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꽃이 피는 시기가 있다. 단지 그 개화 시기가 언제일지 모를 뿐이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일지, 내일일지, 혹은 까마득한 미래가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또한 자신의 재능이 과연 꽃 피는 시기가 오기는 할지 고민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막연한 불안에 흔들렸던 때가 있었기에 더욱 단언할 수 있다. 재능은 분명, 꽃이 피는 시기가 있다고.


스포츠 선수에게 가장 이상적인 개화시기를 묻는다면, 누구라도 20대 중후반을 꼽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자신이 프로가 될 수 있다는 자질만을 보여줄 수 있어도 충분하다. 그 치열했던 중학교의, 고등학교의, 그리고 대학교의 배구는 결국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관문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그 과정이 험난하기에 누구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일찍 핀 꽃이기에 일찍 저물 수 있다는 사실을.


프로선수 3년차가 되던 해, 카게야마 토비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다지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실제로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았으니. 그 과정에서 배구선수로서의 수명이 다 한 것은 부가적인 일일 뿐이었다. 그래, 부가적이지만. 정작 카게야마 토비오가 제 목숨이 끝났다고 느끼게 만든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그것이었다.


“제가 왜요?”


그게 카게야마의 입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온 한마디였다. 참담한 표정으로 결과를 전하는 의사는 아무 잘못이 없었음에도, 한참 비껴간 분노의 방향에 누구도 간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가 왜 배구를 못해요? 그냥 요즘 좀 피곤하고, 속이 안 좋고, 어지럽고, 그랬을 뿐인데. 푹 쉬면 괜찮아질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왜요?”

“토비오, 잠깐 진정해.”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았을 뿐인데, 왜 이제 배구를 못 한다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내가 어떻게, 내가, 내가!”

“토비오!”


이런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절규와도 같은 외침과 함께 카게야마가 그대로 달려들 뻔한 걸 간신히 몸으로 막았다. 비슷한 체구의 성인 남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그 곳에 있던 단 한사람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누구도 너를 책망하지 못했다.


그렇게 너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카게야마 토비오와 함께했던 모두가 그의 몰락을 지켜보았다. 낙화란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낙화




진단을 받은 직후 카게야마는 통원치료를 고집했다. 그것도 처음 6개월 남짓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객기를 부리면서까지 나가던 연습도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몸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한번 피어난 꽃은 무엇보다도 빠르게 시들었다.


배구 리그가 개막할 때 즈음이 되어서야 카게야마가 입원했다. 단순한 순응과는 달랐다. 다시 코트 위로 돌아갈 거예요. 카게야마의 바람과도 같은 선언에 누구보다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토비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다음 시즌마저 끝난 지금, 여전히 카게야마 토비오는 코트에 없다. 바라보는 미래는 더욱 불투명할 뿐이었다. 흐름이 빠른 스포츠계에서 그 이름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 또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지금까지 간간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그만큼 카게야마가 존재감이 유독 강했던 선수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기필코 다시 배구를 하겠다는 카게야마의 태도마저 무너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런 너보다도 더욱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너라는 존재에 대해 곱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 어린 마음으로부터 비롯한 저주가 지금에서야 너를 옭죄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너를 떠올리자 또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점심은 먹었을까. 요즘 밥을 잘 못 먹었던 것 같은데. 살도 많이 빠졌지. 치료, 이대로 계속 받을 수 있을까. 기어코 편두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미안, 먼저 일어날게.”


이어질 연습을 위해서는 밥을 든든히 먹어둬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더 밀어 넣어봐야 당장 화장실에 달려가는 결과밖에 없을 게 뻔했다. 벌써? 동료의 물음이 돌아올 때에는 이미 의자에서 일어섰다. 속이 좀 안 좋아서. 이 핑계를 몇 번이나 써먹었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이카와, 너 식단관리 하고 있는 거 맞지?”


그 질문의 의도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식단 관리? 제 식사를 신경 쓸 겨를이 있기나 했던가. 체육관과 병원을 오가는 일상에서 우선이 되지 않는 것들은 하나 둘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살 좀 많이 빠진 거 같다.”

