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엔 초콜릿의 맛을 기억하나요


“니토 센리 초콜릿 절찬 모집중!”


그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관심 끌기 대사였다. 오늘 같은 기념일엔 더욱 더 모두의 관심이 고픈 천진난만한 남고생이니까.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엎드려 절 받기라도 기쁘잖아. 의리 초콜릿이라도 문제없음! 오히려 대환영! 그렇게 생각하며 센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유우마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기숙사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덕분에 유우마 역시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좋은 아침, 니토.”

“유마삐 좋은 아침!”

“니토. 이 초콜릿 받아줘.”


이제 막 인사를 나눴을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제 앞으로 내밀어진 초콜릿에 센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응? 뭐지? 어젯밤 설렘에 잠을 설친 탓에 보이는 환각일까. 사실 아직 발렌타인데이 전날 밤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발단 전개 위기를 죄다 뛰어넘고 찾아온 클라이맥스에 센리는 당혹스러움을 애써 숨기며 유우마를 바라보았다.


“초콜릿을, 유마삐가, 나한테? 응?”

“오늘 발렌타인데이라고 야나기 선배가 그랬어.”


그리고 그 말투 웃기다. 그렇게 덧붙이며 유우마는 덤덤하게 센리의 손에 초콜릿을 넘겨주었다. 투박한 포장지에 써져있는 ‘5엔이 있을 거야(ごえんがあるよ).’라는 글씨는 꽤 오랜만에 보는 패키지였다. 어렸을 적 먹어본 기억이 있는 5엔 초콜릿. 아마 초등학생 때 즐겨먹던 값싼 불량식품 중 하나였지.


“정말 내가 먹어도 괜찮아?”

“응. 니토한테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좋은 인연, 만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유우마는 옅은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하리한테도 5엔 주면서 비슷한 소리를 했던가? 순수한 호의만이 가득한 그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센리는 초콜릿 포장지를 깠다. 손바닥 위로 털어낸 초콜릿은 고작 하나였지만 5엔 동전마냥 가운데 뻥 뚫린 구멍을 바라보고 있자니 공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문득 포장지에 적힌 글씨가 떠올랐다. ‘좋은 인연을 만날 거야(ごえんがあるよ).’ 나는 그 인연이 유마삐였으면 좋겠는데.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는 유우마를 흘끗 바라보았다.


유마삐와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기를. 속으로 합장하며 센리는 그대로 5엔 초콜릿을 입으로 가져갔다. 혀에 닿자마자 서서히 녹아내리는 초콜릿이 입 안 가득 씁쓸한 단맛을 퍼트렸다. 분명 예전에 먹었을 때는 좀 더 달달했던 것 같은데. 유우마가 건네준 5엔 초콜릿은 작은 크기만큼이나 사라지는 속도도 빨랐다. 어느덧 그의 입안에는 텁텁한 끝 맛만이 남아있었다. 역시 단맛이 부족해. 아쉬운 듯 혀로 입술을 훑은 센리는 목소리를 길게 끌며 유우마를 불렀다.


“있지, 유마삐~”

“왜, 니토?”

“거짓말 한 마디만 해줘.”


사랑한다고.


뒷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건 아직 제 입안에 남아있는 씁쓸한 초콜릿의 잔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마삐는 상냥하니까 터무니없는 부탁을 해도 넘어가준다. 항상 그런 식으로 내가 원하는 말을 들어왔다. 그 때마다 느껴지는 건 단맛이 아니라 토해낼 듯이 쓴맛이었지만.


“……했어.”


유우마의 말소리는 평소와 달리 제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잡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있는 탓인 듯 했다. 센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유우마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유마삐. 잘 못 들었어~”

“니토한테 거짓말 했어, 이미.”


아까와는 다르게 선뜻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그의 행동에 센리의 의문은 더 커져갔다. 무슨 소리야, 유마삐 거짓말 같은 건 하나도 못 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화중에서 거짓 낌새는 하나도 없었잖아? 곰곰히 생각해봐도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에 유우마의 목소리는 한층 작아졌다. 


“……니토가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으면 좋겠어.”

“에, 뭐야 그거 저주?”

“……경우에 따라 다를지도.”

“유마삐?”


센리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대답만은 남기고 유우마는 인사조차 없이 그대로 로비를 벗어났다.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에 센리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초콜릿을 받은 것까지만 해도 기뻤다. 그치만 왜 유마삐는 갑자기 자리를 피하는 걸까. 센리는 좀 전까지의 대화 내용을 천천히 되돌아봤다. 유마삐는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 ……무슨 거짓말을?


니토한테 주고 싶어서.

좋은 인연 만날 거야.

니토가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으면 좋겠어.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게 느껴졌다. 진짜? 거짓말.


그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보아도 두 볼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전언 철회, 유마삐는 거짓말 천재야. 니토 센리 오늘부로 거짓말쟁이 사기꾼 전부 사퇴합니다. 센리는 숨을 꾹 들이마셨다. 얼마나 지났다고, 입안에 남아있던 5엔 초콜릿의 잔향은, 거짓말처럼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2020.02.16 드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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