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인가 트위터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발단은 이것이었다.


암환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메이크업 교육이었다. 그것도 병원내에서 이루어진. 이 한장의 사진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여성이 아픔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추어야 한다니"라는 입장과 "저분들은 저것이 프라이드다"라는 주장으로 거칠게 양분되었다. 어떤 여성은 내가 암환자인데 이런 교육을 문제삼는다면 면전에 물건을 투척할것이라며 가만두지 않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몇몇 의사들도 그에 동조해 심지어 어떤 의사는 암걸려도 열심히 탈코 화이팅!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나는 실제 심장이식 사례에서 여고생이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외모변화로 자살한 예를 들며 저것은 정말 지양해야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나의 처절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그냥 "논점이탈"의 무엇이 되고 말았다.

나도 수술을 하고 머리가 다 빠져 가발을 쓴 적이 있다. 가발은 정말이지 무겁다. 그래서 항암가발을 쓴다.  이것조차 못견디면 저렇게 스카프를한다. 입술에 뭘 바르는것도 힘이 든다. 왜 여성은 환자인데도 환자의 모습을 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겹겹히 얽힌 우리 사회의 여성성과 바디이미지에 달려있다. 그렇다. 여성은 더이상 "아름다울"수 없다면 "아름다움"을 포기한다면 자신이 죽었음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셈이 된다. 그러하여, 화장과 메이크업을 어떻게든 사수하는것은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것이 된다. 

여성이 화장을 포기할때, 그 여성은 죽는다. 이것은 매우 유구하게 내려온 전통이고 강요된 여성성이다. 그래서 나는 롤모델이 없어 꾸미지 못했던 10대시절에 선머슴같은 모습을 놀리는 말들에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소위 "심장병 소녀"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아픈데, 병약한데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대놓고 배를잡고 웃었다. 니 얘기를 자신이 아는 남성청소년이게 했더니 소개시켜달라고 했다며. 아 물론 우리 밈이가 병약소녀인건 맞지만 미소녀는 아닌데 말야 라고. 나도 같이 웃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긴상황 아닌가. 20대가 되어 화장이란걸 할 수 있게되자 하이힐을 신고 인대가 늘어날때까지 돌아다녔다 그리고 2년뒤 심장이 60%비대하게 증가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그 수술후에 내 친구들의 한 마디는 "너처럼 날씬해 질 수 있다면 나도 그 수술을 하겠다"였다. 

이 얼마나 미치고 또 미친 나라인가. 환자가 회복에 중점을 맞추는것도 그러니까, 다시 건강을 되찾는 도식조차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거늘, 환자가 회복에 하등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킬 메이크업이 권장되고 사실상 권장을 넘어 의무수준으로 여겨진다.

글을 쓰다보니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처음 부정맥으로 실려왔을때(14살 1월) 칸막이가 없는 어린이 병동에서 내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성보호자가 생각난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어느정도 자의식이 생긴 후에 다시 내 몸이 의료적 몸으로써 취급당한다는것을. 내 가슴(성적인 의미를 다분히 내포한)은 아무에게도 보여줘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 자살한 심장이식 여고생이 이해가 간다. 온 몸이 찢기는 고통을 견뎌냈는데,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설령 일시적이라고 해도. 생쌀을 찢는 고통보다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보다 더 힘든것이 살이 찐 나의 모습이다. 

여성-청소년 환자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무기력함. 성적방종. 자해. 정신질환의 발병. 그리고 자살.이 모든것들은 여성-청소년 환자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겪지 않았을 것들이다. 병의 논리를 설명하는것도 여성-청소년 환자에게는 "자궁으로의 환원"으로 설명된다.

실제 내가 중학교때 부정맥 원인으로 들은 설명은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호르몬 관계로 부정맥이 옵니다"였다. 엄마는 나의 부정확한 생리주기에 매우 집착했고 진료실에서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몇명이 있던말던 "선생님 이번달에 우리 밈이 생리가.."로 말문을 열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치욕스러웠다. 남성-청소년 환자도 그런 치욕을 겪어야 했을까.  예를들어, "선생님 이번달에 우리 뫄뫄가 자위를 잘 안해서.."같은말 말이다.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것이다.

결국 "자궁으로 환원되는 여성 환자"는 청소년일 적부터 그 쓸모있음과 없음을 양가적으로 주입받아 자신감이 없게되고 홀로 갇혀지내는 경향이 짙다. 여성이 한의원을 자주 찾는다고 가끔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실제로 모르겠으면 "자궁탓"을 하니 한의원을 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생리주기를 맞추기 위해 그러면 건강해질거라 믿고(사실 아무 상관없없다. 나는 그냥 악화될 질환이었다)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지 모른다. 

병은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가고 우리는 병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러나 그전에 사회에서 켜켜히 쌓인혐오들을 벗겨낼수 없다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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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여자. 선천성 심장장애인으로의 삶을 기록합니다. 트위터: @kim_mem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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