“아,”


그 말에 습관적으로 숨을 삼켰다. 체중을 쟀던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운동선수에게 이런 몸 관리는 기본 중에 기본일 수밖에 없지만, 그런 ‘기본’조차 챙길 여유가 사라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것과 동시에 몇 달 전부터 급속도로 체중을 잃기 시작한 네가 떠올랐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지금의 내 몸무게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야, 인마. 지금 뭐하자는 거야?”


감독의 격양된 목소리와는 별개로 시선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표정으로부터 비롯된 질타를 느낄 수 있었다. 오후 연습을 빼겠다는 말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이런 반응은 각오했지만, 예상보다도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이번 시즌 성적을 보고도 그따위 말이 나와?”


성적 이야기가 나오자 기어코 입술을 악물었다. 선수를 기용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꺼낼만할 이야기였다. 자잘한 부상도 없었건만, 오이카와는 컨디션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다. 시즌 내내 교체를 반복하다 후반에는 몇 번 주전에서 밀려나기까지 했고, 팀은 오이카와의 폼을 끌어올리기보다는 대체할 세터를 키우자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카게야마 토비오 은퇴하고, 국가대표에도 믿을 세터가 너 하나뿐인데. 너까지 선수 인생 끝장내겠다는 거야, 뭐야?”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오이카와도 숱하게 들었던 말들이 이어졌다. 너라고 선수 인생이 언제까지 갈 것 같냐,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한다. 지금 정신 바짝 차려도 원래 폼을 회복할 수 있을지 말지 모른다. 한 층 누그러진 목소리에도 고개를 들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유독 오이카와를 아끼던 감독이었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진즉에 오이카와를 내치고도 남았을 상황에 와서까지 이런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시즌도 아니고 두 시즌. 오이카와는 이미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졌다. 정확히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코트 위에서 사라진 그 때부터.


“…그래도 오늘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스포츠 선수들의 경쟁은 결코 안일하지 않다. 모두가 배구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다른 모든 것들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한 채 달려 나간다. 잠깐의 지체만으로도 경쟁에서 낙오되기란 쉬웠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이상하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지,

무너져 내린 누군가의 길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마냥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힘없이 병실 문을 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등을 돌린 채로 잠시 숨을 삼켰다. 짧은 심호흡을 내뱉고 다시 몸을 돌렸을 때에는 한층 누그러진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향했다.


“토비오, 밥은 먹었어?”

“조금요.”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아 다시 숨을 삼켜야했다. 애써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은 채 천천히 병실 창문을 열었다. 오늘의 온도는 나쁘지 않다. 조금의 환기정도는 네 기분 전환에도 괜찮을 터였다. 아니, 그러길 바랄 뿐이지만.


“토비오.”


정확히는 이렇게라도 숨통이 조금 트이기를 소망한다. 병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달라지는 무거운 공기는 언제고 폐를 틀어막았다. 나는 이 장소에 가득 들어찬 기체가 정녕 산소인지를 의심해야만 했다. 이 곳이 과연 숨 쉴 수 있는 공간인지, 그 곳에 있는 너는, 과연.


“우리 치료 그만 할까?”


이 말을 내뱉던 순간에는 너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창밖의 하늘이 탁하다. 나는 그제야 오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미세한 실수조차 너에게는 치명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다시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토비오도 괴롭고 힘들잖아. 같이 시골 어딘가로 내려가자. 공기 좋은 곳으로. 그리고 거기서, 계속 둘이 같이 있는 거야.”


아니, 사실 이 모든 행동은 너의 반응을 외면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하늘하게 내뱉은 말을 끝내기 위해서 결국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의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결국 네게 등을 보여야만 했다.


“…분명 행복할 거야.”


그래야만 할 거야.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의 바늘이 여전히 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힘겹게 밥 한 숟가락을 밀어넣고 위액까지 게워내는 나날을 계속하느니 온전히 진통제에 기대는 쪽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이 말들을 썩 믿을 법 했다. 너를 담당하는 주치의에 입에서 나왔으니.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치료를 계속 해봐야 의미가 없을 거라고. 그러면 고통이라도 줄여보는 쪽이 낫지 않겠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기보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고개를 조악거리는 것뿐이었다. 주치의가 무어라 말을 하면 나는 어떠한 반박을 할 권리조차 없었다. 나는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너를 알았지만, 지금의 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야속하다.


