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율리님

고독함이 머무는 파란 도화지 속에 

죽음이 어색할만큼 찬란한 빛깔들


평소에는 더없이 푸르던 하늘인데. 오늘따라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은 내가 가는 길을 마중하러 나온 것처럼 어두웠다. 불조차 켜지 않은 방 안은 그저 흑백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단조롭기만 한 흑백의 방. 그 안에 홀로 있는 것이 익숙했지만, 어색했고. 그 조용함을 좋아했지만, 적막감에 고독이 느껴졌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독함과 시야에 담기는 마지막 세상이 흑백인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어지간하면 꺼내지 않았을 파란 도화지를 꺼내었다. 파란 도화지를 색들 채웠다. 마치, 잔잔하던 호수 위로 파란 빗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흑백의 세상 속에 색이 입혀진 비가 떨어져 호수를 다양한 색으로 물들였다. 도화지 안을 가득 메운 찬란한 빛깔들은 몹시도 찬란하였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말이다. 내게 하루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시선을 앗아간 건, 찬란한 빛깔이 담긴 파란 도화지였다.



MIN님

불이 꺼진 방 안과는

전혀 다른 야경을 바라보며

낮게 읊즈린 말


늦은 밤, 불이 꺼진 어두운 방과는 다른 반짝이는 야경이 창 너머로 보였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이 도는 방과는 다른 활기 참을 보여주는 밖의 야경에 문득 네가 떠올랐다. 참 웃기게도 이미 널 내 세상 속에서 다 지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널 지운 척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네 이름을 불렀다. 네게는 닿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너의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연하님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언제나와 같은 날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깨져버렸다. 집 안에 곳곳에서 보이는 허전한 공간들에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너와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방 안으로 급히 갔다. 사진에는 네 모습은 사라지고, 나 혼자만 찍혀있다는 사실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싸늘함이 느껴지는 바닥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내게 남은 유일한 흔적은 너의 이름 두 자와 너와의 추억뿐이었다. 사라져 버린 너에게 닿지 않을 이름을 불렀다.

"하... 현..."

이름을 부르면, 나타나던 네가 이제는 내 앞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계속 불러보아도 나타나지 않음에 네가 없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와닿았다. 세상에 잊힌 너의 이름, 너의 생김새를 기억하는 이는 유일한 나였다. 영화처럼 만난 우리여서일까. 우린 헤어질 때도 영화같이 헤어졌다. 네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날 때까지 난 몇 번이고 네 이름을 부를게. 널 다시 찾는 그날까지. 그러니까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아프지 마 하현..."



MUSE님

그래서 결국 샐리는 기다릴 수가 없었던 거야 그녀도 이젠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이미 떠나버렸지 그녀의 혼이 내 곁에서 떠나갔지. 화난 채로 뒤를 돌아보지 마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네가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현실을 거부했다. 그래서 널 내 세상에서 지워보려 잊은 척했다. 사실은 네가 떠나지 못하고 내 곁을 맴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어. 인정하면 정말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사실이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모른 척했어. 그런 내게 벌을 주는 걸까. 결국 넌 떠나버렸지. 그제야 인정을 하기로 결심했지. 그래서 네가 가는 그 길이 행복하길 바랐어. 



멜랑님

계절에 흩날려 떨어진 꽃잎은

홀로 남아 외로워 슬프도록


유난히도 추운 올해 겨울날 나무에 피어난 꽃에 시선이 빼앗겼다.

"이 추위 속에서도 꽃은 피었네."

그때, 세찬 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감쌌다. 그것은 꽃도 마찬가지였는지, 바람에 꽃잎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나무 위에 위태로운 꽃을 보니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그녀와 내 관계 같았다. 금방이라도 꺾여서 바람에 꽃잎이 흩날릴 거 같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뜬 그녀의 이름. 이 전화를 받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난데...

"응. 멜아 말해요."

- 전화로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우리 그만 헤어지자.

그녀의 말에 전화를 받기 싫었던 이유를 알았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

- 태희야. 그동안 고마웠어. 잘 지내길 바라.

"...멜이 너도 잘 지내요."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지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그저 보내줘야 한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 응.

그렇게 그녀와의 마지막 전화가 끊겼다. 허무함이 몰려와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때, 바람을 이기지 못한 꽃은 결국 흩날려 허공을 떠다니다 쓸쓸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나와 같았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외롭고 허탈한 마음만이 맴돌았다.



이디님

너란 목줄을 채운 난 숨을 쉴 수 없게 아프면서 황홀하잖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약자라더니. 내가 딱 그랬다. 너와 관련된 일이면 언제나 나는 바보처럼 약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네가 날 부르면, 언제든 네게 갈 수 있도록 기다렸다. 마치,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말이야. 내가 널 기다리는 강아지라면, 널 사랑한 순간 나는 너라는 목줄을 채워졌어. 설령 그 목줄이란 이름의 사랑이 날 숨조차 못 쉬게 하는 고통을 동반한다 해도 네가 주는 관심과 사랑에 황홀했다. 그 황홀감에 너라는 목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네 손에 목줄의 손잡이를 쥐여줬다. 내 숨통을 더 조여오는 너의 사랑은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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