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축제는 9월 20일에 개최되었다. 축제는 20일부터 나흘 동안 열리는데, 20일이 화요일이라서 금요일에 축제가 끝나야 하지만 이번에는 토요일에도 작은 행사가 있었다. 실력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학교의 음악부에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연락해서 첫째 날에는 반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점심 나절부터 시간을 낼 수 있으므로 점심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알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등교할 때 같이 학교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점심을 먹게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나는 크게 웃었다.

"뭐야! 너도 집사 복장으로 카페에서 시중을 드는 거야? 에바다."

"왜? 집사 복장이 뭐 어때서 그래. 게다가 반 애들의 평가도 아주 좋았고 우리 반은 매출 1위를 찍고 있다니까.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20만 원 넘게 벌었거든."

"대단하시네."

비꼬듯 말하는 습관에 그는 눈썹을 살짝 움직였지만, 원래의 얼굴로 돌아와서 말을 이어갔다.

"아까 뭘 먹어서 그런데, 주문은 네가 하면 안 될까? 나는 의자에 앉아서 주스나 마실래. 사람들이 많아서 덥기도 하고. 자, 여기 식권."

"나도 식권 있어. 괜찮아."

"진짜로 안 먹어도 된다니까. 내 거 써서 음식을 받아 와. 얼른."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식권을 손에 쥐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다. 하지만 더 깊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기에 식권을 들고 음식을 나눠 주는 곳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받아 왔다. 오늘의 점심은 식빵과 우유, 토마토 카레와 샐러드였다. 자리에 돌아온 뒤에 유당불내증으로 마시지 않는 우유를 그에게 주고, 식당 바로 앞에 붙어 있는 자판기에서 페트병 녹차를 하나 사 와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내가 먹는 동안 그가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내일 사진을 같이 찍으러 가자.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못 빠져나올 것 같아. 학생 수가 120명밖에 안 되는 학교에서 40명 이상이 집사 카페를 보러 오고, 게다가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카페에서 하나씩 주문만 해도 벌써 교실이 꽉 차거든. 심지어 바로 옆 교실에 있는 책상을 빌려서 테이블을 늘리고 있으니... 너는 이게 믿겨져?"

"집사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 찍을 시간도 없다는 게?"

"응."

토마토 카레에 들어 있는 토마토를 으적으적 씹으면서 대답하였다.

"아니. 집사 카페에 애초에 흥미가 없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모인다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고, 외부인들이 카페에 와서 음료를 주문하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돼. 애초에 우리 학교는 외부인 출입 금지잖아?"

"하지만 축제 기간에만 열어 둬."

"그러니까. 대체 고등학교 축제 따위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돼.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넌 어떻게 생각해?"

우유를 마시면서 그가 말했다.

"아무 생각 없어. 오늘 성공했으니까 내일은 사람이 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야."

"좋아. 빵 먹을래?"

빵을 반으로 쪼개서 우리는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영양분이 몸의 필요한 곳으로 퍼지는 것처럼, 가을 축제는 학교 학생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걸까. 당시의 나는 필요 이상으로 냉소적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9월 21일에 우리는 사진을 찍으러 학교 안을 돌아다녔다. 학교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는 이미 그가 전부 파악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되었다. 둘째 날에도 학교에는 120명의 학생과 외부에서 온 손님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궁리를 거듭해서 찾아낸 곳은 학교 뒷편에 있는 작은 정자였다. 이런 곳을 찾을 생각을 하다니, 역시 대단한 남자친구다.

"여기에 앉을까?"

먼저 말을 꺼낸 남자친구는 정작 의자에는 앉지 않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나도 사진을 촬영하려고 카메라를 꺼내서 전원 버튼을 올렸지만 무슨 사진을 찍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의자에 앉아서 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정자를 찍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데, 여기서는 카메라 셔터가 움직이는 소리만 철컥, 철컥 들려올 뿐이다. 그 소리가 물레방아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도 카메라 셔터를 들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까? 비슷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다음 장소로 수영장 옆을 생각해 두었지만 이미 사람들이 우드스탁의 티켓을 사려는 락팬처럼 우루루 모여 있었다. 빠르게 포기하고 다음 장소인 학교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특별한 풍경이 찍히는 게 아니라고 남자친구는 주의했다. 단지 옥상에 올라오면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아지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는 선문답스러운 이야기를 읊었다. 카메라 렌즈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렌즈를 교체하면서 나는 물었다.

"이제 괜찮아졌어?"

남자친구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괜찮아졌냐니."

렌즈를 카메라에 맞물리도록 끼워 넣으면서 나는 말했다.

"기분이 좋아졌냐고. 기분이 좋아지면 사진도 잘 나온다고 네가 그랬잖아."

"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글쎄. 그렇게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옥상에서 보이는 하늘이 아름답다는 사실이야. 초가을이라서 아직 더울 줄 알았는데 올라오니까 시원해. 애국가에서 이런 가사가 있잖아.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너 그거 알아? 애국가를 지은 안익태가 사실 친일파였다는 거?"

"친일파? 일본하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 말하는 거야?"

"응. 안익태는 사실 친일파였고 독일에서 슈트라우스 밑에서 공부할 때도 일본인 유학생 자격으로 나간 거거든.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도 친일파가 작곡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나는 상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놀라."

"그렇겠네.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라."

"하늘이 아름답다는 말은 사실 한국어에서 없는 표현이야."

그가 이번에는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

"하늘이 아름답다는 말은 조선시대만 해도 없었어. 나중에 영어 문장이나 일본어 문장을 번역하면서 ‘the sky is beautiful’을 ‘하늘이 아름답다’는 말로 번역하게 된 거야. 비슷한 이야기가 일본에도 있는데, 속설에 따르자면 일본 작가인 나츠메 소세키는 ‘I love you’라는 문장을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하였다고 해. 그걸 보면 문학의 세계만큼이나 번역의 세계도 거대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하지만 하늘은 아름다운데."

나는 대답하였다.

"맞아. 하늘은 아름다워. 한 장만 찍어줄래?"

어깨에 카메라를 맨 채로 옥상 끝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렌즈의 조리개를 조절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아서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옥상 위에서의 즐거운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그를 제외한 누구도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않으리라. 옥상에 남아서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행운의 징조라는 녹색 광선이 하늘의 저편에서 반대편 끝까지 일주하는 모습을 두 눈동자에 담으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경험했다. 행복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민트의 상큼한 맛을 잃지 않으며 입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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