하지만 너도 지치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너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내뱉는 이 말에 네가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길 바랐다. 내가 지금 눈앞에 모든 것들을 외면하듯 너 또한 그래주기를.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지만 그러기에 너는 얼마나 강한 사람이던가. 간신히 돌린 시선에 끝에는 한껏 인상을 구긴 네가 있었다. 이따금 치료를 받으며 얼굴이 고통으로 물드는 순간조차도 이러한 절규는 아님을 알고 있다. 차마 갈라진 너의 목소리 사이사이에 스며든 갈망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전 코트 위로 돌아갈 거예요, 오이카와 씨.”


이제는 습관일지 희망일지 모를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너는 분명 진심이겠지. 네가 내뱉는 모든 말들의 무게가 무겁기에 공기가 이리도 가라앉아 있는 걸까. 나는 이런 너의 올곧음이 때론 흉기가 된다는 사실을 이전에도 겪어보지 않았던가.


“…응. 그래야지.”

“네. 그러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결국에는 단호하게 대답하는 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 대신 시선이 닿은 곳에는 핏줄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수척해진 손이 있었다. 한때는 굳은살로 덮여 단단하면서도 무엇보다 섬세하게 관리되었던, 배구선수의 심장.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겨도 근육으로 다부진 팔뚝 대신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몸이 있을 뿐이었다.


만에 하나 기적이 일어나 네가 죽음이 드리운 이 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바깥의 세상이 코트는 아닐 것이다. 스포츠란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게 변화하고,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도태시킨다. 앞서나가긴 힘들지만 뒤처지기는 쉽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 경험으로 체득했고, 때문에 그 격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생기를 잃어가는 눈동자로나마 투지에 불타는 너를 눈 앞에 두고 어떻게 이런 말을 꺼낼 수 있을까. 그것을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은 너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였다.


“제가 이렇게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오이카와 씨의 배구는 더 대단해졌겠죠?”


수척해진 네 몸을 훑는 내 시선이 너무 집요했던 것일까. 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끔은 궁금해요.”


TV도, 인터넷도, 신문도 없는 비좁은 방. 우리는 이 공간을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키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것은 너를 위한 일이자 나를 위한 일이었다. 변화하는 세상을 마주하는 일은 곧 우리의 도태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


“오이카와 씨의 배구는 어디까지 나아갔나요?”


아. 이번에는 정말로 숨이 막혔다. 주가가 하락하는 배구선수인 내가 여전히 정상에 있을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네 앞에서 뿐이다. 나는 여전히 너에게 최고의, 그리고 최상의 선수이자 연인이겠지. 그런 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있지, 나는 모든 것을 걸고 배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가끔은 배구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 그런 잡념은 곧 족쇄가 되어 집요하게 내 발목을 잡아챈다. 하지만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배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네가 내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내가 너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거야 대단하지. 예전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걸.”

“역시 그렇겠죠?”

“그럼. 토비오, 퇴원하고 나서 날 따라잡으려면 정말 열심히 연습해야할 걸.”


그거라면 자신 있어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네 모습에 작게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최선이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순간이 곧 내게도 고지였음을 털어낼 자신은 조금도 없었다. 어쩌면 지친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일지도 몰라.


그 순간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의 진동이 느껴졌다. 공기조차 무거운 병실 안이었기에 그 가벼운 소음조차도 요란했다. 액정에 뜬 이름에 애써 착잡한 표정을 지웠다. 네 눈앞에서 그런 표정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 탓이었다.


“미안. 전화 좀 받고 올게.”


화면을 가득 채운 ‘감독님’이란 글자가 네게 보이지 않도록 액정을 안 쪽으로 든 채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대로 병실 앞에서 무릎을 꿇어앉았다. 지속적으로 울리는 진동은 잠금 버튼을 한 번 누르자 잠잠해졌다. 지금은 저 사람의 이야기도, 목소리조차도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언젠가, 치기어린 감정이나마 네가 가진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무게만큼이나 깊었던 고민과 고뇌를 거치고 나서야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치기어린 바람이 이제와 이루어진 거라면, 나는 마땅히 그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너는 병실 안 비좁은 침대에 앉아 코트 위의 모습을 그린다. 지나가버린 봄을 회상한다. 그런 네가 보기에 나의 계절은 아직도 봄이겠지만.


나는 그 날 이후로 한 걸음도,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어, 토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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