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진짜>라는 말에 면역이 약한 편이다.


어떤 날엔 울부짖고 싶었고, 어떤 날에는 항변하고 싶었고, 어떤 날엔 화내고 싶었다. 되돌아 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아간 머리통을 되찾지 않는이상 <진짜>가 될 수 없었다.


-와
-진짜 도경수잖아.


나를 보며 울던 엄마도 비슷하게 얘기했었다. 진짜 경수잖아…. 나도 몰랐는데 난 남이 울면 좀 따라우는 편이었던 모양인지, 나를 끌어안는 엄마를 부둥켜 잡고 같이 울었다. 유난히 큰 눈동자가 발개질때까지 울고 나서야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제껏 나를 간호하거나 나의 신변을 묻거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낯설고 무섭기만 했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접촉도 불쾌하지 않았다. 살갗에 닿는 느낌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징후들이 모두 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경수야, 아직도 기억이 안나니?


나는 충분했어도 그들에게는 불충분이어서 망해버렸지만.


다짜고짜 들이닥친 –센티넬-뒤로 또 다른 사람이 보였다. 대강 추리했다. 한 명이 센티넬이라면 한 명은 가이드겠지. 여자는 말했었다. 간단히 말해서, 센티넬-가이드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예요. 거스를 수 없는 짝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나는 갑자기 떨어진 세계의 장점을 찾아냈다.


“아휴, 죄송합니다. 야 변백현. 나와 일단.”
“…”
“그만 쳐다보고, 좀.”


-센티넬-로 추정되는 남자가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를 아주 오래도록 쳐다봐주는 사람이 오랜만이어서, 나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를 <진짜>가 되지 못한 모조품 정도로 취급하는 인간들과, 비슷한 눈빛이었다. 나를 좋아하지만 미워한다. 내가 반갑지만 반갑지 않고, 나를 맘껏 할퀴고 싶지만 할퀴지 않는 눈.


겨우 소란이 진정되었지만 여자와 나 사이에 사이가 붕 떴다. 여자는 –변백현-이라고 불린 남자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발음이 계속해서 씹혔다. 아나운서가 방송사고를 내는 현장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제가 여기 있었던 적도 있나요?”
“…네?”
“있었나 보네요.”


알게 될 사실은 미리 아는 편이 좋다. 비교적 편견없는 내 짐작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그렇게 빠릿빠릿하던 여자가 내 질문에 몸을 떨었다. 나는 <경수>를 생각했다.


도경수, 여기저기에 사랑을 주고다녔군.
그 사랑에 체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네.


“교육부장님 와 계시다고 하네요. 저는 여기까지만 설명드리면 될 것 같아요. 어, 1층 프론트에서 숙소 배정받으시면 된다는 얘기는 했죠? 2인 1실이고, 보통 파장 맞는 센티넬이랑 가이드 끼리 붙여놔요. 옛날엔 그냥 무작위였는데. 뭐, 어지간히 싸워야죠. 보통 파장이 맞으면 성격도 잘 맞더라구요.”
“아, 네.”
“곧잘 알아들으시네요. 하하.”


누가 아나운서 아니랄까봐. 여자는 정말 정직하게 웃었다. 꼭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웃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양. ‘호호’하며 웃어주려다가 말았다.


루머 생각이 났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넌 하하도 호호도 흐흐도 히히도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가끔 가다가 니가 웃으면 그 소리가 진짜 듣기 좋거든. 흫흫인가? 아 말로 표현이 안되네.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루머와 있었던 일 들 뿐이다. 그걸 상기하자 사무치게 외로워져서, 재빨리 다른 것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방금 들은 이 수상한 ‘센터’에 관한 것. 여기는 센티넬이 있고 가이드가 있다. 센티넬은 비상식적일 정도의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고, 가이드는 그런 센티넬의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을 잠재우고 달래주기 위한 존재들이다. 가이드만 희생하는 상하관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니다. 그래서도 안된다. 바람직한 센티넬-가이드가 되기 위해서는 윈윈관계를 가져야 한다. 높은 강도의-전투와 같은, 목숨을 깎는 업무에서 근무하는 센티넬은 극소수고, 대다수의 센티넬은 겉으로 보기엔 가이드와 별 다를 바가 없다. 가이드가 센티넬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또 뵙네요.”
“교육 부장님?”
“아뇨. 제가 그럴 짬밥은 안되구요. 그냥 전 가끔 어린애들 들어오면 교육시켜주는 정도?”
“전 어린애가 아닌데요.”
“대신 순응력이 빠르시잖아요. 침착하시고. 누구와는 다르게.”
“그 누구가 방금 봤던 그 센티넬을 말씀 하시는 건가요.”
“…센티넬 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것도 가이드 능력인가.”
“그냥 센티넬 같았는데요.”
“…아 그냥. 그럼 저는 어떻게 보셨는데요.”
“…가이드?”
“진짜 때려 맞춘거구나. 음. 저도 센티넬이에요. 이름은 김민석. 능력은, 뭐 별로 궁금하진 않으실테니까. 연주씨한테 설명은 대강 들었죠?”
“…네.”
“좋네요.”
“…진짜로요?
“네?”


