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도달하는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기였어야 할 내가 왜 인간으로서 그와 함께 살고 있는지, 나는 종종 생각했지만 그 의문을 해결할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나만이 품고 있는 의문도 아닌 듯했다.

이 집에 이따금 들르는 손님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유일한 손님이었다. 스쿠나는 그를 우라우메라고 불렀다. 중성적인 외모였는데 아마도 여자 같았다. 그가 오는 날이면 스쿠나는 드물게도 주방 일에서 손을 뗐다. 대신 모든 주방 일은 우라우메가 맡았다. 그는 요리에 아주 도가 텄다고 스쿠나가 말했다. 확실히 칼 다루는 솜씨나 재료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요리를 업으로 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요리를 잘하는 정도라면 스쿠나가 그를 높게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스쿠나에게 신임을 얻은 까닭은, 그 역시 인간을 재료로써 다루는 데 익숙하다는 점에 있었다.

그가 인간의 사지를 손질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본의는 아니었다. 잡뼈가 많은 손이 잘려나가고 허벅지 살이 솜씨 좋게 뼈와 분리되는 것을 나는 가능한 무감각한 눈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아마도 남자였을 법한 그 몸은 완전히 해체된 끝에 적포도주와 함께 끓여져 비프 스튜 비슷한 것이 되었다.

스쿠나는 내게 그 광경을 모두 볼 것을 종용했다. 그 행위엔 일말의 악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우라우메의 기술을 보여주는 건 내게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엔 장인의 기술을 지켜보는 데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떠올라 있었다.

우라우메가 오는 날의 저녁 식사는 만찬이라 칭해 마땅할 만큼 풍성했다. 식탁에 차려진 대부분의 요리가 육류 중심이었다. 두 사람은 놀라울 만큼 잘 먹고 잘 마셨다. 넉넉하게 차려진 요리에도 불구하고 접시들이 빠른 속도로 비워졌기에 스쿠나는 평소보다 내가 먹는 양에 신경을 덜 썼다. 우라우메의 방문에 단 하나의 이점이 있다면 그것뿐이었다. 나는 짙은 적갈색의 스튜를 몇 숟가락 떴다. 고기를 뼈째 뜯던 스쿠나가 불현듯 나를 돌아보고는, 적어도 그 접시 정도는 비우라고 한마디를 했다. 오늘 내게 강요되는 식사가 스튜 한 접시인 것에 나는 차라리 안도했다.

도로 게워낸 스튜는 핏빛이어서 마치 피를 토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그 토사물에서 굳이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물을 내리고 돌아서는데,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뒤에 서 있던 우라우메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는 그 눈에 차가운 경멸이 묻어났다.

“……어째서 저분이 너 같은 걸 데려온 건지.”

대놓고 들으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까이 서 있는 내게는 충분히 들릴 만한 음성으로 우라우메가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싶다는 말은 더더욱 할 생각이 없었다.

우라우메는 왔을 때와 같이 떠날 때에도 소리 없이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나는 잠시 복도에 서 있다가, 약간의 틈을 두고 다이닝 룸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스쿠나는 육질이 형편없는 인간들에 대해 큰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우라우메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차와 과자를 내올 준비를 하는 듯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스쿠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마지막 접시가 상 위로 날라지기를 기다렸다. 차와 과자는 이들의 식사 가운데 내가 먹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메뉴였다. 시답잖은 담소 끝에 찻잔이 완전히 비워지면 우라우메는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이 집에 스쿠나와 단둘이 남기 전에 나는 조금이라도 기력을 보충해야 했다. 다가올 밤은 더욱 힘겨울 테니까.


우라우메가 돌아간 날 밤이면 스쿠나는 으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인간을 주재료로 한 미식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의 하나라는 걸 이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파악했을 정도니까. 그는 사냥도 좋아했지만 사냥한 것을 한결 더 고차원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그 욕구가 충만히 채워진 저녁이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쿠나는 기본적으로 꽤 변덕스러운 인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섹스를 치를 게 예상되는 밤이 있다면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었다. 그는 유독 기분이 좋은 날, 혹은 반대로 기분이 적이 불쾌한 날 자주 나를 안았다. 그것은 빈말로라도 황홀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는 안는 상대를 함부로 다루었고 몹시 가학적이었다. 거리낌 없이 살생을 저지르는 인사답게 폭력을 쓰는 데에도 전혀 주저함이 없어서, 그가 요구하는 행위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면 곧바로 손찌검이 날아왔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기분이 좋은 그에게 안기는 것이 기분이 나쁜 그에게 안기는 것보다는 천 배쯤 나았다.


가득 받아놓은 목욕물 안에서 나는 한계까지 앉아 있었다. 다가올 고역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기 위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물에 몸이 이완되는 게 그나마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쿠나는 목욕을 좋아했기 때문에 씻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크게 타박하지 않았다. 사실 본인부터가 욕조 안에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언젠가 TV에서 그런 습관은 심혈관계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나는 구태여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애당초 내가 그의 안녕에 신경을 쓸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이 욕조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퍼진 몸이 슬슬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여기서 너무 오래 버티고 있으면 기다리다 지친 스쿠나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지루한 걸 싫어했고 기다림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 그는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한 매복은 몇 시간이고 꿈쩍도 않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감히 내가 그를 기다리게 하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가 나를 원할 때라면 더욱 그랬다.

