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 씨는 특별해요.”


그 말을 할 때 피터 파커는 미드타운 과학기술고교의 특징인 노란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날은 그렇게 춥지도 덥지도 않았지만 볕이 강했다. 소년은 이마 위로 손을 붙이고 그늘을 만든 채 토니 스타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있지. 그런 말을 하며 토니가 차를 세웠을 때, 피터가 손을 내리며 대답했다. 저한테 오시는 거 보려고요. 토니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그땐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둘은 멘토와 멘티가 만나 할 만한 일을 했다. 밥을 먹고, 토니가 내준 과제를 검사하고, 마지막엔 스타크 타워에서 영화를 봤다. 어떤 날은 토니가, 어떤 날은 피터가 골랐다. 그날은 시답잖은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를 봤다. 피터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토니는 고개를 돌리고 조금 하품을 했다. 영화의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집으로 데려다줄 때쯤에, 해가 모두 지고 사라져 어두워졌을 때 피터 파커가 그 말을 했다. 토니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대꾸했다. 그걸 누가 몰라. 내가 제일 잘 알아.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그 말은 따분하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녔다, 토니 스타크에게는. 그러나 피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특별해요.”


답지 않게 토니에게 고집을 부리는 것보다, 평소처럼 방방 뛴 아이 같은 말투가 아니라 차분한 톤인 것에 놀라 토니가 말을 멈췄다. 문득 토니는 가로등 빛이 한 줄기 내린 피터의 교복을 보았다. 예전엔 조금 품이 크다 싶었는데 이제 거의 어깨가 맞았다. 키가 크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는데 자라고 있었던가. 피터의 눈동자에도 어른거리는 빛이 들었다 빠지며 옅은 헤이즐넛 색이 부드럽게 퍼졌다. 안온함이 깃든 따뜻한 눈. 피터가 토니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팬보이처럼 힘껏 탄성을 내지를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건 그 시선 가운데에 선 토니 스타크였다. 가끔 토니는 피터를 내려보고 있는 와중에도 그가 자신을 부드럽게 굽어보고 있다고 느꼈다. 소년을 자라게 하는 중심이 되는 것은 단단한 바닥에 맨발로 내려설 때만큼이나 긴장이 되고, 또 짜릿하기도 했다. 이윽고 토니가 입을 뗀다.


“그래, 기분이 나쁘지 않네.”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피터가, 토니의 팔을 쥔 손을 풀고 아이처럼 웃었다. 한밤중인데도 눈이 부신 사람처럼 접히는 눈매. 잘 어울리는 노란색 재킷을 보며 토니가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그래서 넌 무슨 대학을 가고 싶어. MIT에는 내가 추천장을 써줄 수 있다고 말했었지? 뭐, 꼭 거기가 아니어도 괜찮지만. 아쉽긴 할 걸. 내가 거기에 무슨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거 아냐. 이제 대학교에 관심 가질 때가 됐잖아. 아닌가? 쏟아지는 말을 들으면서도 피터는 차에 타고 토니의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 웃었다. 반쯤 열린 차창 사이로 부드러운 밤바람이 불면 소년의 갈색 머리칼이 붕 뜨면서 흰 이마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부드럽게 지는 달의 빛무리. 어딘가 사라질 것 같아서 토니가 성급히 입을 뗐다.


“대학생이 된다는 건 꽤 좋은 거야.”


고교 재킷이 잘 어울리지만, 다른 것도 잘 어울릴 것이다. 그 속내를 아는 것처럼 피터가 이어폰을 반쯤 꽂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제, 동아리, 봉사활동, 토론, 맞아요. 재밌겠죠. 조금 더 들뜬 목소리로 피터가 덧붙였다.


“그땐 더 하고 싶은 게 또 생길 거예요.”


눈이 마주쳤을 때, 토니는 저도 모르게 소년의 다음 계절을 상상했다. 조금 더 자란 키와 어깨와 대학가를 걸으며 기쁘게 웃는 얼굴을. 그리고 오늘처럼 손그늘을 만들어 저에게 다가오는 토니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피터 파커를.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짝이는 피터의 눈동자 속에 여전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토니는 그리 어렵지 않게 피터의 대학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거기 함께 어우러진 자신을 이야기했다. 그땐 훨씬 어려운 과제를 낼 거야. 스파이더맨 활동도 더 터프하게 시킬 거고. 앗, 그건 좋은데요. 전혀 좋은 게 아냐. 우는 소리 나게 만들어주지. 과제에 치이고 히어로 활동에 치이면 태평한 소린 안 날 거다.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 앤 내가 특별하다고 했지.”


문가에 기대 선 나타샤가 침대에 걸터앉은 토니를 멀찍이 보았다. 메이 파커가 무려 아이언맨의 뺨을 갈긴 후였다.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지, 토니 스타크.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서리 같은 말을 날리고 돌아선 메이 파커가 치를 피터 파커의 장례식에 그는 초대되지 못할 터였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별다른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아니었다면 피터 파커는 그를 가장 순수하게 사랑한 숙모의 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타노스의 고향에서가 아니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게 그랬어. 넌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 토니 스타크. 넌 그렇게 특별하지도 잘나지도 않아.”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 캡시클도 한 번쯤은 그 소릴 했을걸. 토니가 턱을 감쌌다. 그래서 가끔 난 내가 특별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래서 안 특별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나중엔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고개를 숙인 토니의 등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데 그 애만이 나를 정말로 특별하다고 말했어.”


너무 진심이라서 모르기가 어려웠던, 따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파고드는 단 하나의 빛. 말한 적 없었지만, 토니는 그것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 떠올린 것은 다음이었다. 살아가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난 그 애랑 같이 살고 싶었어.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교수에게 질문을 하고 레포트를 쓰고, 가끔 여행을 가고. 술을 마시고 그래, 내키지 않겠지만 가끔 담배를 피우고 그렇게…”


하지만 피터 파커는 영원히 대학생이 되지 않는다.

토니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언젠가 옷걸이에 걸린 채 바래갈 거라 생각한 노란 재킷은 피터의 마지막 예복이 되었다. 입을 몸도 없어 옷만 덩그러니 관 안에 허망하게 놓였다. 토니는 흡사 웃음을 참는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네가 나를 특별하다고 할 때 나는 너와 같이 사는 상상을 했지. 언젠가 우리가 손을 잡을 거라고 믿었듯이.

토니는 그날 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차는 차 안에서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말의 주고받음을, 시시한 대학생이 될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피터 파커의 쑥스러운 웃음과 콧잔등에 내려앉은 달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고요한 밤의 드라이빙과 피터 파커가 돌아서 사라지는 골목의 끝과 남아서 잠깐 앉아, 그 애의 미래와 그 곁에 선 자신을 떠올리던 시간을. 그때쯤 들려주고 싶은 말과 또다시 새롭게 들어찰 말과 말의 계절들.


그러나 더 이상 두 사람은 대화하지 않는다. 

그가 피터 파커가 없는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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