하나도 안 좋다는 얼굴인데.


나는 왜 남의 표정을 살피는 데 이렇게 능하지. 정작 내 표정도 몇 개 없는 마당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이미 알아챈 사실을 모른 척 하기도 뭐했다. 남자는 나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과장된 다정함이 그걸 증명했다. 나는 얻은 사실을 더듬더듬 조합했다. 오만 군데를 오간 과거의 <경수>는 여기에도 발자욱을 남긴 모양이었다. 아마 그 발자욱은 –변백현-이라는 남자와 깊은 관련이 있을테고, 남자는 –변백현-과 친한 사이로 보이니 당연히 그 사연의 구구절절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들어 알고 있겠지. 또다.


내가 없는 곳의 나.

나는 그것을 나라고 부르는 것을 포기했다.


“그럼 조금 쉬었다가 가이드 능력 측정할까요?”
“가장 높은 등급이 뜨면 어떻게 되나요?”
“음…. 보통 아주 어릴 때 발현되지 않고서는 높은 등급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어서요. 아마 경수씨도 늦은 나이에 발현 했으니까요. 음.”
“…그렇게 높지는 않을 거란 말이군요.”
“네 뭐, 말하자면 그렇죠.”
“등급에 따라 뭐가 다른가요?”
“…연봉?”


사방이 갇힌 곳에서 돈이 쓸모가 있을까. 치장한다 한들 봐주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과시욕을 부리기엔 좁은 곳이었다.


“정말로 공무원이네요.”
“여기 물가가 비싸거든요.”
“와중에요?”
“뭐, 센티넬-가이드는 몸이 특별히 예민해서 고급 식량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그런 것만 들여와서. 뭐 몇 업체랑 답합이라도 했겠죠.”
“…그렇게 말해도 돼요?”
“그래도 못 나가니까요.”


내쫓기는 것이 아니라 못 나간다고 했다. 말에 뼈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 여기 서볼까요?”


남자는 조그만 돔 형태의 기구로 나를 옮겼다. 보건증을 끊을 때 마주했던 검사기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비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더니 꽤나 감성적인 면도 있는 모양이었다. 조그만 구형의 기계에 하얀색 날개가 달려있었다. 발 모양의 실선이 그려진 곳에 섰다. 남자가 기계를 작동시킨 모양인지 날개가 천천히 나를 감싸 안았다.


“저도 껴안으면 되나요?”
“아니요. 얘가 껴안을거구요. 경수씨는 밀어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밀어내요?”
“말하자면 센티넬의 감각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게 가이드의 역할이라. 반동과 비슷한 작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팔딱팔딱 뛰는 센티넬의 오감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느냐. 이게 그걸 측정하는 거구요. 싫은 사람 대하듯이, 치가 떨린다고 생각하시고, 온 몸의 기를 모아 밀쳐낸다고 상상해보세요.”


나를 먼저 껴안아주는 사람을 밀어낼 만한 동력이 내게 있었던가.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것.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내 품을 헤집는 것. 당신의 아들이 버젓이 살아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텅 빈 눈동자를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것. 나의 육체만을 껴안는 것.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안겨 있었다. 다 큰 성인 남성이지만 그랬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구닥다리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그걸 거부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는 걸 알아야한다. 루머에게 텅 비었다는 소리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나는 사람이 좀 고팠다. 모난 마음이 들면서도 내치지 않았다. 좋으면서도 싫었고, 싫으면서도 좋았다. 좋으면서도.


“경수씨, 울어요?”
“…아니요.”


외로웠다.


“경수씨 힘 빼시면 안돼요. 기계가 좀 느리거든요.”
“계속 밀어내면 되나요”
“네. 가능한한 최대로다가.”


못 밀어내겠다….


“어, 경수씨. 잠깐만요.”
“날개가 안 빠져요.”
“아니 알아요. 잠시만요.”
날개는 조개의 입처럼 완벽히 다물렸다. 나는 그 안에서 버둥거렸다. 남자가 주시하던 큰 대형스크린에 빨간 줄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경수씨. 뭐 한 거 없죠.”
“제가 뭘요.”
“아니 약물을 먹었다던가, 아 미치겠네.”


남자가 답답한지 머리를 헝클였다. 남자의 뒤로 빨갛게 점멸하는 스크린이 보였다. 나른한 온도. 날 껴안고 있는 이상한 기계. 내 시선을 잡는 붉은 선. 생각해보면 재난 영화 보다는 의학 드라마에 가까웠다. 의사는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사망선고를 내린다. 간호사는 침묵을 지키고 가족들은 오열한다. 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줄까. 비극을 상상하는 것이 버릇이 된 모양이었다. 여전히 남자는 부산스러웠다. 전화가 울리는 데도 받지 않았다.


“아씨. 후. 경수씨 일단 나와봐요.”
“아니 이게 잡고 있어서 나올수가…”
“진짜 안 빠져요?”
“네.”
“…”
“전화 울리는데요.”
“…알아요.”


