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리들과 숲에서 마주친 날 이후로, 해리는 더이상 고아원을 찾지 않았다. 빈 시간동안 다이애건 앨리의 서점이란 서점을 다 돌아다니며 시간 여행에 관한 단서를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이 시대에 타임 터너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미스테리 부서에 찾아가기라도 해야 할까.


밤새 뒤척이며 자다 깨길 반복하던 해리는 결국 이른 새벽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깨 한쪽이 결리는 느낌이었다. 손으로 어깨를 꾹꾹 누르며 침대 옆 괘종시계를 확인했다. 아침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외투를 집어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접시를 닦고 있던 여관 주인이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산책을 좀 하려고요.” 


새벽 거리는 조용했다.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거리는 해리가 알고 있던 런던과 같았다. 이대로 킹스 크로스 역으로 가서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면 네빌이 맞이하러 나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해리는 생각에 잠긴 채 발걸음이 이끄는대로 걸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리들은 자신에게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것 같았다. 그렇다고 리들의 일방적인 약속을 들어줄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언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과거의 사람과 자주 접촉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볼드모트의 과거라면.


그럼에도 해리의 발걸음은 그를 리들을 만났던 숲으로 데려왔다. 해리는 환영마법을 두르고 전날에 앉아있었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는 한쪽 무릎을 세워 턱을 괴고 왜 이곳으로 왔을지 생각해 봤다. 


마음은 금방 답을 내놓았다.


그야 신경쓰이니까.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왜 신경쓰이는데? 


그야... 톰 리들이잖아.


톰 리들. 그는 볼드모트의 호크룩스로 드러난 비밀의 방 안의 학생회장도 아니었고, 묘지에서 육신을 되찾은 톰 리들 2세도 아니였으며, 펜시브를 통해 본 야망 넘치는 슬리데린 학생도 아니었고, 빛으로 뒤덮인 킹스 크로스역에 있던 영혼의 조각도 아니었다. 지금의 톰 리들은 볼드모트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거지? 곧 어둠을 맞이할 이 시대의 사람들을? 그보다 더한 악몽을 겪는 미래의 사람들을? 그것도 아니라면-


그때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해리의 눈 앞으로 손이 쓱 지나갔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을때 투명망토 너머로 덤블도어와 시선을 마주쳤을 때 만큼. 온갖 상황을 겪으며 대담해진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리들은 손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자 별 감흥없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는 전날에 앉았던 곳과 같은 나무 밑에 앉아 책을 펼쳤다. 


‘방금 뭐였지?’ 


해리는 리들을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리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책장을 넘길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오렌지색 햇빛이 비치고 산들 바람이 불었다. 또 다시 잠에 드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해리는 무언가를 해야했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면 리들이 그를 발견할 것 같아 해리는 무릎에 고개를 묻을 뿐, 크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얼굴을 비스듬히 돌려 리들을 시야안에 담는다.


감이 좋은걸까? 생각해보면 호그와트를 다닐 때, 몇몇 사람들은 투명망토를 쓰고 있는 해리를 거의 잡을 뻔했다. 해그리드 오두막에 찾아온 덤블도어 교수님이나 복도를 순회하는 스네이프, 그리고 기차에 남은 드레이코 말포이. 


해리는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일단 저마다 남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이건 상관 없을테고. 다음으로 그들은 모두 두뇌 회전이 빨랐다. 

이것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데.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덤블도어는 레질리먼시의 대가였고, 스네이프는 마루더즈가 친 장난의 주된 피해자로서 학교 구조를 잘 알았다. 또 그는 불사조기사단과 죽음을 먹는자들 사이를 오가는 이중 스파이로 주변 기척을 감지하는데 대단히 민감했다. 말포이는 해리가 투명망토를 가지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럼 지금의 리들은 이 중 어디에 속할까?


해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흑백 영화에 나오는 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호레이스 슬러그혼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공식적인 개인 사무실은 질문이 있거나 상당을 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을 맞이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리고 그 공식적인 사무실 뒤로는, 교장실을 방불케하는 마법 결계가 둘러진 아늑하고 사적인 방이 있었다. 그 방안에는 12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둥근 타원형이 있었고, 그 위로 집요정들이 특별히 공들여 만든 레몬 머랭 타르트와 애플파이, 민스파이 등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창가 옆 장식장 위에는 오늘 있을 모임이 유용한 시간이 될지 판단해줄 특별한 모래시계가 놓여 있었다. 