긴 한숨을 내쉬며, 나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속의 부력에 익숙해진 다리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물을 잔뜩 머금어 부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나 설령 진짜로 그렇게 된 것이라 해도, 이제 곧 머금은 수분이 전부 바닥날 지경으로 그에게 시달릴 것이다.


물에서 나온 뒤에도 졸음기처럼 연한 어지럼증이 나를 감쌌다. 커다란 배스 타월로 천천히 머리와 몸의 물기를 가시고,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그러나 미처 다음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몸에 감은 수건이 우악스레 벗겨져 나갔다.

다음 순간 언제나 피 냄새가 감도는 입술이 나를 덮쳤다. 유달리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랫입술을 찢을 듯 여린 살을 압박했고, 나는 잠시 숨도 쉬지 못한 채 그의 폭력에 가까운 키스를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였다, 라기보다는 견뎠다, 라고 하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차마 그의 핏빛 어린 눈을 마주볼 수 없어 질끈 눈을 감은 채, 나는 식사 때마다 그의 날카롭고 단단한 이가 찢어발기고 으깨는 살점들을 생각했다. 육식동물이 먹잇감을 집어삼키듯 그는 나를 집어삼켰고, 이 순간 나는 죽지 않았을 뿐 그의 앞에 놓이는 고깃덩어리와 크게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스쿠나의 키스는 오래 이어졌다. 그는 고기를 삼킬 때에도 키스를 할 때에도 혀와 입술을 그리 다르게 사용하지 않았다. 깨물고 삼킬 듯한 거친 키스에 안 그래도 자주 깨무는 아랫입술이 금세 해어지고, 입안에 막 배어나온 피의 비릿한 맛이 돌 때에야 그는 만족하여 입술을 물렸다. 그의 입술에 살짝 묻은 피는 언제나 내 입안의 점막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피 맛을 음미하고는, 나쁘지 않은 요리를 맛보았을 때처럼 눈썹을 살짝 들어 보였다.

이윽고 그는 나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제대로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이 여즉 축축했으나,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나를 침대에 내던졌다. 이제 곧 온갖 종류의 체액― 땀과 눈물과 음부에서 흘러나온 분비액뿐만이 아니라 심심치 않게 핏자국이 얼룩질, 그럼에도 언제나 하얗게 빨려 있는 시트 위에서 나는 본능적인 떨림을 감추려 있는 힘껏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오늘처럼 그가 꽤 유쾌한 날에는 적어도 목은 졸리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위안 – 그것을 위안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 이었다.

뒤이어 스쿠나가 성큼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의 육중한 무게에 필경 고급품일 터인 매트리스가 견디지 못하고 한쪽이 크게 눌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도가 높지 않은 침실등의 불빛만으로도 그의 눈은 충분히 번들거렸다. 그것은 이제 막 잡은 먹잇감을 희열에 차 들여다보는 포식자의 눈빛이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희생양을 앞에 두고 오로지 재미를 위해 잔혹성을 휘두를 지배자의 눈빛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나의 입장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내가 철저히 당하는 입장에 놓이는 것을 선호했다.

그가 손을 뻗었다. 단 한 번의 깔끔한 동작으로, 그는 내 발목을 붙잡아 자기 아래로 확 끌어내렸다. 선명한 문신이 새겨진 근육이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근육의 결이 선명한 그 몸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가 먹어치운 고깃덩어리들을 생각했다. 타인의 피와 살이 그의 몸에 들어가, 다시금 그의 피와 살로 화하는 과정을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몸이 나를 무자비하게 범할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그의 식욕과 성욕은 내게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물리적으로 먹히지 않는 대신, 그에게 매일매일 이런 식으로 ‘먹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잡념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그의 손에 놀아나길 바랐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울고 매달리고 신음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대체로 어렵지 않게 현실이 되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힘주어 감아도, 눈물은 기어이 그 틈새를 뚫고 흘러나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왜 나를 살려 두고 있는 건지, 언제까지 살려 둘 작정인지, 나는 조금도 짐작이 가는 바가 없다.

내가 아는 건 단지 그가 인간을 대하는 법에 있어 나라는 예외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먹을 수 있는 인간과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 인간이라는 이분법 사이에, 먹지도 그렇다고 놔주지도 않는 예외로서, 나는 존재한다.

확실한 건, 내가 그의 유일한 예외라는 것이 결코 축복으로 분류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저주.

죽음을 내리거나, 죽는 것보다 못한 처지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개중 어느 쪽이 더 나을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겠지만.

적어도 나는, 전자가 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 이어지는 내용은 23년 7월 디.페스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사람

미르덱스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