전화가 끊기겠다 싶을 쯤에 남자가 통화를 시작했다. 상대방과 의견이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 기계 바꾸라고 했죠?> <말도 안되는 소리란 거 아시잖아요> <얘 그거 뜨면 누구랑 매칭되는지도 아시고 그러는거죠? 기계 오작동이니까 시간 충분해요. 다시 검사하면…>


상대방의 입장이 워낙에 단호했는지 남자가 화를 내다 말고 전화가 끊겼다. 남자는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껏 애써 다정을 꾸미던 남자의 얼굴이 허물어져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경수씨. 제 말 잘 들으세요. 이거 기계 오작동이에요.”
“제가 무슨 등급이 떴길래 오작동이라는 거예요. 아니면 뭐 그 가이드, 라는 게 아니라고 뜨기라도 했나요. 그래서 제 기억을 지우고 여기서 내보내야 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에요. 가이드 맞아요 경수씨.”
“그럼 뭔데요.”
“일단은 위에서 내리는 명령이니까 잠깐만 숙소에 가 계실래요?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거기 잠깐만 가 계시면, 제가 데리러 갈게요. 그냥 거기 숙소에서 나 여기있다. 도경수 이 안에 있다, 하고 사진 한 장만 찍어서 저한테 보내주세요.”



*



아는 게 없으니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씩이나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보를 내가 하루아침에 따라갈 수 있을 리가. 남자는 내게 벌어진 일련의 일-숫자가 떠야 마땅할 스크린에 웬 빨간 줄만 주구장창 떠있던 것-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저항할 정도로 궁금하거나 불만인 것은 아니어서, 잠자코 남자가 하라는 대로 했다. 여기와서 가장 오래 말을 나눈 사람이었다. 나는 이 곳의 규모를 대강 파악하고 돌아가는 시스템이 어떤지 구두로 전해들었을 뿐 실상에 대해선 몰랐다. 기억이 없는 자는 기댈 수 밖에 없는 법이었다.


센티넬-가이드 숙소는 가운데 작은 거실을 두고 양쪽으로 방이 나누어져 있는 구조였다. 전체적으로 회색 톤인 숙소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패턴의 냉장고가 거실 한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는 왼쪽방을 쓴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열었다.


남자의 방은 무서울 정도로 깨끗했다. 사람이 산다는 흔적이랄게 별로 없었다. 모델 하우스 같군. 모든 물건의 각이 잡혀 있어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해치는 기분이었다. 어색한 몸짓으로 남자가 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치-즈 라도 해야하나.”


혼자 지내는 동안 혼잣말이 늘었다.


셀프 카메라로 본 내 얼굴은 낯설었다. 남자가 꽤나 밝은 어투로 <나 여기 있다. 도경수 여기 있다>라는 신호를 보내달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미소를 끌어 올리려고 애썼다. 루머가 얘기했던 ‘흫흫’을 소리내 따라해 보기도 했다. 이 공간에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최대한 팔을 멀리 뻗었다. 자리를 지키는 가구 말고, 낯선 인영이 한 프레임에 잡혔다.


-변백현-이라고 했던가.


“…아.”


낯선 남자가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왜 여깄어?”
“네?”
“왜 여기 있느냐고 묻잖아.”


남자의 말투는 이상한 곳에 방점을 찍었다. 남자는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왜’ 여기 있어가 아닌, 왜 여기 ‘있어’.


네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제발로 돌아온거야?”
“…”
“묻잖아. 네 의지로 돌아온 거냐고.”


남자는 내가 <돌아왔다고> 했다.


“다시는 못 볼줄 알았는데.”
“…”
“썩 반갑지도 않고.”


“걱정마, 너한테 손대는 일 없을 테니까.”


언제는 손댔단 소리인가.


나는 멍청하게 물었다.


“우리가 알던 사이였나요?”


익숙한 질문이었다. 나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형에게도, 나의 불알친구를 자처하던 중학교 동창들에게도, 단골이었다던 빵집의 아저씨에게도, 나를 좋아했다던 사람에게도, 루머에게도, 물었었다. 나 말고, <경수>를 아시나요?


보기 좋은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남자는 우는 것처럼 웃었다.


“거짓말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인가보네.”
“…”
“밖에서 누구랑 얼마나 붙어먹었길래.”


“편해서 좋겠어. 그렇게 싹 다 지워버리고. 누구는 그 후로 등신이 됐는데.”


남자가 중앙의 냉장고를 열었다. 똑같은 색깔의 음료가 가지런히 열을 맞춰 정돈돼 있었다. 남자가 익숙한 듯 그 중 하나를 꺼내 목을 축였다.


“알기만 했겠어.”


연극적인 말투였다. 술을 마신것도 아니면서 발음이 샜다. 좋게 말하면 능글맞았고, 나쁘게 말하면 악한 속셈으로 여자를 꼬여내는 남자같았다.


“우리 꽤 친했어.”
“…”
“도경수가 죽여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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