모임에 자주 초대받은 학생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저마다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었다. 8시가 되기 10분 전. 슬러그혼이 주로 앉는 팔걸이가 은색 뱀 모양으로 장식 된 의자의 양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빈자리를 제외하고 그 자리와 왼쪽으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레스트랭은 그의 맞은 편에 앉은 레번클로 반장과 최근 경제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임 시작 시간 5분 전. 막 문턱을 넘은 슬리데린 학생을 본 슬러그혼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리들 군!”


“제가 늦지 않았다면 좋겠군요.” 


“파티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마지막에 도착하는 법이지.”


“주인공 ‘들’이요?” 


리들의 눈이 빠르게 좌석을 살폈다. 슬러그혼 좌석의 양 옆이 비어있었다. 


“제가 가장 늦은 사람은 아닌가 보군요.”


리들이 말했다. 자신보다 늦게 당도하는 슬리데린이 과연 누구일까.


그때, 정각을 알리는 낮고 묵직한 종소리가 여덟 번 울렸다. 


“어서 이리로 앉게.” 


슬러그혼 교수가 그의 지정 좌석 가까이에 있는 의자로 리들을 안내했다. 그가 가르킨 자리를 본 리들은 순간 멈칫했다. 


“오늘의 깜짝 손님은 아무래도 늦을 모양이야.” 

슬러그혼 교수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리들은 입술 끝을 말아올렸다.





*


카산드라가 그의 기억을 보는동안, 해리는 그날 수업과 일과를 마치고 다시 교감실로 돌아왔다. 덤블도어가 레몬사탕 한 움큼과 세개의 찻잔을 준비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산드라는 그녀가 본 예언을 신중하게 해석 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 본인을 제외하고, 통찰력이 뛰어난 경험 많은 마법사와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의 지혜가 필요했다.


“리들이 우발적 마법으로 환영 마법을 파훼한건 아니에요. 마법이 깨지는 느낌은 없었으니까. 단순히 관찰력이 좋은 걸 수도 있지만, 저는 투명망토를 쓰고 다니다 들켜본 경험이있고, 그 뒤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마법을 익혀서 이쪽도 가능성은 낮아요.”


“선천적인 레질리먼스일 가능성은?” 트릴로니가 물었다.


“그렇게 흔한 능력은 아니지. 그리고 내가 리들 군 고아원을 방문했을때, 그는 분명 암시에 걸려있었다네.”


덤블도어가 해리의 얼굴에서 망설임을 읽고 대신 대답했다. 


카산드라는 덤블도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해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리들이 저의 기억을 들여다 봤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때, 당장 그가 본 기억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카산드라에게서 신호를 받은 해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법사에게 오블리비아테를 사용하면 대상자의 의지력에 따라 언젠든지 풀릴수도 있고, 리들이 본 기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억 수정 마법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죠.”


“나라도 같은 판단을 했을거네. 섬세하지 못한 기억 수정 마법은 기억에 틈을 만들었을테고, 영민한 리들 군이 그 공백을 못 알아차리진 않을테니까.”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래서 암시를 걸었다고? 정확히 어떤 암시였지?” 

카산드라가 물었다.

“감정을 묻어두는 마법이요. 그 감정을 느끼게 한 기억과 함께.” 


해리가 대답했다. 그러자 카산드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기억 수정마법을 풀 수 있을 정도의 마법사에게 그 정도 암시에 걸긴 힘들텐데?”


“자네도 알다시피 예외인 경우가 있네, 카산드라. 오, 네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단다, 해리.” 

 해리의 표정이 어두워진걸 발견한 덤블도어가 단호하게 말했다.


해리는 자신이 한 일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학생일 때부터 그럴 필요가 있을 땐 규칙을 어기는 일에 익숙했고, 오러가 되고 나서는 법망에 교묘하게 걸리지 않는 회색 지대를 이용해서 범인을 심문하는데 능숙해졌다. 톰 리들은 15살에 간접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그 이듬해에 자신의 외삼촌을 살해 할 사람이다. 성년에 이르기도 그가 전에 저지른 끔찍한 범죄는 그가 다음 세대와 그 다음세대 사람들에게 행할 범죄의 시작일 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괴물로 자랄 가능성을 지닌 어린 리들이 해리의 기억을 통해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안다면,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철저히 이용한다면, 마법 세계는 큰 혼란이 빠질 것이다. 어쩌면 해리가 알고 있던 세계보다 더 어두운 미래가 기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리는 언제나 감정을 다루는 일에는 서툴었다. 해리는 비밀의 방에서 지니를 구출할때,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해리는 세드릭을 잃어버린 초챙이 세드릭의 죽음을 유일하게 목격한 사람인 그와 어떤 감정적 교류를 나누고 싶어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해리는 말포이와 스네이프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재능은 있었지만,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알아차리는데에는 둔감했다.  


