

 그의 얼굴을 감싼 채로 위 아래로 천천히 부유하는 마르그리드를 로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의견을 묻는 이유가 뭐야? 어차피 당신은 여기서 가까운 아발론 행성으로 가려던 것 아니었나."

"나는 쇼핑을 가고 싶은 곳을 고르고 있는 게 아냐. 굳이 아발론을 가깝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당신 아들. c.c가 데리고 있다지.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려는 생각이라면 그만 둬."

 마르그리드가 로쏘의 얼굴을 놓는다. 그녀는 로쏘를 향해 숙였던 상체를 천천히 세우고서 로쏘를 내려다본다. 그녀는 점점 미세하게 뒤로 밀리고 있었다. 로쏘의 얼굴을 내려놓을 때의 관성인 듯 했다.

 "로젠부르그 행성으로 간다."

"아발론에서도 보고가 왔었어. 어쩌면 나쁘진 않을지도 몰라."

"이산가족 상봉을 각오했다면 당신은 여기 오면 안 됐어."

 멍하게 서서 그 자리를 부유하는 그녀를 내버려둔 채 로쏘가 조종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쫑알대는 것이 시끄럽다며 로쏘가 음성출력을 막아둔 인공지능 로봇에는 그의 터치패드 입력 몇 번으로 로젠부르그 행성에의 좌표가 입력되었다. 곧이어 마르그리드는 따라들어와 조수석에 앉았다.

 “잔인한 짓을 하네, 당신.

“당신이 하는 짓이야말로 어리석고 잔인하지. 프로폰드 호의 연료는 충분하지 않아. 미리안도 람도 죽었고, 연료는 없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가 온 거지. 거기에 네 모성애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그건 불순물이야.”

“불순물이 있었기에 지구에는 대기가 생기고, 생명이 생겨났고, 인간이 발생했지. 우연은 없어. 사랑은 초자연적이야. 자연과학을 초월하는 힘이지. 웜홀을 보낸 그들처럼.”

“마리 퀴리를 이을 세기의 천재 물리학자 마르그리드 교수가 인류의 존속 앞에서 사랑이라는 불필요한 뇌파 따위를 초자연적이라고 말하는 꼴이라니, 녹화해서 지구로 전송했어야 하는 건데.”

 마르그리드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그저 로쏘를 지긋이 쳐다보기만 했다.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하면서도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듯한 그 눈빛이 거슬렸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쏘는 심술궂게 웃으며 안경을 벗어 정돈된 앞머리 위로 밀어올렸다.

 “나도 비단 당신의 결정이 납득이 가지않기 때문에 로젠부르그를 택한 것은 아니야. 내 나름의 이유가 있거든.”

“......”

“기분이 상했나? 하지만 궁금하겠지.”

“......”

“대신 말해주지. 당신 아들은 여기에 못 와.”

“무슨 소리야?”

“드디어 입을 여셨군. 다시 말해줘? 당신 아들은 여기에 못 와. 당신 아들뿐만 아니라 그 뒤져가는 행성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오지 못해.”

“지금 무슨 소리를,”

“그 공식 말이지, 멜키오르 교수가 매달리다가 죽어버린 공식. 사실 그거, 나도 교수도 풀었거든. 답이 없어. 구하지 못해. 3차원에 있는 그곳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식이거든!”

“당신 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내저으며 마르그리드가 단숨에 다시 로쏘에게로 날아온다. 습관적으로 로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그녀를 멈추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뺨을 쓰다듬는 대신에 목을 압박해온다. 로쏘는 숨이 조여들어가는 와중에도 비웃음을 잃지않고 입모양만으로 똑똑히, 마르그리드에게, 속삭인다.

 “멜키오르는 자살한 거야, 마르그리드.”

 인간이 아닌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마르그리드는 세차게 로쏘의 목을 쥐고 흔들었다가 던지듯 놓아버렸다. 무중력 상태로 날아가던 로쏘가 벽에 살짝 부딪혀 튕겨나온다.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그의 얇은 입술은 여전히 한쪽만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다.

 “새로운 행성의 아담과 이브가 되는거지, 당신과 내가.”

 잠시 흐르는 정적 속에 마르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은 위대하지. 어쩌면 당신은 원치 않는 결말을 얻게 될 수도 있겠는걸.”

 

***

 

과연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천재과학자 로쏘답게 그가 고른 로젠부르그 행성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완벽이라는 것은 더 이상 필요로 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완벽에 새로운 것이 추가된다면 그것은 불순물이다. 폐호흡이 가능한 대기도, 상온의 물도, 얼음이 덮여있거나 하지 않은, 흙으로 된 대지. 그리고 인간까지.

 로젠부르그 행성에는 이미 와 있는 남자가 있었다. 우주 비행을 하기에는 조금 지긋한 나이의 부드러운 분홍빛 갈색 머리를 한 중년의 신사였는데, 그는 자신을 크레니히라고 소개했고, 마치 조카뻘로 보이는 마르그리드의 품에서 오래도록 아이처럼 울었다.

 “블랙홀이에요, 어머니.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과 속도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할 수가 있지만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왔어요 그런데 블랙홀만은 그렇지 않다고, 중력도 빛도 모두 빨아들이는 곳이라고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그렇게 말하며 중년의 과학자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쓴 것으로 보이는 블랙홀에 관한 논문을 내밀었다. 그 얼굴에서 마르그리드는 떠나기 전 모래 폭풍에 기침을 해대며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눈물을 닦던 소년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블랙홀 디아이로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보다 더 빠르게 이곳에 도착하게 해 줄 줄은”

“아무 말 말렴, 크레니히. 지금은 너를 좀 더 꼭 껴안아주고 싶구나. 너의 논문에 대해서는 내일 이야기하기로 하자.”

  

 아, 모든 것이 완벽한 가족 앞에, 로쏘의 사랑은… 불순물이 되어버렸다. 스스로가 사랑이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상과 자신의 미래를 영원히 가둬 둔 남자의 어리석은 사랑은 이것으로 처음이자 끝이었다.

Diamond Crev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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