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옆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에 미스라는 눈을 떴다. 내내 감고 있던 탓에 갑작스레 직시한 햇빛은 당연하게도 눈부셨다. 분명 처음에 누웠을 땐 그늘 밑이었는데. 자연스레 찌푸려지는 그의 인상에 바로 옆에서 풋,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스라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잠을 깨웠나요?”


루틸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미스라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질문에 미스라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자고 있었는데요.”

“마침 잘 됐네요! 네로 씨가 만든 머핀을 가지고 왔어요.”


어쩐지 루틸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싶더니. 몸을 일으켜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옆에는 작은 바구니가 숨어있었다. 미스라가 그쪽으로 팔을 뻗자 루틸은 그런 행동이 익숙하듯이 미스라 쪽으로 바구니를 내밀었다.


“전부 미스라 씨 몫이에요. 저는 좀 전에 미틸이랑 같이 먹었거든요.”

“나쁘지 않네요.”


저러다 체하는 건 아닐까, 양 손에 든 머핀을 쉬지 않고 먹어대는 미스라의 행동에 루틸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면서도 굳이 말리진 않았다. 대신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스케치북을 펼쳤다. 뭔가 떠오른 듯 펜을 움직이기 시작한 루틸은 어느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뭘 그리고 있나요.”


이내 바구니를 다 비운 미스라는 손에 묻은 크림을 핥으며 물었다. 루틸은 즐거운 얼굴로 그를 향해 스케치북을 펼쳐보였다.


“미스라 씨와 과자의 집이에요!”

“과자의 집이라, 저보단 오웬이 좋아할 것 같군요.”


심드렁한 미스라의 대답에 루틸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것치곤 벌써 머핀을 다 먹어버렸네요. 봐요, 입가에 크림이 묻어있어요.”


루틸이 뻗은 손가락은 미스라의 입술 옆을 훑고 지나갔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묻혀진 크림은 곧 루틸의 입으로 옮겨졌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을, 미스라는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 미스라의 시선을 깨달은 루틸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저한테 뭐라고 하는 당신도 식사 예절이 좋진 않네요.”

“후후, 그런가요?”

“네.”


짧은 대답과 동시에 미스라는 루틸의 손을 낚아채 그대로 잔디밭 위로 넘어뜨렸다. 갑작스러운 습격에도 불구하고 루틸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미스라를 올려다보았다. 루틸은 구속되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순간 미스라의 눈썹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그야, 빙 돌려서 말하는 건 미스라 씨한테 통하지 않으니까요.”

“도망쳤던 주제에 말은 잘 하네요.”


답지 않게 비아냥거리는 미스라의 말투에 루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루틸은 지난 밤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미스라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늦은 밤의 티타임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니,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그 날 루틸은 미스라에게서 도망치듯이 방을 뛰쳐나왔다는 점이었다. 상황은 복잡하지 않았다.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그러한 분위기로 흘러가며 미스라가 자신의 뺨을 상냥하게 쓰다듬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다가오는 미스라의 얼굴에 루틸은 그만 있는 힘껏 그를 밀쳐버리고 말았다. 미스라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애초에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육체적인 접촉을 먼저 허락할 수 없었다. 그래서 루틸은 도망쳤던 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생각 같은 건 귀찮은 짓이에요. 게다가 이렇게 저를 찾아왔다면 그 생각이란 건 다 끝난 것 같네요.”


정곡이었다. 루틸은 작게 숨을 들이마시곤, 제법 진지한 눈빛으로 미스라를 올려다보았다.


“미스라 씨를 좋아해요.”

“…….”

“미스라 씨는요?”


그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김은 좀 전에 먹어치운 머핀의 달짝지근한 향기가 섞여있었다.


“……잘 모르겠어요. 당신처럼 고민하는 것도 성미에 안 맞고요.”


미스라는 잡고 있던 루틸의 손목을 풀어주며 그의 옆으로 구르듯이 누웠다.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던 미스라는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려 루틸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마주친 녹색 눈동자에 그는 다시 묵직한 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신한테 입을 맞추고 싶다는 건 어떤 감정인가요?”


미스라의 질문에 루틸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그를 향해 옆으로 돌아누웠다.


“으음……. 그 해답은 저도 조금 신경 쓰이네요.”

“당신 남쪽에서는 선생이었다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요?”

“그러는 미스라 씨도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닌가요?”


맞받아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원래부터 언변에는 재주가 없는 미스라였다. 말문이 막힌 그의 모습에 루틸은 쿡쿡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며 손을 뻗었다. 상냥하게 붉은 머리카락을 넘기던 손끝은 곧 굳게 다문 입술 위로 옮겨갔다.


“……궁금하면 같이 정답 맞춰볼까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미스라는 제 입술에 맞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을 깜빡하는 사이, 시야 가득 루틸의 얼굴이 보였다. 먼저 부딪쳐오는 강단에 비해 제법 긴장했는지 그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미스라는 루틸의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순간 미스라는 멍한 얼굴로 루틸을 자신에게서 떨어트렸다. 사랑스럽다고? 나는 지금 루틸을 사랑스럽다고 느낀 건가? 그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루틸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잡힌 어깨에 루틸 역시 놀랐는지 눈을 깜빡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미스라 씨……?”


또 그런다. 가슴 한 편이 간지러운 느낌에 미스라는 그만 루틸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아누웠다. 어제 루틸도 이런 마음이 들어 도망친 걸까. 익숙하지 않은 감각은 미스라에게 있어서 불편하게 와 닿았다. 애초에 불편하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계속 생각하고 있자니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생각하기 귀찮아졌어요. 잘 거예요.”

“아! 혹시 지금 부끄러워서 도망치는 건가요?”

“하아, 변명하기 귀찮으니까 멋대로 생각하세요.”


눈을 감고 있으니 뒤에서 손가락으로 제 등을 콕콕 찌르는 루틸의 손길이 느껴졌다. 잘 거라니까, 거참 좋은 성격 갖고 있네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스라는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2020.08.13 마호야쿠

리퀘: 미스루틸 첫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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