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분 109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러운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너는 마지막으로 히죽 웃었다.
    드디어 어른이 됐다. 

    13년의 해후에 대하여 너희 두 사람이 나눈 것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짧은 감격뿐이었다. 마음만큼 오래 젖어있기에는 그 시간에 챙겨야 할 가족이 이제 너무 많았다. 다시 만난 기념비적인 순간을 어깨 한 번으로 축하해야 했던 것과 같은 까닭이었다. 그때나 이때나 별로 시간이 없었다. 너희는 유일한 선배였으므로.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대가족에 적응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네가 처음으로 쉘터에 도착했을 때 막 태어났을 어린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 처음 만난 후배에게 할 줄 알았던 인사라곤 총이나 들이대는 짓밖에 몰랐던 너는, 그래도 내심 이 난감함을 공유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선배짓이라도 혼자가 아니라 믿으며.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루카스는 너와 달랐다. 13년을 홀로 보낸 것은 너뿐이었으므로.
    그 시선, 목소리, 말. 아버지를 둘러싼 아이들이 보내는 애정과 존경. 이미 루카스는 오래 전 그들을 만남으로써 무사히 어른이 되기에 성공한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너는 그래선 안 될 배신감을 느끼고 당황하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래도 네게 루카스 같은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찰나간 13년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만 4주간 쓰러져 있던 녀석이 눈을 뜨자마자 먼저 찾은 쪽인 루카스가 아닌 너였다. 일말의 뿌듯함을 느껴버린 스스로가 넌더리 나면서도 너는 어쩔 수 없이 만족스러웠다.
    며칠만 늦었으면, 혹은 기어코 쉘터에서 쫓아냈다면 녀석들이 만난 건 네가 아닌 루카스였다. 함께 살아주겠다는 녀석도, 네 이름을 궁금해할 녀석도 13년은커녕 13세기 후까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무릎 꿇고 감사 기도나 올리시지, 유고 아저씨.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들에게 네가 어른은 아니었다. 아무리 더듬이와 수면부족이라도, 아니 오히려 녀석들이라 더 그랬다. 선배이자 스승이자 동료일 수는 있어도 아버지일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어른이 아니라도 괜찮았지만 마지막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너는 다소 힘겹게 인정했다.
    왜냐하면 네가 루카스에게 느끼는 가장 큰 감정 역시, 약간의 부러움과 질투를 넘어선 거대한 안도감이었다. 아이가 어른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당연한 거였다. 최소한 네가 맞지도 않는 조끼를 고집스럽게 입고 있는 동안은 그러했다. 그래도 루카스가 네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지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루카스는 조끼의 원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오래 전 구멍난 찻잔을 아끼던 이름도 기억했다. 하여 네가 어른이 되지 못한 까닭도 그는 충분히 이해했다. 어른이었다.

    마지막 순간, 수면부족의 머리를 망가뜨리며 애들이 짊어질 필요는 없다던 말까지도 허세였음을 다름 아닌 네가 모르지 않는다. 13년간 혼자 남겨진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있을 리 없었으므로. 그건 단지 그동안 살아남았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라는 이름만큼은.

    그래서 이제야 너는 웃을 수 있다. 녀석들을 지키기 위해 비로소 어른이 된 이 순간에. 드디어 루카스와 나란히 어깨를 가누게 되어 이렇게 뿌듯할 데가 없다. 
    너는 안다. 주책 맞은 걱정은 하지 마라. 네가 지켜낸 아이들은 마침내 세상을 바꾸고야 만다. 원하는 미래를 이루고 너희가 보려던 세계를 볼 테니까. 어른 몫까지, 살아서.

    괜찮다. 그들은 잘 해낼 것이다. 너희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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