해리는 빈말로라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들이 해리가 건 암시에 걸려든건, 그당시 리들이 해리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리들의 가정 배경과 고아원 아이들과의 유대관계를 생각해보면 해리는 리들이 처음으로 솔직한 호감을 보인 대상일지도 모른다. 해리가 건 암시로 인해 유년의 기억과 따스한 감정을 묻어둔 리들이 다른사람들 만큼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해리의 잘못이었다.

“더 큰 선을 위한 선택이었을테니.” 


덤블도어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해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해리의 입장에서 보면, 덤블도어가 그 구호를 내걸고 내린 선택치고 어느것 하나 유쾌한 결과를 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억을 추출해내는 스네이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블랙가문 테피스트리 앞에 서 있는 시리우스. 더즐리가의 벽장에 지내는 자기 자신까지.


 더 큰 선을 위하여. 그 결과를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그 선택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덤블도어의 말을 가만히 되짚어보던 해리는 찻잔 속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찻잔 속에 찻잎 부스러기는 익숙한 형태로 퍼져있었다. 그는 자신이 미래를 위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일들이 더 나쁜 미래를 불러일으키지 않기를 바랐다. 


*


모임이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브락시스는 그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그는 지금껏 특정 인물들에게 쏟고 있던 신경을 개방해서 방안의 사람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발부르가는 무료한 표정으로 한 손은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로는 포크로 애플파이 가운데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오리온이 오지 않을 것이란걸 깨닫자마자 흥미를 잃어버린것이다. 그린고트 고블린들의 신규 채용 방식에 대해 떠들어 대던 레번클로의 반장은 레스트랭이 노트와 애버리의 퀴디치 논쟁에 참여하자 말 상대를 잃어버리고 티스푼으로 애먼 찻잔만 휘저었다.


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슬러그혼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레버클로 반장에게 근황을 물었다. 래번클로 기숙사 내에서 지금 연구하고 있는 주제가 있는지, 스터디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OWL 시험 준비를 하는데 지장이 없는지 차례로 묻자 래번클로 반장은 다시 현학적인 말을 쏟아냈다.아브락시스는 리들의 시선이 그동안 슬러그혼 교수의 오른쪽 빈자리를 머무르는걸 발견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번쯤 빈 의자에 머물렀다.


슬러그혼은  슬리데린이었다. 우수한 인재들이 한데 모여 서로 긍정적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작은 모임 -이라는 초대문구는 설탕발림일 뿐, 그에게 민달팽이 모임을 운영하는 목적은 따로었다. 첫째로, 그의 인맥을 그럴 만한 가치있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로는, 모임에 불러모은 장래가 유망한 학생들이 그토록 인맥이 대단한 그의 선호를 받기위해 물밑에서 경쟁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소그룹을 이뤄 집중도 높은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고 했지만, 순수혈통 저택의 다이닝룸에 있을법한 고풍스러운 타원형 테이블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암묵적인 서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모임이 시작하기 전, 비어있던 좌석은 두 자리. 발부르가가 오리온이 나타나길 기대했던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른쪽은 슬러그혼이 제일 아끼는 학생인 슬리데린 반장이, 왼쪽은 최근 약혼을 발표한 블랙가의 장자가-그가 초대에 응한다면- 앉을거라고 다들 추측했다. 발부르가가 왼쪽 2번째 자리에 앉는걸 본 아브락시스는 오늘만큼은 오리온에게 왼쪽 1등석을 넘겨주기로 결정하고, 오른쪽 2등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빈 옆자리에 리들이 합류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불쑥 노크 소리가 들리자 슬러그혼 교수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지팡이 끝에서 은빛 열쇠가 생겨나서 는 빠르게 문으로 날아갔다. 철컥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늙은이를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야...” 


슬러그혼 교수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하지만 질책하는 사람 치고는 퍽 친근한 어조였다. 새로운 검은 머리의 손님도 그 기색을 읽었는지 친근하게 대답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새로 온 손님의 목소리는  모두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사로잡았다.아브라시스도 문쪽을 보다가 의자를 빼내는 슬러그혼 교수의 손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렸다. 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문쪽을 주시하며 이미 완벽한 위치에 있는 넥타이를 바로잡고 있었다. 


“사과의 의미로 이걸 받아주시겠어요?” 


해리가 슬러그혼 교수에게 작은 유리병을 내밀었다. 유리병 속에는 파인애플 모양의 사탕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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